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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는 누구뇨? / 마 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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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누구뇨? (마 21 ;1-11)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무리들이 손에 손에 종려나무를 들고

예수님을 환호했다고 해서 종려주일 영어로는 ‘palm Sunday ’라고 일컫습니다.

종려주일에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자기들의 옷을 벗어 나귀에 얹어서 안장을 삼아주었고 길에서 환호하던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겉옷을 벗어 길에 깔아드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곳에서 흔했던

종려나무가지를 꺾어서 길에 펼쳐놓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면서 환호했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예수님을 보고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이는 누구뇨(10절)하며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길래 환호를 받으면서 나귀를 타고 들어오는가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11절에 이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더러는 엘리야 ,예레미야 등의 선지자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고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종려주일에 무리들이 대답한 것도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지자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그러한 말은 예수님을 온전히 안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있을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너희는 나를 누구랴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 여러분 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200여 년 전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그 분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당시 여러분이 그 자리에 서 계시다면 예루살렘 사람들이 이는 누구뇨 물을 때에 여러분은 누구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을 향해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시면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3절에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 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맞은 편 마을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풀어 올 때에 무슨 일이 있을 것인지 제자들에게 어떻게 할 것까지 다 지시해 주셨습니다.

마가복음과 누가 복음에 보면 제자들이 그곳에 가서 되어진 일들까지고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제자들이 가보니 정말로 거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나귀와 나귀 새끼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풀어오려고 하니까 이유를 묻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시킨 대로 말하니까 그 나귀를 그대로 주어서 그것을 끌고 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앞으로 되어지는 일들을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님 말씀대로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내다보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건너편 마을로 가서 어떻게 했다고 했습니까?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어왔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위해서 나귀와 나귀 새끼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명하신 대로만 했더니 모든 것이 순조롭게 해결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만 하면 됩니다. 우리 가정의 일 , 자녀 교육의 문제 ,교회의 일, 직장의 일 , 장래의 일 등 모든 것에 대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으면 그 말씀대로 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찾을 수 없을 때에 성경을 다 읽어보시면 그 안에 예수님께서 하실 말씀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 구체적인 것이 없으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모든 원리를 따라서 적용하면 이러한 상황이라면 예수님은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실지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에 주인이셨습니다.

3절에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라

이 말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모든 것의 주인임을 알게 됩니다.

학개서 2장 8절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 말씀은 곧 예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예수님의 우리 자신도 예수님의 것이고 우리가 가진 시간, 건강, 재물, 재능까지도 다 예수님의 것입니다.

종려주일을 맞이하면서 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기회를 삼아야 합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가운데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의 이름을 ‘주용’이라고 했습니다.

주인 주(主)에 쓸 용(用)이라고 하면서 일부러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자기 아들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아들이 되기를 바라고 언제든지 하나님이 쓰시고 싶으면 쓰시도록 하기 위해서 주용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저는 참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해서 아들을 낳으면 그렇게 지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 이름을 쓸 기회가 없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아이를 낳아서 이름 짓기 곤란하시면 주용이라는 이름을 써보십시오. 얼마나 믿음이 들어간 이름입니까?

사실은 우리 모두가 주용인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쓰신다면 언제든지 내 놓아야 될 자신이며 자녀, 직업, 생애 전체도 주용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쓰시기만 하시고 우리 것을 달라고만 하십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달라고 하는 것보다는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더 큰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지극히 적은 것을 원하십니다. 그것에 비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주십니까?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내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자기 몸 전체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이 쓰시겠다면 우리가 무엇을 못 내놓겠습니까?

종려주일을 맞이해서 주님이 내게서 쓰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주님이 원하시면 언제든지 내놓을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기 바랍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모든 것의 주인이셨던 주님은 결국은 왕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짐승을 타신 것입니다. 그 당시 왕들은 어느 곳을 갈 때에 걸어가는 법이 없고 짐승을 탔습니다.

요즘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면 전용 비행기를 타지 않습니까?

대통령의 위신이 있기에 전용 자동차가 있고 전용 비행기를 타고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왕이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에 그냥 들어가기를 원치 않으시고 제자들을 시켜서 건너편 마을에서 짐승을 준비해 오도록 하고 사양도 않으시고 그것을 타셨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호산나 칭송을 전부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왕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어서 그러셨습니다.

나중에 빌라도와 대화를 하실 때에 빌라도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으니까 대답하시기를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음이라 그렇지만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그러자 빌라도가 또 묻습니다.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네 말과 같이 나는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 세상에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이 왕이라는 것을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진정한 신분이기 때문이었기에 예수님이 짐승을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어떤 짐승을 탔습니까?

요즘같이 일국의 대통령 이라면 좋은 비행기를 타고 방탄 자동차를 탑니다.

그런데 왕이신 예수님은 무슨 짐승을 타고 갔습니까?

그 당시 왕들은 힘센 말을 타고 다녔고 승리한 장군들도 말을 타고 성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가셨습니다. 왜 하필이면 나귀 새끼를 타셨는가에 관한 이유가 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내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나귀를 탄 이유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스가랴 9장 9절 말씀에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의 새끼니라

바로 이 말씀을 이루시려고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셨습니다.

장차 이 땅에 오는 메시야는 진정한 왕이라는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왕은 공의로우신 왕이며 구원을 베푸는 왕인데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탈 것이라고 예수님이 오시기 수백 년 전에 예언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마지막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시면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나귀 새끼를 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진정한 메시아십니다. 이 예수님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 그대로 공의로운 진정한 왕이십니다. 이 땅에 왕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각국에 대통령들이 있지만 공의로운 대통령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공의로운 왕이셨을 뿐만 아니라 구원을 베푸는 왕이셨습니다.

이 땅의 많은 왕들과 대통령들이 그 백성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입니까?

그 나라를 지키고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입니다.

그런데 이 땅의 대통령들과 왕은 그것을 제대로 못합니다.

이라크의 후세인이 대통령이라고 그렇게 큰 소리를 쳤는데 실상은 그렇게 힘없는 대통령이며 자기를 위해서 재산을 그렇게 많이 모아 놓고 국민을 지키는데 있어서는 너무나 무력하고 쓸모없는 대통령이었습니다.

이라크 백성들이 그런 대통령을 뽑는데 100 % 투표율을 보였다는데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데 후세인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의 모든 왕들과 대통령들은 말들은 잘하지만 그들이 구원을 베풀 수 있는 자들이 못됩니다.

주님은 공의로우시며 진정한 왕이십니다. 공의롭고 구원을 베풀 수 있는 왕이라면 얼마나 권세를 부리겠습니까? 얼마나 당당하고 힘자랑을 하겠습니까?

주님은 공의로우면서도 구원을 베풀고 겸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의로우시면서도 구원을 베푸는 능력이 많은 전능하신 왕이십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모든 것에 주인이신 분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겸손한 왕인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겸손한 자를 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겸손하게 임하십니다.

요 3장 20절에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얼마나 겸손한 말씀입니까?

왕이시고 모든 것에 주인이시며 능력이 많으신 그분이 문을 박차고 우리에게 오시는 폭군과 같이 행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문을 두드리고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왕이 평민과 같이 음식을 먹습니까?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들어와서 함께 잡수실 뿐 아니라 우리를 왕의 식탁에 초청해서 먹게 하십니다.

주님은 겸손하신 왕이십니다. 막 10장에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다

하시면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예수님은 왕이시니까 얼마든지 주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왕들은 그렇게 사람들을 주관하기 좋아하고 권세를 부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겸손한 왕이어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낮아지셔서 우리의 종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종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자기의 목숨까지도 재물로 드리신다고 하는 이런 왕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이 바로 그런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여주시려고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종려주일에 ‘이는 누구뇨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던 저 분은 도대체 어떤 분이신가 ’물을 때에 우리는 그분이 진정한 왕이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내다보시며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왕이신데 겸손하게 우리를 찾아오시고 왕으로서의 권세를 부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오시고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종려주일을 맞이하면서 왕이신 주님을 새롭게 발견해야 합니다.

그분은 겸손하시지만 분명히 우리의 왕이십니다. 만왕의 왕이시요, 만유의 주이십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위대한 대통령과 왕들이 많이 있었어도 그들은 예수님처럼 공의로우시고 구원을 베풀 수 있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공의로우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의 왕 되심을 마음속에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그분에게 진정한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보내는 우리가 되는 것이 종려주일의 의미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마지막 예루살렘성에 입성할 때에 그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하면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지금 구원하소서 하면서 찬양을 드렸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 모두가 2000년전 이 땅에 오셔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그분이 우리의 진정한 왕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분에게 참 영광과 참 존귀와 찬양을 돌려보내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0여 년 전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예수님은 진정한 왕이셨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그 왕이신 주님을 어떻게 했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호산나하면서 찬송을 불렀지만 나중에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부르짖고 결국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자기들의 기대를 채워주지 않고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니까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은 실제로 자기들을 위해서 죽었고 오늘날 우리를 위해서 죽었습니다.

여러분 , 주님이 하시기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채워주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주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셔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치러주셨습니다.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 하나님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우리의 모든 짐을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왕이신 그분이 하지 못할 일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포기하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셨으니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한 주간은 왕이신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고난당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간입니다.

이 한 주간동안은 기도하면서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자는 것입니다.

이번 주 금요일은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날입니다. 다른 날은 몰라도 이 날 만큼은 기억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부모가 돌아가신 그날을 기일이라 해서 기억하고 모이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날을 기념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그 날 저녁에 모여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신 일과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셨던 말씀을 찬송으로 하나님께 올리면서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식을 거행하며 지내는 것입니다.

2000 여 년 전에 오셨던 그 분은 왕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어주셨습니다.

그분의 고난을 한 주간 동안 깊이 묵상하면서 은혜 받고 우리에게 이렇게 겸손하고 사랑이 많으신 왕이 계시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확신하고 주님을 의지하며 한 평생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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