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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 요한복음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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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요한복음 4:23)
김학현 목사 (예은교회)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시는 게 아니라 참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예배 장소를 찾으시는 게 아니라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오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이런 하나님께 발견되기 위해서는 오직 한 방법밖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정과 신령의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혼할 대상을 찾는 노총각, 1천명이 모인 곳에 500명이 남자라면 당연히 눈은 나머지 500명의 여자들이 모인 곳으로 갈 것입니다. 다시 그중 499명이 유부녀라면 단 한 명이라도 처녀에게 눈이 갈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1천 명의 사람이 모여 있어도 999명의 예배드리지 않는 사람보다 한 명이라도 예배드리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결혼을 앞둔 총각에게 있어 예뻐도, 돈이 많아도, 여러 조건이 다 맞아도 처녀가 아니라면 무슨 소용입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는 세상의 모든 조건과 권세를 다 가지고 있어도 주님께 예배하는 자만 찾으십니다. 오직 예배자에게만 관심이 있으십니다. 오늘은 예배자를 찾으시는 주님에 대하여 살피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예배는 귀중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오직 예배자에게 있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예배에 실패하는 사람은 찾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관심 두는 것이 사람이라기보다 예배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배가 그토록 귀중합니다. 예배가 귀중하기에 예배드리는 사람은 찾으시지만, 예배를 못 드리는 사람이나, 예배에 실패하는 사람은 찾지 않으십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 이야기는 그 사실을 너무 잘 보여줍니다.

가인은 곡식으로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거절하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습니다. (창4:4,5)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그냥 제물만이 아니라 아벨과 가인을 열납하거나 열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말은 아벨은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이었기에 받으셨고, 가인은 찾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받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그들이 드린 예배로 인하여 운명이 달라진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이 예배는 사람의 운명을 가릅니다.

예배가 귀중하지 않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지금 드리는 예배가 우리의 앞으로의 운명을 가릅니다. 미국의 클리블랜드 대통령과 친구 이야기, 어느 주일 저녁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어울리게 된 친구 둘은 하룻밤 신나게 놀아보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도박장으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작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도박장으로 들어가던 두 청년 중 한 명이 교회 입구에 적혀있던 그 주일의 설교 제목을 보게 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청년은 마음이 찔려서 주저하며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야, 우리 교회 들어가 예배드리자’ 하지만 다른 친구는 끝내 반대했습니다. 결국 친구는 도박장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 청년은 교회로 들어가 예배드렸습니다. 30년 후, 그때 회심한 청년은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미국의 22대 대통령인 클리블랜드(Cleveland, 1885-1889)입니다. 반면,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는 그 순간 30년 전 도박장을 선택했던 젊은이는 감옥에서 자신의 친구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기사를 읽고 있었습니다. 예배드린 자와 예배를 버린 자의 운명은 완전히 갈렸습니다.

가인과 아벨을 나누는 기준은 오직 예배였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실패한 사람입니다. 아벨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운명이 갈렸다면, 예배에 실패하면 인생에도 실패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귀중하다면 예배의 귀중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배가 인생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배자를 찾으신다면 성도는 당연히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찾는다(에테오)”는 말은 ‘경배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자를 찾으시는 마음이 꼭 사람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하신다는 뜻입니다. 부모가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 간절함이 이 단어에 숨어 있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아무리 어려워도 자식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느 아이 찾는 아버지의 글, 명절이 네 번이 지났으나 고향에 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아이가 2000년 4월 4일 망우동 집 근처에서 나가 지금까지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준원이는 매우 영리하고 귀여운 아이입니다. 아이를 찾기 위해 생업도 포기하고 전국을 찾아 헤매었으나 지금까지 못 찾았습니다. 우리 준원이가 가족과 헤어진지도 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얼마 전 준원이 생일에는 주인공이 없어 저의가족은 식탁 앞에 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일이 세 번이나 지나갔습니다. 금년엔 평소에 그렇게도 보채며 보내달라던 초등학교에도 가야 되는데... 취학 통지서도 준원이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너무나도 괴롭고 힘이 드는군요. 사회가 원망스러워 세상을 포기하고픈 심정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나 남아있는 가족을 생각하면 목이 메어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준원이를 잃은 후 모든 시간이 멈췄습니다. 준원이를 하루빨리 찾지 못한다면 우리 가정은 미래도 없고, 결국 지쳐 결딴나고 말 것입니다. 도움을 간절히 바랍니다. 저의 가족의 꿈과 희망을 찾아주세요. 저의 가족의 전부인 준원이를 찾아주세요.

이 간절함을 무엇으로 비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예배자를 이런 간절함으로 찾으신다는 말입니다. 있으면 찾고 없으면 그만두는 게 아닙니다. 찾을 때까지 찾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이 그토록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눈과 귀는 오직 아이 찾는데 맞춰져 있습니다. 이 아버지에게 준원이가 아닌 다른 아이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자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간절히 찾으셔도 예배자를 찾으신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변에는 조건 좋은 사람도, 학식 많은 사람도, 권세 높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추어도 예배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쓰시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예배자로 훈련되어야 하고, 목사와 교회는 성도가 성공하는 예배자가 되게 가르칠 책임이 있습니다. 훈련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예배자가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예배자가 되도록 훈련되기를 기꺼워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찾는 것과는 다릅니다

사람들은 예배 프로그램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오늘날 열린 예배다, 현대예배다, 찬양예배다, 구도자예배다, 드라마예배다, 전통예배다 참으로 예배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이런 현상은 사람이 예배 프로그램을 찾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런 예배들에 대하여 ‘좋다 나쁘다’를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관점하고는 너무 다르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 프로그램을 찾지 않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사람들은 예배의 순서에도 민감합니다. 헌금을 설교 전에 해야 하는지, 설교가 끝나고 해야 하는지도 관심꺼리입니다. 헌금 후에 호명을 해야 하는지, 호명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관심꺼리입니다.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은 신약과 구약을 함께 본문으로 해야 하는지, 한 군데만 읽어야 하는지, 찬송은 몇 장을 해야 하는지, 축복으로 끝낼 것인지 주기도문으로 끝낼 것인지, 한 시간을 해야 할지 한 시간 반을 해야 할지... 그러나 이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하다면 한번쯤은 성경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을 씻고 봐도 예배 순서나 종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초점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입니다. 예배드리는 사람입니다. 장소도 상관없습니다. 그리심 산에서 드리던, 예루살렘에서 드리던 상관없습니다. 수만 명이 드리던 한두 명이 드리던 상관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제대로 예배드리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큰 교회도 작은 교회도 오직 예배드리는 자가 있으면 됩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그토록 애타게 찾으시는 예배드리는 자가 다 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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