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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의 복음 / 눅 20: 2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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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복음 (누가복음 20: 27-40) 

오늘은 누가복음 20장 27절에서 40절까지 있는 말씀으로 『부활의 복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립니다. 36절에 보면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고 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부활절로 지키는 날입니다. 부활절은 성탄과 달라서 해마다 달라집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그때 쓰던 달력과 오늘 우리가 쓰는 달력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정월 달이 지금 3월 하순에서 4월 중순까지 그 어간에 늘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그들의 달력으로는 정월 십사일이 유월절이고 그 후에 일주일 동안 지키는 것을 무교절이라고 하는데 예수님이 바로 유월절 지나고 다음 주일날 부활 하셨습니다. 그러면 유월절이 오늘날 우리들의 달력으로는 언제 해당하는가 하면 춘분이 지나고 만월이 옵니다. 그 만월 때가 거의 유월절에 해당하는 절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활절은 춘분이 지나고 만월이 된 다음에 오는 주일을 부활절로 정하고 지킵니다. 부활절의 유래에 대한 것은 이만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죽었다가 죽음이 끝나고 죽은 후에 다시 사는 이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부활은 왜 우리에게 복음이 되는가, 또 부활상태는 어떤가? 등등 본문이 가르쳐 주는 대로 상고해 보려고 합니다.

I. 생명의 부활(27-33절)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들이 "7형제가 모두 취했던 여인이 부활 때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분명히 부활의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첫째로 부활의 시기가 중요한 것입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부활의 시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한 뒤에는 아내 되는 사람이 임신을 합니다. 태중에 아기를 잉태하고 나면 낳을 때가 있습니다. 열 달만에 반드시 출산을 합니다. 낳지 못한다면 큰일입니다. 엄마가 죽거나 아기가 죽거나 혹은 함께 죽게 됩니다. 정상적으로 잉태를 했으면 반드시 출생할 때가 있습니다. 또 사람이 출생할 때가 있으면 반드시 죽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기에 전도자는 만사에 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죽었다가 부활하는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 때나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부활의 때를 물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이미 다 아시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부활하는 때 와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부활하는 때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이 지금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있을 곳을 예비하고 준비가 끝나게 되면 공중으로 재림을 합니다. 공중으로 재림하게 되면 공중 권세를 잡고 있던 마귀가 지상으로 쫓겨 내려옵니다. 이 지상으로 마귀가 쫓겨 내려 올 때에는 자기네들이 운명이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발악을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마귀가 쫓겨 내려오자마자 천하 각국을 선동해서 세상 끝나는 전쟁을 일으키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공중 재림할 때는 신자는 그 무덤에서 살아나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살아 남아 있는 신자들도 모두 변화를 받아서 들림을 받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더불어 어린 양 혼인 잔치를 합니다. 이 때 무덤에서 부활하는 것을 첫째 부활, 생명의 부활입니다(요 5:29). 이것은 예수를 잘 믿은 사람만이 참여하는 부활입니다. 예수 안 믿은 사람들은 7년 대환란을 다 겪어야 합니다. 그런 동안에 7년 동안 혼인잔치가 끝나고 주님께서 지상으로 재림합니다. 그리고 마귀를 잡아 옥에 가둡니다. 그러면 주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천년 시대가 오는 데 이것을 천년 왕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님 재림할 때까지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7년 대환란을 다 겪으면서 기도하고 거기서 회개하고 믿게 됩니다. 그래서 천년 왕국 시대에 유대인들이 다 참여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사람들을 위한 천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천년 시대가 끝나게 되면 백 보좌를 베풀고 심판을 하는데 그 때에 두 번째로 예수 안 믿던 사람들이 무덤에서 부활을 합니다. 이것을 두 번째 부활 혹은 심판의 부활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로 부활한 사람들이 보좌 앞으로 가서 전부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갑니다. 이 지옥의 고통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어떤 고통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믿되 뜨겁게 잘 믿고 바로 믿어야 됩니다. 그러다가 살아 남았을 때 들림을 받아야 하고 그렇지 않고 우리가 죽었을 때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첫째 부활, 생명의 부활에 빠짐없이 참여해야 합니다. 만일에 껄렁 껄렁 믿다가 다 떨어지고 둘째 부활에 참여하는 날 여러분들의 운명은 영원히 지옥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첫째 부활, 둘째 부활하는 때가 있다는 것을 아시고 첫째 부활에 합류하시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II. 영화로운 부활(34-36절)

그 다음 부활의 상태가 어떠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 현재의 이 몸으로 죽고 이 몸으로 다시 산다고 하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다 늙어 죽어 가는 할머니가 죽었는데 그런 할머니로 또 살아난다면 그런 부활은 의미가 없습니다. 또 암에 걸려서 죽는 고통을 당하다가 죽은 사람이 그 암 덩어리로 다시 살아나면 뭐 하겠습니까? 다리 없는 사람이 그 모습으로 살아나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또 다시 살아난 후에도 병들어 죽는다면 차라리 부활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 때에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본문의 가르침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어서 이런 이야기를 꾸며서 물었던 것입니다. "선생님! 우리 동네에는 한 집안에 칠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형이 장가를 들었는데 아들도 딸도 없이 죽어서 둘째가 또 그 형수한테 장가를 들었습니다. 다음 일곱째까지 그 여자에게 장가를 들었는데 부활해 다시 산다고 하면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까?" 여러분! 만일 우리나라에 이런 일이 있으면 매 맞아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 나라는 율법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형이 자식을 못 낳고 죽으면 동생이 그 형수에게 장가들어 대를 물려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동생이 낳았어도 첫째 아들은 형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 낳는 자식이 자기 자녀가 됩니다. 어쨌든 이것은 예수님을 골탕먹이기 위해 그들이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시집도 안 가고 장가도 안 가는 천사와 같다" 고 하여 가족 관계가 없어짐을 밝혔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내 남편, 내 자식 하면서 살아도 하늘 나라에 가면 가족 관계가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족보도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부활할 때 어떤 몸으로 부활하는가 하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죽지 않고 병들지 않습니다. 자도 되고 안 자도 됩니다.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고, 사람을 알아 볼 수도 있고 몰라 볼 수도 있습니다. 꼭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바로 그 몸으로 우리가 부활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런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에게 다 보여 주신 것입니다. 너희도 죽은 후에는 이렇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느니라 는 뜻입니다. 이것을 본문에서는 천사와 동등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절대로 다시 죽지 않는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합니다. 제자들이 부활의 주를 만나 보고서 평안을 얻고 담력을 가지고 목숨을 내놓지 않습니까. '이제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죽음은 겁낼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내놓고 충성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까닭에 우리는 병들고 늙어 죽어지는 이런 몸으로 살다가 부활할 때에는 진정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함을 얻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은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여러분도 목숨을 다 해서 하나님과 그 나라를 먼저 구하고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영화로운 몸의 부활이 우리에게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III. 영생의 부활(37-40절)

세 번째로 부활에는 영광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한다고 하여도 다시 죽는다면 부활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부활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37-38절에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보였듯이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죽은 지 2천 년이 되었지만 엄연히 살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자녀는 다시 죽을 수도 없고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닙니다. 믿음의 족장들이 영생하듯 부활한 성도는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즉 영생의 부활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활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영생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어 영생한다고 하는 것은 큰 영광이요, 축복이라는 말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서 모든 것을 물려주듯이 우리도 하나님 아들 딸로서 후사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물려받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모든 권세를 아울러 주신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부활하게 되면 첫째, 영생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생하는 사람만이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하늘 나라에서만 영생을 하게 됩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 받듯이 하늘 나라의 상급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자녀의 권세입니다. 즉 영생입니다. 하나님 아들의 권세는 세상의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딸 된 것을 근본적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동안에 하나님을 모르고 산 분이 계시면 이 하나님을 오늘 꼭 만나시고 이 하나님을 모시고 아버지로 섬기며 하나님 아들 딸의 권세로 영생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부활이 복음이 되는 이유는 영생의 부활이요, 영화로운 부활이요, 영원히 사는 영생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종교가 참 종교요, 부활의 복음이 참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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