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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른신앙의 원리 (요11: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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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강형규 목사 
Subject : 바른신앙의 원리 (요11:21-27)     


여러분
시대가 변해도 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비결이 있는 데 그것은 신앙의 원리를 바로 알고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성도의 삶은 그렇게 복잡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 단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성도의 삶은 “예수가 나의 구주임을 고백하고, 그 믿음 안에서 끝까지, 변함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른 신앙, 바른 삶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그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 다 동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천천히 가더라도 바르게 가야 합니다.
성도 또한 바른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모든 일에 너무 급하게 서둘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바른 생활, 바른 신앙으로 살아갑시다. 바른 교회를 이루어 갑시다.

숫자를 채우기 위해서 교회가 비뚤어진 방향으로 가면 안됩니다.
돈을 벌겠다는 목적으로 성도가 잘못된 길을 가면 안됩니다.
힘들어도 바르게 가야 합니다.

너무 극단에 빠지지 말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지적입니다.
그래서 영성이 약하고, 감성적인 것을 무시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지성은 무시하고 영성만 강조하며, 신비주의에 빠집니다. 우리 성도들은 지성, 감성, 영성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른 신앙으로 바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바른 믿음의 사람은 힘들고 어려워도 진실합니다. 믿음을 지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고 넘어져도 믿음의 사람은 굳게 섭니다.
그것은 "사람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어려움과 고통스러운 현실은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소망이요, 기회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 믿는 것이 정말 즐겁고 좋아야 합니다.
항상 은혜로 생활하여 신앙이 퇴보하지 말고, 점점 좋아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는 것이 즐겁습니까?
신앙이 점점 올라갑니까? 내려갑니까?
우리는 말씀과 훈련을 통해서 시간이 갈수록 점점 좋아지는 신앙, 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는 포도주가 떨어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시고, 의지한 결과 나중이 더 좋아졌다는 평가를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처음에는 좋다가 나중에는 싫증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생활은 처음엔 부족해도 점점 좋아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고정관념, 율법주의, 감정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올바른 신앙의 원리를 따라 바른 신앙, 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럼 올바른 신앙은 무엇입니까?


1. '아는 신앙'보다 '믿는 신앙'입니다.

베다니에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나사로의 남매관계로 예수님과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어느 날 나사로가 깊은 병이 들었습니다.
누이들은 이를 예수님에게 알렸습니다.
나사로의 병든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바로 가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그 집을 찾아갔을 때는 나사로는 이미 죽었고,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자 마르다는 나가서 영접하며,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21절, 22절입니다.
이 고백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이미 오빠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고, 장례식까지 다 마쳤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상황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이제라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사건이 벌어져도 마르다처럼 '이제라도'라고 고백하며 주님을 찾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이미 끝났다”고 생각되고, “늦었다”고 여겨지는 것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 이제라도 ” 일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라도” 사건을 역전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라도 ”절망을 희망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럽습니다
우리도 '이제라도'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귀한 신앙이요,
바른 신앙입니다.

그러나 22절을 보면 마르다의 잘못된 고백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바로 '아나이다'가 잘못된 것입니다.
'아나이다'는 '믿나이다'로 고쳐져야 합니다.

여러분
“아는 신앙”으로는 부족합니다. “믿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알기 위해 연구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을 접고 전적으로 믿는 대상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왜 공연히 불안에 떨고 있습니까?
바로 인간의 지식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기에 불안은 깊어만 가는 것입니다.

너무 영리하고 똑똑한 것이 문제입니다.
오히려 올바른 신앙은 어린아이처럼, 바보처럼 되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는 신앙은 얼마나 허무합니까?
당시 서기관들도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탄생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아는 신앙만으로는 안됩니다.
믿고 실천하는 신앙이 바른 신앙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은후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믿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믿는 자에게 아버지로서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사랑하는 딸, 아들이 아버지에게 "당신이 나의 아버지임을 증명해 보시오"라고 한다면 얼마나 서글픈 관계가 되겠습니까?
자녀는 아버지임을 증명 받으려고 하지말고 믿으면 됩니다.

물론 “하나님을 아는 신앙”도 귀하고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아는 것에만 그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리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올바른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신앙보다 믿는 신앙입니다.


2. '미루는 신앙'보다 '현재적 신앙'입니다.

마르다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마르다는 24절에 보면,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응답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르다는 '이제라도'라고 주님은 하실 수 있다고 고백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네 오라비가 살리라"고 말하니 이제는 '이제라도'의 고백은 어디로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에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깨닫게 됩니다.
바른 신앙은 '내일로 미루는 신앙'이 아니라 '현재 신앙'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제라도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먼 훗날 그렇게 해주시겠지'라고 하는 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 존재하신분입니다.
먼 장래에 천국을 약속하는 분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현재도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장래의 일도 보장해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현재의 신앙이 중요합니다.

오늘(today), 지금 이 순간(now), 여기서(here), 나에게(to me)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체험하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우리의 지금의 좋은 신앙이 나중까지 복되게 이어져야 합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참된 신앙은 믿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가뭄에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했다면 우산을 들고 갈 수 있는 마음과 태도입니다.

현재 신앙, 실제 신앙으로 보다 바른 신앙을 가지고 주님을 감동시키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환경을 보는 신앙'보다 '하나님을 보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마리아를 부르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와서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다”는 이 사실이 중요합니다.
모든 기적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예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조금 건강하다고, 좀 배웠다고, 남들보다 가졌다고 고개를 뻣뻣하게 들면 안됩니다.
겸손하게 엎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마르다와 대화를 마치시고, 나사로의 무덤에 가셨습니다.
무덤은 굴이었는데 돌로 막혀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마르다는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고 했습니다.(34)
도무지 살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환경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환경만 보면 자주 넘어집니다. 낙심하게 됩니다.
              모든 소망이 단절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참 신앙 바른신앙은 환경보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기에 기적이 있습니다.
    놀라운 능력과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위기와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을 바라보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환경은 점점 어려워져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이런 굳센 믿음으로 살아갈 때 주님의 능력과 은혜의 손길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환경을 바라보며 넘어지지 맙시다!

환경만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마르다에게 주님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40)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리들이 돌을 옮기니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무덤을 향해 부르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수족을 동인 채로 걸어나오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적이라 부릅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주님이 말씀하실 때 그대로 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결코 우리의 머릿속에서 계산하여 얻어지는 정답이 아닙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어렵고 힘든 환경만 바라보면 눈물과 슬픔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바라보며 슬퍼하지 말고, 나사로를 살리시는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환경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곧 바른 신앙입니다.

바른 신앙, 바른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저 지식적으로 아는 신앙에 머물지 말고, 믿고 따르는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늘 뒤로 미루지 말고, 현재,지금 충실한 신앙을 가지십시오.
또한 생각에 머물지 말고, 실제적인 신앙을 가집시다.
그리고 조여오는 환경과 여건을 바라보다 넘어지지 말고, 그것을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올바른 신앙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없으면 작은 것도 크게 생각하여 문제가 커집니다.
그러나 확고한 신앙을 가지면 큰 것도 문제가 없습니다.

육신의 눈, 불신의 눈으로 볼 때는 문제와 환경만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볼 때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가 살아 나온 것과 같은 놀라운 기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바른 신앙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는 대광의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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