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르시는 하나님(출 3 : 1-12)

  • 잡초 잡초
  • 359
  • 0

첨부 1


부르시는 하나님(출 3 : 1-12)
천병옥목사


하나님의 부르심은 크게 두 종류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는 구원을 위한 부르
심입니다. 이 부르심에 대해서 칼빈주의 신학은 효율적 부르심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들만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
는 사역을 위한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은 주님의 일을 맡기시기 위해서 부르시는 부름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에는 『부르시는 하나님』이 증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호렙산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부르시고 계신 것입니
다. 이 부르심은 사역을 위한 부르심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르심은 모세의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는 부르심이었습니다. 이 부르심을 통해서 모세는 대역전 드라
마와도 같은 승리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께 한가지 질문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것은 특별히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부르실 때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사람을 부르시느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사람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사역을 맡기시는 것일까요?


1.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자를 부르십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입니다.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저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 있었
습니다.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무리를 맡아서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양들을 이
끌고 광야 이 편에서 광야 저 편으로 인도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마침내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서 계셨습니
다. 떨기나무는 마치 불이 붙어 타는 듯 보였습니다. 떨기나무 앞을 무심코 지나가던 모세
가 너무나 이상해서 다시 떨기나무 앞으로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모세가 어떤 사람이었던가 하는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
니다. 모세는 갈대 상자에 버려진 후에 40년 동안 바로의 궁에서 살았던 공주의 아들이었습
니다. 그는 공주의 아들로서 권위의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공주의 상속자로서 부와 명예
와 권력의 자리가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세는 선택의 길에 놓이게 된 것
입니다. 모세가 40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모세 앞에 한 사건이 발생되었습니다. 출
2 : 11이하 말씀을 보면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 번은 그네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
을 보더니 어떤 애굽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로 살
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니라'란 구절이 나옵니다. 참으로
엉뚱한 일이 발생된 것입니다. 모세는 어느 날 우연히 히브리인들이 애굽의 종이 되어 고역
하는 현장을 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어떤 애굽 사람이 모세의 동족인 히브리인을 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것을 바라본 모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애굽사람을 쳐죽이게 된 것
입니다. 이 사건은 은밀하게 진행되었지만 곧 알려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바로 왕이 모세를 가만히 놔 둘 리가 있겠습니까? 바로 왕은 모세를 죽이려고 찾기 시작
했습니다. 모세는 그 바로를 피해서 광야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는 이 광야에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쓰시려고 부르시기 전에
먼저 광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만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에
게도 광야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쓰임 받기 전에 광야에 있었습니다. 사
울 왕을 피하여 광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엘리야에게도 광야가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갈
멜산에서 850대 1의 놀라운 승리를 거둔 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엘리야도 이세벨이 자신
을 죽이려고 했을 때 로뎀나무 아래서 나약해진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 나약한 엘리야
를 하나님께서는 광야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사도된 바울에게도 광야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바울을 곧장 광야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
울을 크게 사용하시려고 먼저 광야를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바울에게 이 광야가 없었
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초대교회사에 길이 빛나는 바울의 놀라운 사역은 아마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기 전 예수
님은 광야에 서 계셨습니다.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 후에 주님의
사역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가 과연 어떤 곳이겠습니까? 그곳은 연단의 장소
입니다. 그곳은 준비의 장소입니다. 신학자 제이비 버킹엄은 자신의 <광야로 통하는 길>이
라는 책에서 이렇게 광야를 정리해주었습니다. "광야는 정결하게 하는 곳, 준비시키는 곳으
로 남아 있다. 그 곳은 이 세상의 떠들썩한 소리들과 조용하고 부드러운 하나님이 음성을
구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광야로 인도하시고자 했을
때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즉시 광야를 선택한 것입니다. 공주의 아들로 살아남고자 변명하
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길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후에 반드시 하나님의 상급이 따를 것을 소망했기 때문입
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크게 쓰시려고 부르시기 전에 먼저 광야에서 준
비시키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준비가 끝나야 비로소 하나님은 사용하시고
자 부르시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는 자로 부르심을 받기 원하신
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먼저 우리는 모세와 같이 결단하는 선택을 해야할 것입니다.
공주의 아들로 있을 것인가? 아니면 광야로 나갈 것인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
입니다. 광야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광야에서 남
의 양을 치면서 보낸 세월은 결코 허송세월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역을 준비하
기 위한 준비기간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광야가 모세를 준비시켜준 것
입니다. 모세가 변해도 너무나 많이 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더 이상 자신의 힘,
자신의 지혜를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데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지혜만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
님의 종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야, 모세
야'하고 불러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의 광야'를 만
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준비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이상 자신의 힘, 자신의 지혜
를 의지하지 않는 자로 준비되어야만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지혜를 공급받고
자 매달리는 자로 준비되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부족됨이 없을 때 하나
님은 반드시 불러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종으로서 부족됨이 없을 때 하나님은 반드
시 불러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을 한 번 되돌아 보십시다. 지금
이 시간 어떤 광야를 지나가고 계십니까? 얼마나 오랫동안 그 광야에 서 계셨습니까? 지금
성도님이 서 계신 그 광야 끝이 바라다 보이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삭막하고 공허한 광야 끝에서 우리를 불러 주실 굳게 믿으십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는 준비의 자리입니다. 광야는 아픔이고 고통의 자리입니다. 그
러나 우리는 그 광야를 통과하면서 준비되어져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마음의 자세가
준비되어져야 합니다. 행동의 바른 태도가 준비되어져야 합니다. 이제는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시는 믿음으로 준비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부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 11절 말씀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쓰시고자 부르셨을 때 모
세의 자세가 지금 어떤 것입니까? 모세가 변해도 너무나 많이 변해 버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제 40년 전의 모세가 아닙니다. 모세는 자신의 40년 광야를 통해서 몰
라보게 변해버린 것입니다. 40년 전 모세의 태도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모세는 공주의 아들
로서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속적 부와 명예와 권세가 모두 모세의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모세는 젊고 당당했습니다.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혈기왕성했던 것입니다. 자
기 동족인 히브리인을 학대하던 애굽사람을 거침없이 쳐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
의 힘, 자신의 지혜로 동족인 이스라엘을 인도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행 7;25말씀에 나
오는 스테반의 설교를 보면, 스테반은 모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 형제들
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 무슨 말씀입니까? 40년 전 모세의 자세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교만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동족을 괴롭히는 애굽인을 쳐죽인 사건에 대해 엉뚱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 사실을 본 동족들이 하나님께서 모세의 손을 빌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이라고 깨닫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40년 광야를 지난 지
금 모세의 자세가 어떤 것입니까? 모세의 자세는 '내가 누구관대'의 자세입니다. 다시 말하
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의 자세인 것입니다. 모세의 말은 옳습니다. 광야 40년을 통해
서 모세는 자신에 대해 똑바로 깨달았던 것입니다. 모세는 정말 '나 자신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다'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동족을 약
속의 땅으로 인도한다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지혜로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것은 모세가 바로 이와같이 자신이
부족한 인간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세는 자신만만하고 혈기
왕성한 차고 넘치는 그런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나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것
을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는 인간!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간 모세를 찾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세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누구관
대'하는 겸손한 그 모세를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분명합니
다. 그리고 아주 짧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정녕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해주셨던 것입
니다. 그러나 짧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모세가 알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함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붙들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위해 부르실 때 과연 어떤 사람을 부르실 까요? 그것은 겸
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실 때 어떤 사람과 함께 해 주실까요? 그것도 겸손
한 사람입니다. 여호수아 1장 사건입니다. 모세가 모압 땅에서 120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
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인도할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누군
가가 모세를 대신해서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민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가야 하는 중차
대한 사명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수 1:2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의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부르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
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갑자기 하나님으로부터 큰 사명을 부여받은 여호수아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마도 여호수아 역시 모세처럼 두려워 떨었을 것입니다. 그런 자
세,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하나님의 앞에 선 것이 여호수아의 겸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는 이 겸손한 여호수아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하고 두려움에 떠는 여호수아에
게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수 1:9말씀입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
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
와 함께 하느니라' 이 말씀 가운데서 강하고 담대해질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
니까? 그것은 내 힘이 아닙니다. 내 의지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실 때 강하고 담대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자와 함께 해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와 함께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
신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은혜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
님과 함께가 곧 구원입니다. 하나님과 함께가 곧 생명인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 이 약속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요단을 건너갈 수 있었습니다. 200
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리고
전투, 아이 성 전투들을 거쳐서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에는 유명한 천정그림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라고 하는 유명한 그
림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이 천정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성당의 꼭대기에 밧줄을 매고 거기에
매달려 이 그림을 그려야만 했습니다. 대롱대롱 높은 천장에 매달려 그림을 그려야만 했습
니다. 잘못 실수하여 떨어지게 되면 큰일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밧줄이 좌우로
흔들릴 때마다 얼마나 겁에 질렸겠습니까? 설상가상으로 미켈란젤로의 얼굴에는 자꾸만 천
정에서 그림 물감이 흘러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눈을 뜰 수조차 없었습니다.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마침내 천정그림을 완성해냈습니다. 그
것은 미켈란젤로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면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면 용기가 생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와 함께 해주십니
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승리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맡기실 때 결코 무관심하게 버려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고 말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겸손한 자세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웃들 앞에서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겸손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매우 겸손한 신앙인이었습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된 후 내각
을 구성할 때였습니다. 장관으로 지명된 사람들은 대부분 평소에 자신이 링컨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특별히 국무장관이 된 윌리엄 스워드는 자신
이 꼭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다 저런 무식한 링컨
에게 대통령 자리를 빼앗겼는가 하고 분노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교만했던 것입니
다. 그러나 링컨은 이런 장관들의 태도에 결코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더욱 더 겸손한 자세
로 국무를 수행해 나갔던 것입니다. 대통령인 링컨의 좌우명은 수 1: 9 말씀이었습니다. 링
컨은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해 주신다고 하신 그 약속을 믿고 흔들리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모든 일을 처리해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링컨은 훌륭하게 국무를 수행해 나갔습니다. 이
링컨의 겸손과 지도력은 마침내 모든 장관들의 충성을 맹세받을 수 있게 해주었던 것입니
다. 모세는 '내가 누구관대'의 자세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겸손한 자세를 간직한 사람이
었던 것입니다. 이 모세를 하나님께서는 부르셨던 것입니다. 모세와 같이 겸손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겸손한 신앙인의 자세를 가짐으로 승리하는 성도님들 되실 줄 믿습니
다. 이제는 겸손한 신앙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온전히 이뤄 드림으로 승리하는 모든 성도님
들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양을 맡길 수 있는 자를 부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 1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너
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
께서 모세를 부르신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맡기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약속의 땅까지 인도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하필 모세에게 하나님의 백성을 맡기셔야겠다고 생각하셨을까요?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양들을 맡을 수 있을 만큼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모
세가 하나님의 양들을 맡을 수 있을 만큼 겸손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제 자신이 만난
그 미디안 광야의 끝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는 모세에게 아픔의 자
리였습니다. 고통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광야는 그 아픔으로 모세를 준비시켜주었습니다.
그 고통으로 겸손을 배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만약 모세에게 이 광야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모세는 하나님의 양들을 맡을 수 있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지 못했을지
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을 위해서 우
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런데 특별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양을 맡을 자로 부르시고 그들에게 요청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먼저 거
룩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5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
라 너의 설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우선해서
자신이 부르신 자들에게 거룩을 요청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요청인 것입니다. 그러면 거룩이 과연 무엇일까요? 거룩은 본래 하나님의 성품을 말합니다.
곧 정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양을 맡길 자들에게 이 거룩을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
다. 왜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자들에게 이 거룩을 요청하고 계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거룩이 없이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양들
을 맡은 자들이 그 무엇보다도 지켜야 할 것은 거룩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양들을 맡을
자들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경외입니다. 6절에 보면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
가 하나님 뵙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란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모세의 자세
는 과연 어떤 것이었습니까?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는 자세였습니다.' 하나님 뵙기를
두려워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경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
즘 세상이 왜 이렇게 소란하고 무질서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고도 얼마든지 의지할 곳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의 양들을 맡길 자로 부르시고 그들에게 요청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는 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맡기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
르시는데 그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면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든
것은 무효가 되고 말 것입니다. 모든 것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서 '모세야, 모세야' 부르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고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모세에게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끝까지 인도할 중차대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지도자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
실 때 준비된 자를 부르십니다. 겸손한 자를 부르십니다. 자신의 양을 맡길 수 있을만한 자
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양들을 맡길 수 있을 만
큼 준비된 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양들을 맡길 수 있을 만큼 겸손한 자를 찾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준비되고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그 해답은 바
로 광야입니다. 이 광야는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필요 충분조건이 되어줄 것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일을 맡아야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야 될 필수의 과정입니다. 이 광야가 없이
는 준비될 수 없습니다. 이 광야가 없이는 결코 겸손해질 수도 없습니다. 이제는 광야를 통
해서 준비되고 겸손해지심으로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고 승리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
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