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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 / 전 5: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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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 - 전 5:8~20 


본문 16절 말씀의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라는 귀절을 제목으로 하여, 부와 돈에 관해 함께 생각해 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과 재물을 어떻게 쓸 수 있을 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6절의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라는 이 말은, 재물로 인해 오히려 영적으로는 해가 되고, 또한 아무리 많은 재물을 모았다고 해도, 죽을 땐 빈 손이 되고 만다는 뜻에서 쓰여진 표현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면 모든 것이 편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 때문에, 때로는 하나님보다도 재물을 우선으로 하는 우상숭배의 범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아직 부자가 되어보지 못했던 사람, 부자였던 적이 없었던 사람은, 사실 부자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고, 막연한 동경심이나, 또는 그 반대로 어떤 적개심을 가지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아직 겪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며, 오늘 본문 말씀은 지상에서 최고의 부를 누렸던 솔로몬 왕이 우리에게 해 주는 말이기에, 우리가 부자가 되기 전에, 또는 이미 부자가 된 사람도 한 번 쯤은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할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은 거의 3000년 전에 씌여진 글인데도, 바로 오늘날의 현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바로 지금 나의 마음을 위해 씌여진 말씀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한 귀절 한 귀절 살펴보면서, 3000년 전에 살았던 솔로몬을 통해서, 지금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 말씀은 전체적으로 부와 재물에 관한 말씀이며, 크게 세 부분으로, 8절에서 12절까지, 13절에서 17절까지, 그리고 18절에서 20절까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8절부터 12절까지의 말씀에서 우리는 부와 재물, 또는 돈에 관한 세 가지 원리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8절과 9절 말씀에서 볼 수 있는데, 부자는 큰 힘을 갖게 되고, 또한 부자의 권세는 가난한 자들을 위협하지만, 그러나 그 위에 높은 자가 있고, 종국에는 가장 높은 자, 즉 하나님의 판단을 받게 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10절 말씀인데, 탐욕과 물질주의는 한도 끝도 없어서 만족을 모르고, 결국 허무 속에 휩싸이고 말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세째는 11절과 12절 말씀인데, 돈과 재산이 늘어나면 모여드는 사람도 늘어나고, 이와 함께 걱정거리도 많아진다고 하면서, 노동자, 즉 열심히 수고하고 애쓰는 사람의 정신적, 영적 평안에 대해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 8절 말씀을 보면, "너는 어느 도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공의를 박멸하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보다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이 있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1988년 가을인가요?
탈주범들의 인질극 사건이 있었는데, 혹시 기억나십니까?
그 탈주범들의 인질극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도록 해 준 사건이었는데, 오늘 본문 말씀과 관계해서, 그들이 인질극을 벌이면서 외쳐댔던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와 같은 말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잘못을 저지르고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재판을 받고 감옥생활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던 것은, 돈만 많으면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형량이 다소 가볍게 된다든지, 아니면 감형이 된다든지 하는 부조리였던 것 같습니다.
만약 자신들이 돈이 많았으면, 보다 쉽게 풀려날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 때문에, 그처럼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큰 일을 저질렀던 것 같습니다.

소위 말하듯, "돈 없는게 죄다"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입니다.
부자들은 단순히 그들이 돈이 있다는 이유 만으로, 땅과 지역과 국가를 지배할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자들은 법률과 공문서를 작성하면서, 정부와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부자들은 아랫 사람들이 따라야 할 법칙과 규정들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습니다.
부자에게 접근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고, 그들을 지키는 또 다른 관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부자들의 귀에 점점 더 희미하게 들립니다.

이미 물질적으로 부자가 되었거나, 또는 아직은 가난하지만 앞으로 부자가 되어질지도 모르는 우리 모두, 이처럼 나쁜 부자, 악한 부자는 되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호세아서 4장 7절 말씀,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0절 말씀은 한 번쯤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재물을 가지고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지, 재물을 어떻게 모을까를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쓸 곳이 확실하면 하나님께서 그 쓸 만큼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며, 또한 믿고 있습니다.
돈과 재물을 사랑하여 무조건 많이 소유하려고 애쓰는 자는, 때로 윤리·도덕 등을 무시하는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불법으로 체류하면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그러다 보니 이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적지 않은 문제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문제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한 가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기업주 중에 이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어려운 일들을 시키면서 인격적으로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은 물론, 그 일한 댓가인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일도 있으며, 특히 사고를 당했을 때 제대로 치료를 해 주지도 않고, 보상도 해 주지 않으며, 혹 나라에서 나온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고 가로채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이와같은 경우를 우리는 소위 "벼룩의 간을 빼먹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불법 체류 외국인들이, 법을 어겨가며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인격까지 무시해가며,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착취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법적인 문제는 법으로 해결해야 하겠지만, 임금이나 보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윤리와 도덕의 문제인 것입니다.

본문 8절 말씀에, "빈민을 학대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들이 약하다고 해서 마음대로 휘두르며, 그들에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손해를 끼치는 일을 저지르는 자를, 하나님께서 옳게 보실 리가 없습니다.
몇푼 안되는 돈 때문에, 약한 자를 괴롭게 하고,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는 자는, 언젠가 그 자신이나, 그 후손들이 그 이상의 피눈물을 흘리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전혀 일하지 않고도 풍족히 먹고 노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부럽다고 생각되십니까?
그런 삶이 좋을 것 같습니까?
물론 부유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자신이 결정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잘 수 있다고 했습니다.
범죄한 인간은 수고하고야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노동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덕행인 것입니다.
우리 주위엔 재물을 쌓아놓고 놀고먹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자가 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8절 말씀을 보면,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라고 했습니다.

내가 소유한 막대한 재물로 하나님의 명령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각종 탐심을 품고,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평안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또 있겠습니까?
우리가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벌고, 또 더 나아가 부자가 되려는 이유가, 바로 빈궁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에베소서의 말씀에 진심으로 동의하실 수 있으십니까?

두번째 부분인 13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 말씀은 재물이 득이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되는 큰 폐단들에 대한 것인데,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14절 말씀은 재물과 돈의 불안정성에 관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5절과 16절 말씀은 소위,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간다는 내용이고,
17절 말씀에서는 재물 많은 부자, 특히 수전노 같은 사람들의 영적 피폐성에 대한 것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재물은 우리 삶 속에서 여러가지 목적을 이루어 가는데 필요한 수단으로서 소유되어야 하는데, 이런 수단에 불과한 재물 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목적들을 잊어버리고, 엉뚱한 분쟁이나 고통에 시달리곤 합니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돈에 미친 사람, 재물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이 당하게 될 위험은 무엇입니까?
바로 이것이 지금 본문의 큰 폐단이 되는 일인 것입니다.

부자가 갑자기 가난하여 지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본래 가난했던 사람들에 비해 부자였던 사람의 가난한 삶은 더욱 비참해 집니다.
재물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거나, 문제가 생겨 재앙을 당하게 되는 경우는 또 어떤지 생각해 보십시오.
가지고 있는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그 재물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갑작스런 일에 모든 것을 잃게 되었을 때, 즉 오늘 본문 말씀처럼,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것도 없느니라", 가족을 부양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1995년 봄인가요?
그때 일어났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화려하게 보였던 백화점 건물과, 그 안에 있었던 많은 물건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욕심과 무사안일의 사고방식이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랑스런 재물은 순식간에 달아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 것입니다.

잠언 23장 4절과 5절 말씀에,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라고 했읍니다.
이와같이 재산은 빨리 얻어지기도 하고, 또한 매우 쉽게, 또 빨리 없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본문 15절과 16절 말씀을 보면,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폐단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가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를 매일 거듭하고 있습니다.
잠시 잠간 누릴 육신의 안위를 위해서,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아둥바둥 애를 쓰고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도 잊고, 또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도 망각해 버린 채, 바람과도 같은 일들에 매달리고, 고민하고, 염려하고, 고통을 당하곤 합니다.

그리고 재물의 가장 큰 폐단이라 할 수 있는 것이 17절 말씀에 있습니다.
"일평생을 어두운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재물 때문에, 돈 때문에, 나의 영혼이 피폐해지고, 어두운데 처해지게 될지도 모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돈 때문에 사랑도 잃고, 우정도 저버리고, 따뜻한 교제도 놓쳐버리게 된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까지 잃어버리게 된다면, -- 그래도 돈과 재물에 대한 탐욕을 버릴 수 없겠습니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엉뚱한 일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돈 때문에, 보험금 때문에, 친척이나 심지어 부모까지도, 아무도 모르게 죽여 없애야겠다는 계획을 품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1993년 여름에 서울 장위동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부모와 형님의 식구들 모두를 죽이고 집 마당에 암매장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정신이상으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결국 돈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가 하면 역시 돈 때문에, 대학 교수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돈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고, 돈 때문에 분노와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돈 때문에 밤잠 못자고 끙끙대는 사람들, 이러한 일들은 곧 하나님을 멀리하게 만들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없도록 방해합니다.
결국 그 영혼은 항상 어두운데 머물게 되고, 하나님의 백성은 커녕, 인간다운 삶도 누릴 줄 모르는 수전노가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은 우리를 실제로 이처럼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재물로 인해 일어나는 이러한 큰 폐단들이, 아무쪼록 우리의 것이 되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본문 18절에서 20절까지의 말씀은 재물에 대해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분복, 또는 선물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20절 말씀에서 결론을 맺을 수 있습니다.

본문 18절과 19절 말씀을 보면,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각각 같은 내용으로 두 가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데,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분복, 또는 선물은, 첫째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신 먹고 마시는 즐거움, 곧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것입니다.
둘째로는 수고하고 일하는 가운데서 낙을 누리는 것, 곧 일의 성취와 그 즐거움에 관한 것입니다.

돈과 재물, 번영에 관한 모든 것이, 부정적인 것 만은 아닙니다.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조화를 이루어 나갈 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재물을 어느 정도 소유하여야 하는지, 그 적절한 선을 긋기는 어렵지만, 필요한 만큼은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 필요한 만큼 주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또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가 지나칠 때, 내가 가진 재물 자체가 죄가 되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올무가 되어, 나로 하여금 죄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질적인 소득과는 별도로,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단순한 것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먹고 마시는 일상 생활 속에서도, 영적인 희락이 함께 하도록, 하나님과 밀착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먹고 마시고 우리의 인생을 즐기는 이 모든 일도, 하나님과 화목한 신분으로서 먹고 마시고 즐겨야, 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제 69편 22절 말씀에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자는 그의 밥상도 올무가 된다"고 했습니다.
마른 떡 한 조각 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분명히 낫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일확천금을 꿈꾸기도 합니다.
이미 예를 들었던 그 탈주범들이 인질극을 벌이면서, 막대한 보물을 어디엔가 숨겨놓았다고 떠 벌리는 바람에, 그 보물을 찾는다고 이곳 저곳을 들 쑤셔 놓기도 했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그 보물을 찾겠다고, 마음이 들떠있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복권 때문에 온 나라가 떠들썩 했고, 지금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안에 보물이 있는가 하여 기웃거립니다.

그러나 12절 말씀에서 노동의 가치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 것처럼,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수고하는 가운데서, 또한 그 일이 성취되어 가는 가운데에서, 누리게 될 기쁨과 만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 가운데서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없는 것 만큼이나, 인생의 허무를 느끼게 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계를 위해서 하는 일 중에서도, 즐거움과 만족을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는 특별히 하나님의 일을 위해 수고하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시간과 재산을 투자하는 가운데서, 우리의 삶의 의미를 찾게 될 때, 우리의 기쁨과 만족은,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 맨 끝절인 20절 말씀을 보면, "저는 그 생명의 날을 깊이 관념치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저의 마음의 기뻐하는 것으로 응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마음의 만족, 영적 기쁨에 관계되는 말씀입니다.
이 20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의 날 수가 그다지 많지 못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기쁨을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일하게 하신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20절 말씀은 잠언 30장에 있는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잠언 30장 7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전에 결코 만족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영역에서도, 만족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더 많은 것들을 탐할 때, 불만족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에게 만족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이미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모시게 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이미 영원을 향한 기쁨, 성취, 그리고 만족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이러한 기쁨과 성취와 만족을, 지속해서 누려 나가도록 애쓰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전도서에 있는 말씀을 통해 돈과 재물에 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돈과 재물로 인해 영적으로 피폐해 지거나, 죄에 빠지게 되는 일에서,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가 가진 이 모든 것이, 내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서 맡아 관리하고 있는 돈과 재물을,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써야한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입니다.
내가 특별히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생각하십시오.

그러나 문제는 이 복을, 내가 어떻게 사용하여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소유한 재물 중 일부가, 빈궁한 사람들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 주장해 주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베푸는 구제의 손길이 단순히 물질적 도움뿐 아니라, 그들에게 영적인 만족까지 전달해 줄 수 있게 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한 마음과, 도우려는 마음 가운데 복 주시고,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계속해서 풍요로움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소유한 돈과 물질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하게 사용함으로써, 비교할 수 없는 만족과 기쁨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  멘  ( Αμη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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