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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듭남의 비밀 / 요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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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거듭남의 비밀
본 문 : 요 3:1~8
설교 : 박봉수 목사


  미국의 정가에서는 뜻 밖에도 “거듭난다”(Born Again)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찍이 지미 카터 대통령이 자신을 "거듭난 그리스도인"(Born Again Christian)이라고 소개한 것이 효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닉슨 대통령의 특별 보좌관을 지냈던 찰스 콜슨이라는 사람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복역하다가 신앙적 체험을 했는데 이것을 기초로 자서전을 펴냈습니다. 그 자서전의 이름을 “거듭남”(Born Again)이라고 했고, 이것이 베스트셀러가 됐고, 영화로 만들어진 후에 보다 널리 쓰여 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현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도 나이 40에 거듭났다고 자신의 신앙적 체험을 말함으로써 이제 유행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이 거듭난다는 말이 이렇게 유행처럼 사용되면서 그 뜻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여기저기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치계가 거듭나야 한다”, “우리 교육이 거듭나야 한다”, 심지어 “불교계가 거듭나야 한다”, “오늘 하루도 거듭나는 생활을 합시다!” 등등. 거듭남이라는 용어가 오용되고 또 남용되고 있어서 자칫 그 본래의 뜻을 잃어버리기가 쉽습니다.

  거듭남이란 생각이나 의식이 바뀐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의식이 전환되고 가치관이 변화된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공산주의를 신봉하던 사람이 회의를 느끼고, 전향서를 쓰고 공산주의에서 돌아선 것 이것을 거듭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거듭남이란 태도나 행동이 바뀐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조직 폭력배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정말 못된 행동을 일삼던 사람이 그야말로 개과천선해서 착한 행동을 하게 된 것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거듭남이란 제도 개혁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나 제도를 혁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거듭남의 외형적인 일부분으로 드러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전과는 생각과 의식이 달라집니다. 거듭난 사람은 태도와 행동도 달라집니다. 그리고 거듭난 사람이 몸을 담고 있는 곳의 제도나 관행은 새롭게 바뀌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거듭남의 본질이 아닙니다. 다만 결과로 드러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그러면 거듭남이란 무엇일까요?


거듭남

  거듭남이란 말을 최초로 사용하신 분은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거듭남이란 말이 최초로 우리에게 소개된 곳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러니까 우리 주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선포하셨고, 그 내용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이란 무슨 뜻일까요?


1.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용된 거듭남이란 말은 헬라어 원어로는 겐나오 아노텐(gennavw a[nwqen)입니다. 여기서 겐나오(gennavw)는 ‘태어나다’라는 뜻이고, 아노텐(a[nwqen)은 ‘다시’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거듭남이란 글자 그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미 태어나 잘 살고 있는데 또 어떻게 다시 태어난다는 말입니까? 본문을 보면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던 니고데모조차도 이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을 뜻하느냐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다시 태어난다고 말씀하신 뜻이 무엇일까요? 이것을 이해하려면 태초의 인간 창조 사건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창 2:7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창조 당시부터 흙의 요소인 육과 생기의 요소인 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흙에서 온 우리의 육위에 하나님의 생기로부터 온 영 부어져 온전한 인간 생령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하여 그 벌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육과 영이 동시에 함께 죽은 것이 아닙니다. 먼저 그 영이 죽어 하나님과의 교통함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육은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점점 병들고 약해지고 그러다가 930년이 지난 뒤에 그 육마저도 죽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은 어떠냐는 것입니다. 영이 죽은 아담 하와의 후손들은 이미 영이 죽은 채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시 51:5를 보면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실을 엡 2:1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러니까 우리는 죄 중에 태어났는데 그 영은 죽은 채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인생들은 그 영이 죽은 채로 태어나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과 온전한 교통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그 영이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첫 번째 출생이 육의 출생이었다면, 두 번째 그 영이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들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죽은 영이 다시 태어나 온전한 기능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진정한 인간 생령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

  앞에서 살핀 것처럼 거듭남이란 말은 헬라어 원어로는 겐나오 아노텐(gennavw a[nwqen)입니다. 여기서 겐나오(gennavw)는 ‘태어나다’라는 뜻이고, 아노텐(a[nwqen)은 ‘다시’라는 말 외에 “위로부터라”는 뜻이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하늘의 일과 땅의 일”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13절에 “하늘에서 내려온 자 하늘에 올라 간 자”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고 31을 보면 “위로부터 오시는 이와 땅에서 난 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거듭남이란 뜻은 다시 태어나되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뜻을 갖습니다.

  우리가 모태로부터 태어난 것은 아래로부터 태어난 것입니다. 즉 땅의 속성인 육만 살아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31절에 “땅에서 난 이”라고 했고, “땅에 속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날 때는 위로부터 태어납니다. 위의 속성인 영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듭나면 족보 자체가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어느 가문 출신이라고 그 족보가 붙어 다니지만 이제는 족보가 저 하늘가문으로 바뀝니다. 뿐만 아니라 호적도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호적은 이 땅에 있었지만 이제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저 하늘의 생명록의 그 이름이 기록되게 됩니다.

  그리고 아래서 난 이들은 땅의 속성만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태어난 사람들은 땅의 속성 뿐 아니라 저 하늘의 속성도 가집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그 육이 죽으면 그 영은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게 됩니다. 아니 벌써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저 하나님 나라를 부분적으로 경험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3.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처음 태어날 때 사람들은 부모의 육으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여전히 육입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날 때는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9절에서 니고데모는 성령으로 난다는 사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성령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이 물음에 대해서 주님께서 11절 이하에서 답하셨습니다. 그 결론은 이것입니다. 하늘에서 온 인자가 다시 하늘로 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다른 보혜사가 올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뒤에 그 성령을 기다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 그대로 주님께서 승천하신 뒤에 오순절에 다른 보혜사인 성령이 각 심령 위에 강림하셨습니다. 성령이 각 심령에 부어지게 되면서 그들의 영이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마치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성령의 바람이 불자 거룩한 하나님의 군사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하시자 저들의 영이 살아나 거룩한 하나님의 군사들이 된 것입니다. 바로 온전한 인간 생령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지 않으면 육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이 부어져 우리 영이 살아나고 참된 인간 곧 생령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의 영이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번에는 아래로부터가 아니라 저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육으로가 아니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거듭난 삶

  거듭난 사람들은 그 삶 자체가 달라집니다. 그 영이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가 참된 인간 곧 생령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사람들의 삶의 모습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이런 것들입니다.


1. 하나님과 영적 교통함이 일어납니다.

  8절을 보면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바람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거듭난 사람들에게는 바람이 부는 것처럼 성령이 임하시고, 그 성령의 교통함 속에서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들 즉 성령으로 난 사람들은 육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교통함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거듭난 사람들에게는 육적인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영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특별히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안에 영이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영이 제 기능을 시작했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과 통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즘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특히 유행처럼 사용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코드가 맞는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노무현 대통령과 통하는 사람을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데서 시작된 말입니다. 그래서 노무현 정권에서는 자기와 코드가 맞는 사람들 주로 386세대의 개혁적인 인물들을 파격적으로 기용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자기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은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외면해 버립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한 마디로 하나님과 코드가 맞게 된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영적으로 통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어디서나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영적으로 통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3절을 보면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나라를 말합니다. 그리고 본다는 것은 “경험한다,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것을 경함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보다 적극적으로는 우리가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위로부터 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 위로부터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 나라를 체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일제 말에 독립군들은 꿈에도 소원이 일제 하에서 해방된 조국, 독립된 자유로운 조국을 보고 죽는 것이었습니다. 안중근, 유관순, 이봉창, 김좌진 등 수 많은 애국지사들 독립투사들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을 비롯한 또 많은 애국지사들은 조국이 광복이 된 것을 그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그리고 해방된 조국 건설에도 참여하여 큰 역할을 했습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역사를 목격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절절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구체적인 일들 속에 참여해서 중요한 역할들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납니다. 가정 안에서 일어납니다. 직장과 이 사회 안에서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구체적으로 체험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뿐 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섬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영생을 얻게 됩니다.

  15절을 보면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영생이란 영원한 생명을 뜻합니다. 지금까지 인생들이 누리던 생명은 죄로 인해서 죽고 소멸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영생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생명입니다.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생명이고 또한 죽음 저 너머로 이어지는 생명입니다.

  그렇습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다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처음 태어날 때 받은 생명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태어날 때 받은 생명은 죄의 대가로 소멸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생입니다.



  제가 자주 드는 비유입니다만 계란에는 무정란과 유정란이 있습니다. 무정란도 유정란도 그 자체는 아직 살아있는 세포니까 생명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유정란에는 무정란에는 없는 또 다른 생명의 씨가 들어있습니다. 그것이 부화의 과정을 거치면 생명체인 병아리가 되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들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장차 죽음과 심판의 과정을 거친 뒤에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 영생은 이미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믿음의 삶으로 나타납니다. 죄 없는 순결하고 깨끗한 삶으로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안에 영생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 영생을 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 뿐 아니라 장차 그 영생이 꽃피울 저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거듭남은 주님께서 성경을 통해 알려주신 비밀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만 알려주신 비밀입니다. 이 거듭남이야 말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축복입니다. 우리는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난 삶을 살아야 합니다.

  # 기도/

        거듭남의 비밀을 깨닫게 하옵소서.
        거듭나게 하옵소서.
        거듭난 삶을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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