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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물의 영광 / 민 18: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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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의 영광
민 18: 6-14
광성교회 김창인 목사


  오늘은 민수기 18장 6절에서 14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선물의 영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말에 설명을 덧붙이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선물을 주실 때 그 선물을 받는 사람에게는 받을수록 영광이 된다는 말입니다. 가령 하나님의 도움이라는 것은 받으면 받을수록 복이요,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온갖 도움을 베풀어주신 다음에 기뻐하시고 더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들이 아들 딸들에게 장난감을 선물했다고 합시다. 그 장난감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아 보십시오. 그러면 선물한 아버지 어머니가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런데 장난감을 하찮게 여기고 집어던진다면 무척 서운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움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것들입니다. 선물을 받아 누리면서 기뻐한다면 하나님께서 더 주시기를 좋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은 받을수록 우리에게는 영광이 되는 동시에 모든 지켜보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도움은 받아서 좋은 경우가 있고 받아서 괴로운 경우가 있습니다. 괴로운 경우는 도와주고 베풀어 준 다음에 자랑하며 말을 만들어서 돌리는 경우입니다. 그리고는 목에 힘을 주고 도움을 받은 사람을 깔보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도움을 받았지만 괴로운 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받을수록 영광이요, 귀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선물도 우리가 받을수록 우리에게는 영광이 되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이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서 어떤 선물을 우리에게 약속하고 계신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사람 선물 (6-)
 
  '세상에 사람을 선물로 주다니?' 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아내를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받았지 돈을 주고 사 오거나 어떤 공로를 세우고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제 아내에게는 나라고 하는 김창인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 선물이 우리들에게는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설명하면 사람을 잘 만나는 복이라는 말이 됩니다. 우리가 사람을 잘 못 만나 보십시오. 사람 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보고, 사람 때문에 억울한 일 당하고, 두고 두고 한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처럼 괴로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로마서 16장 3절에서 4절을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바울을 위해서 목을 내 놓고 도왔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제2차 전도여행 때 바울이 고린도라고 하는 곳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유대인인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를 만났습니다. 그 부부는 장막을 꿰매고 만드는 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과 업이 똑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통했습니다. 대화가 되다 보니 빨리 친숙해 진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율법만 알고 하나님을 믿었지만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두 부부가 그 복음을 받고 얼마나 기뻐하며 감사하는지 바울이 다니는 곳이면 항상 보따리를 싸들고 앞장을 서서 도와주었습니다. 나중에는 바울이 위험에 처했을 때 바울을 위해서 목을 내 놓을 만큼 바울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런 일 때문에 바울이 죽을 경우에서 살아났습니다. 얼마나 좋은 협조자입니까? 이런 협조자를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붙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바울에게 선물해 준 사람 선물이었습니다.

  로마 교회를 세울 때 바울이 직접 세우지 못하고 이들 부부를 통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협조자인지 모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바울은 이런 훌륭한 사람을 잘 만나는 인복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복을 누가 주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좋은 협조자를 선물로 붙여 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사람을 잘 못 만나 울고 한으로 남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재미있게 살아가는 행복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6절을 보면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너희 형제 레위인을 취하여 내게 돌리고 너희에게 선물로 주어 회막의 일을 하게 하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은 아론의 자손들 즉 제사장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이 사람을 선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레위인들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농사를 지어 거두는 첫 열매를 바치게 되어 있지만 짐승의 첫 새끼도 하나님께 바치게 되어 있습니다.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을 내려 장자를 죽일 때 이스라엘의 장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열 두 지파에서 레위 지파를 선택하여 너희는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것을 삼으신 다음에 그 레위인들을 제사장에게 붙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레위인들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역대하 29장 34절을 보면 '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의 가죽을 능히 벗기지 못하는 고로 그 형제 레위 사람이 그 일을 마치기까지 돕고 다른 제사장의 성결케 하기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의 성결케 함이 제사장들 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싶은 백성들이 제물을 가지고 제사장들을 찾아왔습니다. 제사장들이 감당을 할 수가 없습니다. 송아지나 양을 잡을 때는 먼저 죽이고 가죽을 벗겼습니다. 사각을 뜨고 배를 갈라 내장을 드러내고 깨끗이 씻어 하나님이 태우라고 하는 부분을 태워서 재가 된 다음에 땅에 묻어 버리므로 제사가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감당을 못하기에 그것을 레위인들에게 부탁을 해서 레위인들로 하여금 돕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하게 하는 일에 레위인들이 제사장들 보다 더 성심이 있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들보다 더 잘했다는 것입니다. 성심이 더 크고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사장들보다 오히려 일을 더 잘하는 귀한 사람들을 붙여서 제사장들을 돕게 하셨습니다. 사람을 잘 만나는 사람 선물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제사장들처럼 훌륭한 사람, 어쩌면 자신 보다 더 나은 사람을 하나님이 붙여 주셔서 돕게 하는 사람 잘 만나는 복 즉 사람 선물이 여러분들의 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신학교 1학년을 마쳤으나 2학년에 올라가면서 등록금이 한푼도 없었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속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친구들은 전부 공부하고 있는데 나 혼자 밤 기차를 타고 부산까지 내려가면서 얼마나 울고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는 부산 시내에 있는 남부민 교회(현 은성교회) 전도사로 시무 했습니다. 돈을 아끼느라고 장가도 가지 못했습니다. 안 먹고 안 쓰고 안 입어야 했습니다. 옷 한 벌로 철이 바뀌어도 갈아입지를 못하면서 3년을 살았습니다. 그 옷을 입고 신학교에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얼마나 짜게 굴었는지 3년을 그렇게 모아서 복학하여 등록금을 내고 한 학기 동안 밥을 사 먹고 났더니 남는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또 등록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또 휴학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난감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그 교회가 나를 좀 키워 주었으면 좀 어떻겠습니까? 교회는 사람을 키우는데 인색하면 안된다는 것이 제가 받은 교훈이었습니다. 결국 난감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은인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보내 주신 은인이었습니다. 이 분이 얼마나 나를 돕고 여러 가지로 협조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쓰고 남아 모은 돈은 하나도 없었지만 제가 신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혀 부족함이 없이 공부를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분명히 하나님이 '네가 가서 김창인 전도사를 도우라'고 저에게 붙여 주신 분이었습니다. 지금 그 분이 미국 LA에 가서 뿌리를 내리고 잘 살고 계십니다. 어떤 면에서 그 분은 저에게 천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분을 나에게 선물로 붙여 주어서 돕게 하신 사람 선물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도움이 아쉽고 난감할 때 해치는 사람보다는 돕는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 선물의 복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분명히 '레위인을 제사장들에게 선물로 주었은즉'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복입니까? 이 복이 여러분들의 것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둘째, 직분 선물 (7-)

  바울 사도는 자기가 그렇게 교회를 핍박하고 못살게 굴다가 예수님께 항복하고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부름을 받아 사도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사도로 세움을 받을 때 얼마나 그가 감사했는지 디모데전서 1장 12절을 통해서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바울은 사도라고 하는 직분을 맡겨 준 것이 그렇게 감사한 일이었다는 뜻입니다. 이것 저것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직분을 맡겨 주신 것이 첫째로 감사할 일이요, 가장 크게 감사할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직분을 선물로 주심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로마서 11장 13절을 보면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의 직분이 영광스럽다는 말입니다. 먼저 바울은 직분 주심에 감사하였고 다음으로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그렇게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성하십니까? 성가대 대원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직분 같으십니까? 목사의 직분에 비하면 이것은 시시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시는지 아십니까? 예를 들어서 다섯 달란트 맡은 종과 두 달란트 맡은 종이 계산 할 때 똑같이 작은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볼 때 다섯 달란트 맡은 종이 분명히 크지 않습니까? 두 달란트 맡은 종은 분명히 작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두 종을 향해서 똑 같이 "작은 일에 충성했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전부 작은 일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크면 다 같이 크고, 작으면 다 같이 작다는 것입니다. 목사라고 해서 큰 직분이 아니요, 성가대원이라고 해서 작은 직분이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감사하며 영광스럽게 알아서 바울 사도처럼 충성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7절을 보면 '너와 네 아들들은 단과 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이울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제사장 직분을 선물로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목사 직분도 내가 훌륭한 것이 조건이 되어 받은 것이 아닙니다.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장로 직분, 권사 직분, 안수집사, 서리집사, 교회학교 교사, 성가대원의 직분 등등 하나님이 보실 때는 작다면 똑 같이 작고 크다면 똑 같이 큰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직분은 아무나 할 수 있고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에게 주신 직분을 고맙고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직분이라고 하는 것은 별을 다는 것처럼 높아지고 영광을 받고 대접을 받으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계신다면 큰 착각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십리길을 걸어 다녔습니다. 선생님이 공부를 다 마친 다음에 제 이름을 부르면서 잠깐 남으라고 하셨습니다. 남아서 선생님이 자기를 도와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친구들은 벌써 집으로 돌아갑니다. 나 혼자만 떨어졌다가 나중에 혼자 가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찮고 괴로운 일입니까? 그러나 선생님이 나를 인정해서 불러 일을 시켜 주신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영광스러운 마음이 있었는지 상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궂은 일을 다 도와 드리면서 그렇게 기쁘고 그렇게 영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이 별다른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분을 맡겨 세우시는 것은 온갖 궂은 일,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네가 좀 해 달라고 시키는 것이요, 동시에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 알고 직분을 맡은 사람은 '온갖 궂은 일은 내가 할 일이다'라는 사명을 가지고 봉사하면서 영광스럽게 여기고 바울 사도처럼 충성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리교에 이환신 감독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1963년부터 1966년까지 감독을 지냈습니다. 1966년은 제가 이 교회에 부임해 오던 해입니다. 그런데 그 때 연세대학교에서 총장 자리가 비었습니다. 본래 연세대학교는 장로교가 세운 대학입니다. 그런데 장로교 선교사님들이 이것은 장로교 혼자서 운영하지 말고 기독교 전체가 참여해서 운영하면 좋겠다 하고 내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감리교도 들어오고, 성공회도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장로교와 감리교가 돌아가면서 총장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감리교에서 추천만 하면 총장이 될 차례였습니다. 그 교단에서 누구를 추천하면 좋을까 하다가 이환신 감독이면 좋겠다고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미국에 있는 이환신 감독을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이환신 감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감독의 임기가 남아 있는데 그 직분을 쓰레기처럼 내 버리고 연세대학교 총장 즉 세상이 알아주는 그 자리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연세대학 총장은 목사도 할 수 있고 장로도 할 수 있고 세례 교인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독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교단을 끌어 가야되는 하나님이 맡겨 주신 귀한 성직이 아닙니까? 교회 하나를 끌어가는 목사의 직분이 귀하다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감독의 직분은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자기는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서 주어질 총장 자리를 내 버린 사람입니다.
  여러분 세상이 온갖 좋은 것을 준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내 놓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그렇게 영광스럽게 여겨서 바울 사도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물질 선물 (8-14)

  '가난하게 살고 싶습니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왜 손을 들지 않으십니까? 가난하게 사는 것이 싫기 때문이겠지요.

  제가 18살에 혼자 피난을 나와 고학하며 목사가 되기까지 얼마나 가난하게 살았는지 정말 가난이 지겨웠습니다. 가난하다고 대접받는 곳이 있습니까? 오히려 멸시천대를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들은 먹는데 굶어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가난은 서러운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난이 절대로 죄는 아닙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주눅 들지는 마십시오.
  천상천하에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고 싶은 사람에게 왜 못 주시겠습니까? 그래서 아굴이라는 사람은 잠언을 통해서 "하나님 저는 너무 떼 부자가 되면 돈이 너무 좋아져서 하나님은 없어도 나는 괜찮다 하나님은 내 알바가 아니다 이렇게 되어질까 걱정입니다. 제가 떼 부자가 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떼 부자가 되지 않은 것에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아굴이 "하나님 그렇다고 해서 제가 너무 가난해 지면 자꾸 남의 것이 부러워 도둑질 할 마음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내게 필요로 한 것을 주어 먹고 누리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아들 딸들이 지금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에 들어 등록을 해야 하는데 등록금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는 한방에서 둘 셋을 같이 키웠는데 이제는 장성하다 보니 방이 더 있어야 함으로 좀 더 큰 아파트가 필요합니다. 그런 경우 방 하나 혹은 두 개가 더 달린 아파트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동차가 필요하다'면 자동차가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만 제 때 있으면 된다는 말입니다.

  아굴이 바로 그렇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필요로 하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 왜 주시지 못합니까? 하나님께 달라고도 하지 않고 왜 원망부터 하십니까? 여러분의 하나님은 분명히 여러분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가령 여러분들의 아들 딸들이 돈을 꾸러 다니는 것을 보기 좋다고 하는 부모가 어디에 있습니까? 남들은 차를 타고 다니는데 십리를 걸어 다니는 아들 딸을 보고 기뻐하는 부모가 어디에 있습니까? 자식의 필요를 아는 부모는 자식이 달라고 하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도 우리 성도들이 그렇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필요로 한 것이 있으면 솔직하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좀 달라고 먼저 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8절에서 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거제물 곧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한 모든 예물을 너로 주관하게 하고 네가 기름 부음을 받았음을 인하여 그것을 너와 네 아들들에게 영영한 응식으로 주노라 지성물 중에 불사르지 않은 것은 네 것이라 그들이 내게 드리는 모든 예물의 모든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 제물은 다 지극히 거룩한즉 너와 네 아들들에게 돌리리니 지극히 거룩하게 여김으로 먹으라 이는 네게 성물인즉 남자들이 다 먹을찌니라 내게 돌릴 것이 이것이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드리는 거제물과 모든 요제물이라 내가 그것을 너와 네 자녀에게 영영한 응식으로 주었은즉 네 집의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니라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즉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그 땅 처음 익은 모든 열매는 네 것이니 네 집에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라 이스라엘 중에서 특별히 드린 모든 것은 네 것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십일조를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바치면 하나님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십일조 중에서 또 십일조를 떼어서 제사장에게 돌렸습니다. 그러면 십일조를 바친 우리가 제사장을 먹여 살리는 것입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바치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먹여 살리시는 것입니다. 가령 장사해서 돈을 버는 것은 여러분이 잘나서 돈을 버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장사에 종사하도록 하고 이문을 하나님이 떼어 주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어서 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먹이시는 것이나, 나를 먹이시는 것이나 똑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떡을 사먹든, 순대를 사먹든 내가 상관하면 안되지 않습니까? 동시에 내가 떡을 사먹든지, 순대를 사먹든지 상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서 먹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일조를 받아서 그 중에 십일조를 제사장들에게 주는 것만으로도 그 제사장들은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제사를 드린 다음에 몽땅 태워버리는 제사도 있지만 대부분이 기름만 태워버리고 재가되면 땅에 묻어버리면 제사가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태우지 않은 나머지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제사장들이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런가 하면 과일이나 곡식이나 제일 먼저 익어서 따거나 거두는 것 하나님께 바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받으시고 제사장들에게 그것 역시 먹으라고 선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물질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서 먹고 누리고 배부를 만큼 필요한 것을 선물로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에게만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십니까? 우리도 다 같이 제사장입니다. 즉 만인은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여러분들은 필요한 것을 왜 하나님께 달라고 하지 않으십니까? 그리고는 왜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부터 하십니까? 필요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 물질 선물을 풍족히 받아서 먹고 누리고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베풀고 하나님께 바치고 싶을 때 얼마든지 하나님께 바치는 풍요로운 삶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 선물을 약속하셨습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가 받을수록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첫째로는 사람 선물입니다. 제사장에게 레위인을 선물로 붙여 주셨습니다. 가장 훌륭하고 훈련이 잘 되어 있는 레위인을 붙여 제사장을 돕도록 하신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도 좋은 사람을 붙여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여러분들에게 붙여 주셔서 서로가 돕고 복되게 살아가는 삶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로 직분 선물입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직분이 크다 작다 싶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똑 같은 것입니다. 직분을 아무에게나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나를 불러서 일감을 주어 궂은 일, 힘든 일을 시키더라도 얼마나 영광으로 알았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직분을 맡기고 일감을 주어서 궂은 일을 시켜도 영광으로 알고 감사함으로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물질 선물입니다. 제사장들에게만 풍족히 살도록 풍족한 물질을 주십니까? 구약 시대에 제사장은 따로 있었지만 오늘에는 만인이 제사장입니다. 여러분들도 제사장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물질을 풍족히 선물하시어 누리고 베풀고 바치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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