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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다 (War in IRAQ) / 창 16:1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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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다 (War in IRAQ)
창세기 16 : 1 - 14
설교 : 강구원 목사 


유엔(UN, United Nations)과 세계 여론의 압도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2003년 3월 20일(한국시간 오전 11시 35분, 이라크 현지 시간 오전 5시 35분) 이라크의 자유(IRAQ in Freedom)라는 대명제를 걸고 이라크에 대한 군사공격을 개시했습니다.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당연한 절차를 생략하고 오만한 일방 주의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이라크를 왜 공격해야만 했습니까?

미국은 중동에 이른바 이상주의외교를 적용하려고 할 때 후세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이라크에 미국식 민주정부를 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라크에 미국식 민주주의가 정착하게 되면 도미노 효과가 먼저 이웃 나라 이란에 미쳐서 마침내 중동국가 전역에 민주화 물결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 미국이 가지는 부동의 계산입니다. 이렇게 되면 팔레스틴 문제가 이스라엘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됨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안전이 항구적으로 보장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미국은 패권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21세기 미국의 세계전략은 그 어느 나라도 미국의 힘에 도전 할 수 없는 유일한 초강대국의 지위를 강화해 변함없이 유지하는 것입니다. 부시는 이 계획을 중동의 이라크에서 착수했습니다. 후세인 제거와 석유이권 확보는 21세기 팍스 아메리카나(PaxAmericana)라는 종착역으로 가는 중간역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라크 전쟁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후속인 동시에 이라크 전쟁은 시작일 뿐입니다. 같은 '악의 축'인 이란과 북한, 그리고 시리아, 레바논, 리비아, 수단,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인들은 이라크 침공을 현대판 십자군 전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의 분노는 미국에 대한 테러로 나타나고 친미

아랍국가들의 정권 타도 움직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동 전쟁은 끝이 안보입니다. 파괴도 건설도 자국이 아닌 타국에 의해서 관리되어 온 것이 바로 중동 땅입니다. 이러한 중동전쟁은 역사적인 배경 설명 없이는 이해하기 곤란합니다.

Ⅰ. 이라크 전쟁(War in IRAQ)의 역사적 배경입니다.

1) 예루살렘 멸망
유대국은 주전 63년에 로마의 폼페이 장군에 의해 정복당하고 그 속국이 되었습니다. 주후 66년에서 67년 사이에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대규모 반란을 계획했으나 주후70년 8월 로마의 티투스 장군은 예루살렘 성전(The Second Temple)을 불태우면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초토화시켰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유대인 열성당원(Zealot)들 약 960명이 「엘리아잘 벤 야이르(Eleazar Ben Yair)」를 지도자로 세워서 맛사다 요새로 피신하여 싸웠으나 실바(Flavius Silva)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 제10군단의 공격을 받고 자결로서 최후를 장식하게 되니 그곳이 바로 유대인의 전적지 맛사다 요새입니다.

이때 수십만의 유대인들은 수천 년간 살아오던 고국산천을 떠나 로마제국의 다른 영토에 분산되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유대인이 주후 132-135년에 다시 반란을 일으키자 그들마저 고향 땅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세계 도처에서 선민이라고 하는 긍지 하나로 뿌리를 내리게 되고 이것은 신앙과 민족주의가 혼합되어 자연스럽게 대동단결 운동으로 승화되어 갔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민족성을 잃지 않고 1800년 동안이나 세계 각지를 유랑하다가 19세기 말엽에 예루살렘의 시온 동산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결실이 되어서 1948년에 당시 영국의 신탁통치령이었던 팔레스틴 땅에 이스라엘국이 건설되자 이제는 반대로 팔레스틴 아랍인이 유랑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2) 블레셋과 팔레스틴
팔레스틴 사람은 구약의 블레셋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납니다(삼상 5:2; 6:9; 9:16). 유대인들은 블레셋을 나쁘게 보았고 지금도 팔레스틴 사람이라면 교양 없는 속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의 영향이 틀림없습니다. 블레셋 사람의 기원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해변가에 살았다고만 알려지고 있습니다.

블레셋(Philistines)은 욥바로부터 가사 사막까지 해안지방이 그들의 거주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땅을 분배하였으나 그 주민의 강경한 반항으로 점령하지 못했으며(수 13:2), 그 후에 이 백성은 여러 번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사사 삼갈이 소 모는 지팡이로 블레셋인 600명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으며(삿 3:31), 야일 사사가 죽은 후에 괴롭게 하였고(삿 10:3-7), 압돈 사사 후에 40여년간 관할하는 중에서 삼손 사사가 구원하였고(삿 13:1, 14:4, 16:30), 엘리 때에 침입하여 점령하고 법궤를 탈취하여 간 것을 사무엘이 구원하였고(삼상 4:7, 12-14), 사울왕 때에 침입하여 철과 연장을 전부 거두어 갔으므로 이스라엘에 대장장이가 하나도 없었으며, 이때에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나아가 쳐부수었고(삼상 13:19, 14:22), 다시 또 와서 치려하는 것을 어린 다윗이 그들의 대장 골리앗을 죽이고 패주시켰으며(삼상 17:49-54), 솔로몬 시대에는 이스라엘의 판도 안에 들어갔다가(왕상 4:21) 솔로몬 사후에 이탈하였고, 여호사밧 왕 때는 조공을 바친 일이 있었습니다(대하 17:11). 히스기야 왕 때에는 다시 취하였으며(왕하 18:8), 그 후 앗수르 왕 사르곤에게 정복을 당했습니다.

로마의 행정담당관은 유대인을 추방한 뒤에 언제부턴가 이 지역을 팔레스틴(palestine) 곧 블레셋 사람의 땅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반 유대인 지명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 지역은 주후 634 641년 사이에 아랍인에 의해 정복되었고 이들의 통치 아래서 팔레스틴 사람들은 정치적으로는 아랍화, 종교적으로는 이슬람화 되어 갔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예루살렘 한복판에 옛 솔로몬 성전의 성벽 위에는 아랍인들의 신전인 오말신당이 세워졌는데 그들은 이 바위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곳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드린 곳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유대인과 팔레스틴 사람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분쟁의 촛점은 연고권에 관한 주장입니다.팔레스틴 사람은 1800년 전에 떠난 유대인이 연고권을 주장하고 돌아와서 자기 땅에 옛 이스라엘을 다시 세운 것은 부당하다고 보고 이스라엘 말살 또는 분할을 요구하고 있으며 아랍 국가들과 다른 무슬림 국가들은 이것을 절대 지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3) 아랍과 이스라엘의 전쟁
실제로 양민족 간의 필사적인 대결은 정치적으로 볼 때 자국의 이익을 위한 영국의 개입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은 터키전에 아랍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터키 지배 아래 있던 아랍인들의 독립을 약속했고 또 유대인 자본가의 전시 헌금을 받기 위해 팔레스틴 땅에 유대국 건설을 확약했습니다.

그 후로 유대인 시온운동(Zionism)은 가속화되었고 유대인의 이주도 계속 늘어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유대인으로 구성된 연합국의 부대들이 이곳에 주둔하여 유대인의 사기를 높이고 해외의 유대인들에게 시온동산 운동으로 이주를 부축이자 아랍인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1947년 UN은 팔레스틴을 아랍인과 유대인 거주지역으로 분리할 것을 결의했으나 아랍 측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으므로 1948년 초에 제1차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났고 이 전쟁에서 유대인들이 승리하자 그 해 5월에 이스라엘 독립이 선포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팔레스틴 아랍인들은 고향 땅을 등지고 이웃 아랍국가에서 피난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팔레스틴 지역의 회복을 위하여 주변 아랍국가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1956년 이집트가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하여 이스라엘 선박의 통행을 금지시키자 제2차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은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영국과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선재 공격하여 승리했으나 소련과 미국의 압력에 의해 점령 지역에서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1967년 이집트는 아카바만에서 홍해로 나가는 이스라엘 선박의 출입을 금지하게 되자 결국 제3차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나서 시나이반도, 요르단, 갈릴리 강서쪽, 골란고원 등을 점령했습니다. 팔레스틴 아랍인들은 이 전쟁의 패배로 아랍형제 국가들로서는 고향 땅을 회복하는데 역부족이라고 인식한 나머지 팔레스틴 해방기구(P.L.O)를 강화하고 세계 도처에서 친이스라엘 기구들과 시설들에 대하여 테러 행위를 해온 것입니다.

이집트는 시나이반도를 빼앗겨서 최대의 외화수입원인 수에즈운하의 통행료를 못받게 되자 1973년에 제4차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미국의 중재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단독 강화조약을 맺어서 실지(失地)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시리아가 단독강화를 반대하게 되니 아랍국가는 강경파와 온건파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4번이나 걸친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에도 불구하고 중동 평화는 달성되지 못하고 있으며 팔레스틴 난민문제와 요르단강 서쪽지역과 갈릴리 바다 건너 골란고원의 귀속문제를 놓고 이라크가 중재안을 내놓았으나 무의미하게 되자 이라크 대통령 후세인은 1990년 8월 2일 새벽 쿠웨이트를 함락하여 19번째 주로 선언하고 화폐통합까지 선포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UN 결의에 따라 미국이 중심이 된 연합군이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격퇴했습니다.

4) 이스라엘의 전통계승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거주하는 땅을 저들 조부에게 약속한 땅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 사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의해서 확인되었고 야곱과 요셉의 유언에서 재확인되었으며,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 할 때와 여호수아의 인도로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 성을 쳐부수고 아이성을 지나 가나안칠족을 정벌하고 12지파에 의해 땅을 분배하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정착한 땅이었습니다.

사사시대를 지나 다윗과 솔로몬의 황금시대를 맞이하게 되고 솔로몬이 죽은 후에 그 아들 르호보암 때 남조 유다와 북조 이스라엘로 분열되고 나중에 저들의 죄 값으로 남조 유다는 바벨론에게 북조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각각 망하여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후에 다시 고레스 왕의 해방령을 받아서 국토를 회복했으나 그리이스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당하고 그 후에는 로마의 통치하에서 강성한 로마의 힘이 전 세계에 미칠 때 예언대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메시야가 이스라엘을 로마정권 아래서 회복해주는 정치적인 메시야로 착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계속되는 핍박으로 말미암아 나라 없는 서러움을 그 어느 민족보다도 절감하고 살아온 백성입니다.
마침내 에스겔 선지자의 "말년에 이스라엘 민족이 열국으로부터 나와서 고토로 모여들리라"(겔 38:8)는 예언대로 전쟁이 끝이 나고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틴 지역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수도도 텔아비브에서 옛 도성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지금 중동의 아랍의 형제국가들은 이스라엘을 눈에 가시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혈통적으로 민족적으로 이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Ⅱ. 이라크 전쟁(War in IRAQ)의 성경적 조명입니다.

창세기 15장 17절에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횃불언약을 맺었습니다. 이상 중에 나타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후사에 대한 약속을 했습니다(창15:1 5). 그리고 언약 체결을 위한 준비를 계시하셨습니다(창15:6-11). 그 다음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할 것을 예언했습니다(창15:12-16). 마지막에는 이스라엘이 차지할 가나안 영토에 대해서 즉, "애굽 강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해 주었습니다(창15:17-21). 하나님께서 친히 아브람을 부르시며 말씀하시는 이 엄청난 광경을 이상 중에 보았고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는 것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중동전쟁의 불씨는

1) 아브람과 사래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본문 16장 2절에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고 했습니다.
사래가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노쇠해 가는 자신의 육신을 보고 자기 스스로 성급한 판단을 내린 결과 이 사래의 불신앙적 실수는 장차 큰 비극의 동인이 되었습니다.

2)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망과 영합(迎合)한 죄 때문입니다.
본문 16장 2절에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얻을까 하노라…』고 한 말에서 새 가정을 일으키려는 사래의 인간적 의도를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도 사래는 하갈을 인격체로서보다는 생식수단으로만 대했던 것입니다. 결국 사래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인 일부일처제를 파괴해 버렸습니다.
본문 16장 2절에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들으니라』(솨마, )는 '만족하게 동의하다'라는 뜻입니다. 자기 아내 사래가 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상반되는 것인 줄 알면서도 한마디의 이유도 없이 아브람은 기분 좋게 아내 사래의 말에 응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람은 자기 아내 사래의 말을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실로 그들은 칼빈(Calvin)이 지적한대로 "약속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고 그 성취 방법에만 몰두했다"고 한 말은 합당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약속이나 계명을 무시하는 이른바 소유가 본질에 앞서게 하는 처사는 죄가 분명합니다.

3) 아브람과 사래의 세속화된 죄 때문입니다.
본문 16장 2절에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고 한 것은 당시의 족장이나 부호와 상류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부부간에 자식이 없을 때는 아내가 자신의 여종을 남편에게 주어 후사를 보도록 하던 고대 근동의 관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경우 태어난 아이는 여종의 아이가 되지 않고 본처에게 속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로서 아브람과 사래는 그들의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가 세상 사람들과 비슷하거나 같았습니다. 이것은 곧 그들의 세속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Ⅲ. 이라크 전쟁(War in IRAQ)의 역사적 발전과정입니다.

중동전쟁을 말할 때 믿음의 조상 노아를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의 아버지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은 하체를 보고 두 형제(셈과 야벳)에게 고할 때 셈과 야벳은 옷으로 아버지 노아의 하체를 덮어 주었습니다.
정상적인 부자관계라고 하면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주는 것이 상례인데 그러나 함은 형제들까지도 아비의 수치를 보고 쾌감을 느끼도록 충동질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죄악입니다.
창세기 9장 25-27절에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저주를 받은 함과 축복을 받은 셈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야벳을 창대케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란 이 말은 야벳 족속이 셈 족속을 지배하게된다는 의미가 아니고 야벳이 셈의 종교적 축복에 영향을 받아 동참하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만 합니다(Calvin, Keil, Lange).
실제로 구라파의 문화와 과학, 희랍의 철학, 로마의 법 정신 등은 야벳의 후손들에 의해 이룩되었습니다. 유태인은 노아의 첫째 아들 셈의 후예들입니다.

그 중에 노아의 12대손인 아브람의 아내 사라는 이삭을 낳았습니다. 함의 자손들은 앗수르, 바벨론, 가나안, 시돈, 애굽, 리비아 등지에 거주했습니다(창 10:6). 시편 78편 51절, 105편 23절에 함의 땅이라 함은 애굽을 가리킵니다.
아랍인은 셈계의 아브람과 함계의 하갈(애굽인) 사이에 출생한 이스마엘의 후예들입니다.
따라서 모계(母系)로 말하자면 이삭이 셈계면 이스마엘은 함계의 시조격 입니다.

1) 하갈과 사래의 싸움입니다.
본문 16장 4절에 『…하갈이 잉태하매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멸시한지라』고 했습니다.
본문 16장 6절에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사래와 하갈이 서로 질투하는 가운데 하갈에게서는 이스마엘이, 사래에게서는 이삭이 탄생하였습니다.

2) 이복 형제간의 싸움입니다.
창세기 21장 9-10절에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사라의 말을 듣고 있던 아브라함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창세기 21장 12-13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이스마엘과 하갈은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하갈은 이스마엘을 데리고 가는 중에 목이 말라 물을 구하는 아들을 보고 방성대곡할 때 하늘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마엘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을 약속하시고 하갈의 눈을 밝혀 샘물을 발견하게 하고 가죽부대에 물을 담아 이스마엘에게 먹이게 했습니다.

3) 후손끼리의 싸움입니다.
본문 16장 12절에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동방은 지금의 아라비아 지역과 아프리카 지역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스마엘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소명 받아 100년 동안 하나님을 섬기다가 175세로 그의 파란만장한 나그네 인생을 마감하면서 자기 아들 이삭에게 모든 소유를 주었습니다(창 25:7-11). 이삭과 이스마엘은 막벨라굴에 아버지 아브라함을 장사했습니다. 이삭은 브엘라해로이(가데스 서쪽 3km 지점에 있는 아인무웨일레로 추정)에 거하였고 소아시아 북부지방을 삶의 무대로 삼았습니다(창 25 :11).

한편 이스마엘 후예들은 12방백을 이루고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오늘날 시리아, 아라비아, 팔레스틴 동남부)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 편에 거하게 되었습니다(창 25:18). 차츰 그들 후손들끼리 대결하는 양상이 되었고 야곱의 가족들이 요셉으로 인하여 흉년을 피해 애굽에 머물 때는 애굽의 총리대신 요셉 때문에 대우를 받았으나 요셉이 죽고 난 후에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애굽을 통치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한 고초와 학대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셈 계통인 이삭의 후예들입니다. 마침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의 선봉장이 되어 애굽을 나올 때 셈 계통의 모세와 함 계통의 이스마엘 후손인 바로 왕과의 한판 대결을 볼 수 있습니다.

4) 성경과 코란의 대결입니다.
아브람이 그가 첩으로 취한 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의 후손 가운데서 모하메드(Mohamed)가 탄생하였고 그로 인해 이슬람교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하메드는 유대의 수도 예루살렘이 멸망된 후 꼭 5세기 후인 570년에 출생하였습니다.
모하메드교는 이슬람(Islam)교라고도 하는데 이들의 교회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절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모하메드는 대예언자로 모세와 예수보다도 더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선전합니다.
그들은 신은 오직 알라신 밖에는 없다고 합니다. 그들의 경전은 코란(Koran)인데 이것은 모하메드의 어록으로 114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코란경은 모하메드가 사망한지 일년도 못되어 그의 친구요 후계자인 아부베클(Abu-Bekr)이 편집하였고 모하메드의 양자인 자이드(Zaid)가 완성했습니다. 이슬람교의 특징은 신앙뿐만 아니라 정치, 군사등 모든 면에 실권을 장악하여 복종하지 아니하면 목을 벤다는 포교방법으로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을 들고 포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역사적으로 볼 때 실로 가공(可恐)할 만합니다. 기독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신앙을 통하여 내려온 적통 종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아랍과 이스라엘의 전쟁은 기독교의 성경과 이슬람교의 코란의 대결장입니다.
저들은 코란으로 무장하고 힘의 일체를 과시하면서 이스마엘 후손들을 쇠뇌 시켜 가고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난 하갈의 자손과 성령의 약속으로 태어난 사래의 자손의 대결입니다(갈 4:22-24).
전쟁을 할 때마다 이삭의 후예들이 이겼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성령을 따라 태어난 자손의 자유함 입니다. 지금도 예루살렘 성지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렸던 그곳에 황금빛 돔(비잔틴식)으로 회교 성전을 짓고 아랍인들은 그곳이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이 번제로 드려진 곳이라고 엉뚱한 주장을 하는가 하면 모하메드가 그곳에서 승천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오말 신전 밑에 있는 성벽에 얼굴을 파묻고 성전회복을 위하여 통곡하고 있으니 과연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이 합당합니다.
아브람과 사래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한 불신앙의 죄와 자신들의 이기주의적인 욕망을 위한 범죄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가치관과 이데올로기로 세속화된 죄 때문에 지금의 중동 땅에는 물고 물리는 엄청난 피의 대결장으로 되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솔직히 말하면 이라크 전쟁(War in IRAQ) 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 있는 말입니다. 먼저 일어났던 1991년 걸프전쟁(Gulf War)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전쟁의 주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대세에 밀려 이라크 전쟁이라고 해야 이해가 빠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팽창주의는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서부진출 러시가 일어나면서 텍사스 , 캘리포니아, 오리건으로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이 땅은 당시 영국의 소유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자신들에게 신이 부여한 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텍사스, 캘리포니아, 오리건을 미국의 소유로 만들었습니다.

19세기말 북미 대륙에 더 이상 영토를 확장할 땅이 남지 않자 미국은 또 다른 이상을 실현할 땅을 해외에서 찾았습니다. 태평양의 하와이와 사모아제도를 차지한데 이어 1898년 스페인과 전쟁을 벌여 쿠바, 푸에르토리코, 괌, 마지막으로 필리핀을 손에 넣었습니다. 또 문호개방을 선언하면서 뒤늦게 중국에 뛰어들어 이권을 챙기면서 강력한 미국이 탄생된 것입니다.

지금 미국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힘(power)을 이용해서 세계 도처에 이른바 미국의 정신을 심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정신이라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와 인권과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인간의 행복추구를 위한 엄격한 질서입니다.
소련을 붕괴한 것도 걸프전쟁을 주도한 것도 미국입니다. 아프카니스탄 전쟁을 사실상 단독으로 감행하면서 중앙아시아 옛 소련 독립국가에 군사기지를 확보하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들은 그곳을 떠날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계획대로 단기간에 끝나야 됨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군을 중심한 연합군의 피해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계 여론은 더욱 반전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습니다. 전쟁이 미국이 주도하는 대로 끝이 나도 UN의 권위와 미국과 동맹국 및 주요 국가들 간의 관계를 복원하지 않으면 전후 중동의 질서를 개편하는 일이 순조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중동전쟁을 반드시 영적인 창(窓)으로 보아야만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중동전쟁은 곧 세계전쟁입니다. 그 어떤 무기보다 더 무서운 것이 종교적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쟁에 참여한 미군 중에는 알라신을 믿는 이슬람 교도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를 공격해야만 하는 이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착잡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라크가 알라신의 이름으로 침략자 미국과 싸우는 성전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은 유업을 얻지 못하고 내어쫒긴 계집종과 그 아들 곧 하갈 과 이스마엘, 그리고 유업을 얻은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 곧 이삭의 후손들의 대결장입니다(갈 4:21-31).

여기서 이삭은 약속의 자녀이고 이스마엘은 약속을 받지 못한 이방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자유하는 여인이 낳은 아들 중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구분되어 있지 아니합니다.
약속의 자녀는 모든 그리스도인입니다. 약속은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섭리와 작정을 통해서 준 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 곧 약속의 자녀가 되는 것은 육체의 족보에 따르지 아니합니다(롬 9:8).
약속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보증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28절에서 자유하는 여자와 이삭과 약속의 자녀들과 갈라디아 교인들을 등식화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에 포함된 모든 자들이라고 선언적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중동 땅에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현재 알라신을 믿는 이슬람교도들은 타종교로 개종하면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절대절명의 장벽은 아닙니다. 기독교 역사상에 꼭 알라신을 믿는 무슬림이 아니더라도 복음을 전하다가 혹은 그 복음을 믿다가 핍박을 받고 마침내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래땅 사막 중동 땅 저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택자가 있습니다. 이스마엘이나 이삭이나 혈통적으로 볼 때는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창 21:12,13). 다만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약속의 자녀의 기준은 이스마엘 자손과 이삭의 자손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 두 자손들은 지금까지 서로 반목하고 다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써 유리한 명분을 얻고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의 진리를 알지 못한채 혈통과 족보 밑에서 원한을 품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곧 제 2위되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육의 족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뿐이지 결코 육은 아닙니다. 저들은 한 아버지의 자손이면서 서로를 원수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라신을 믿는 이스마엘의 후예 중동사람들은 마침내 성경을 포기하고 코란을 선택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삭의 후예들은 이스마엘의 후예 중동사람들을 유업을 얻지 못하는 저주받은 사람들로 인정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이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이것은 죄


악입니다. 피차 그 죄의 값을 지금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마저 메시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다시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믿지 못하는 벌을 지금 유대인들이 거룩한 성령세례 대신에 폭탄 세례를 대신
받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중동 땅에 복음을 전할 때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폭탄대신에 사람을 살리는 복음의 미사일을 이라크와 중동 땅에 쏟아 부어야만 합니다.
성령의 폭탄을 연합군과 이라크 지역에 퍼부어야
합니다. 사람을 녹여버리는 화학탄과 핵폭탄 대신에 복음의폭탄 성령의 불폭탄으로 육의 아성이 녹아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해야 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열세 살 위였으나 아버지로부터 유업을 계승하지 못한 서자의 서러움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더 큰 은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열세 살 아래였으나 적자의 우월감과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업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생각에 더 좋은 약속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마치 눈먼 사람이 봄이 온 줄도 모르고 겨울옷을 입고 있듯이 이들은 신약이 온 줄도 모르고 구약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작은 약속에 매여서 더 큰 약속을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가 약속의 자녀입니다.
이 땅에 있는 약속의 자녀들이여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는 날이 오기를 기도합시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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