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열매를 맺읍시다 / 전 12:13 - 14, 마 21:18 - 22

  • 잡초 잡초
  • 328
  • 0

첨부 1


제    목 :  열매를 맺읍시다         
성경말씀:  전 12:13-14, 마 21:18-


  오늘은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나는 철저히 회개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있는가 실제로 경건한 삶을 살고 있는가 기도를 힘쓰고 있는가 열심히 전도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고난을 언제나 기억하고 깊이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지 확인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 가셨습니다. 며칠 안으로 십자가에 돌아가실 것을 다 아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서 성전에 가보았더니 성전이 엉망이었습니다.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강도의 굴혈과 같았습니다. 장사치들의 매매하는 장소가 되어버렸습니다. 성전 뜰에서 돈 바꾸는 사람들과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니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성전 뜰을 깨끗하게 하셨으나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성전이 그렇게 더러워 진 것이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베다니 마을에 가시어 하룻밤을 쉬시고 그 다음날 이른 아침에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는데 매우 시장하셨습니다.

그때 길가에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무화과 열매로 요기를 하실 생각으로 다가 가셨는데 그 나무에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무화과나무는 좀 특이합니다. 그 키가 15피트에서 20피트까지 자라고 옆으로는 키보다 더 많이 퍼집니다. 이렇게 옆으로 퍼지고 또 앞이 큰 편이어서 멀리서 볼 때는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라도 굉장히 무성하게 보입니다. 무화과는 1년에 두 번 열립니다. 4월에는 1년동안 묵은 나뭇가지에서 열매가 생기는데 이 열매는 먹을 만한 것이 못됩니다. 맛이 없고 떫고 씁쓸합니다. 먹을 만한 것이 못되지만 그래도 몹시 시장한 사람들은 이 열매를 먹고 잠시 시장기를 면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9월이 되면 열매가 열리는데 이 열매는 새로 나온 가지에 열리고 익으면 냄새도 좋고 먹을 만한 맛있는 열매입니다.

  막 11:13에 보면 이 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은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9월에 열리는 맛있는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4월에 맺는 보잘 것 없는 맛이 없는 열매를 구하셨는데 그것마저 없어서 예수님을 실망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건에 앞서 자녀를 실족케 하는 부모의 죄가 얼마나 큰 가를 경고하셨습니다.

마 18:6-7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을 금식하시고도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매우 시장 하셨기 때문이 아니고 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에 실망하여 그 나무를 심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적이라고 하면 좋은 편으로만 생각 하는데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이적입니다. 병든 사람을 고치시고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한센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시고 거친바다를 잔잔하게 하시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이렇게 좋은 면의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오늘 읽은 마 21:19 하반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너는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고 즉시 나무가 말라 죽는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좋은 방향으로만 나타나는 이적뿐 아니라 심판적인 이적 부정적인 면으로 나타나는 이적도 함께 생각할줄 알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은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습니까 하고 묻자 21절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열매가 없었기 때문이고 실망케 했기 때문입니다. 열매가 없으면 열매를 위해 수고한 사람에게 참으로 큰 실망을 줍니다. 사랑을 받았으면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하고 용서를 받았으면 용서의 열매를 맺어야 하고 긍휼을 입었으면 긍휼의 열매를 맺어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겸손의 열매를 반드시 맺어야 합니다.

  일본에는 청년백수꾼이란 말이 새로 생겼는데 부모가 애써 일류 대학을 보내서 대학을 졸업하게 했는데 귀찮다고 직장을 가지지 아니하고 귀찮다고 결혼도 안하고 부모와 살면서 1주일에 한두번 아르바이트로 용돈 조금 벌어서 그럭저럭 쓰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무려 130만명이 넘는답니다. 고등학생들에게 설문지를 돌려 청년백수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60%가 그것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응답했습니다. 일본의 장래가 걱정스럽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부모를 실망시키는 일이고 많은 사람을 실망시키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일하지 아니하고 열매 없이 사는 것은 하나님 실망시키고 예수님을 실망시키는 일입니다.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19절에 보면 이 무화과나무는 길가에 있었습니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이 쉽게 볼 수 있게 길가에 있었고 잎사귀가 무성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가가셨다가 실망했습니다. 기대감에 대한 실망입니다. 열매가 없으면서 있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최소한의 열매를 찾으셨는데 그 열매마저 없으므로 실망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은 이 사건은 매우 귀중한 영적 교훈을 주는 이적입니다.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죽게 된다는 것을 교훈해 줍니다.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은 더 존재를 계속할 수가 없다는 교훈을 줍니다. 무용지물은 버림을 받게 됩니다. 식물이든지 물건이든지 사람이든지 그것이 존재해야 할 의의와 가치가 있어야 존재하게 됩니다. 자동차도 못쓰게 되면 폐차를 시킵니다. 그와 같이 이 무화과나무도 무용지물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라 죽게 했을 것입니다.

어느 학자의 글에 보니까 무화과나무가 야생으로 되돌아가서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했습디다. 장미꽃이 찔레꽃으로 되돌아가듯이 이 무화과나무도 야생으로 되돌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쓸모없는 나무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라 죽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마 3:10에 세례요한이 말하기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 우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요 15:8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눅 13:6-7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했습니다. 주인이 과원지기에게 말하기를 내가 3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했으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겠느냐고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했으나 예수님께서 보실 때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장차 유대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을 아시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말라 죽게 하시므로 유대나라가 망하게 될 것을 경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마 3:8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했고 엡 5:9에 빛의 열매를 맺으라고 했고 갈 5:22-23에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 첫 번째가 사랑입니다.

초대교회때 이탈리아에 파우리누스 주교가 있었습니다. 이탈리아가 한때 이웃나라에 점령되어 많은 박해를 받았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포로가 되어 아프리카의 열대 지방에서 참혹한 노예생활을 하다가 지옥 같은 더위와 혹독한 노동을 견디다 못해 참혹하게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나약한 정부로서는 이 엄청난 국가적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때 파우리누스 주교는 젊은이들이 노예로 고생하는 아프리카 현지를 오가면서 돈이 생기는 대로 몸값을 치루고 젊은이를 사서 고국으로 데려오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어느 날 한 과부가 주교를 찾아와 자기 외아들이 붙잡혀 갔는데 아들이 날품을 팔아 겨우 생활을 꾸려갔는데 이제 아들이 없으니 자기는 굶어 죽게 되었고 아들의 생명도 위태로우니 꼭 구해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주교는 그때 자기 수중에 있는 돈을 모두 노예를 사는데 쓰고 한 푼도 없었기 때문에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여러 시간 고민 끝에 돈을 구할 방법은 없고 해서 홀몸인 자기가 딱한 과부의 아들 대신 노예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주교는 아프리카에 가서 노예가 되어 극심한 노동에 큰 고생을 하게 되었는데 본래 성실한 주교는 처음 해보는 노동이었지만 항상 웃는 얼굴로 궂은일을 도맡아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이런 성실함이 왕에게까지 알려졌고 왕은 특명으로 그 노예를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노예는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노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독자들이 여러모로 조사한 결과 그가 이탈리아의 주교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이 알고 크게 감동하여 주교를 불러 큰상을 주고 이탈리아에서 끌려온 노예들을 다 데리고 가라고 명령 했습니다.

이렇듯 큰 감동을 준 주교의 참사랑의 일화는 지금까지도 국민들 사이에 사랑의 모델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모든 국민이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는 참으로 사랑의 열매를 많이 맺었습니다. 다음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을 교훈해 줍니다. 약 2:26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구원의 조건은 행함이 아니고 믿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이 무화과나무는 좋은 나무같이 보였으나 열매가 없었습니다. 당시 유대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과신했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철저하게 바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회침한 무덤 양의 가죽을 쓴 이리, 하루살이는 걸러먹고 약대는 통으로 삼키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신조와 교리는 좋았지만 행함이 없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멸망을 받게 될 것을 알려 주는 이적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유대인들만 가졌던 것이 아니고 어느 시대나 많이 있습니다.

  인도의 간디는 영국교인들의 오만함을 보고 말하기를 나는 예수님은 좋아하나 예수 믿는 사람은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행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이적이 주는 교훈은 외모만 갖추고 내실이 없을 때 당하게 되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무화과나무는 유대 나라를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잎사귀는 유대 나라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46년 동안이나 걸려서 지은 성전 대 제사장등 위대한 전통 외모는 훌륭하나 그 속에는 아무것도 내실이 업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통해서 주시는 교훈은 외모만 그럴듯한 종교 외형만 번듯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고 열매가 있는 그리스도인 풍성한 열매를 맺는 교회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열매를 찾으십니다. 열매는 모든 노력의 결정체입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열매는 나쁜 열매가 아닌 좋은 열매입니다. 열매를 맺을려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요 15:5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포도나무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다음에 죽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요 12:24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다고 하셨습니다. 밀알이 죽는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십자가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많은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우리도 죽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바울은 날마다 죽었습니다. 눅 9:23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지라는 말은 날마다 죽으라는 말입니다. 날마다 죽으면 날마다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상징적으로 예표적으로 예언적으로 심판하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를 심판하신 것은 결국은 예루살렘 성전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심판하신 후 40년 후에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지금까지 회복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성전 대신 무화과나무를 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십니다. 전 12:14에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심판의 주님이십니다.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십니다. 길가에 잎만 무성하여 많은 사람에게 실망을 주고 있는 무화과 나무처럼 예루살렘 성전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착하고 진실하고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 것 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는 어떠합니까 다른 데는 다 썩어도 교회는 썩지 아니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실망을 주고 있지 않는지 깊이깊이 성찰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좋은 열매를 많이 맺으므로 칭찬 받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십시다.

  우리 교회는 내일 새벽부터 사순절 특별 새벽기도회를 갖습니다. 여호수아는 새벽 미명에 일어났고 새벽에 여리고 성을 점령했고 다윗은 아침 일찍 기도하고 내가 새벽을 깨우리 라고 했고 예수님께서는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맨 먼저 만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지난 수요일 신문에 보니까 평생 자신이 가진 뇌 기능의 5%-10%만 사용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것만으로 충분히 살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아는 것이 많아도 뇌 기능의 10% 이상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머지까지만 드신 것은 뇌의 나머지 기능은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라고 주신 것 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뇌가 가장 완벽하게 개발될 수 있고 기도할 때 우리 뇌의 기능도 완벽하게 개발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다른 사람을 치유하고 살리는 놀라운 능력이 개발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뇌를 개발시키려면 기도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기도를 많이 하셨습니다. 실제로 더 많이 기도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