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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 아이에 대한 교훈 / 마 1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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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에 대한 교훈
마태복음 18:1-10


누군가 말하기를 '18세기는 민중을 발견한 해요, 19세기는 여자를 발견한 해요, 20세기는 어린이를 발견한 해'라고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고대로부터 어린 아이들은 단지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이의 존재를 새롭게 재인식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존귀히 여기고 사랑해 줘야 할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특히 본문은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아 어린이에 대한 교훈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1. 어린이를 영접하고 사랑하라.

본문을 보면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 앞에서 예수님께 '누가 큰 자냐'고 질문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를 내세우시며 '어린이가 큰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이와 같은 어린 아이를 실족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로마 제국만 해도 부모는 자식을 죽일 수도 있고, 마음대로 버릴 수도 있고, 노예로 팔아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으로 5000명을 먹이셨을 때도 여자와 어린 아이를 뺀 남자 장정만을 헤아린 것을 보아도 그 당시 어린이의 위치라고 하는 것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잘못된 사상을 말씀과 행동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어린이들이 예수님께 축복 기도를 받으러 몰려들자 제자들은 아이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으며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눅18:16)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허용하고 그들을 영접하시면서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사랑의 대상으로 알고 관심을 가지고 보살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아이를 키울 때, 예수님처럼 칭찬과 격려로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아이에게 너무 칭찬해 주면 더 나은 발전이 없을까 봐 자녀들이 잘했어도 다소 만족하지 못하다는 듯이 나무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꾸중과 더불어 자녀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고 인정해 주며, 마음으로만 사랑하지 말고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어야 합니다. 눈짓이나 몸짓으로 하거나 혹은 만져 주거나 꼭 안아 주거나 어깨를 툭툭 치며 어루만지는 것으로도 사랑을 나타낼 수 있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터치법 입니다. 사랑을 표현할 때 그냥 "사랑합니다"가 아니라, 터치하면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키우며 젖을 줄 때 갓난아이는 이해를 못하지만, 그 부모가 말하는 사랑의 음성을 아이는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아이가 편안함을 느끼게 되고, 만족함을 느끼며, 믿음을 키우고, 사랑을 키우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와 중요한 관계를 가진 사람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영접하고, 사랑할 것을 우리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사람이 어린 시절에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만일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하면, 사랑의 결핍으로 인하여 이상 성격 혹은 나쁜 습관을 소유한 사람이 됩니다. 심지어 불안전한 심리상태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문제들 중에서, 가정의 부모와 자식간이나 부부간에 발생하는 문제들이 오늘 현대에 일어나는 위기 중 하나입니다. 또한 오늘날 부모와 자식간의 깊은 정과 사랑과 신뢰가 점점 깨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가정은 자녀가 서로 우애 있으며, 부모는 자녀에게 인자하고, 부부는 서로 사랑하며 한 몸을 이루어 가는 아름다운 기독교 가정이 되야 할 것입니다.

2. 어린이를 실족케 말라.

(마 18:6,7)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다'(스칸달리조)는 '넘어지게 하다'라는 뜻으로 '함정', '올가미', '죄를 짓게 하는 유혹'을 뜻합니다. 어린 아이를 타락하게 하는 것, 즉 아이를 잘못 키운 것을 죄악 중에서 가장 큰 죄라고 성경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을 죄악에 빠지게 하는 것보다 더 악한 죄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린이를 실족시키는 것이 아이를 죽이는 것보다 더한 행동이라는 의미이며, 사실 아이에게 죄짓게 하느니 차라리 목에 연자 맷돌을 매어 깊은 바다에 자신이 빠져 죽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이를 죽이는 것보다 오히려 그를 타락하게 하는 것이 더 잔인하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왜 실족하게 됩니까? 그것은 에베소서 6장 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노엽게 하다'(파르로기조)라는 말은 '사람을 지독히 노하게 하고 분노케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결국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여 자녀가 탈선하게 되면 결국 이러한 것들이 사회적 문제가 되며 청소년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다음 4가지를 통해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시대가 변한다는 사실을 수용하지 못할 때 자녀를 노엽게 합니다.
이것은 시대의 풍조를 따라 모든 것을 행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부모가 자녀에게 허락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는데, 허락할 수 없는 것은 3가지입니다. 그것은 반항, 부도덕, 불의입니다. 어떠한 시대적 변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 부모의 권위에 대한 반항이라면, 또 부도덕하고 불의한 일이면 부모가 간섭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자녀를 지나치게 통제하는 것은 자녀를 노엽게 합니다.
자녀를 지나치게 훈육하거나 제재하는 것은 자녀의 성장을 막고 자극하며 반항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오히려 부모로부터 도망가게 합니다.
부모의 화풀이로 아이를 때려서는 안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권위로 완전히 통제할 수 있어야지 '화가 나니까 때렸구나' 하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의 권위도 땅에 떨어지고 자녀들이 돌아서서 부모를 비웃게 됩니다. 어떤 부모는 아이를 죽일 듯이 덤벼들며 머리나 얼굴 할 것 없이 아무데나 닥치는 대로 때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셋째로 통제가 너무 없는 것도 자녀를 노엽게 합니다.
자녀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게 하고, 자녀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며, 모든 것을 들어주는 것은 오히려 자녀에게 해를 끼칩니다. 자녀가 필요한 것, 자녀에게 정말 적합한 것을 채워주되, 노동의 신성함과 물질의 소중함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잠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 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넷째로 자녀들 앞에서 일관성이 없는 삶을 사는 것도 자녀를 노엽게 합니다.
자녀에게는 이러한 일을 하라고 말한 후에 돌아서서 부모 자신은 정반대의 일을 하게 되면 그 부모는 위선과 거짓 고백을 하게 된 것이 됩니다. 이런 행위는 자녀를 실망시키고 비뚤어진 인격을 가지게 합니다.
더 나아가 어느 아이는 덜 사랑하고, 어느 아이는 더 사랑하는 것 같은 편애로 불공평하게 대해서는 안됩니다. 부모는 아이를 대할 때 모두에게 공평하게 대해야 합니다. 또 징계 받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또 이유 없이 책망하면 무의미하고 반항심만 길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 벌을 주면 그것으로 용서해 주고 끝이 나야지, 지난 일을 두고두고 말하든지 되풀이하면 안됩니다.
(골 3: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3. 예수님의 자녀로 키워야 한다.

어린이들이 잘할 때는 잊지 말고 사랑해 주고 칭찬해 주어야 하지만, 사회의 법을 어기거나 하나님의 규율을 어기면 고통이 있음을 깨닫도록 벌을 가해야 합니다.
(잠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 13: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죤 웨슬레(John Wesley)의 어머니 수산나는 "자녀들의 고집을 즉시 꺾어 버리라, 이것을 빨리 꺾을수록 더욱 좋다,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그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는 사실상 잔인한 사람이다. 이런 부모는 타파되어야 할 악습을 자녀들에게 기르게 한다. 그리고 자녀들을 제멋대로 내버려두는 부모는 마귀의 일을 하는 사람이며 신앙을 무의미하게 하며 구원을 불가능하게 하고 자녀들의 영혼과 육신을 멸망케 하는 사람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을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바로 키울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규율을 지키는 것을 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나아가 도덕과 양심 그리고 사회의 규율을 어기지 않도록 하는 선한 교육이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엡 6:4)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좋은 교육의 모델로서 소개되는 유대인들의 교육의 골격은 어머니의 교육을 말합니다. 어머니는 교육가가 되어야 합니다. 바른 교육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와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 세상에는 많은 교육 방법이 있지만 하나님의 방법 외에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둘째, 어른과 부모에게 순종하는 성품을 키워야 합니다.
부모에게 반항할 때는 반드시 그 고집을 꺾어 놔야 합니다. 부모에게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윗사람에게도 불복종하는 사람이 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배우게 하는 것은 사회질서의 기본이 됩니다.
(엡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어느 강도 흉악범이 법의 심판을 받아 사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어머니를 좀 보자고 하더니 철창 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끌어당기더니 그 코를 이빨로 물어뜯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가 잘못하는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그대로 내버려두었다는 원망이 담긴 행동인 것입니다.

셋째, 믿음으로 키워야 합니다.
자녀를 낳거든 다른 데 가기 전에 제일 먼저 교회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물도 드리며 목사님을 통해 축복기도도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라면서 유아세례를 받게 하고 반드시 교회에 출석하는 것과 규칙적인 신앙생활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쨌든 우리 부모는 자녀들을 책임지고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수준에 맞도록 가정예배도 드리고, 헌금하는 법도 가르쳐 주고, 기도하고 성경 읽는 습관도 갖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는 하나님께 회개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믿는 가정의 자녀들이 교회에 안나오는 것을 가만 내버려두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걱정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 부모님이 반드시 책임지고 자녀를 예수님께 데려와야 합니다. 자식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고 금식 기도를 해서라도 자기 자식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인정받고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기 바랍니다.
대개, 성경이나 일반 역사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의 사람, 능력의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 하십니다.

어떤 교인들은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는 교회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입학시험에 그 아들이 떨어졌습니다. 이 일로 온 가족이 슬퍼하고 좌절하며 시험에 들 정도였습니다. 목사님은 그 성도에게 "성도님, 아들이 대학에 못 들어간 것이 이렇게 섭섭한 일이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할 때는 어떻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삼상 2장 12절 이하에 보면, 제사장 엘리는 아들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못된 짓을 해도 가만히 내버려두었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격노하셔서 한 날에 두 아들이 다 전쟁에서 전사하게 되 이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도 쓰러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결 론

그러므로 우리들도 예수님과 같이 어린이를 소중히 여기고 인격적으로 그들을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어린이를 무시하는 가정은 축복을 받지 못하고, 어린이를 소홀히 여기는 교회는 부흥하지 못하고 어린이를 업신여기는 국가와 민족은 번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특히 그들이 바른 신앙으로 자랄 수 있도록 부모들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을 바로 섬기며 부모님을 공경하며 정직하고 믿음으로 성장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어린이는 가정과 교회와 국가의 보배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자녀들이 앞으로 미래의 한국 교회를 책임지고 이끌어가게 될 줄로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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