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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위를 쳐서 생수를 내라 / 출 17:1,4 ~ 7 / 롬 5:9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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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화 목사 (경동교회)

바위를 쳐서 생수를 내라

구약의 말씀: 출애굽기 17:1, 4 ~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은, 신 광야를 떠나서, 주의 명령대로 진을 옮겨 가면서 이동하였다. 그들은 르비딤에 진을 쳤는데, 거기에는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다.

  모세가 주께 부르짖었다. "이 백성을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은 지금이라도 곧 저를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합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이 백성보다 앞서서 가거라. 그리고 나일 강을 친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거라. 이제 내가 저기 호렙 산 바위 위에서 너의 앞에 서겠으니, 너는 그 바위를 쳐라. 그러면 거기에서 이 백성이 마실 물이 터져 나올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에서 주께 대들었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므리바라고도 하고, 또 거기에서 "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 하면서 주를 시험하였다고 해서, 그 곳의 이름을 맛사라고도 한다.


서신서의 말씀: 로마서서 5:9 ~ 11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로 있을 때에도 그분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하나님과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지금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복음서의 말씀: 요한복음서 4:7 ~ 14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나왔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가서, 그 자리에 없었다.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께 말하기를 "선생님은 유대 사람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였다. (유대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과 상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나님의 은사를 알고, 또 너에게 물을 달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도리어 네가 그에게 청하였을 것이며,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여자가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에게는 두레박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떻게 나에게 생수를 구해 주시겠습니까? 선생님이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위대한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는 우리에게 이 우물을 주었고, 그와 그 자녀들과 그 가축까지, 다 이 우물의 물을 마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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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요즘에는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나와서 쉽게 살기 어려운 때가 되었습니다. 라디오를 틀면 전쟁 소식이 귓전을 울리고, TV를 켜면 끔찍스러운 장면들이 자꾸 나옵니다. 신문을 보면 대문짝만한 기사로 “공격” “침공” “사상,” 이런 글들만 보입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가 이런 것들을 안락의자에 앉아서 보고 있지만, 만약에 이런 장면들이 바로 우리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우리 심정은 어떻고, 세계의 다른 사람들 마음은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역사가 평화의 역사가 아니라 전쟁의 역사로 얼룩졌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결코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불협화음과 또 다른 보복을 낳을 수 있다는 것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전쟁이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하소서, 하는 기도밖에는 드릴 기도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전쟁의 역사는 지금 21세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옛날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있었다는 것을 성서만 읽어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오늘 출애굽기 말씀에 보면, 모세를 지도자로 하여서 400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서 광야로 나왔습니다. 말이 홍해지 지금의 나일 강 지류입니다. 그 홍해를 건널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들었던 지팡이의 힘을 빌어서 건널 수 있었습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홍해를 지팡이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홍해를 쳤더니 물이 갈라지고, 그래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서 광야로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홍해를, 나일 강을 쳤던 지팡이, 그 지팡이는 지금 머물고 있는 이스라엘 가운데 있습니다.

이제 광야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엄청난 해방의 감격을 누렸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았다! 우리는 자유인이다! 그들은 이제 선민으로서, 자신들에게 약속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씩, 하루하루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홍해를 건너고 해방을 누린 그 엄청난 기쁨과 감격은 오래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광야에 도착하자 당장 먹고살아야 했습니다. 입어야 했습니다. 잠자리도 필요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

이집트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이 날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특별히 심각한 것은 물이 고갈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일부 학자들의 고고학적 주장을 보면, 당시에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숫자가 아마 200만 명쯤 되었을 거라고 합니다. 사실을 확인할 수 없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광야 땅에 200만 명이 진을 치고 있어서 모세라는 한 지휘자를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물이 떨어졌습니다. 모래땅을 아무리 파보아도 물이 안 나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세에게 호소합니다. 물을 달라!

모세가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물을 줄 수 없으면, 이 사람들이 저를 바로 죽일 것 같습니다. 물을 좀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일 강을 내리쳤던 그 지팡이를 들고 호렙 산으로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호렙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야웨 하나님께서 “내 앞에서 지팡이로 바위를 쳐라. 그러면 물이 흘러나와서 다 먹일 수 있을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와서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가 광야에 있었더라면,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라고 소리쳤을 것입니다. 만나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기적, 바위에서 물이 솟아난 것도 기적이었습니다.

물을 마신 이 사람들은 모세의 영도를 따라서 다시 해방의 감격으로 하루하루, 한 걸음 한 걸음 가나안을 향해서 갔습니다. 40년 동안 이런 방식으로 살았습니다. 홍해를 건넌 감격도 잠시, 다시 좌절과 실망에 넘어지고, 다시 물을 얻어 먹이면 찬양하며 한 걸음 가다가, 먹을 게 없다고 마실 게 없고 입을 게 없다고 불평하면서 40년을 지낸 뒤에야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과거의 역사니까 40년을 묶어서 몇 마디로 표현하지만, 실제로 40년을 그렇게 살아보십시오. 도대체 살 수가 있겠습니까? 전쟁이 40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옛날에 100년 전쟁이나 30년 전쟁도 있었습니다. 매일 연속되는 전쟁이 아니었지만, 그 전쟁을 겪는 사람들은 얼마나 지긋지긋했겠습니까? 6․25 전쟁이 3년 전쟁이었는데, 우리에게는 그 3년이 아마 3천년 같았을 겁니다.

땅을 파도 물 한 모금 나오지 않는 광야, 그 광야에서 바위가 갈라져 나온 물을 마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에는 물을 갈라서 구원받았습니다만, 이제는 똑같은 지팡이로 마른 바위를 쳐서 물이 나오게 했습니다. 물을 없앤 지팡이, 물을 생기게 한 지팡이, 그 지팡이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의 지팡이였습니다. 모세는 그 지팡이를 가지고 가나안 땅 앞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막 물을 먹고 나왔는데, 아멜렉이라 이름하는 토속종족이 침략해 왔습니다.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승리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아멜렉을 물리친 것입니다. 모세가 너무 기뻐서, 백성들 앞에서 제단을 쌓고 그 제단의 이름을 야웨 닛시, 아도나이 닛시라고 지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깃발, 저의 깃발 그런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해서 승리했습니다.

이 일을 오늘 21세기로 끌어와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일 강을 건너 나온 그 광야가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호렙 산 바위에서 물을 내었던 그곳에서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 석유가 콸콸 솟구칩니다. 석유라는 엄청난 에너지 자원이 사우디아라비아 땅에 묻혀 있습니다. 아멜렉이라는 부족은 지금도 사우디아라비아 에 있는 어느 이슬람 부족의 선조일 것입니다. 그 아말렉과 싸워서 이스라엘이 이겼다는 기록입니다. 이미 전쟁은 모세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해서 수천 년 동안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풍비박산이 나고 뿌리 뽑혀서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면서 소위 디아스포라를 이루게 된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기원전 587년, 바빌론이라는 강대국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습니다. 그 침략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정신적 지주인 예루살렘 성전이, 율법을 새긴 돌 판을 담은 법궤를 모신 지성소가 완전히 파괴됩니다.

모세와 연관해서 살펴보십시다. 지팡이가 모세의 손에서 바빌론 손으로 옮겨졌습니다. 바빌론은 그 지팡이를 가지고 예루살렘 성전을 쳤습니다. 모세는 바위를 쳐서 물을 냈지만, 바빌론은 예루살렘 성전을 쳐서 이스라엘 백성을 완전히 흩어 놓았습니다. 예언서들이 바로 이때를 전후해서 쓰였습니다. 이때 예언자들의 말씀은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성전이 무너지고, 이스라엘의 정신세계가 무너지고, 좌절을 겪고 압박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기원전 587년의 사건을 통해서입니다.

이 일 이후로 유대 땅에는 이스라엘의 자취가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완벽하게 초토화되었습니다. 바위를 치던 모세의 지팡이는 생명을 살리는 지팡이였습니다. 그러나 바빌론이 들었던 지팡이는 모세의 지팡이와는 다릅니다. 그 지팡이는 죽이고 부수는 무력, 군대, 미사일, 탱크, 폭격이라는 지팡이입니다. 그 바빌론이 있던 자리에 바로 오늘의 이라크가 있습니다. 제가 TV를 보고 신문을 보며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텔아비브에 앉아서 미영 연합군이 이라크를 공격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연합군에게 주셔서 옛날 바빌론 땅에 있는 나라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기분이 어떨까요? 아마 이스라엘은 지금 속으로 기고만장해 있을지 모릅니다.

이스라엘의 성전이 파괴당할 때 수많은 사람이 죽고 끌려가고 포로가 되고 이산가족이 되었고, 그 슬픔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이제 순서를 바꿔 오늘 이라크에는, 아랍세계에는 또 다른 슬픔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석유라는 에너지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권력과 무기를 쥐고서 전쟁을 벌입니다. 인간의 오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묻게 됩니다. 민족을 초월하여 역사를 초월하여 문화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의 주님이 되시는 하나님, 그분의 역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왜 그 하나님은 오늘 이렇게 지팡이를 주셔서 때려 부수게만 합니까? 사람을 부수게만 합니까? 예수님에게서 그 답을 물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오늘 사마리아로 가십니다. 사마리아 땅에 가서 한 우물가에 앉았는데, 다섯 남편을 거친 여인, 이제 여섯 번째 남편과 사는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러 왔습니다. 그 우물은 야곱이라는 조상이 물려준 우물입니다. 예수께서 물 한 잔 달라고 합니다. 여인이 대답합니다. “유다의 남자가 어떻게 하여 ‘더럽다, 부정하다’고 여기는 사마리아 여자한테 물을 달라고 합니까?“ 대화가 오가다가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내가 오늘 물 달라고 하는 이유는 도리어 내가 물을 주기 위함이다. 나는 오늘 그대에게 물을 주고 싶다. 내가 주는 물은 마시고 나면 다시 또 목마르는 물이 아니고, 한번만 마셔도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수이다. “ 사마리아 여자가 놀라서 물었습니다.”어떤 물을 마시면 영생할 수 있습니까? “ 예수님께서 그 여자의 물음에 대답해 주셨지만, 아마 그 말씀의 뜻을 예수께서 죽고 부활한 다음에야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이렇게 새겨들을 수 있습니다. “모세 때부터 물을 구하는 사람들이여, 오늘날 석유를 찾는 사람들이여, 그것 때문에 사람을 죽이지 말라. 그 대신에 내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것을 주겠다.”

제가 읽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남북전쟁이 일어났을 때 링컨 대통령에게 북군 지휘자가 찾아와서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링컨 대통령이 대답했습니다. “승리는 그런 식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떼를 쓰서 그분을 끌어들이려고 할 것이 아니라, 거꾸로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는가를 하나님께 물어봐야 합니다.” 그렇게 답한 링컨은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공화당 출신의 새로운 대통령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라크는 악의 축이므로 하나님이 쳐부수라고 계시하셨다. 내가 하나님의 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편이 되어 주셨다.” 두 사람 사이의 가치관, 신앙관의 차이는 후대의 역사가 판단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기대하는 방식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대로, 이 세상에 평화를 주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 평화의 역사가 어떤 것인지 다시 함께 생각해 보십시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떻게 물을 내셨습니까?

오늘 로마서 말씀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지팡이를 주셨지만, 사람들은 다 죽이고 살육하고 파괴할 뿐, 이 죄악의 세계에서 지팡이를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스스로 지팡이를 사용하시기로 결단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를 보내서 이 세상의 모든 죄악을 다 덮어쓴 채 골고다 언덕 위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공의의 지팡이를 들어서 자기 아들 예수를 내리쳤습니다. 모세가 바위를 쳐서 생명수를 얻게 한 것처럼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예수라 이름하는 자기 아들을 쳐서 골고다 언덕을 피바다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서는 보혈, 예수의 피, 그 피를 마시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구원의 복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스스로 지팡이로 내려친 하나님의 아픔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지금 내 아들을 치노라. 세상을 구원하고 너희 하나하나를 다 구원하기 위해서! 그러니 죄악에 물든 인간들아 다 그리스도 예수한테 나오라.”

예수가 내려침을 당했습니다. 보혈이 흘러나왔습니다. 이 보혈을 마시는 자마다 영원한, 더 이상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마시는 된 것입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죽어 간 사람, 그 사람 이름이 예수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 그 속이 하나님으로 가득한 한 인간이 죽어 갔습니다. 그 예수는 모든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대명사입니다. 예수가 죽어 갔습니다. 세상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도 힘없이 죽어 가니, 이제는 힘과 전쟁과 광분의 세계다! 그런데 골고다 언덕에서 죽어 간 예수가 3일 만에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부활의 주로! 그러자 사람들이 외쳤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죽었다. 그런데 그가 다시 살아났다.” 그의 이름, 살아난 예수, 죽임을 이긴 예수의 이름은 “그리스도” 입니다. 신학적으로 묻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둘은 같은 분입니까? 같은 분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 이것이 기독교 신학의 핵심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한테 말씀하십니다. “오늘 또 예수를 죽이라는 거냐? 중동에서 죽이고 한반도에서 죽이고… 세상의 분쟁이 있는 곳에서 예수를 계속 죽이라는 말이냐? 내 아들 한번 죽인 걸로 끝내자. 전쟁과 살육은 끝내고, 이제는 부활한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평화와 정의를 이룬 세상이 되게 하자.” 하나님의 요청이고 약속입니다. 우리 개개인도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 죽은 걸 기억하면서 가슴에서 적의를 제거하십시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우리 내면의, 우리 사회의, 우리 세계의 전쟁은 이제 그만 종지부를 찍으십시다.

아랍 땅에, 미국 땅에, 한반도에, 아니 전 세계 모든 곳에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는 역사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다시는 그리스도의 보혈 외에 다른 피가 이 땅 위에 흐르지 않도록, 이 땅의 평화를 위해서 함께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 가슴 속의 평화를 위해서도 함께 기도하십시다. 사순절은 부활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기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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