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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1)(마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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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1)(마6:9-13) 

마6:9-1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중세 유럽에 있던 어떤 수도원의 기도실 벽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너의 삶이 가난하더라도 너는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그 글의 제목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너는 나를 주라고 부르면서도, 나를 주인으로 모시지 않았고,
너는 나를 진리라고 말하면서도, 내게 배우지 않았고,
너는 나를 빛이라고 하면서도, 나를 바라보지 않았고,
너는 나를 길이라고 하면서도, 나를 따라오지 않았고,
너는 나를 능력이라고 하면서도, 나를 의지하지 않았고,
너는 나를 응답이라고 하면서도, 내게 기도하지 않았느니라.
그러니 너의 삶이 가난하더라도 너는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우리에게 기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글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은 불과 3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매우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기도에 힘쓰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벽 오히려 미명에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그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저녁에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는 또 다시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셨고, 또 기도로서 하루를 마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중요한 일을 앞에 두시고서는 언제나 먼저 기도로서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도 먼저 광야로 가셔서 40일을 금식하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택하여 세우시기 전에도 산으로 가셔서 밤이 맟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도 먼저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든지 흘러내리는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처럼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상의 일곱 마디 가운데 세 마디가 기도였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십자가상의 첫 마디는 기도였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 속에서 시22편 첫 절을 인용하시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십자가상의 마지막 마디도 역시 기도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삶으로서 친히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인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그 길잡이가 되는 하나의 기도문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the Lord's Prayer, 곧 "주기도문"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the Disciples' Prayer, 곧 "제자들의 기도문"이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기도는 예수님이 하나님께 드리신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이 자신의 제자들인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괜한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관례대로 주기도문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른 기도는 하지 말고 이 기도만 하라고 주기도문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한 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쉽게 이해가 갈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눅11:2-4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기록된 주기도문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주기도문은 서로 간에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예컨대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에는 6개의 간구가 나옵니다. 반면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에는 네개 반의 간구가 있을 뿐입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기도는 하지 말고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만 해야 한다면, 두 개의 기도가 정확하게 같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주기도문에 나타난 방식대로, 그 정신에 따라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기도문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세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이 믿음의 그릇에 듬뿍 담겨져서 하나님께 드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루는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그때 예수님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며, 둘째는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니라. 바로 이 두 가지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 속에서도 위로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옆으로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맨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주기도문 안에는 모두 6개의 간구가 나옵니다. 그 가운데서 처음 나오는 3개의 간구가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적으로 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며, 하나님의 나라가 넓어지며, 하나님의 뜻이 든든히 세워지기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기도할 때, 잘못했던 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목적으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했습니다. 자기들이 영광을 받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시면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영국이 낳은 명장 가운데 찰스 조지 고든이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중국과 아프리카에서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그가 아프리카 수단에 총독으로 부임했을 때입니다. 그는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해서 그 자신이 직접 군인들을 이끌고 싸움터로 갔습니다.

그런데 고든 장군이 기거하는 막사 앞에는 매일 아침 한 시간씩 하얀 손수건 한 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병사들은 그 손수건이 걸려 있을 때에는 특별한 용무가 아닌 한, 그의 막사 안으로 들어가지를 않았습니다. 병사들은 그 손수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든 장군은 매일 아침 하나님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에는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시간에 그의 막사 앞에 하얀 손수건을 걸어놓았던 것입니다.

영국 정부는 그의 혁혁한 전공을 치하하기 위해서, 기념비를 제작하며 동상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반대로 만들지를 못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그 대신 그에게 작위를 주고 포상금을 지급하겠다고 제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고든 장군은 그것마저 사양했습니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그를 겨우 설득해서, 자그마한 금메달에 그의 업적을 새겨 넣게 그것 하나만 그에게 수여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유족들은 그의 유품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보여야 할 금메달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그 금메달은 그가 애지중지하던 것이기에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그 금메달의 행방을 찾아보았습니다. 나중에 가슴 뭉클한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해인가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금메달을 녹여서 팔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돈으로 양식을 사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던 것입니다. 그의 일기장에는 그때의 일을 이렇게 적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동안 내가 받은 선물 가운데 가장 아끼던 것을 오늘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바쳤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도도, 우리의 삶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마6:33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0:31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위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의 옆으로는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십계명의 근본정신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제1계명에서 제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5계명에서 마지막 제10계명까지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같은 정신으로 드려져야 마땅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며, 옆으로는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겨져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나 한 사람만을 위한 개인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더불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는 "나"라는 단어는 한 번도 쓰인 적이 없습니다. 모두가 "우리"라는 복수 대명사로 쓰여있을 뿐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이처럼 모든 경우에 "우리"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할 때에 나 개인만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를 드리지 말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더불어 생각하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 옛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이 또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도에는 이웃에 대한 배려가 전연 없습니다. 그들의 기도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전연 담기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저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면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에 급급했습니다.
그 단적인 실례가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어느 바리새인의 기도였습니다. 그는 성전에 올라가 따로 서서 자신을 뽐내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바리새인은 기도 중에 자기를 높이기 위해서 세리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서슴없이 낮추어버렸습니다. 그만큼 바리새인의 기도는 자기 중심적이요, 이기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만을 아는 이기적인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들은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우리 곁에 있는 이웃을 생각하면서 그들에 대한 사랑을 담아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타고 가던 배가 그만 심한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다들 파도에 떠내려 가버리고 단 두 사람만 간신히 살아남았습니다. 그들은 널빤지를 잡고 표류하다가 가까스로 어떤 자그마한 섬에 이르렀습니다. 그 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습니다.
그들은 함께 한 자리에 있는 것보다는 서로 떨어져서 지나가는 배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동쪽 끝으로 가고, 다른 한 사람은 서쪽 끝으로 갔습니다. 다행스럽게 두 사람 모두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다를 지켜보면서, 열심히 기도하자고 서로 격려했습니다.
동쪽편으로 간 사람은 먼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이 무인도에서 굶주려 죽지 않도록 저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난 뒤에 그는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어떤 나무에 과일들이 풍성하게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열매들로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배가 부르니까 그는 사람이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배필이 될 여자 한 사람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가 그 기도를 며칠 동안 드리고 났을 때, 불현듯 근처를 지나가던 어떤 배 한 척이 난파되었습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한 여인이 파도에 밀려 그가 있는 쪽으로 떠내려 왔습니다. 다행히 숨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그 여인을 극진히 보살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그 여인을 자기의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섬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배 한 척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몇 일 뒤에 배 한 척이 떠밀려 왔습니다. 딱 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작은 배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아내와 함께 그 배를 타고서 무인도를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의 친구는 어떻게 하고 너만 떠나려고 하느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기도해서 얻은 복이기에, 제게는 이 복을 누릴 수 있는 권한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를 크게 꾸짖는 소리가 다시금 들렸습니다.
"그런 소리 말아라! 네 친구의 기도가 없었다면 너는 아무런 축복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깜짝 놀라서 되물었습니다.
"아니, 그가 무슨 기도를 했기에 제가 누리는 축복이 그의 기도 덕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러자 이러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너의 기도가 모두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느니라."
물론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는 기도는 어떠한 기도입니까? 하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이기적인 기도, 자기만 아는 기도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이웃을 배려하면서, 이웃에 대한 사랑을 담아서 드리는 기도의 향기를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십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그저 나만을 위한 기도를 드리지 말고,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의 정신에 따라서 이웃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아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방인들은 기도할 때 중언부언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이방인들의 영향을 받아서 그저 길게 기도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말이 많으면 자기들의 기도에 더 큰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길면 길수록 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The longer, the better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도의 길이에 있지 않습니다. 기도는 때로는 길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짧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주일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아이가 대표기도를 하는데 좀 지나칠 정도로 길게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에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하소연을 하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 아이는 기도를 너무 오래해서 지루해 죽겠어요. 다음부터는 좀 짧게 기도하라고 일러주세요."
그러자 선생님은 지혜롭게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면서 기도하셨어요. 그런데 그 학생이 예수님보다도 더 오래 기도했나요?"
선생님의 지혜로운 답변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습니다. 또 한 번은 다른 아이가 반대로 아주 짧게 기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렇게 불평을 했습니다.
"선생님, 저 아이는 너무 짧게 기도해요. 기도가 시작하는 듯하더니 금방 끝나버렸어요."
선생님은 또 다시 예수님의 기도를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무엇이라고 기도했지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예수님은 단 한 마디로 기도하셨어요. 그런데 우리 친구의 기도가 예수님보다도 더 짧았나요?"
아이들은 역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때로는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큰 소리로 하느냐 작은 소리로 하느냐가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유창하게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떠듬거릴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서 기도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은 길지 않습니다. 헬라원어로 72단어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49단어입니다. 그저 천천히 암송해도 30초면 암송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더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시며, 우리의 기도에 따라서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이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 당시 헤롯 임금이 사도 야고보를 칼로 목베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기뻐하니까 이번에는 베드로를 잡았습니다. 내일이면 죽이려고 그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절박한 상황 속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베드로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베드로를 위해 천사를 보냈습니다. 천사는 감옥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빠져나왔습니다. 베드로는 마리아의 집으로 가서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때까지 성도들은 집안에서 베드로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서 로데라는 계집아이가 뛰어나왔습니다. 보니까 베드로가 밖에 서 있었습니다. 로데는 너무나도 반가워서 베드로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조차도 잊어버리고 집안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지금 베드로가 문 밖에 서 있습니다!"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너 미쳤구나?"
그러자 계집아이는 더 힘써 말했습니다.
"정말입니다! 지금 베드로가 문 밖에 서 있다니까요!"
그래도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네가 베드로의 천사를 보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기도를 하면서도 자기들의 기도가 그렇게 속히 응답되리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믿음도 없이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그들은 베드로가 문 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기도의 문제는 길이에, 성경 지식에, 내용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신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서 기도할 때, 우리가 지금까지 지은 죄가 어떠한 것이라도 하나님은 흰눈보다도 더 깨끗하게 씻어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보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나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고 나의 발걸음을 친히 앞서가시면서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막11:24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예수님은 믿음대로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누가 의인입니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사는 자, 믿음으로 구하는 자가 바로 의인입니다. 믿음으로 구할 때 우리의 기도에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지금 하나님이 내 곁에 찾아오셔서 내 기도에 귀를 기울여주시고,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주기도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기도의 정신을 세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또한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을 우리의 믿음에 듬뿍 담아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함으로서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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