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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런 시각으로 세상을 보라 ! / 벧전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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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벧전 1:6-7
제목 / 이런 시각으로 세상을 보라 !


얼마 전에 창경궁 옆에 있는 국립서울과학관에서 <인체의 신비전>이 열린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가까운 곳이었는데 성도님들께서도 다 보셨는지요 ?
그 때 그 전시회에 나온 표본들은 실제로 인체를 해부해서 만든 것들이어서 상당한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그 전시회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말 그대로 <인체의 신비>였습니다.
사람의 몸 !
그 몸은 겉으로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비로울 수가 없습니다.
전시회가 그 신비로움을 우리에게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체의 신비 !
그것을 누군가가 충분하게 다 설명한다고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의 지식>으로는 도무지 다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존재 !
여러분과 저는 그런 존재입니다.
성경 <이사야서>는 그런 존재인 우리를 두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 우리는 진흙 !

그렇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흙>을 빚어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도공>이셨고, 우리 인간은 그 손으로 빚어진 <토기>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 몸 바깥쪽에는 <하나님의 지문>이 묻어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혼>을 우리 몸 안에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그냥 <토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살아서 숨쉬는 토기>가 된 것입니다.
그처럼 살아서 숨쉬는 <토기> !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너무나도 만족하셨고 기뻐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완벽한 걸작품>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모습이 <에덴동산>에서의 우리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이 <타락>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성을 다해서 빚으신 <토기>가 금이 가고, 깨어지고, 부서져버린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그 어디에도 쓸 만한 곳이 없는 <토기> !
우리 인간은 그런 모습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안타까우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예레미야 선지자>를 부르시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그 말씀이 <렘 18:1-4> 말씀입니다.
같이 보시겠습니까 ?  구약성경 1079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 가라사대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
  내가 거기서 내 말을 네게 들리리라 하시기로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의 손에서 <파상>하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

성도 여러분 !  파악이 되십니까 ?
하나님께서 <왜> 예레미야 선지로 하여금 토기장이의 집으로 가게 하셨는지를 말입니다.
하나님의 여기 이 말씀 안에는 죄로 인해서 더러워진 인생을 깨어버리신다는 말씀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모든 것을 끝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보십시오 !
깨어버리신 것 !
그것들을 끌어 모아서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드신다 하지 않습니까 ?
하나님의 <재창조> 역사 !
그것이 있음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 이 하나님의 <재창조> 역사 !
그 역사는 결국 우리를 보다 아름다운 존재로 만드시기 위함이 목적입니다.
보시기에 너무나도 기쁘셨던 존재 !
보시기에 너무나도 좋았던 존재 !
우리 인간을 그런 존재로 다시 만들고자 하심이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셔야 하겠습니까 ?
그 어떤 일보다 가장 먼저 하셔야 할 일은 <부수는 것>입니다.
<깨어버리는 것> !
그것이 가장 먼저 하셔야 할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또 어찌하셔야 하겠습니까 ?
그것을 <으깨시는 작업>을 하나님께서는 하셔야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작은 존재>로 하나님께서는 <으깨셔야> 합니다.

그리고 또 그 다음은 무엇을 하셔야 하겠습니까 ?
최대한 작은 존재로 만드신 그것을 이제는 촘촘한 그물 망 위에 올려놓으시고 열심히 <흔드셔야> 합니다.
부드럽고 고운 가루만이 좋은 재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리하셔야 합니다.
<재창조의 역사>는 바로 이런 모습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네 인생을 잘 조명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다고 하는  것 !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자기중심적>인 삶이 깨어지고 부서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의 <생각>과 <비전>이 깨어지고 부서지는 것 !
그것이 우리가 오늘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남에 있어서 <출발점>이요, <시작점>이라는 말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채 질>을 당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온갖 <불순물>들을 걸러내기 위한 하나님의 <채 질> !
그것이 우리 안에는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알고 계십니까 ?
우리 안에 하나님의 손으로 걸러내야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말이다.
<갈 5:19-21> 말씀은 그것이 <15가지>나 된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뭐가 그렇게도 많은지, 같이 보시겠습니까 ?  신약성경 308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

보십시오 !
여기 <15가지>나 되지 않습니까 ?
여기 이 <15가지>를 걸러내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오늘도 열심히 <채 질>을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는 <영혼의 암 덩어리들> !
그것들은 모두가 잘게 부서져야 합니다.
이제까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던 <너절한 생각들> !
그 모든 것들 역시 이제는 걸러져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도바울이 만났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어디로 끌고 가셨습니까 ?
그를 고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인 <아라비아>로 끌고 가셨지 않습니까 ?
그는 그곳에서 3년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러셨습니까 ?
그것은 하나님의 <채 질>이었습니다.
바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율법주의> !
이제까지 그의 인생을 지배하고 있던 <율법주의>를 걸러내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리 하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잊지 마십시오 !
<부서지지 않는 옥합>에서는 <향유>가 흘러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터지지 않는 샘>에서는 절대로 <생수>가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불로 살라지지 않는 제물>에서는 <향연>이 피어오르지 않습니다.

결국은 무슨 말씀입니까 ?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의 우리네 삶 !
그 삶의 모든 영역을 통해서 깨어지고 부서지는 인생의 쓰라린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절대로 <고귀하고 아름다운 인생>으로 거듭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삶이 고단하십니까 ?
지금 삶이 고통스러우시냐는 말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경기>가 너무 나쁘다고 말입니다.
각종 <경기지표>는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경제와 관련 있는 단체는 저마다 그 원인을 분석해서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 때문이다.
<북한 핵 문제> 때문이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다.

이런 저런 말들이 참으로 많이 있지만, 적어도 믿음으로 사는 우리는 그런 시각에서 문제를 보면 안 됩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우리를 보다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만들어 가시기 위한 하나님의 <채 질>입니다.
우리를 재창조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채 질>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현실 속에 담긴 의미가 이것이라면 우리는 오늘 우리가 직면한 어려움을 놓고 <감사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
지금은 우리가 <볼멘 소리를 할 때>가 아닙니다.
그저 죽겠다고 <아우성 칠 때>도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은 우리가 <감사해야 할 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왜 저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두시냐고 말입니다.
나는 구원하시고 왜 저 사람은 하나님께서 구원해 내지 아니하시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대로 심판하시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욕심대로 살다가 결국은 <지옥>에 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오늘 하나님께 드릴 <한 가지 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이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
  어떻게 해서 저 같은 사람을 구원해 내셨습니까 ?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더럽고 추하기 이를 데 없는 나 !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는 왜 자녀로 삼으셨습니까 ?
  왠 일인가 ?
  왠 은혜인가 ?
우리가 오늘 하나님께 드릴 <단 한 가지의 질문>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지금의 나의 모습, 나의 상황 !
그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마십시오 !
하나님께서 심사숙고하셔서 빚어내신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이라면 그것은 그 모습으로 우리가 어딘가에 꼭 필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삶의 정황이 지금 <네모난 못>과 같이 생겼습니까 ?
그렇다면 굳이 우리가 그 모습을 <둥근 모습>으로 바꾸느라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네모난 못>이 있다고 하는 것은 <네모난 구멍>이 어딘 가에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네모난 못>이 굳이 <둥근 구멍>에 자신을 맞추느라고 힘쓰고 애 쓸 필요가 없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주신 상황은 언제나 <가장 귀한 것>,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요즘은 그릇이 없어서 먹을 것을 먹지 못하는 집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느 집에서나 그릇은 넘쳐나고 있습니다.
저희 집에도 제가 살아생전에 단 한 번도 쓰지 못할 그릇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처럼 많은 그릇들 중에는 <금그릇>도, <은그릇>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 중에는 <나무그릇>도, <질그릇>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
그렇게 많은 그릇들이 모두가 귀하게 쓰이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귀하게 쓰이는 그릇들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금그릇>도 아닙니다.
그것은 <은그릇>도 아닙니다.
그것은 <깨끗한 그릇>입니다.

<딤후 2:20-21> 말씀이 여기 이 말씀을 우리에게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같이 보시겠습니까 ?  신약성경 344면.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

성도 여러분 !  이렇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삶의 정황이 어떠한가>에 있지 않습니다.
내 인생이 지금 <네모>인가 <세모>인가 아니면 <원형>인가 ?
내가 살고 있는 집이 <20평>인가 <30평>인가 <40평>인가 ?
내가 지금 <중산층>인가 <부유층>인가 아니면 <저소득층>인가 ?
그런 것들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깨끗한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끗하면> 하나님은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이런 내용이지 않습니까 ?

그러기에 우리에게 있어서 <최대의 관건>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기에 합당할 만큼 <깨끗한 존재>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우리, 다시 한 번 같이 보실래요 ?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

성도 여러분 !
무슨 말씀입니까 ?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여러 가지 모양의 <시련들> !
그 모든 <시련들>이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어간다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 몰아닥친 <시련들> !
바로 그것들이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어갑니다.
<도가니 속의 불>이 그 안의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기에 왜 이런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들 !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무엇인가 들을 것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누군가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부서져야 하리 더 많이 부서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더 많이 무너져야 하리
  이 생의 욕심이 하얗게 부서져 소금이 될 때까지
  교만한 마음이 산산히 부서져 흰 파도가 될 때까지
  나는 바다가 되어서 이 땅의 모든 것 미련 없이 다 버리고
  슬픔도 괴로움도 씻기고 부서져서 맑고 깊은 바다가 되어서
  모든 부패를 삭히어 주는 맑고 깊은 바다가 되어서
  영혼의 바다에 사랑의 별 하나 뜨게 하리 !

참으로 <귀한 노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 이 노래가 우리 모두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고백>이요 <진실된 노래>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그렇다면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의 손길>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
우리 인생을 <티나 주름이 없는 인생>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 !
<하나님의 그 손길>을 거부하지 마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우리가 <오른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자꾸만 <왼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
어떻게 하시든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우리를 끌고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모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이상 하나님은 그러실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  잊지 마십시오 !
하나님과 겨루기에는 <우리의 팔>이 너무나 짧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과 겨루는 인생 !
하나님과 줄다리기를 하는 인생 !
그런 인생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하나님과 줄다리기를 하는 인생 !
그런 인생 속에는 언제나 팽팽한 <긴장감>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왜 그런 <긴장감> 속에서 살아가려고 하십니까 ?
오늘이라도 당장 <하나님 편>으로 옮기십시오 !
하나님과 <같은 편>이 되시라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힘으로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지 않습니까 ?

우리 삶 속에 진정 <승리의 노래>가 가득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제 <찬 217 장>을 진실된 마음을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
  온전히 나를 주장하사
  주님과 함께 동거함을
  만민이 알게 하옵소서 !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우리가 <믿음 없는 눈>으로 바라보면 지금의 내 인생이 <단순파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우리를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던 모습으로 <재창조>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그런 열심에 <반응>을 보일 때입니다.
우리는 지금 <20년만의 불경기>를 맞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때보다도 훨씬 더 심한 불경기를 우리는 지금 맞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일 할 곳이 없어서 거리를 방황하고 있습니다.
벌려 놓은 <사업장>마다 죽겠다고 아우성입니다.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이 달은 가정의 달입니다.
이처럼 복되고 귀한 달에 우리가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겠습니까 ?
그저 탄식하며, 원망하며 - 그렇게 이 달을 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
어떻게 하든지 이 달을 기쁨이 가득한 달로 바꾸어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그저 단순하고도 일시적인 현상으로만 보지 마십시오 !
그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라는 말입니다.

이제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십시오 !
이제는 다른 시각으로 지금 <내 삶의 현장>을 보라는 말입니다.
깨어지고 부서진 지금 <내 삶의 모습> !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지금 내 상황> !
이 모든 것을 이제는 우리를 보시기에 좋았던 모습으로 다시 만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수고>, <하나님의 채 질>, <하나님의 열심>으로 보자는 말입니다.
<재창조의 역사>는 바로 거기에서 시작됩니다.
<회복과 치유의 역사>는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
잊지 마십시오 !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디에서나 역사하지 아니하십니다.
믿음이 있는 곳 !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 있는 곳 !
하나님은 그런 곳에서 역사하십니다.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이 가정의 달을 맞은 <여러분의 가정>이요, <여러분의 사업장>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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