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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창조의 안식 / 히 4:3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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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식 목사 
창조의 안식
히브리서 4장 3절 ~ 9절



어린 아이들의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물건들을 어지럽혀 놓는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우리 아들 녀석이 어렸을 때 두루마리 휴지를 풀고 다니면서 집 안을 온통 어지렵혀 놓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들어가지 전 만 하더라도 학교 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널려 있었습니다. 집에 계신 주부님들은 널려 있는 것을 들어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일이 하루 중 중요한 일 중에 하나이지요.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하고 어른이 되면 모든 물건이 다 제자리에 있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이 어릴 때처럼 그렇게 힘들여서 청소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끔 먼지만 털어 내 주면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 우주의 상황을 말씀하시기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질서가 잡히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땅이 있어야 할 곳에 땅이 있지 않았고 물이 있어야 할 곳에 물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질서를 잡아가셨습니다. 땅이 있어야 할 곳에 땅을 창조하시고 땅을 있게 하셨습니다. 바다가 있어야 할 곳에 바다를 창조하시고 바다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창조하시고 질서를 잡으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마치신 7일째 되는 날 안식하셨습니다.

이것이 3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3절

3절 말씀에 보면 안식이 언제부터 있었는가 하면 창조 때부터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안식이란 하나님이 일하시다가 너무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하나님이 휴가 차원에서 안식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안식은 휴가 차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보시고 기뻐하고 좋아하는 창조차원에서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인 피곤의 차원에서 안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일주일 동안 살아 온 것이 아름답고 즐겁고 기뻐하는 사람이 누리는 창조의 안식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하여 창세기를 다시 한번 보기를 바랍니다.--창1:4. 10.12.18.21.31-- 좋았다 좋았다.....심히 좋았다.

보십시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다가 힘들다 힘들다 언제 끝나냐? 하는 푸념 후에 안식을 하신 것이 아니라 좋았다 좋았다...라고 하시면서 인간을 만드시고 가장 좋다 선포하시면서 안식을 하셨습니다.
도대체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좋으면 그 일에서 손을 떼지를 못합니다. 밤을 새워 합니다. 왜 그렇게 일하느냐고 물으면 일이 즐겁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연구하고 공부 하는게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주혜가 축구에 관심이 많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축구선수가 나오는 경기면 밤을 새우면서 그 경기를 기다립니다. 잠자라 고 말해도 잠을 자지 않습니다.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밤을 새워 책을 읽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가르켜 중독자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는 일이 점점 재미있었습니다. 이렇게 점점 재미있는 창조의 일이 인간을 만들 때에는 가장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서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안식하셨습니다. 피곤해서 쉬신 것이 아니라 기뻐하시면서 쉬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피곤하기 때문에 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 기쁨이 없고 아름다움이 없기 때문에 피곤합니다. 정직하게 장사하고 정직하게 직장 생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오는 피곤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못합니다. 오늘 하루가 즐겁고 아름다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 또 얼마나 거짓말을 해서 영업 실적을 올려야 하나 라는 생각 때문에 아침부터 피곤해지지 시작합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피곤한 사람이 쉬기 위하여 찾는 방법이 주로 향락적입니다. 피곤을 잊기 위하여 술을 마시고 때로는 여자를 돈주고 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늘 불안할 수 없는 인생의 연속입니다.

어느 책에 이런 사건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한 여인과 한 어린아이가 강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사연인즉 이 여인은 인생살이가 지겨워 자살 한 것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결혼 후에 자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남편을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남자와 살아보면 행복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시는 일에 기쁨이 있습니까? 하루 하루가 하나님처럼 보시기에 아름답고 좋아 보입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하는 일이 즐겁기를 바랍니다. 매일 매일 여러분들이 하시는 일들이 아름답고 좋아 보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일이 즐겁고 좋다고 해서 밤을 새우지는 일은 하지 마십시오. 일 중독증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조금만 더 하면 멋진 것이 나올 텐데 라는 그 마음을 접으십시오. 한시간 만 더 뛰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라는 즐거움에서 중단하십시오. 거기서 쉬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시고 원하시는 안식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안식을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일하기 위하여 태어난 노예일 수밖에 없습니다. 노예는 자신의 일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서커스단에서 하루 한끼를 먹기 위하여 재주를 넘는 곰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두 번째로 그러면 안식일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 것입니까?

다시 천지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너무 너무 피곤해서 안식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안식하는 것은 피곤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과감히 끊는 것이 안식이라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20장 9-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출20:9-11

그런데 창세기 안식과 출애굽의 안식의 표현이 다릅니다. 창세기와 출애굽 20장 사이에 무슨 사건이 있어서 이렇게 다른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타락입니다. 창조의 안식이 힘써 일해야 하는 후에 오는 안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피곤의 안식을 창조의 안식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안식일은 내가 피곤해서 쉬는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의 말씀처럼 딸, 아들, 남종, 여종, 육축이나 손님들에게까지 편안함을 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안식일은 철저히 남을 위하여 사는 날이요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아들 딸들을 쉬게 하시고 계십니까? 아니면 혹시 오늘도 학원으로 도서관으로 밀어 내셨습니까?

이 아까운 시간에 교회는 왜 가느냐? 그럴 시간이 있으면 책 한 장이라도 더 봐야 이기지 라고 말하면서 학원으로 도서관으로 내 모는 부모라면 우리는 말씀을 파괴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안식은 나를 위하여 쉬는 것만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남을 위하여 내 권리를 포기하는 날입니다. 이 날에는 아들을 쉬게 하는 날이요 종을 쉬게 하는 날입니다. 손해가 나도 좋다고 믿고 쉬게 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들을 위하여 종들을 위하여 나보다 약한 사람을 위하여 대신 그 일을 해주는 날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안식일에 더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신 일은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이 하신 일은 약한 자를 돕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안식은 자기를 위하여 자기 몸을 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경험 한 것처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면 그 마음은 늘 편치 못합니다. 자기 자신의 쾌락을 위하여 살아본 사람들은 늘 그 뒷맛이 찝찝 하다 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이웃을 위하여 안식을 보낼 때 거기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회복이 있는 것입니다.


세 번 째로 안식이 어떤 날인지 보겠습니다. --창2:1-3

여러분! 눈으로 확인 하셨습니까? 첫 째 날은 그냥 보기 좋은 날이었습니다. 둘째 날도 보기 좋은 날이었습니다. 인간을 만드신 6일 째 되는 날은 보시기에 심히 좋은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보기 좋은 날이 아니라 복 주시는 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분명히 믿습니까? 여러분이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를 쉰다고 해서 결코 여러분에게 손해가 되지 않고 축복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보시기에 좋다고 하실 뿐입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에게 복되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멈추고 안식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축복 받기를 원하시면 주일을 지키십시오.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십시오. 이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루를 쉬면 엄청난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7일도 모자라 밤을 새워 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두렵습니다. 세상에서 밀릴까봐 두렵고 굶을까봐 두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6일만 일하고도 충분히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어떻게요? 어떻게 6일을 일하고 갈등 없이 살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 힘을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러분이 지금 일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일에 매인 종이 아니라 자유인이라는 확인을 하는 복 받은 자리입니다.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오늘 교회에 왔다는 사실은 축복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늘 이렇게 복 받는 인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런 축복을 주시는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바빠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5절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5절

이 말은 히브리서를 읽어야 할 독자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지금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을 믿는 것 때문에 모든 것이 박탈당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직장에서 쫒겨납니다. 의료보험 카드도 발급 해 주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예배하지 않고 나가서 돈을 벌려고 했던 것입니다. 돈을 벌어도 남을 위한 배려를 하지 않고 더욱 더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사람들은 강퍅해져가고 있었습니다.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지금 이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주일에 우리가 교회에 나오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드리는 참된 예배를 잃어 버렸습니다. 예배는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예배가 되었습니다. 예배가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형식으로 전락해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같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도 마음은 더 강퍅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는 먼저 예배를 회복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아들과 딸들과 남종과 여종을 쉬게 하는 참된 교제와 친교가 이루어 져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6절에서 남겨 놓으신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6절

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9절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고난 당하는 사람들입니다. 도망가고 싶지만 도망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뿌리치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이들의 삶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입니다. 세상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힘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무거움을 거부하지 않고 예수님 앞으로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투쟁입니다. 오늘도 이 예배에 오기까지 여러분들은 많은 투쟁이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새벽 기도를 하기 위하여 전날 준비 할 때마다 가끔 투쟁합니다. 하루 빠지고 시계가 고장 낫다고 해볼까? 그리고 하루 느긋하게 자고 일어 나 볼까? 투쟁합니다. 그러나 이 투쟁을 이기고 새벽 기도에 나오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의 삶은 아름답지 못한 세상에 나가서 투쟁하면서 아름답게 사는 것임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사는 삶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쉬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안식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안식을 주는 것인가가 더 소중합니다. 술이 우리에게 안식을 줄 수 있습니다. 여자가 안식을 줄 수 있습니다. 돈이 안식을 줄 수 있습니다. 괘락이 안식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안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안식은 식당에서 사먹는 배부름이 아닙니다.

돈을 주고 호텔에서 자는 안식이 아닙니다. 식당에서 돈을 주고 사는 밥은 어딘가 불편합니다. 돈을 주고 잠자리를 사서 자는 잠은 일어나도 개운치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안식은 어머니가 깔아주는 이부자리의 안식입니다. 아내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식탁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예수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남은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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