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늘가는 밝은 길(3) - 죄의 고백(confession) / 히 12:1-2

  • 잡초 잡초
  • 236
  • 0

첨부 1


하늘가는 밝은 길(3) - 죄의 고백(confession)
히 12:1-2
장영일 목사 (범어교회)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 들어가는 말

요즘 육상과 수영 등의 개인 기록 종목은 이제 인간의 한계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100m에서 9초를 넘기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불가능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가능성을 찾고 있는데 그것은 선수들이 아니라 스포츠 신발과 의복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마찰력과 공기 저항력을 줄일 수 있을까? 하는 연구들입니다.

제대로 달리기를 하려는 사람은 운동 선수가 아니더라도 아는 상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것들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늘가는 길을 달리기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 9:24)

그러므로 우리들도 영적 선수가 되어 좋은 기록을 세우기 위해서는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것들을 주의하여 벗어야 할 것입니다. 

 
2.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자

하늘가는 길의 가장 큰 장애물은 우리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죄입니다. 바울의 말씀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우리는 죄를 고백하고 죄사함을 얻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복음 설교를 듣던 무리들이 "형제여 우리가 어찌할꼬?" 하니 베드로가 답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먼저 인정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를 고백하기 위하여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육체로 비유하면 내가 병든 사람이란 것을 인정해야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지 도 않고 만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 2:17)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자들의 처음 체험들이 그렇습니다. 곧 죄인됨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바닷가에서 처음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는 자기에게 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보란 말씀에 순종하고 던졌다가 두 배 가득하게 채우게 되자 외쳤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눅 5: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죄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그러나 죄를 범했을 때 우리는 지체하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회개합시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 자의 정함과 죽을 자의 생명이며
죄인들의 중보와 멸망자의 구원되고 우리 평화 되시네
    (찬송가 94장 3절)

2.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며

그렇습니다. 우리를 온전케 하실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를 깨끗케 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죄악의 세력이 강한지 우리는 감당키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우리는 낯을 들 수 없는 존재들이 아닙니까? 늘 죄가 문 곁에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이끌고 다니지 않습니까? 죄는 우리를 밥으로 여기고 집어삼키려고 우는 사자처럼 달려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선은 행치 못하도록 하고 원하지 않는 죄만 행하도록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조차도 탄식했습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2-24)

여기에 우리의 구원자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러면 우리를 의롭다 하시며 우리를 지키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이길 힘을 공급하실 것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4)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는 길은 그리스도의 영을 좇아 행할 때 가능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를 바라보는 행동입니다. 성령의 감동에 늘 민감합시다. 나의 육감보다는 영감을 더 충전시켜야 합니다. 육감에 빠질 때 우리는 죄에 정복당하고 맙니다. 영감에 충만할 때 육감을 다스리고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는 것을 가려 보아야 합니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육감을 충전시키게 되거나 아니면 영감을 충전시키게 될 것입니다. 또한 즐기는 놀이를 삼가며 삽시다. 부인 할 수 없는 것이 자칫 그 즐기는 취미로 인하여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요일 2:15-16)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찬송가 102장 후렴)   


3. 우리 앞의 즐거움을 위하여

예수님도 죄를 정복하기 위하여 나아간 그 십자가의 길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힘든 십자가 넘어 참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강렬하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2절)

여러분! 죄를 회개하고 죄에서 벗어날 때 우리에겐 엄청난 희락과 평강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이 진리를 찬미로 지어 불렀습니다.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강을 건넌 후 무한 영광일세 아멘
  (찬송가 496장 후렴)

이 찬미가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