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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 갈 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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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본문 : 갈라디아서 6:6-10 


옛날 한 선비 내외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선비는 글읽기를 좋아하여 늘 책을 읽었고 살림은 부인이 바느질로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선비의 아내는 부지런히 바느질을 했으나 삯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바느질감도 떨어져서 할 일이 없었습니다. 부인은 닥치는 대로 일을 했으나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은 공부하고 있는 남편에게 사정을 말했습니다. "여보, 작년에는 흉년이 들어서 땅 있는 사람들도 형편이 없어요. 이제는 바느질감도 없고 품을 팔 수도 없어요. 우리야 젊으니까 풀뿌리라도 캐 먹고 살겠지만 늙으신 어머니가 걱정입니다." 이를 듣고 남편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미안하오, 무능한 남편을 만나서 당신이 고생이 많구려." 그러자 아내는 남편을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사실 공부하는 당신에게는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늙으신 어머니 때문에..."

굶어서 기운도 없는 아내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던 선비는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어느덧 계절이 초가을에 접어들었고 논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마당에 서서 한참을 무엇인가 생각하던 선비는 낫을 꺼내들고 논으로 달려갔습니다. 물론 남의 논으로 간 것이지요. 그리고 그는 논둑에 서서 하늘을 보며 이렇게 하소연하였습니다.

"하나님, 저희 세 식구 입에 풀칠한 방법이 없어서 여기 왔습니다. 우리 젊은 내외야 풀뿌리인들 못 먹겠습니까? 그러나 늙으신 어머니 때문에 그럽니다. 이 논에서 벼를 베어다가 밥을 지어 드릴까 하는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한동안 잠자코 서 있던 선비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네 이놈, 안 된다. 안 돼! 남의 논에서 벼를 베겠다니 그게 선비로서 할 짓이냐?" 선비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는 말이었습니다. 선비는 고개를 숙이고 "그렇지요, 남이 피땀 흘려 지은 곡식을 도둑질하는 사람은 선비가 아니지요, 죽어도 도둑질은 못하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선비는 낫을 든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논에는 주인이 숨어 있었습니다. 선비는 논 한 귀퉁이에서 선비가 하는 것을 다 보았습니다. 그는 도둑이 오는 것을 보고 바짝 긴장하였는데 선비의 행동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논 주인은 스스로 부끄러워졌습니다. 동네에서 소문난 부자인 자기가 저렇게 훌륭한 선비를 돕지 않으면 누가 돕겠는가 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주인은 선비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놀라는 선비에게 모든 것을 들었다고 말하면서 선비를 돕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선비가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뒤를 보살펴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하십니다. 이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입니다. 이것은 변함 없는 질서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을 심어 좋은 것을 거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봉독한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실하신 하나님

본문은 하나님은 진실하시다 는 전제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진실에 의한 자연질서를 세우셨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게 하시고 팥 심은 데 팥 나게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거짓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심은 대로 거둔다고 말씀하십니다. 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는 말은 '착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착각은 자유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착각합니다. 착각이 때로는 편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착각을 주신 것은 착각이 한편으로는 허황한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세상을 살 수 있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착각이 우리를 용감하게 합니다. 착각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하여는 착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거짓이 통하지 않습니다. 거짓으로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다는 착각은 금물입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당할 분이 아니십니다. "만홀히 여긴다'는 뜻은 '조롱하다', '멸시하다'입니다. 하나님은 조롱당할 분이 아니요 멸시 당할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이 가지고 놀 수 있어도 하나님은 가지고 놀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순진한 사람들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잡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진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진실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사필귀정이 가능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

세상은 진실하신 하나님이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은 구경만 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계속 일하십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게 하시고 팥 심은 데 팥 나오게 하십니다. 진실하신 하나님이 관리하시기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8절의 말씀을 봉독 하십시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아멘. 무엇을 심든지 심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거두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육체의 일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헛된 것을 심는 일들입니다. 그것들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과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들을 위하여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오래 참아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선한 일을 하며 진실히 행하며, 온유하며 절제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영생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그런데 육체를 위하여 살면 재미가 있고 성령을 따라 선을 행하면 보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여 보람을 얻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9절).

성도 여러분!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마십시오. 때가 이르면 아름다운 것을 거둘 것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피곤하면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인내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인내하지 못해서 일을 그르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선을 행하다가 조금만 어려워도 낙심하고 주저앉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큰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교육계의 선구자인 페스탈로치가 스탄츠에서 고아원을 설립할 때의 일입니다. 그는 자본금이 부족해서 대단히 고전을 했습니다. 그의 심정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도움을 주겠다고 나서는 이도 없었습니다. 그는 외롭게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의 식량을 구하기 위하여 돌아다녔습니다.

어느 날 술집에 들어가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에게 기부금을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술 취한 손님은 기부금을 내기는커녕 "이 거지같은 놈아!" 하면서 술병을 들어 페스탈로치에게 던졌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페스탈로치는 술병에 이마를 맞고 피를 흘렸습니다. 술집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동정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태도로 수건을 꺼내서 이마에 피를 닦았습니다. 그리고 술병을 던진 사람에게 다가가서 "선생님, 제게 주는 선물입니까? 죄송하지만 고아들에게도 선물을 주시겠습니까?" 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잘 참고 인내하는 사람을 인동초에 비유합니다. 얼음 눈 속에 있던 인동초는 늦겨울, 채 봄이 되기 전에 열을 발산하여 자신을 덮고 있는 눈에 종 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서 봉오리를 조금씩 터뜨리다가 결국 얼음을 뚫고 솟아 나와 꽃을 피웁니다. 우리도 인동초가 됩시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인동초처럼 꽃을 피웁시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끝까지 인내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됩시다.

착한 일을 많이 하자

이제 마지막으로 권합니다. 성도 여러분! 착한 일을 많이 합시다. 진실하신 하나님,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착한 일을 많이 합시다. 사도 바울 선생님의 권면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10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선행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성도들은 믿음으로 오직 은총으로 구원을 받지만 선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선행은 구원받은 사람의 도리입니다. 선행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전에 하나님이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여 선행이 무시되면 안됩니다. 구원하심의 목적도 선을 행하게 하심을 기억합시다.

그러나 착한 일을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선행을 배워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숨을 쉬거나 잠을 자듯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선이 아니라 악입니다. 어린아이들을 보십시오. 악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쉽게 행합니다. 선행을 가르치려면 엄청난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악행은 배우지 않고도 잘 합니다. 그러므로 선행을 위해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Bertram은 "선행은 예술"이라고 하였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예술이다. 인간의지의 의도적이고도 신중한 노력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선행도 예술품도 만들 듯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선을 행하는 데는 인간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거듭나게 합니다. 이로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선을 행하다 실패하더라도 낙심하지 마시고 성령의 도우심을 바라십시오.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선행의 기쁨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행에는 하나님의 보상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면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내세에서도 복을 받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켜보십시오. 진실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 자손들에게도 복을 주십니다. 나아가서 영생의 복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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