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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으로 / 렘 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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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렘 31:1-3

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2)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3)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1. 위기의 자녀들

오늘은 교회에서 어린이 주일로 지킵니다. 교회가 어린이들을 중요하게 여기며 교육에 투자하고 그들을 돕는 일에 왜 열심을 내어야 하는가를 한번 더 새김질해보는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뿐 아니라 성도들의 가정에서 자녀 양육에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옳은가를 짚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모 텔레비젼 방송사의 특집으로 청소년의 性 문제를 다룬 적이 있었습니다. 주로 청소년들이 인터넷을 통한 잘못된 정보를 입수하여 음란 문화에 빠지는 몇몇 유형들을 다루었습니다. 방송사에서 그 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어머니들을 초청하여 세미나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요즘 청소년들의 문제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극소수의 탈선 비행 청소년들의 일로 여겼던 것이 바로 내 자녀의 문제로 여겨지면서 모두 위기감을 가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방송사의 프로듀셔와 접촉하여 인텨뷰한 청소년들이 고2,3이 아니라 초등학교 4,5학년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문제 부모의 가정에서만이 아니라 평범한 가정의 자녀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정의 자녀들은 죄에 너무도 쉽게 오염될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 부모들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오히려 방황하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2. 아버지이신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1절)

본문 1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두고 "가족"(clan, tribe)이란 말로 불렀습니다. 그렇기에 "가족의 하나님"이란 "아버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도 그렇거니와 신약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그 뜻을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며 부르라고 했습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먼저 "아바 아버지여"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우리들의 아버지로써 어떤 모습을 보여주셨는가를 봅시다.

먼저 2절을 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2절)

첫째는 애굽에서 해방시키신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잃어버렸던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사실 그들에게 임한 고통은 애굽의 삼각주 고센 땅에서 약속의 땅을 잊어버리고 정착하여 살려는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기보다는 애굽의 백성이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번성하여 갔습니다. 그러나 그 때 요셉을 알지 못하는 바로가 등극함으로 이스라엘에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의 자녀들이 풍요한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 괜찮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 곳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 곳이 아니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며 악의 종노릇하는 것을 두고 보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고통이 따르더라도 그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는 자녀의 자리가 어떤 곳인지를 옳게 판단하셔야 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여 좋은 성적을 얻어 명문 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 출세하여도 그 자녀가 믿음을 져버리고 악한 길로 가는 것은 아닌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됨을 포기하고 세상의 출세를 더 즐거워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좋은 부모는 자녀에게 분명한 정체감과 가치관을 심어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잠언은 바른 아버지 像으로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13:24)

둘째는 광야에서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출애굽의 은총을 입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아낙 자손의 거대함에 눌리어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 불순종과 불신으로 결국 이스라엘은 광야 40년간 유리하며 고생하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셨습니다. 뿐 아니라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과 함께 동행하셨고 광야 내내 불기둥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갈 길을 인도하시며 지키셨고 침노했던 여러 적군을 물리쳐주셨던 아버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꾸중도 하고 벌도 주시지만 그들을 결코 버리시거나 포기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 보이신 아버지像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고. 하나님은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이름"이란 바로 "아버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버지 여러분! 우리들도 이런 아버지가 되십시다. 자식이 미워도 고와도 끝까지 사랑하는 아버지가 됩시다. 자녀가 제 자리를 잡도록 최선을 다하여 이끌어주는 책임이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내 체면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의 본질적 사명입니다.
두란노 아버지 학교에서는 "아버지의 4대 기능"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a. 결속하기: 자녀들을 한 인격체로 성장시키며, 전체 가족 구성원을 하나  로 결속시키는 기능
b. 사랑하기: 자녀들을 수용하며, 인정하며, 세워주는 기능
c. 인도하기: 자녀들의 삶을 통해서 올바른 길을 가도록 지도하는 기능
d. 파송하기: 자녀에게 능력을 부가해서 자녀 스스로 독립된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기능

3. 무궁한 사랑으로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3절)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무궁한 사랑입니다. 우리들의 자녀에 대한 태도도 그래야 할 것입니다. "무궁함"이란 긴 세월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든 상황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어떤 경우에서도 하나님은 자녀를 사랑하셨습니다.

자녀를 도덕적 규율로 키우면 도덕주의자가 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과 섞이어 화평하게 살지 못합니다. 실수와 부족 가운데서 용서와 도움을 체험하며 키워야 합니다. 그럴 때 다른 이를 용서하며 도와줄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그게 바로 덕과 겸손입니다. 

사랑엔 말과 힘과 물질의 도움만이 아니라 그기엔 스킨쉽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늘 스킨쉽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름기둥 불기둥이었고, 광야에서의 만나였고, 때때로 빽빽한 구름과 불과 진동으로 화도 발하셨고, 염병의 회초리를 들기도 하셨고, 품에 안고 홍해와 요단강을 건너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도 그렇게 노래했습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 12:2)

우리들의 자녀가 의뢰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엄하다는 것이 두려움으로 자녀에게 각인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엄한 부모라도 스킨쉽이 있다면 극복될 것입니다. 스킨쉽이 풍족할 때 꾸중도 회초리도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느껴집니다. 

신명기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 . .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신 1:30-31,33) 

물질적 모든 요구를 충족시켜주어도 스킨쉽이 없는 부모도 많습니다. 그럴 때 자녀는 부모를 물질 공급자로만 볼 것입니다. 필요한 것이 없을 때는 부모도 필요 없게 되어 찾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심을 증거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들도 자녀에게 임마누(엘)의 부모가 되도록 합시다. 그리하면 우리 자녀들이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아름답고 강하고 의롭게 자라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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