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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의 기적 / 히 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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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고난의 기적 
본문 : 히브리서 5:5~10
설교 : 곽주환 목사 (구로중앙교회)
 

대구지하철 사고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유치원에 가겠다고 나선 아이, 음악으로 대학에 가기 위해서 레슨을 받으러 가다가 불을 만난 학생, 역을 청소하던 아주머니들, 졸지에 부모를 잃고 아이들만 남은 삼 남매, 등 이유없이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라크와 미국과의 전쟁으로 인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리가 잘려나가고 이 전쟁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가? 사랑하는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 놓고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겪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는가?

우리 교인 중에 육신의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겪는 성도들이 많다. 건강하던 분이 졸지에 폐암 판정을 받고, 건강하게 자라던 아이가 백혈병에 걸려서 고통을 당한다. 그 아이의 교회학교 선생님들이 생일 선물 받는 것을 받지 않기로 하고 그 돈을 모아서 치료비의 일부로 전달해 줬다. 남편은 앞을 볼 수 없는 어느 집사님이 계신다.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고 행복하게 사는 중에 부인이 위암에 걸려서 고통을 당한다.

참으로 이러한 소식을 들으면 참으로 안타깝다. 왜 이러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이러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면서 많은 마음에 질문을 갖게 된다.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 지나가는데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질문하였다. 저 사람은 누구의 죄 값으로 저렇게 앞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은 누구의 죄 값이 아니라 저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다. 바울도 말씀하기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예수님의 대답과 바울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지혜가 있다. 고난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기 보다는 고난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겠는가?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고난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께 어떤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하는가?

하나님 내가 무슨 잘못을 저 질렀기에 이렇게 고통을 당합니까? 이러한 질문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이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바라는 기도의 제목을 갖고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과연 고난을 통해서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 고난은 우리를 어떻게 바꾸어 놓는가?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순종을 배우게 된다. 본문의 말씀을 보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을 배웠다”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가시는 그 모습이 마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과 같은 모습이다. 고난을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순종하는 어린 양의 모습을 분명히 보여 주셨다.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기념하기 위해서 유월절이라는 절기를 지키는데 그 때에 누룩 넣지 않는 빵을 먹는다. 이 빵을 고난의 빵이라 부른다. 쓴 나물을 먹는다. 이것도 역시 고난의 상징이다. 아픔의 상징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몇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아브라함을 보라. 그가 백세에 얻은 귀한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간다. 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고통을 겪었다. 이러한 고통 중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배웠다.

시편 말씀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니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67, 71)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자기의 마음 데로 모든 것이 되는 줄 알고 산다. 계획한 데로 되고, 자신의 삶을 자신 만만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고 나면 내 마음 데로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인생임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변화된다.

요나를 보라.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 성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요나는 그 명령에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풍랑을 만난다. 모두 죽게 되었다. 큰 물고기 속에서 사흘을 지낸다.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가? 결국에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니느웨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예언자가 되었다. 고난을 받기 전에는 자기의 뜻데로 살았지만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같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배우게 되는데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본문의 말씀에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고 말씀한다.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우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 우리는 온전한 사람으로 거듭난다.

이것이 바로 고난의 기적이다. 고난 혹은 고통을 통해서 망가지고, 부숴지고, 깨지고, 흩으러지고, 끝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것이 바로 고난의 기적이다. 병이 들었다. 그 병을 통해서 상처가 남고 온전치 못한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병 때문에 온전한 사람이 된다. 사업에 망했다. 재물을 잃었다. 상처가 남아서 고통 스럽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통해서 온전케 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고난의 기적이다.

뉴욕 대학 부속병원 재활 센터에 있는 기도문이다. “큰 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건강을 구했는데 보다 가치 있는 일들을 하라고 병을 주셨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부유함을 구했더니 지혜로워지라고 가난함을 주셨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다. 삶을 누릴 수 있게 모든 걸 갖게 해 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주셨다. 구한 것 하나도 들어주시지 않았지만 내 소원 모두 들어 주셨다. 뜻을 따르지 못하는 삶이 이었지만 내 맘속에 진작에 표현 못한 기도는 모두 들어 주셨다.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고통을 통해서 내 몸이 망가지고, 실패를 통해서 내 생활이 엉망이 되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난의 기적이 아닌가?

사랑하는 성도여!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가? 어떤 아픔을 겪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순종을 배우고 있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온전한 모습으로 변화될 줄로 믿는다. 욥이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재산을 잃고, 가족을 잃고, 건강을 잃었다. 어디를 보아도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욥이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나의 모습이 밝지 않아도, 나의 모습이 아름 답지 못해도, 나의 모습이 그럴 듯 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모습으로 변화되리라는 확신이다.

사랑하는 성도여! 지금 무엇으로 인하여 아파하고 있는가? 무엇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모습으로 변화되는 과정인 것을 깨닫기 바란다.

어떤 과학자가 나방이 어떻게 고치를 만들고 그 고치 속에서 어떻게 나비로 탈바꿈하는가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과학자는 고치 속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바둥거리며 온 힘을 다하는 애벌레가 안쓰러워 칼을 가지고 고치 위쪽을 찢어 주었다. 이상한 것은 밖으로 쉽게 빠져 나온 나방에게 고통은 중단되었으나 그 나비는 곧 죽어 버리고 말았다. 놀란 과학자가 나비의 죽음을 연구해 본 결과는 이렇다. 나비는 고치를 뚫고 나오려고 버둥거릴 때 날개에서 기름기가 흐르게되고 그 기름 때문에 고치에서 나와 햇볕을 받을 때 날개가 마르지 않고 쫙 펴져서 하늘을 날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방이 불쌍하다고 하여 인위적으로 고치를 뚫고 나올 때의 고통을 제거해 버리면 나방이 쉽게 나오기는 하는데 결국은 기름기 없는 날개로 인하여 날지를 못하고 햇볕에 말라죽는고 한다. 나방이 나비로 되기 위해서는 누에의 좁은 문을 통화해야 하는 고통이 있다. 이 고통의 관문을 지나지 않으면 죽게 되고, 고통의 관문을 지나면 살게 된다. 하늘을 날 수 있게 된다.

이같이 고난은 우리를 온전케 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깨어지고,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망하고, 고난을 통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 같지만 여기에 고난의 기적이 일어난다.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우라.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모습으로 변화된다.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로 슬픔에 잠겨 있던 한 여인이 가슴을 치며 통탄한 듯 말한다. “나에게 왜 이토록 고통스러운 일만 가득하단 말인가? 차라리 인간으로 창조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이고 내 팔자여.” 옆에서 듣고 있던 또 다른 한 여인이 조용히 웃으며 말하기를, “당신은 아직 완전하게 창조된 것이 아니랍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말 한마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 고난을 통해서 지금 온전한 사람으로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만들어가고 계신다.

고동철 장로님은 주철회사를 경영하신다. 전기 용광로에 온갖 쇠를 집어 넣으면 수천도 되는 온도에 그 쇠가 녹는다. 만들어 놓은 형틀에 쇠물을 부으면 온전한 작품이 만들어 진다. 쇠가 녹아서 쇳 물이 될 때에 온전한 작품으로 만들어지지 쇠가 녹지 않으면 온전한 작품을 만들 수 없다. 용광로 속에 들어가는 것이 엄청난 고통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녹아지고, 부드러워지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온전한 모습으로 변화된다.

이러한 과정은 쇠 뿐만 아니라 흙으로 만든 도자기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의 조지왕이 한 도자기 공장을 방문했을 때 두개의 꽃병이 특별히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꽃병들은 같은 원료, 같은 타일, 같은 무늬로 만들어졌으나 하나는 윤기가 흐르고 생동감이 있는 예술품의 모양을 하고 있었고 또 하나는 투박한 채 볼품없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왕은 관리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관리인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전하,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는 불에 구워졌고 또 하나는 구워지지 않았습니다. 시련은 인생을 윤기있게 하고 생동감있게 하며 무엇보다 아름답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특별히 전시해 놓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고난은 우리가 망가지는 과정이 아니다.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우자. 이 과정을 지날 때에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모습으로 변화된다. 이것이 바로 고난의 기적이다. 고난의 기적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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