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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하면 참 좋습니다. / 요일 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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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참 좋습니다.(요일4:7~11) 


오늘은 사랑하면 좋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말씀 속에 성령님이 역사 하시는 줄 믿습니다.
6·25라고 불리우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 미군과 북한군 사이에 포로교환이 있었습니다.
각자의 자유의사에 따라서 북한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미국으로 들어가든지 갈 곳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미군들은 어디로 돌아갔을까요?
물어보나 마나 자신들의 고향인 미국으로 다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21명의 미군이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공산국가로 넘어 갔습니다.
왜? 이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공산국가에 남아 있는 21명의 미군 병사 중에 19명은 부모가 이혼을 했거나 가정불화가 심했던 가정에서 자란 군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라면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성격이 일그러지고 삐뚤어집니다. 자기의 인생을 저주합니다. 사회를 향하여서는 반항을 합니다.
청소년들 중에 소위 비행 청소년, 문제아들이 있는데 그들 가정의 배경을 살펴보면 거의 다 부모님의 가정불화가 그 근본원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부모가 밤낮으로 싸우고 걸핏하면 욕설이 난무하고 기물이 부서져 나가는 모습을 보고자라면 어린아이의 마음 속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아시니까?
부모지만 때려주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러나 힘이 약해서 행동으로 나타내지는 못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분노가 싹트고 울분이 쌓이게 되어서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면, 마음에 안 들면 유리창을 부수고 의자를 둘러엎고, 책상을 부수며, 학생들을 때리는 문제청소년이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제일에서 1을 빼면 무엇이 남습니까? '0'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사랑은 너무나도 소중한 것입니다.
부부는 촌수를 따지면 무촌 이라고 합니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면 이 무촌이 부부가 되어 집니다.
일심동체가 되어 집니다. 숨기는 것이 없는 사이가 되어져서 부부의 싸움을 칼로 물 베기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바로 사랑! 하나가 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나눌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부부지간에 이 사랑 하나가 빠져나가면 어떻게 됩니까?
이혼을 합니다. 갈라섭니다.
그냥 갈라섭니까?
야구베트가 난무하고, 달걀을 서로 던지고, 두부를 내 던지며 욕설을 퍼부으면서 정말 평생 원수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촌수를 따질 수 없는 무촌이냐 아니면 평생 원수가 되느냐는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에 의해서 판가름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 22장에서 보면 어떤 서기관이 예수님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선생님이여 이 모든 성경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가르치셨는지 잘 아시죠?
첫째는 이것이니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도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깨달으셨으면 아멘! 하십시다.

소망의 성도들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되는 줄 믿으시면 아멘.
그렇다면 이 새 사람에겐 어떤 계명이 부여가 되는 겁니까?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다같이! 서로 사랑하라!
사도요한은 요일 3:23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왔도다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우리를 살리게 하시려 화목제로 보내셨도다
화목제로 보냈도다
사랑하는 자들아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서로 사랑하면 사랑하면 주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리로다

사도바울은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천사의 방언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다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모든 것을 통달하는 지식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오늘 본문 요일서 4:11을 다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 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할렐루야!
소망의 성도들이여!
서로 사랑하다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서로 사랑을 가슴 가슴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랑입니까?
첫 번째> 사랑하면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화초를 사랑하는 사람을 보세요.
아침, 저녁으로 돌보아 주고, 벌레를 잡아 주고, 잡초를 뽑아 주고 때를 따라 물을 뿌려 줍니다.
아예! 어떤 사람은 주야로 이야기까지 하는 분도 계십니다.
저는 담임목사인데도 어머머! 목사님이 배가 많이 나오셨는데 요즘은 허리가 날씬해 지셨네요.
얼굴의 살이 빠지셨는데 목사님! 어디 편찮으세요?
목소리가 너무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으세요? 하고 염려하며 관심을 가져 주시는 분들을 뵐 때마다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교회를 사랑하면 교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나라를 사랑하면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으면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 21장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네가 나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사순절입니다.
우리 동구지역에 있는 소년, 소녀 가장들을 돕기 위해서 금식을 하고 기호품을 절약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주간 이 일에 관심이 있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다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임마누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사랑하면 책임을 지게 됩니다.
책임이란 말은 영어로 “responsibility”라고 하는데 이 말은 원래 "response" 다시 말하면 대답한다. 응답한다의 말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도와주세요"라고 할 때에 사랑하면 응답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맙니다.
응답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상대방의 요구에 얼마나 많이 응답하느냐는 사랑의 크기와 무게를 측량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세요!
많이 사랑하면 많이 응답합니다. 그러나 적게 사랑하면 적게 응답합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거지입니다. 소경입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려진 사람입니다.
그가 부르짖고 있습니다.
예수여! 나를 도와 주세요!
그냥 지나친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비난할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제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야! 이놈아 조용히 해!
지금 너보다 더 높은 사람들이 만나기가 어려운데 너 같은 거지가 왜 이래? 주제도 모르고 주접이야!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첫째> 걸음을 멈추셨습니다.
둘째> 돌아보면서 소리 지르는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셋째>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짓밟히며 온 몸이 흙투성이와 땀과 목욕을 못해서 썩은 냄새를 풍기면서 깔려 있는 그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넷째> 왜 그러니? 내가 무엇을 네게 해줄까? 물어보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원하는 대로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응답해 주는 것이 "response" 사랑인 것입니다.

이 사순절 24시간 횃불기도회가 기도훈련이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 하실 정도로 기도를 소중히 여기셨고 다니엘은 목숨을 내 걸고서라도 하루에 세 번식 기도하였고
예수님께서는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실 정도로 기도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쉬지 말고, 무시로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백성을 축복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기도로 응답하는 하나님 사랑하는 소망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0절을 다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화목제가 무엇입니까?
번제처럼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뼈를 추려내고 비계를 떼어내고 살코기만 두부처럼 잘라서 불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의 삯인 죽음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서 대신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시간을 내어 줍니다.
돈을 주고 싶습니다.
정성을 쏟아 줍니다.
애정이 담긴 대화를 줍니다.
아낌없이 주려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주면서도 아까워하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살아하지 않으면 아까운 마음이 생깁니다.
희생이나 헌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제 아내는 자매들 중에서 맏딸입니다.
저의 집에는 그저 1년에 한번 정도 처제가 찾아옵니다.
그러면 제 아내는 그냥 무엇이든지 주고 싶어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별로 줄 것이 없어 보이는데도 제 아내는 주고 싶어하고
제 어머니께서도 시집간 딸이 오기라도 하면 하다 못해 김치라도 만들어서 싸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리도 그리도 행복해하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제가 군생활을 할 때에 전방에 있었기에 면회 오시기도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가지고는 1시간 이상을 걸어오셔야 하는데도 강둑을 걸으시려면 그 겨울 바람이 정말 칼바람처럼 매서운데도 제가 좋아한다는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서 새빨갛게 얼어붙은 그 얼굴인데도 환하게 웃으시던 어머니! 커피를 마시던 제 손을 잡아 주시던 그 어머니의 사랑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서로 사랑하다가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천국의 삶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다같이!
사랑하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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