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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 마 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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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마태복음 9:9-13 
  제목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하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이 자리에 함께 나아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이제 본격적으로 5월의 축제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구주대망 2003년 생명 사랑 나눔 축제가 28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 주일은 그동안 세이레 특별기도회와 부활절 절기로 인해서 중단했던 축제를 위한 말씀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설교제목이 시사하는 바대로 우리의 소중한 분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를 함께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는 레위라고 불리는, 하지만 그 보다는 마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한 사람을 통해서 우리의 소중한 분들에게 다가서는 또 다른 시도를 하려고 합니다.

마태는 세리로서 일하고 있는 동안에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세리란 지금의 세무공무원입니다. 지금도 세무공무원이 크게 존경 받는 직업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당시의 세리란 지금의 세무공무원과는 비교가 되지 아니할 만큼 악명이 높았습니다.

특히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돈을 뜯어내기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마치 세리란 직업은 돈을 강탈할 수 있는 면허증처럼 여겨졌던 것이 2000년 전 팔레스틴의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사무를 보던 마태를 만났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마태를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아직도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한 친구들에 대한 부담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가 만난 주님을 그들도 만나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될까 하는 것입니다. 그 때 그는 생각해 내었습니다. 자기 친구들은 잔치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부어라 마셔라 하는 잔치의 자리에 나오는 것을 자기 친구들 모두 즐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도 큰 잔치를 좋아한다는 것 기억했습니다. 자기 친구들은 잔치가 클수록 더욱 즐거워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이 잔치에 주님을 등장시키는 일입니다. 친구들의 마음속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기를 소망하면서 일을 시도했습니다.

물론 사건이 발생하던 전날 밤, 무슨 전략적인 대화가 오갔는지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마태와 예수님, 그리고 제자들 사이에는 요긴한 이야기들이 그날 밤 나누어졌을 것입니다. 본문에는 다만 무슨 낌새를 채었는지 바리새인들이 막상 파티를 시작했을 때 시비를 걸고 나온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잔치가 너무 성공적이어서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이 시비를 불러일으키는 소지였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서는 다른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면 속이 뒤틀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속이 뒤틀리면 괜한 시비를 붙습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그래도 명색이 선생의 신분으로서 도대체 그 따위 부류의 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릴 수가 있다는 말이냐?” 당시 종교계의 대표자들인 바리새인들은 그런 류의 사람들과 예수님이 어울리는 일에 대해서 답변을 요구하고 나옵니다.

그 순간 여러분이 마태라면 어떠했을까요? 바리새인과 제자들 사이의 논쟁이 오가는 동안 마태는 자신이 시도한 일이 잘한 건지 못한 건지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새롭게 신앙생활을 시작한 마태로서는 친구들을 위해서 모처럼 시도한 자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이 구설수에 올라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가 시도한 첫 번째 복음 전도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고 있습니다. “친구들을 그냥 회당으로 바로 데리고 갔어야 했을까? 아니면 그냥 아무런 일도 하지 말았어야 좋았을까? 다들 당황스러워하고 예수님은 지금 비난을 받고 계시잖아, 전도는 내가 나설 일이 아니고 전문가에게 맡겨야 했어”

그러나 그 때 갑자기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행동을 변호하셨습니다. 의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병든 사람들이라고 바리새인들에게 주지시킴으로 마태가 많은 세리와 죄인들을 초청한 잔치를 베푼 것을 칭찬하셨습니다.

의사들의 일은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이지 건강한 사람들과 어울려서 골프나 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셈입니다. 물론 자신의 건강이나 교제를 위해서 골프를 치는 것이 의사가 못할 일은 아니지만 환자 진료 제쳐두고 필드에만 나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비난 받을 일입니다.

의사들은 건강한 사람들과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잘못이지 환자와 어울리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바꿔 말하면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신앙이 없는 사람들을 전략적으로 섞어놓은 전례 없는 접근법은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뿐이지 하나님의 구원사역에는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선 그 다음에 어떤 일인지는 기록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반박한 후에 몸을 돌려 마태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는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잘했어, 마태. 자네가 무슨 뜻으로 이런 일을 했는지 알고 있다네, 친구들을 신앙으로 인도하려고 자네가 한 일이지, 아주 독창적이었어, 정말 위험을 감수한 일이야, 길 잃은 사람에 대한 자네의 기특함 이해하네, 자네의 독창적인 계획에 나를 포함시켜 줘서 고맙네, 자, 그럼 잔치를 계속하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도 마태처럼 믿지 않는 친구들에게 다가서 볼 수 있습니다. 혁신적으로 창조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불신자와 신자들이 자리를 함께 하는 잔치, 한 번 구상해 볼만 합니다. 우리와 친구들에게 맞는 전략을 하번 생각해 봅시다.

열심히 기도하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십시오. 실수하면서 배우고 적절히 다가는 일을 시도해 보십시오. 한 걸음 내딛어 보십시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접근하려 한다면 비신앙적인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어떻게 첫 걸음을 내디딜 것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만난 좋으신 하나님을 우리의 소중한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보다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누어 어떻게 그들에게 각각 다가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좀더 알았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각각 어떤 방법으로 접근해 볼 수가 있을까요?

먼저 알고 지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까요? 흔히들 전도하면 열심을 내어서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돌리는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전도, 그렇게 전도지를 돌리는 것이 마치 전도인 것처럼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전도는 정확히 그 반대입니다.

전도는 우리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대상들입니다. 우리의 영향권 내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l의 가장 중요한 전도대상이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동기를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습니다.

앞서 몇 주간 동안 강조했듯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특성을 분명히 할수록 우리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우리의 인격과 우리가 보여주는 믿음에 마음이 끌릴 것입니다.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않더라도 여러분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신뢰성, 긍휼, 희생정신 등은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자석과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서 개인적인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평안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요? 두 가지 가능한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특별한 행사를 계획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처음 방법은 마태처럼 특별한 기회를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신앙인과 불신자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장을 여는 것을 말합니다. 꼭 교회당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어쩌면 중립적인 장소가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운동장도 좋고 태화강 고수부지도 가능할 것입니다.

새로운 친교를 맺고 현재의 유대관계를 좀 더 증진시키기 위해서 바람직한 가장 좋은 환경은 교회당이 첫 번째가 아닐 것입니다. 영적인 씨를 뿌리고 신앙의 문제를 조금 다루기 위한 아주 좋은 장소는 중립적인 장소입니다.

주일 밤 예배에 나오신 분들은 몇 주 전에 녹산 제일교회 손현보 목사님이 오셔서 그 구역들이 어떻게 믿지 않는 구역원의 남편에게 다가서는지에 대해서 여러분이 들었을 것입니다. 볼링도 좋고, 낚시도 좋고 영화를 함께 보는 것도 시도해볼만 한 방법입니다. 족구, 축구, 배구 경기도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행사입니다. 그냥 단순히 알고 지내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과 우정을 발전시키려면 그런 시간은 아주 좋습니다.

전도를 목적으로 한 테니스 대회를 개최할 수도 있습니다. 축구, 농구 경기를 후원하는 울산교회 중직자들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돈버는 데만 관심을 가지지 말고 번 돈을 어떻게 주님을 위해서 사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중직자들 우리 울산교회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동구에 계신 어떤 크리스천은 몇 년째 “효 달리기”를 수 년 동안 후원하는 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학생들에게 그 달리기에 참여하면 그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입니다. 한해 한 이천만원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런 일을 하면서 간접적으로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갖습니다. 어떻게든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면 독특한 기회는 얼마든지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조그만 꿈이라도 꾸어봅시다. 그 꿈을 놓고 부부가 함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구역원들이 알면 기도로 지원할 것입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지켜보는 감격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두 번째 방법은 일상적인 활동에 그분들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전도, 혹은 축제하면 하기 쉬운 오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하고 있는 과중한 일에다가 불신자들과의 관계를 갖기 위해서 또 다른 새로운 활동을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새로운 무엇을 더 추가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여러분이 하기로 되어 있는 일에 그 분들을 초대하기만 하면 됩니다. 몇 가지 손쉬운 예를 소개해 봅시다.

제일 쉬운 방법은 음식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꽤 많은 음식을 먹습니다. 봄나물을 조금씩 팔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파는 대로 다 사와서 음식을 마련해 보는 겁니다. 부추전이라도 구워서 나누어먹읍시다. 뭐라도 좋습니다. 두 식구밖에 없어서 음식처리가 어렵다고 고민하지 마시고 막 음식을 했을 그때에 나누어 먹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고 또 데우고 또 데우고 해서 먹는 것 보다는 했을 때 그때, 따뜻할 때 이웃과 나누어 먹는 것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선 그렇게 길을 터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생전 음식 나누어 먹는 일도 없다가 음식 들고 가서 제발 축제 이야기를 바로 꺼내지 마십시오. 올 5월도 좋고 하반기에도 좋습니다. 내년 5월이면 어떻습니까? 우선 그렇게 우정을 나누고 좀 더 돈독히 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포착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정말 주님이 당시에 자기백성들을 향해 탄식 하셨듯이 오늘 우리시대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아주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 같아요. 우리처럼 그렇게 어리석게 시도하지 않습니다.

음식 나누는 일은 주부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혹시 불평하시는 분은 없습니까? 가끔씩 예수 믿지 않는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나가서 먹자고 남자 성도 여러분은 제의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여러분의 집으로 그들을 초청할 수도 있습니다. 남자들은 손님접대가 은사가 없어도 손님 초청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초청하는 은사만 있으면 되지 접대하는 은사까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을 도와주기위해서 하나님이 좋은 배필을 보내주셨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특히 축구경기를 좋아하는 남자들은 아주 좋아하지 않습니까? 혹시 이번에 관람할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그 계획에다가 그냥 다른 사람을 집어넣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혼자 가서 봤고 아니면 가까이 있는 신앙의 친구들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직장 동료들도 끼워 넣고 이웃에 사는 사람들도 함께 가도록 주선하기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테니스, 족구, 배구, 낚시, 등산 등 이미 하기로 되어 있는 계획에 누군가를 초대하십시오. 하다못해 녹주 찜질방에 갈 때라도 주위에 있는 불신 친구를 끼워 넣어 보십시오. 헬스클럽도 새로운 친분관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물론 이미 사귄 친구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에도 좋습니다. 에어로빅이나 베드민턴 클럽 같은데서 직장 동료나 낯익은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서로 열심히 땀 흘리고 나서 사우나에 함께 가서 몸만 씻을 것이 아니라 영혼의 낀 때도 씻을 수 있는 방법을 전하는 것입니다.

옆집과의 관계는 아이를 돌봐주면서 더 친근해 질수도 있습니다. 아이 보는 일에 품앗이도 되지만 이웃 아이들은 놀면서 신앙인의 가정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특별히 강변에 유채꽃 핀 날 여러분의 십대 아이들만 데리고 가지 말고, 십대 아이들의 친구를 데리고 가십시오. 가서 그냥 함께 지내는 것만 보여줘도 그들의 가정과 신앙인의 가정이 어떻게 다른지 십대 아이들의 예리한 눈으로는 반드시 관찰 할 것입니다. 신앙의 부부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지, 사랑과 존경으로 부모를 대하고 자녀를 보살피는 것을 보게 하는 것 자체로도 도전이 됩니다.

남편들을 위해서도 좀더 말씀 드려야 되겠지요? 여러분도 전략적인 직장생활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그저 생계를 위해서 다니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파송 받은 장소라는 것 아셔야 됩니다. 직장인들에게 직장은 여러분들의 땅 끝 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지막 선교지입니다. 그러면 그저 알고 지내는 사이가 친밀한 관계로 변할 것입니다.

일상적인 만남이 영적인 기회로 바꾸어질 것입니다. 의외로 사업계에는 영적으로 결핍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다가선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쌍수를 들어서 환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미 있는 만남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그 가운데는 분명히 있습니다.

적대적인 사람들로 인해서 기죽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열 명의 적대적인 사람보다도 한 두 명이라도 여러분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관심을 쏟으십시오. 그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보시오. 어떤 것이 좋을지 선택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어울리고 친구에게도 무리가 없는 것을 택하십시오.

자 이제 두 번째로 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갈까요? 이들에게는 또 다른 가능성이 있는데도 우리는 쉽게 간과해 버립니다. 여러분과 연락이 끊긴 과거에 알고 지냈던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관계를 주셨습니다. 같은 동네에서 살기도 하고 같은 학교를 다니기도 하고, 같은 직장에서 생할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이사를 간다든지 직장을 그만둔다든지 학교를 졸업한다든지 해서 헤어질 경우들도 있습니다. 물론 대개는 친분을 가지려고 별반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비교적 가까웠던 친구사이에도 무리 중 한 사람이 떠나가면 한 두 해만에 그 관계가 해체되기도 합니다. 물론 헤어질 때에는 서로 약속을 합니다. “뒤에 연락할게” 아니면 “울산 내려오면 들려줘” “서울 오면 연락해”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그냥 인사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말을 주고받을 때 심정으로는 그렇게 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살다보면 쉽지를 않습니다. 그러기에 아예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인사를 나눌 때부터 믿지 않는 영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 맞아. 전에도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어, 하지만 진짜 연락을 하는 사람은 없었어.”아예 체념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러다보니 여러분이 실제로 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나 같은 반 친구에게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걸면 그들은 반가운 나머지 깜짝 놀라서 “우리한번 만나자” 당장 그렇게 이야기가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이 기회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받아드리게 하는 것은 그동안 상대방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0년도 훨씬 지나서 학급친구를 서로 만나면 아주 반갑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마주 앉아서 옛날에 알았던 사람들, 수업시간, 그 선생님 별명들 불러가면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공통으로 알았던 일에 대해서도 말을 떠 올릴 수도 있고 한 사람은 잘 기억하는데 다른 사람은 기억조차 못하는 일들도 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누구는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서 누구와 결혼을 했는지를 재미있어하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다 보면 이전에 함께 고등부를 다녔는데 지금 신앙생활을 하는지도 곁들여 묻게 되고 마음은 아직도 열려 있는데 적당한 교회를 찾지 못한 사람 같으면 교회를 소개해 줄 수도 있습니다. 계속 만나면서 믿음의 성장을 도와주기도 합니다. 이제는 함께 나서서 우리 고등부 때 같이 신앙생활 하던 사람들 한번 찾아보자 그렇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서 올 들어 처음 신앙생활을 하고 이제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는 분은 없습니까? 갑자기 20년이 지나도록 만난 적이 없는 친구가 떠오릅니다. 가까스로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연락을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지 그녀의 남편은 암 말기로 병원에서 고통당하고 있었고 누구 한 사람 가까이서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자연스럽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친구를 돌보아 주면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온 정성을 다 쏟아 돌보아 주는 가운데 두 사람은 옛 우정을 다시 새롭게 할 것입니다. 두 부부가 신앙을 갖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비록 친구의 남편은 몇 주 후에 세상을 떠났지만 하늘에서 남편을 만날 것이라는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됩니다.

한 통화의 전화가 만들 수 있는 놀라운 일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돌린 한 통화가 한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시험 삼아 전화를 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에 함께 하신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갖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오후 여러분의 옛 전화번호를 뒤적여 보십시오. 기도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시도해 보십시오. 울산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은 없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격려의 말 한 마디가 그 사람의 생애를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요? 알고 지내는 사람이나 전에 알았던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은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문제는 낯선 사람일 때,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일 때 우리의 신경은 쓰입니다. 그러나 크게 염려하지 마십시오.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물론 마지막에는 영적인 주제를 두고 토론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관계를 조금씩 형성해 가는 것입니다. “전략적인 소비자 정신”을 발휘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살기 위해서 무엇인가 구입해야 합니다. 일상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파는 여러 장소를 찾습니다. 기름을 넣기 위해서 주유소를 찾고 옷을 세탁하기 위해서는 세탁소를 갑니다. 그리고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서 식료품 가게를 들러야 합니다.

그 외에도 문방구, 옷가게, 이발소, 미용소, 은행, 동사무소, 파출소, 학교 등 수많은 장소를 우리가 들락거린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미리 생각만 한다면 세상을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잡다한 일들이 복음전도의 기회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먼저 그들을 하나님께 소중한 사람들로서 바라보고 접근하십시오. 우리가 사랑과 관심을 쏟을 가치가 있는 사람들로서 여기고 가까이 다가서십시오. 이것은 어떤 일을 할 때에도 가져야 할 성도의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그런 태도로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서십시오. 그들이 하는 일에 호의와 관심을 가지고 자주 만나면 서로 흉허물 없는 친구사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생활과 가족, 사업과 취미에 대해서 진지한 관심을 나타내면 그 관계는 진척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신뢰를 얻게 될 것이고 자기들에게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다른 고객들과 다른 우리의 모습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신자다운 특성을 가까이서 발휘하면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드나드는 식당을 두고 시도해 보십시오. 그냥 밥만 먹고 돈을 주고 나오지 마시고 말을 붙여보십시오. 돈이 여러분의 지갑 안에 남아 있는 한 주인은 여러분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여러분의 그의 중요한 고객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지갑 안에서 돈을 꺼내지 말고 말을 시작하면 들어줄 수밖에 없는 위치에 그들이 있다는 것 기억하십시오. 개인적인 관심을 표하면서 다가서면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한 끼 밥 먹기 위해서 드나드는 식당조차 복음을 전하는 장이 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성령께서 우리의 삶 속에 찾아오십니다. 모험적인 삶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여러분이 등록만 하면 순간순간이 놀라운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전략적인 소비자 정신을 발휘하십시오. 전술적인 오락 활동, 운동경기, 계모임, 반상회를 시도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특히 관심을 갖는 분야가 어디든지 주를 위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어떤 분야든지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기회를 잘 이용하라고 골로새서 4장 5절은 충고합니다. 에베소서 역시 기회를 사라, 때를 잡으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를 알 필요가 있는 누군가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거나 운동을 하는 등의 단순한 사건이 결국에는 그리스도를 위한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분들에게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영원한 세상에서도 아름다운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거룩한 목적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남은 28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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