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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통(苦痛)의 십자가(十字架)를 지라 / 빌 3:10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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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고통(苦痛)의 십자가(十字架)를 지라
성경 : 빌 3 : 10 - 14 (고난주간)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통의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는데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당한 십자가를 지고 주님 가신 뒤를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서 저자는 기록하기를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례하는 것으로 즐거워 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여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하였습니다 ( 벧전 4 : 13 - 19 ) .


(1).동참(同參)의 십자가(十字架)입니다

벧전 4 : 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례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여 함이라"하였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통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는데 우리도 그의 고난에 동참하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성도들이나 교회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참고 견디는 것이 곧 고통의 십자가입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하였습니다 ( 골 1 : 24 ) .

예수를 온전히 믿는 다는 것은 십자가 지는 생활이 아니면 어려운 것인데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강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하였고 ( 딤후 3 : 12 ) .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하였으며 ( 행 14 : 22 ) .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하였으며 ( 마 5 : 11 - 12 )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 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나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하였습니다 (고후 12 : 9 - 10 ) .
이 모두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 것이 기쁘다는 뜻으로 받아드려지고 우리들도 그렇게 주와 같이 고난받음을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2)영광(榮光)의 십자가(十字架)입니다

벧전 4 : 14 - 16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하였습니다.

베드로사도는 고난을 받되 기왕이면 주를 위하여 받는 것은 장차 영광이 되지만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에 간섭하다가 받는 고난은 진정 부끄러운 고난이요 영광의 고난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하여 받는 고난은 영광스러운 고난이라는 것인데 바울사도는 이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하였습니다 ( 롬 8 : 18 ) .
예수 때문에 받는 고난이 확실하다면 이는 분명히 그에게 속하였기 때문에 받는 고난이 틀림없기 때문에 장차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행 11 : 26 행 26 : 28 . 행 24 : 5 )

사도요한은 기록하기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하였습니다 ( 계 2 : 10 - 11 ) .

그러므로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우리들은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우리가 지는 십자가는 장차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기억하고 기쁨으로 지고 주의 뒤를 따르는 성도 상을 정립해야 하겠습니다.


(3).소망(所望)의 십자가(十字架)입니다

벧전 4 :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찾아오는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지켜주시며 돌보아 주시기 때문에 그 고난 가운데서 그리스도인들은 성화의 과정을 거쳐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을 떠날 때는 자신 잇게 주께 영혼을 부탁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는 것이고 또 살아서도 주음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한 것은 순교를 할 수 있기 때문이고 자신이 잘못을 범한 일이 아니고 단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인지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고 스데반 처럼 순교하면서 원수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자신의 영혼을 받아달라고 기도하고 떠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행 7 : 59 - 60 ).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하였습니다 ( 눅 23 : 46 ) .
우리들도 주를 위하여 고난을 받고 살다가 주께서 부르시는 그 날에는 우리들의 영혼을 주께 부탁하며 나를 받아주소서 하고 기도하면서 웃으며 주님 앞으로 가는 영광이 따르는 믿음을 가지고 주를 섬기는 참 신앙의 소유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주를 위하여 살다가 순교하신 분이 많은데 그들은 모두가 웃으며 그 영혼을 주께 부탁하고 기쁨으로 주님 앞으로 간 사람들입니다.


"결론"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아무리 모진 고난과 위협을 당해도 굴하지 않고 순교를 각오하고 주를 섬겼는데 오늘의 우리들은 그 당시의 성도들 같이 순교를 각오하고 주를 섬기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고 예수를 이용하여 인간들의 욕구불만(欲求不滿)을 충족하려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찬송가 작가 프레드릭 페이버의 (F. W. faber) 383장 찬송 시는 오늘의 우리들의 마음을 강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 하도다"하였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주님께서 지고 가신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그의 뒤를 따라 골고다 산상으로 올라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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