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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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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성경:마26:36-46)예수께서 잡히시던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사 내이면 이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될 것을 아시고 마지막 기도를하시게 되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할 수 있기를 아버지께  구하시면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하옵소서,라고 하신 기도는 오늘 우리들의 신앙 중심에 크다란 메시지를던지고 있습니다.1.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왜 사는지를 안다는 것은 왜 죽는지를 안다는 말입니다.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로 이 세상의 조건을 걸고 답하는 사람들도 죽음이 닥치면 왜 죽어야 하는지를 그렇게 쉽사리 말하지 못합니다. 대개 그저 죽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성경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로마서 14장 8절에'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라고 합니다.예수께서는 이미 우리를 위해 속죄양으로 죽으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신앙과 기도의 생활을 온전히 가르치시기 위해 죽음을 놓고기도하셨습니다. 우리들의 기도가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므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해 죽을 것을 교훈하신 것이라 봅니다.물론 인성(人性)을 가지신 예수님의 정신적 고통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으며, 무죄(無罪)하신 분으로서 죽음의 고통을 맞게 되실 때 기도하시지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죄로 물든 사람들은 어떤 때는 용기 있게 죽을수 있는 정서가 있겠지만 무죄하신  하나님의 아들은 악성(惡性)이 없으므로고통스러우실 것이 분명합니다.모세의 기도에서(출32:32), 환난 중에 욥의 찬송에서(욥1:21),바울의 충성심의 고백에서(행20:24)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죽을 수 있음을 배웁니다.2. 고난보다 아버지의 뜻이 더 중요하기를 기도---------------------------------------------신앙이 이 세상살이를 위한  방법이라면  더 이상 진리를 운운할 이유가없습니다. 의지대로 살든 종교를 가지든 안락하고 소위 복되기만 한다면그만입니다.그러나 성경은 인생의 삶과 죽음 그리고 사후(死後)에 일어날 일들을 두고 반드시 주장되어져야 하는 것은  창조주이시며 만사를 섭리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앞서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이 지켜질 때 오히려  복이된다는 것입니다.마태복음 6장 33절에'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시며 이를 믿고 살 때,신앙적인 삶이라 합니다.예수님으로서는 육신을 가지신 분이기에  그 죽음의 잔이 지나기를 원하시지만 주님은 참된 승리와  축복의 역사를 잘  아시는 분으로서 하나님아버지의 뜻이 우선적으로 실행되어질 것을 소원하셨습니다.잠언 16장 25절에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사람은 장래 일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른 이해입니다.점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무지한 인간은 통계와 과학적 경험을 믿고 자부심으로 조심없이 살다가 너무 많은 착오와  생명과 재산의 손실을 보았습니다.주님은결코 하나님께 두려움 때문이나  궁상을 떠는 어떤 미신적인 종교인들의 고백이 아니라 우리에게 참된 승리를 가르치신 분으로 본인도 최후 승리자가 되시기 위해 아버지의 뜻대로 죽음을 받으시겠다고  고백하신 것입니다.아들을 명령대로 제물로 드린 아브라함의 신앙행위가 그러했고(창12:),순교자들의 중심이 모두 그러했습니다. 죽음으로 증거되고 고난 중에 인내로 승리하되 육신으로는  편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하고드려지는 삶이 참된 신앙이라는 것입니다.3. 존재와 죽음의 이유가 변치 않는 확신의 삶--------------------------------------------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선한 뜻을  따르거나 정한 자신의 목표대로 의지를 다하지 않고 현실과 기회주의자가 되어서 본래 모습을 잃어버리는 일로 삶의 이유가 태만하고 말았습니다.  왜 사는가? 죽음에 갈 때까지 무엇이 되어 살 것인가? 이런 사명감으로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이유 없이사는 것은 불행 중에도 더욱 비참한 일입니다.뜻 없이 먹고 죽는 것을 잠시 반성해보면 얼마나  멍청한 인생이며 필요없는 지구촌의 인간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사회에 무엇이 되어서 살아야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사는 것은 인구 수효에 끼어 있을 뿐 저 굴러다니는 돌멩이 보다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주님은 기도를 피땀 흘려 하시면서 세 번 동일하게 꼭 같은 목표로 기도의 그 뜻을 고백하셨습니다.누가복음 22장 44절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고 했습니다.본문 44절에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라고 했습니다.우리는 기도가 잘 바뀌기도 합니다. 고통스러운 일일수록 그러합니다.아예 처음부터 우회하려는 의도로 기도합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이 처음부터 단호히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는 생명을 건 그 겟세마네 기도를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많은 자들이 기복주의  신앙심으로 하나님을 기회로 삼으려고 하고 고난을 통하여 주실 축복은 고려하지 않고 너무 근시안적인 기도에 힘씁니다.히브리서 13장 8절에'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기도의 중심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변치  않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경적인 뜻과 그 사상적인 의미로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하고 죽음도 맞이할수 있을 때,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의 주님을 닮아 부활을 약속 받을 수있는 멋지고 죽을 만한 가치의 죽음을 죽을 수 있을 것입니다.이기지적이고 매우 세속주의적  가치에 휘말려  살아가는 현대생활 속에기독교 신앙인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로  돌아가신 에수님이 기도하신 내용을 통해,우리들도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시고 축복과 위대한 승리를 주실 약속을 따라 죽음이라도 복종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서 불확실한 이 시대를 의지하지 말고  생명의 하나님을 의지하시기를 진심으로기원합니다.강목사 홈페이지 http://nulserom.w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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