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린이주일] 예수께 인도된 어린이 / 마 19:13 - 15

  • 잡초 잡초
  • 258
  • 0

첨부 1


예수께 인도된 어린이
마태복음 19: 13 - 15

13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15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

외교관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늘 일에 쫓겨서 외국에 출장도 잦고 모든 일이 너무 바빠서, 그래서 가정과 아이들에게 신경을 별로 쓰지 못 했더랍니다. 어느 날 모처럼의 휴일이 되어서 그는 생각하기를 '오늘은 좀 낮잠이나 실컷 자고 미루었던 책이나 보면서 하루를 쉬겠다.' 생각을 했는데 그의 아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지 말고 아이들과 바람이나 쐬고 오라."
고 닥달을 하는 겁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집에 있었다가는 아내 등살에 뭐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부득이 아이들과 같이 낚시질을 나갔더랍니다. 아이들은 좋아서 마구 뛰면서 한껏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은 집에 돌아왔는데 이 외교관, 이 남자는 그 날 일기장에 이렇게 썼 답니다. '오늘은 아이들과 낚시를 다녀왔다. 소중한 하루를 낭비해 버렸다.' 그러나 그 아들 중에 하나는 커서 역사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게 될 때 옛 날 일기장을 보았습니다. 그 옛날 일기장에 이 아들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다녀왔다. 나의 일생에 가장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행복이란 뭡니까? 우리는 행복을 때때로 물질적 여건을 두고 생각하고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음식, 좋은 의복 이렇게 생각하려고 합니다마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음식으로 말하면 음식보다 중요한 것은 입맛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더라도 입맛이 가시면 그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냄새도 싫습니다. 역겹습니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얼마 전에 제가 해외 여행을 가는데 비행기 안에서 잠깐 졸았는데 졸다가 구수한 냄새가 코에 들어 와서 눈을 떠 봤더니 거기 점잖게 생긴 어른이 돈도 많아 보이던데 어떻게 거기에 있는 웨이츄레 스들을 잘 얘기 해 가지고 몰래 라면을 한 그릇 끓여서 잡수고 계시더라구요. 그런데 어떻게 냄새가 좋은지 좀 달라고 하고 싶은데 그게 그렇질 않데요. 그 아가씨보고 좀 부탁을 했더니 없다고 그래요. 그런데 자, 그 비행기에서 주는 좋은 음식도 있는데 그거 다 마다하고 하필이면 라면 한 그릇입니까? 이것은 그가 가진 입맛 때문입니다. 그 입맛이 그쪽으로 작용을 하니깐 그 외에 아무 것도 소용이 없는 것이에요.
행복한 사람을 보실까요? 우리교회 장로님 한 분이 가끔 늘 마주 앉아서 식사를 하면서 가만히 보면 너무 빨리 해요. 그래서 제가, 난 반도 못 먹었는데 벌써 다 먹었어요. 그래서 제가
"점잖은 양반이 비신사적이라고 좀 발란스를 맞추어서 속도를 맞춰 가지고 먹어야지. 이렇게 마주 앉은 사람에게 홀랑 다 남겨두고 이렇게 하면 이게 되겠는가?"
했더니
"목사님 저도 그걸 압니다. 그러나 음식을 입에 넣고 한 번 씹어 보면 너무 맛이 있어서 홀랑 넘어 가버리고 맙니다. 입에다가 더 오래 둘 수가 없어요. 홀랑 넘어 가서 그래서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 잘 했다."
그러고 말았어요. 그러나 여러분 이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좋은 진수성찬이면 뭘 합니까? 내 입맛이 없는 데야. 결국은 내 입맛대로 행복한 거예요. 이 입맛이라는 말을 참 중요하게 들어야 됩니다. 사람의 입맛은 4살 때 결정이 난답니다. 그 입맛대로 일생을 사는 겁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특별히 문화인류학에서는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사람은 40이 넘으면 4살 때 먹던 음식으로 입맛이 돌아간답니다. Original Point로 확 돌아갑니다. 그간에 뭐 양식이다 불란서식이다 뭐이다 하고 먹다가도 아닙니다 나이가 4, 50 되면 다시 옛날 자기가 자랄 때에 먹던 그 음식으로 입맛이 돌아가 버립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가정 주부들께서 남편에게 잘 하고 싶거든 '이 사람이 4살 때 무얼 먹었나?' 이걸 연구해야 됩니다. 지금 좋은 음식을 내놓고 내가 정성껏 만들었는데 네가 왜 이걸 못 알아보느냐? 그건 무식한 여자입니다. 오늘 이후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문제는 어렸을 때 무얼 먹었느냐는 겁니다. 그 때의 입맛이 이제 내 한평생 나를 지배하는 거예요. 그래 입맛이란 뭐냐? 바로 가치관이요, 세계관이요, 행복관입니다. 내가 어떻게 행복하냐구요? 내가 가진 근본적인 이 가치관의 기준해서 행복한 겁니다. 거기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겁니다. 그래 우리가 옛날에 지질이도 못 살면서 그저 땅문서만 좋아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지금도 그저 땅문서만 손에 쥐고 있으면 행복한 줄 알죠. 그게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습니까 예? 바로 이런 것들이 다 바로 여기 문제예요. 어떤 때는 부모님이 좀 공부를 좀 못해 가지고 자기 가 못한 콤플렉스 때문에
"나는 못했지만 이놈아 너 공부해라."
그리고 한평생 소리를 질러서 공부만 하면 될 줄 알고 그런데 해봤는데 별 것도 아니잖아요. 이것도 또 문제가 있더라구요. 어쨌든 이 가치관 이것은 어렸을 때 형성이 됩니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교육과 명령에 따라서 이뤄지는 게 아니고 부모님이 하는 것을 보아서 모방하는 것이올시다. 다시 말해서
"이것이 좋다. 이것을 먹어라. 저것 이 옳은 길이니까 저것을 행해라. 이건 나쁘다. 저건 좋다."
아무리 가르쳐도 말은 소용없습니다. 듣기보다는 보면서 배우는 것이고, 느낌으로 배웁니다. 부모님이 저렇게 말하고 있지만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음식으로 말하면 부모님 자신들이 맛있게 먹어야지요.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나도!"하고 먹는데 자긴 안 먹으면서 너만 먹어라. 이게 바로 문제라구요. 자, 공부도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하다 못해 잡지라도 보면서, 책을 보면서
"공부해라."
그래야 공부지. 나는 댄스홀로 가면서
"야 공부해라."
이게 되겠어요? 이게 망조라는 거예요. 결국은 부모님이 무얼 즐기고 있나? 뭘 좋아하고 있나? 뭘 선호하고 있나? 그걸 아이들이 다 알고 있어요. 벌써... 눈치가 멀갑니다요. 여기서 공부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가치관, 세계관, 행복관, 인생 철학이 형성이 됩니다. 그것을 가지고 한평생 산다는 말입니다. 자, 그러니 얼마나 중요합니까?
어렸을 때 너무 억압을 받으면서 자란 사람은 커서 독재자가 된답니다. 어렸을 때 너무 눈치를 보고 산 사람은 반드시 사기꾼이 됩니다. 그러니 이것은 다 어렸을 때 입맛이 형성되는 것 같이 거기서 다 결정되어 지는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가장 큰 죄는 실족케 하는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 없으나 실족하는 일로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죄가 크냐?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먼저는 내가 죄 짓는 것이 죄입니다.

두번째는 다른 사람 죄 짓게 만드는 것이 죄입니다. 죄 원인 제공 죄가 있는 거예요. 자기는 잘하는 것 같이 보이는데 남편 실족하게 만들고, 아이들 죄 짓게 만들었단 말입니다. 자기는 뭐 다 잘난 것처럼 생각하지만 아니올시다. 죄 원인을 제공하고 있고, 실족케 하고 있고, 죄 짓게 만드는 죄를 지었어요. 이거 더 큰 죄요. 이보다 더 큰 죄는 어린 아이들을 실족케 하는 겁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깨끗한 아주 깨끗한 백지와 같은 어린 아이들의 마음속에 거기에 먹칠을 하는 거예요. 이거 때문에 한평생 저들은 불행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을 실족케 하는 일은 가장 큰 죄라고 예수님께서 단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잘 아는 한 때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라고 있습니다. 그 지존파의 대부가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그 때에 되어졌던 이야기입니다. 그는 옛날을 회고했습니다. 17년 전에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의 선생님께서 호되게 그를 꾸지람했답니다.
"왜 너는 그림 그리는 걸 알면서도 크레용을 가져오지 않았느냐? 왜 번번이 가져오지 않았느냐? 무슨 정신이냐?"
아무리 나무래도 그는 말이 없습니다.
"너무 가난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못 가져왔습니다."
그 말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그가 주의를 잘못 하는 줄 알고, 생각이 모자란 줄 알고, 혹은 반항하는 것처럼 생각을 해서 아주 충혈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면서 마구 때렸습니다. 때리던 끝에 이렇게까지 말했습니다.
"이 녀석아! 훔쳐서라도 가져와야 될 것 아니야. 준비물을 왜 안 가져오느냐?"
그 때에 이 아이는 빗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형장에서 최후 진술을 합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그 한 마디가 내 일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때부터 훔쳤습니다. 도둑질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도둑질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오늘의 내 운명은 이렇게 됐습니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한 말 한 마디..내가 불쑥 내뱉은 말 한마디, 잠깐 보여준 사건 하나가 그 어린 아이의 일생을 이렇게 바꾸어 놓고 만다는 것이에요.

저는 모 대학의 대학교의 교수, 여자교수 한 사람을 압니다. 노처녀예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아버지, 어머니를 보니까 한심하대요. 저렇게 살 바에는 왜 살아야 되나?"
아주 말도 없고 점잖은 것 같으나 문제가 있어요.
"도대체 저렇게 살 바에야 왜 결혼을 해야되나?"
그 때부터 생각을 했대요.
"저렇게 살 바에는 안 하는 게 좋지."
어느 사이에 세월이 흘러서 오늘은 노처녀가 됐어요. 지금 가고 싶어도 못 간다고 그러드라구요.
여러분, 아이들의 마음 속에 그 좋은 인상을 주어서 '아~~아버지 어머니, 참 행복하다. 저러니까 나도 커서 빨리 장가가야겠다. 빨리 시집가야겠다.'고 이런 마음을 가져야겠는데 참 유감스럽게도요 제가 모 대학에 그 때 학장으로 있을 때 통계를 내 봤어요. '40명 학생 가운데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전혀 결혼하지 않겠소.' 하는 사람이 몇이냐 물어 보았어요. 그랬더니 그 가운데에, 40명 중에 38명이에요. 세상 남자가 다 내 아버지 같다면 영원히 시집 안 가겠답니다. 혹시라도 그보다 좀 나은 게 걸릴까 해서 기대해 보는 거지. 보세요, 이 정도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행복할 수가 있겠습니까? 결혼하던 못하던 그 받은 인상이 그 모양이란 말이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인도해야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문제입니다. 뭐 효도해라 뭘 해라 뭘 해라 다 소용없습니다. 기본적인 것은 내가 어떻게 태어났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요새는 진화론적 세계관에서 혹은 아이들이 잘못된 사상에서.. 그저 한 남녀의 사랑 행각의 후유증으로 원치 않게 세상에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생물학적 이해입니다. 아무 의미도 없이, 물론 바랬던 것도 아닌데 하나의 실수로 나는 세상에 태어났다. 그래서 무책임하다. 이거예요. 이것이 그 마음에 박혀 있는 동안 참으로 어렵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 중에, 특별히 문명 국가에서는 2/3가 이 모양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실수다 이거예요. 잘못된 것이었다. 근본적으로 잘못됐다. 이게 되겠습니까? 바꾸어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서 내가 너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 했는 줄 아느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아느냐?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는지 아느냐? 기도의 응답으로 너를 낳았고 기도와 함께 너를 키웠느니라. 그 생명이 하나님께로 와 내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큰 선물이 너희들이다. 가장 큰 축복이 바로 너다."
이 한 마디만 그 마음 속에 깊이 파고들면 어떤 환경에 놓아도 절대 잘못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것이 없는 한, 그것은 바로 살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영접해야 됩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주께로부터 오고, 주께로부터 온 선물이기 때문에 소중합니다.

독일의 어느 초등학교에 교장선생님은 연세가 높은데 도 그 초등학교 학생들을 보고 반드시 머리를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인사를 합니다. 언제나 모자를 벗고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대요.
"왜 그러시냐?"고 그러니까
"이것들이 앞으로 자라서 이 가운데서 대통령도 나고, 목사님도 나고, 학자도 나고, 훌륭한 분들이 다 태어나게 될 거요. 그런고로 나는 지금부터 저들을 존경합니다."
사실로 바로 그 교장선생님 밑에서 인사를 받은 아이 중에 하나가 마틴 루터, 종교 개혁자가 됐습니다. 여러분,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소중하게 주님의 사람으로 주의 이름으로 저들을 대 해야 됩니다. 한 마디 말 헛놓아서는 안됩니다. 얼마나 소중한 일을 내가 맡고 있다 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대로  주님께로 인도할 것입니다. 주님께 배우고, 주님께 들어라. 주님께 순종하라. 주님을 따르라. 주님을 닮으라.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라. 내 얘기가 아니고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그래서 제가 오래 전에 읽은 책에 그런 말이 있더만요. 아이들이 실수할 때 이렇게 하라고.. 예컨데 거짓 말을 했다면
"내가 말하는데 거짓말하지 마라. 내가 명령하는데 거짓말하지 마라."
그게 아니고 아이들은 거짓말이 좋은지 나쁜지 모르거든요. 재미있어서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럴 때 성경책을 딱 읽어주며
"자, 이 성경을 네가 읽어라."
그래 읽으면 거기에 거짓말하지 말라고 그랬고,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얘기가 있고 이걸 다 읽은 다음에
"어떠냐? 내 말이 아니고 성경이 네게 말하는데 거짓말하지 말 것이다."
이렇게 가르쳐 놓으면 앞으로 큰 다음에도, 어느 때라도 컬컬하고 답답한 일이 있을 때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해답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내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요. 내 뜻이 아니고, 성경 말씀이 네게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교육의 기본 정신이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으면 이 어린 아이를 주님께로 인도한 자가 누굽니까? 그래 부모님이요. 부모님이 예수를 믿고, 부모님이 예수를 사랑하고, 그리고 부모님이 저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 것이에요. 저는 유아세례 할 때에 그 신앙고백 문답하는 얘기가 있어요. 서약하는 문답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며 이 아이와 함께 기도하겠느뇨?"
그랬어요. 이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며 이 아이와 함께 기도한다는 말 너무 마음에 들어요.
"너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가 아닙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송하고 함께 선한 일을 하는 것이에요. 선한 일하는 것을 본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저 어렸을 때 기억입니다만 그때 거지가 많았지요. 많은 거지들이 뭐 먹을 것을 얻으러 오든가 쌀을 얻으러 오면 그것 을 줄 때 얼마든지 어머니도 하고 할머니도 하겠지만 제게 주어서 저로 하여금
"가서 그 자루에 갔다 넣어드려라. 조심스럽게 갔다 넣어 드려라."
그래요. 그 심부름을 많이 했습니다. 구제하는 것을 봉사, 선한 일하는 것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함께 한다는 것, 이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복을 받아야 됩니다. 복 받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됩니다. 항상 주의 축복 가운데서 삶을 간증하며 살고 주를 찬양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보세요 예수님을 보여 주면서
"자, 저 분을 우러러 보라. 저 분을 닮아라. 저 분을 존경하고, 저 분을 사랑하라."
그것 이 바로 자녀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그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닮으라."
가 아닙니다.
"주님을 닮아라."
그 누구를 따라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을 본받고 따르라."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 두 살 때 성전에 올라 가셔서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몰랐습니까?"
훌륭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이미 하나님을 아버지로 그렇게 믿고 있어요. 그리고 교회를 하나님 아버지 집으로, 내 아버지 집 그 교회가 행복의 근본이었어요. 그런 모습으로 예수님께서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카고 대학의 교수인 벤 자민 볼룸이라고 하는 세계적인 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어느 때에 이러한 연구를 해 봤답니다. 학자들, 예술가들, 혹은 운동 선수들, 흔히 말하는 성공했다고 하는 존경받는 분들을 120명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이렇게 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많이 칭찬하라"고. 첫째가 칭찬하라고.. 아이들은 칭찬 받는 수준에서 자기 가치를 발견한답니다. 그렇습니다. 칭찬 받는 그것, 바로 그 수준에 도달하도록 그들은 노력하기 때문이에요. 칭찬 받는 만큼 자라는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칭찬하라. 그런 거에요.
둘째는 "가르치기는 하되 나무라지 말라."
아이들을 나무래 보세요. 나무라고 딱 한번 나무라면 '내가 잘못했는가봐.'두 번 나무라면 '난 머리가 나쁜가보다.'세 번 나무라면 '내가 세상에 있는 것이 귀찮은가봐. 나는 구제불능한가 보다. 어머니는 나를 키워가는 것이 고생스러운 가봐.' 이래 생각합니다. 벌써 정신적으로 자살이 시작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나무라지 말라는 거예요. 잘 못된 일이 얼마든지 있어도 아이를 나무라면서 키울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성공했던가 잘한 일이 있거든 그것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해 주라는 거지요. 그래야 자기를, 자기 가능성을 인정하게 되니까요. 잘한 일에 대해서 오래오래 기억해요. 너는 이런 일 잘 한다. 그래서 장점을 계속 극대화하도록 해주는 것이 교육의 원리라고 그래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말씀은
"뇌물성 선물을 주지 마라. 그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순종하도록 하지 마라."
체벌 을 통해서 무서워서 이래 때리고 저래 욕먹고 하니까 그래서 할 수 없이 어떻게 해야 되는 이렇게 되면 반드시 그  마음이 여려져서 세상을 항상 두려움으로 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는 그릇된 길을 가게 됩니다. 또 뇌물 을 주었어요. 공부 잘하면 상주고, 못하면 매 맞고. 잘했다고 상주고 잘했다고 돈 주 고, 잘했다고 선물을 주고 이래 주니까 얘들이 커서 뇌물 주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선물은 그의 행위와 아무 관계없어요. 잘 해도 못 해도 상관이 없어요. 너는 내 아들이고 내 딸이니까 내가 사랑하니까 주는 거다. 그거지. 잘 했으니 주고, 못 했으니 맞고 바로 이것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거예요. 선물에는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탈무드에 재밌는 얘기가 있어요. 선물을 주면서 말을 많이 하면 아니 준만 못하다. 그래요. 잔소리 들으면서
"참 돈 벌기 힘들다."
그런다구요. 들어주기가 힘들잖아요. 뇌물성 선물이 세상을 망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깊이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볼트모어의 빈민굴이 있는데 너무 형편이 어지러워서 어느 사회학자가 연구를 해보았답니다. 거기에는 아편 중독자요, 그저 뭐 알콜 중독자요,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민굴이요. 너무너무 취약지구예요. 그래서 학자들을 보내 연구한 결과 보고서는 이렇습니다. 아무리 기대해 봐도 저 빈민굴은 구제불능이에요. 거기서 자라  나는 어린 아이도 소망이 없음. 그래요. 기다렸다가 25년 후에 다시 사람을 보냈더니
"아니요."
바로 소망 없다고 하던 그곳에서, 아주 훌륭한 180명중에 무려 176명이나 되는 많은 학자, 목사, 교육자, 그리고 훌륭한 과학자들이 나왔더랍니다. '대체 웬일인가?' 하고 원인을 조사하니까 그 속에 그들을 위해서 희생한 한 여인이 있었어요. 한평생을 그들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쳤어요. 그리고 이제는 할머니가 됐는데 그 여인의 그 가르침으로 인해서 이 구제 불능한 빈민굴에서 훌륭한 인물들이 났더란 말입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느냐?"
그는 말했습니다.
"난 그 아이들을 사랑했을 뿐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했다는 거요. 내 어머니가 아니라도 좋아요. 내 아버지가 나빠도 좋아요. 누구인가라도 단 한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할 때에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때 그는 참으로 귀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그 사람, 바로 그 사람이 그 아이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