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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을 이루는 근심 / 고후 7: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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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이루는 근심 
고후 7:8-11 


오늘은『구원을 이루는 근심』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 10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여기 두 가지 근심이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근심입니다.  둘째는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근심이란 애통을 말합니다.  슬퍼함을 말합니다.  걱정함을 말합니다. 

  먼저 세상근심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여 오는 근심을 말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세상근심의 종류는 여러 가지입니다. 

  첫째, 기우(杞憂)가 있습니다.  쓸데없는 걱정을 말합니다.  옛날 중국 기나라에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침식을 잊고 근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기우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기나라 사람의 걱정’이라는 뜻입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사람입니다. 

  둘째,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근심하며 기분 나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만의 징조입니다.  내가 무엇이기에 세상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되어야 합니까?  착각입니다.  내 마음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셋째, 자기 이름을 꼭 내세우려는 사람의 근심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꼭 자기 이름이 들어가야 만족합니다.  그런 사람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가오리다’라는 찬송은 잘합니다. 

  넷째, 인생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여 근심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짚신 장사를 하는 아들과 나막신 장사를 하는 아들을 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날씨가 좋아도 울고 비가 와도 울었습니다.  이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웃사람이 물었습니다. 

  “할머니 왜 날마다 울면서 지내십니까?” 
  “이보게 내가 울지 않고 살 수 있는가? 날씨가 좋으면 나막신 장사하는 작은 아들의 장사가 안될 것이니 안타까워서 울고, 비가 오면 짚신 장사하는 큰아들의 짚신이 잘 팔리지 않을 것이니 울 수밖에 더 있는가?”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이웃사람이 말하기를
  “할머니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날씨가 좋으면 큰아들 짚신이 잘 팔릴 것이니 좋고, 비가 오면 작은 아들이 나막신이 잘 팔릴 것이니 좋구나’하고 생각하세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런 근심을 세상근심이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세상근심은 쓸데없는 근심입니다.  이익이 없습니다.  건강을 해칩니다.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열왕기상 21장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왕 아합이 사는 왕궁 근처에 나봇이란 사람이 포도원을 가지고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아합이 그 포도원을 탐내어 자기에게 팔 것을 원했지만 나봇은 조상이 물려준 유산을 함부로 처분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이 일로 아합은 음식도 먹지 못하면서 큰 근심을 했습니다.  한나라의 제왕이 무엇이 부족하여 백성의 포도원을 탐내다가 자기 뜻대로 안되니까 근심에 빠집니까?  결국 그의 아내 이세벨의 말을 듣고 거짓증인을 내세워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죄를 씌워 돌로 쳐죽였습니다.  세상 근심의 결과입니다.  탐욕이 살인까지 부른 것입니다.  이러한 아합의 가정을 하나님은 그만두시지 않았습니다.  아합이 죽은 후 그 시체에서 흘린 피를 개들이 핥았고 이세벨의 죽은 시체는 개들이 모두 먹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들 70명은 목베임을 당하여 죽었습니다. 

  세상근심은 이렇습니다.  나도 좋지 않고 남도 좋지 않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걱정에 매여 있습니까?  주 예수님께 모두 맡겨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해결되며 안식과 평화를 얻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둘째로,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첫째로,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께서는 성도들이 복을 받아 형통하며 건강하고 담대하게 세상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성도들이 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밝게 즐겁게 건강하게 성공하면서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이하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기뻐해야 합니까?  구원의 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 씻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죄 때문에 고생하고 고민하고 고통 당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쁜 것입니다.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하늘에 계신 구세주를 영원히 섬기리” 

  둘째로, 하나님의 뜻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까?  기쁨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복을 주셨으니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주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 복을 깨닫지 못한 수많은 우리의 동족이 있습니다.  청소년이 있습니다.  그들 가슴에는 복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방황합니다.  물질이 참 기쁨을 주는 줄로 착각합니다.  찰나적인 기쁨을 찾아 범죄를 일으킵니다.  그러기에 인신매매범이 들끓습니다.  성폭행범이 날뜁니다.  경찰이나 검찰은 불철주야 이와 같은 범죄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절되지 않습니다.  경찰의 힘이나 검찰의 힘만으로는 안됩니다.  옛말에 ‘도둑 하나를 열 명의 경찰이 못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법으로 다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심령이 개조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거듭나야 합니다.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달라져야 합니다.  전 국민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겨야 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가 구원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회개는 내가 가는 길이 잘못되었을 때 가는 길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오는 것입니다.  그때 거듭납니다.  새로워집니다.  새로워진 우리가 가는 곳에 죄가 없어집니다.  그래야 사회가 밝아집니다. 

  성도 여러분!  날마다 신문이나 TV에 보도되는 엄청난 범죄현상을 보면서 어떠셨습니까?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면 그들에게도 급하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들에게 복음을 주어야 하는데■’하며 고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어떻게 하던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그래서 구원의 복을 주어야겠다는 구체적인 각오가 오늘 우리에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18세기 영국사회는 산업혁명으로 잘 살게 되자 엄청나게 타락했습니다.  범죄가 들끓었습니다.  방탕에 빠졌습니다.  그때 요한 웨슬레가 일어섰습니다.  복음을 들고 나섰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9명으로 시작한 가정예배 혹은 구역예배 같은 모임이 영국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으로 뜨거워진 그들은 부르짖었습니다.  영국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복음은 국가를 구원합니다.  복음은 사회를 구원합니다.  복음은 가정을 구원합니다.  복음은 인간을 구원합니다.  복음은 인간을 더 이상 죄 아래 머물러 있지 않도록 합니다.  복음뿐입니다.  예수뿐입니다.  교회뿐입니다.  교회로 모두 돌아와야 합니다.  이제 우리도 복음을 들고 나가 부르짖읍시다.  외칩시다.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근심입니다. 

  에스겔 3장 17절에 보면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하십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이 부패한 사회를 구원할 파숫꾼으로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세우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증거해서 믿으면 그는 구원을 받지만 전하지 않아서 멸망하면 그 멸망한 피 값을 파숫꾼인 너희에게서 찾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엄청난 경고입니까?  이 부패하고 죄악이 들끓는 사회를 보고 법률가, 정치가, 교육가, 실업가, 경제계, 종교계 등의 책임이라고 비판만 한다고 해결됩니까?  에스겔에게 주신 경고를 마음 깊이 새기고 하나님께서는 오늘 나를 파숫꾼으로 세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 보면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화(禍)란 저주받는다는 말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저주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해보셨습니까?  그러므로 혼자만 예수 믿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뿐 아닙니다.  로마서 9장에 보면 바울은 자기가 지옥에 가도 자기의 동족, 친척, 형제, 골육이 주님께 돌아오면 원하는 바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의 이 고백을 우리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주어야 할 날짜를, 시간을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일을 모릅니다.

  우리교회 성도 가운데 한 분은 어머니가 별세하시자 돌아가시기 전에 복음을 전하지 못함을 매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더라도 부모님을 모시고 빨리 복음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 분도 새집을 지은 후 어머니를 모시면서 복음을 전해야지 했는데 새집을 다 지어놓고 모시려 하자 어머니는 기다리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야고보서 4장 13절과 14절에서는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했습니다.  안개는 햇빛이 나면 없어집니다.  어느 사이 없어지는지도 모르게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복음전하는 것을 미루지 맙시다.  그냥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서 전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음부에 간 부자의 부르짖음을 영의 귀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세상살 때 왕이 입는 고급 옷을 입고 날마다 잔치를 벌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집 문 옆에는 가난한 거지 나사로가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부자도 가난한 거지도 모두 죽었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의 것입니다.  아무리 큰 부자라도 죽습니다.  좋은 약을 먹고 건강식을 하고 조심을 하면 좀더 오래 살런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죽음은 인간 모두의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와 불신자의 사후는 다릅니다.  아브라함 품속인 낙원과 음부로 갈라집니다.  부자는 음부에 갔습니다.  부자는 음부에서 부르짖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눅 16:24) 

  손가락 끝에 물 한방울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한 컵도 아니고 한 방울마저도 그리운 곳이 음부입니다.  “물좀 주세요” 이 부르짖음은 영영히 계속됩니다.  그래서 ‘영벌’이라 했습니다.  구치소에 들어가도 나올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은 그런 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급속히 복음을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죽지 않는 곳, 꺼지지 않는 불꽃 가운데 목이 말라 애타게 부르짖는 부자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불꽃 가운데서 땀을 흘리며 목 타하는 그의 부르짖음을 들읍시다.  내 가족, 형제, 부모님, 친구들 중에 음부에 갈 사람은 없습니까?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근심하십시다.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입니다.  찬송 269장을 봅니다.

  웬일인가 내 형제여 주 아니 믿다가
  죄 값으로 지옥형벌 너도 받겠구나
  웬일인가 내 형제여 마귀만 좇다가
  저 마귀들 지옥갈 때 너도 가겠구나
  웬일인가 내 형제여 재물만 취하다
  세상물건 불탈 때에 너도 타겠구나
  웬일인가 내 형제여 죄악에 매여서
  한없이 고생하는 것 참 못 보겠구나
  여보시오 내 동포여 주께로 오시오
  십자가에 못 박힌 주 너를 사랑하네.

  지옥에 보내서는 안될 사람을 한사람씩 정하십시오.  그 영혼을 그만두면 지옥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를 위하여 철저하게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철야, 금식기도 하십시오.  하나님께로 인도하십시오.  그래서 큰 구원의 복이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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