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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고 따르면 산다 / 민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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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믿고 따르면 산다
본문 : 민수기 21 : 4-9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청춘 남녀가 자동차 안에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문은 잠겨 있었습니다. 달려온 구조대는 자동차의 유리문을 깨고 두 사람을 끌어내어 인공호흡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기가 막힌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죽음에서 건져진 청년이 경찰서에 청구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그 청구서는 구조대원들이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자동차의 유리창을 깨뜨린 것을 수리하고 가져온 청구서였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사는 사람도 꽤나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민수기 21장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원망하다가 죽임을 당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원망을 하였습니다. 그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행하는 길(Course)문제로 원망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라고 불평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불뱀을 보내 원망하는 사람들을 물어 죽게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물려 죽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죽음 앞에서 잘못을 뉘우치고 모세에게 기도를 요청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에 닫게 하시고 누구든지 믿고 쳐다보면 살게 하셨습니다.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산다는 교훈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원망은 불신앙

여기서 먼저 생각할 것은 원망이 불신앙의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면 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원망이 생깁니다. 4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백성이 호르산에서 발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당을 들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불신하는 데서 나온 원망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면서 다소 어려운 길로 인도하셨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첫째 이유는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길 해안도로를 내버려두고 홍해를 건너 광야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해안도로를 이용하면 금방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진 치고 있었습니다. 잘 훈련된 군사를 가진 블레셋이 순순히 보내줄 리가 없고, 그리되면 이스라엘은 애굽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이를 아시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바다를 향하였을 때 그곳은 호구와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한쪽은 바다였고 다른 한쪽과 앞은 큰산들이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이에 애굽 왕은 이스라엘이 광야에 갇혔다고 군사를 보냈습니다. 꼼짝 못하고 잡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도 그렇게 생각하고 두려워하며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승리하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군대는 홍해 속에 장사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인도하심은 선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인도는 선한 줄 믿고 믿음으로 따르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려운 길로 택한 다른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스라엘이 불신앙으로 범죄 하였을 때 길을 돌리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를 대표하는 12명의 정탐꾼이 40일 동안 정탐하였습니다. 정탐하고 돌아와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불신앙적인 10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땅이 좋은 것은 사실이나 그들을 이길 수 없다고 하면서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결국 백성들은 동요되었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불신앙적인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간 방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이유에서 어려운 길을 가던 하나님을 원망해선 안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무리 어려워도 최선의 길로 믿어야 합니다. 삶을 뒤돌아보십시오. 모든 것이 합동하여 유익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과거의 어려움이 큰 유익이 된 것을 믿습니다. 오늘 어려움이 있다 해도 그것도 큰 유익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든지 원망하지 마십시다. 회개할 것이 있으면 회개할 지언정 원망하지 마십시오. 원망은 불신앙의 결과입니다.

원망이 재앙으로

둘째로 본문이 주는 교훈은 원망이 재앙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5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배은망덕한 말입니까? 가나안 땅을 주시고 큰 민족을 이루기 위해 애굽에서 건져내셨는데 이게 무슨 망발입니까? 자신들의 불신앙으로 방랑하였는데 누구를 원망한단 말입니까? 이는 참으로 배은망덕한 일입니다.

그런데 결과를 보십시오. 광야에서 죽게 한다고 원망하던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십시오. 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무슨 말씀입니까? 죽겠다고 원망하던 그들이 불뱀에 물려 죽은 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원망의 말이 씨가 되어 재앙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옛사람들이 말에 "말이 씨가 된다"고 하였는데 헛말이 아닙니다. 말이 씨가 되어 원망이 재앙이 되었습니다.

성도는 원망이 아니라 감사의 말을 해야 합니다. 원망의 말은 재앙을 가져오지만 감사의 말은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말은 단순히 말이 아닙니다. 불신앙의 말인지, 신앙의 말인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말이 말로써 끝나지 않습니다. "말로 집을 짓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말하는 대로 엮인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말을 해야 합니다.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감사의 말을 해야 합니다. 믿음에서 나온 말을 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천주교회의 주일 미사시간에 신부를 돕고 있던 한 소년이 실수로 성찬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습니다. 신부는 즉시 소년에게 "어서 물러가라. 다시는 제단 앞에 나오지 말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그 소년은 장성하여 공산주의자의 대 지도자인 유고의 티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천주교회에서 주일 미사를 돕고 있던 소년이 실수로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습니다. 신부는 곧 이해와 동정이 어린 사랑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얘야, 너는 앞으로 더욱 신중하여 훌륭한 신부가 되겠구나." 그 소년은 자라서 유명한 대주교가 되었습니다. 대주교 홀튼 쉰의 이야기입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의 말을 합시다. 원망의 말을 버리고 감사의 말을 합시다. 불신앙의 말을 버리고 신앙의 말을 합시다. 저주의 말을 버리고 축복의 말을 합시다. 부정적인 말을 버리고 긍정적인 말을 합시다. 절망의 말을 버리고 소망의 말을 합시다.

회개가 살길이다

셋째로 본문이 주는 교훈은 회개가 살길이라는 것입니다. 재앙을 만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함으로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7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 하였사오니 여호와께서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 떠나게 하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원망하다가 불뱀으로 인하여 회개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들은 원망한 것을 회개하면서 모세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회개가 살길입니다.

신명기 30장 2-3절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것을 온전히 따라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이사야 55장 7절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아멘. 회개가 용서받는 길입니다. 회개가 살길입니다.

믿고 따르라

넷째로 본문이 주는 교훈을 믿고 따르면 산다는 것입니다. 8-9절의 말씀을 함께 봉독하십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 즉 살더라" 아멘. 하나님은 회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살길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믿고 따르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믿고 따르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의 사건도 그렇습니다. 뱀에게 물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해독제입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장대에 달린 놋뱀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거기에 무슨 치유의 능력이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오직 믿고 쳐다본 사람은 불뱀에 물렸어도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가 되지 않아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여리고 성을 공략하기 위하여 내리신 하나님의 지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성을 공격하기 전에 성을 돌라고 하였습니다. 엿새 동안은 한 바퀴씩,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라고 하셨습니다. 몰래 몇 사람이 도는 것이 아닙니다. 나팔을 불면서, 북을 치면서 돌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이런 전법이 어디 있습니까? 말도 되지 않는 전법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말씀대로 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승리였습니다. 당당하게 성을 도는 이스라엘로 인하여 여리고 성은 기가 죽었고 힘도 못쓰고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이해되지 않으면 무조건 믿으라"고 합니다. 이해하고 믿으려면 믿을 수 없습니다. 믿으면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무조건 믿으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어떻게 무조건 믿느냐는 것입니다. 그래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인간의 이해를 초월합니다.

예수님은 장대에 달린 불뱀으로 자신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의미를 보이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불뱀에 물린 사람들을 위해 놋뱀을 장대에 단 것처럼 죄악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의 죽으심이 어떻게 우리의 죄를 대신할 수 있습니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본 즉 구원받을 줄 믿습니다. 믿고 따르십시오. 그 길이 사는 길입니다. 그 길이 구원받는 길입니다.

요즈음 어떤 기독교인들은 자력종교에게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공로가 있어야 구원받을 것 아니냐는 생각에서 그렇습니다. 믿어지지 않으니 불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공로로 구원받는다는 불교나 천주교에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불안해하지 말고 믿기만 하십시오. 하나님의 지시대로 믿고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본 사람들이 구원 얻은 것처럼 십자가에게 내 죄를 담당하신 주님을 믿으시면 구원받을 줄 믿습니다. 믿고 따르십시오. 그 길이 살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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