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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녀교육 어떻게 할것인가? / 신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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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자녀교육 어떻게 할것인가?
본 문 신 6:4~9
설교자 박봉수 목사


  요즘 소위 ‘기러기 아빠’들이 늘어나고 있답니다. 원래 기러기는 암컷을 잃어도 혼자 새끼를 키우는 습성이 있어서, 가족학이나 복지학에서는 혼자서 애를 키우는 아버지를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어왔습니다. 그런데 요즘 듣는 ‘기러기 아빠’는 조금 다릅니다. 아내를 딸려서 자녀들을 유학 보내고 홀로 자취 생활하는 ‘외기러기 아빠’를 말합니다.

  이런 기러기 가족 현상은 90년대부터 시작된 조기 유학 열풍이 빚어낸 신종 이산가족 현상입니다. 한국적 교육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는 부모들이 조기 유학을 보냈더니 갖가지 문제가 생기자 아예 엄마까지도 유학대열에 합류해서 생겨난 현상입니다. 지난해 서울시 교육청 집계에 따르면 유학을 위해 학교를 그만 둔 중고교생들이 무려 4326명에 달한다는 것입니다. 1년 만에 또 엄청난 수의 기러기 아빠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 기러기 아빠들은 자녀들 교육비, 가족들 생활비를 대느라 등골이 휩니다. 나이 들어 자취생활하며 그 불편함과 그 외로움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오직 자식 하나 교육 잘 시키려고 저들이 보여주는 희생은 가히 눈물겹습니다. 아마도 우리 한국 사람들처럼 자녀교육에 헌신적인 민족은 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자녀교육에 쏟는 열정과 헌신에 비해 열매가 시원치 않다는 것입니다. 과외다 학원이다 사교육비를 쏟아 붓고 안 되면 조기유학까지 보내려고 몸부림을 쳐 보지만 결과가 썩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부모들은 이 자녀교육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녀교육 때문에 더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남들이 하는 자녀교육 다해야 하고 r게다가 신앙교육까지 더해야 하기 때문에 배나 힘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일단 세상교육부터 하고 나중에 대학 가고 난 뒤에 신앙교육에 힘쓰지’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생각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세상교육도 신앙교육도 때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의 자녀 교육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자녀교육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인간 창조로 창조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실 때 창 2장을 보면 가정을 만드시면서 인간 창조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가정은 창조 당시부터 있어왔다는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나라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가정은 존재했습니다. 교회가 세워지기 전부터 가정은 존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만큼 가정을 중요하게 여기셨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가정을 미리 만드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정을 중요시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의 예에서 단적으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 12:1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기존의 우상을 섬기던 가정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 가정에 흐르던 영적인 저주를 끊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 12: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하나님께서 새롭게 아브라함의 가정을 세우셔서 그 가정에 은혜와 축복이 넘쳐흐르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의 가정은 창대케 되어 하나의 민족까지 될 것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이 땅에서 번창하기를 바라십니다. 은혜와 축복이 넘쳐흐르는 가정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뿐 아니라 믿음의 가정이 대를 이어 자자손손 번창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하나의 큰 가문으로 더 나아가 하나의 민족으로 발전해 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녀의 신앙교육입니다. 신6:6을 보면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쳐 전수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 다음대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도록 자녀들을 믿음 안에 바로 세우라는 말씀입니다.

  신 5:5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대를 이어 심지어 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가정에 은혜 내려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되려면 대가 끊기면 안 됩니다. 열차가 가운데 한 량이라도 끊어지면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대에 그것이 끊어지지 않게 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비전이 있습니다. 이 땅에 믿음의 가문들이 번창하여 이 땅을 새롭게 하시려는 비전입니다. 자녀교육은 하나님께서 이 비전을 위해 주신 사명입니다.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들은 다소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가 자녀들에 대한 기대감과 나아가 환상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 만큼은 공부를 잘하겠지, 신앙생활 잘하겠지, 착하겠지, 속 썩이지 않겠지... 특별히 어렸을 때 한두 번 남다른 모습을 보이면 그 기대감은 더 커집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유치원을 가면서 하나 둘 씩 그 기대감이 물거품이 되고, 환상이 깨집니다. 초등학교에 가면 그 기대감이 배신감이 되고, 중 고등학교에 가면 아이에 대한 원망도 늘어가고 심지어 아이 때문에 절망까지 겪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자라서는 아예 자식과 원수로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런 부모들 밑에서는 훌륭한 신앙인이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자식을 원망하는 부모, 자식 때문에 절망을 느끼는 부모 이들은 신앙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위대한 신앙인들은 대개가 늦게 태어났습니다. 부모들의 애를 태우며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났습니다.

  이삭이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이 75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아들을 낳겠다고 뜻 밖에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삭이 태어난 것은 100세입니다. 2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야곱도 그랬습니다. 이삭이 40에 장가를 들었습니다. 늦게 결혼을 했는데 리브가가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약속은 이미 받은 상태입니다. 나이 60에 쌍둥이로 에서와 야곱을 낳았습니다.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긴 세월 동안 그 부모들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창 25:21을 보면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한나도 그랬습니다. 삼상 1:8을 보면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라고 했습니다. 한나의 긴 세월 눈물어린 통곡의 기도 뒤에 사무엘에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약속을 하시고는 그토록 오래 아이를 주시지 않았을까요? 간단합니다. 부모를 제대로 신앙 교육할 훈련을 시키시기 위함입니다. 저들이 긴 기간 기도하며 기다리면서 여러 가지 많은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우선 이 아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라고 고백하게 됐을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했을 것입니다. 좀 못생겨도 감사했을 것입니다. 머리가 나빠도 감사했을 것입니다. 재주가 없어도 감사했을 것입니다. 원망이나 불평은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내 뜻대로 키우지 말고 전혀 하나님 뜻대로 키우겠다고 다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욕심 인간적인 기대감 다 버렸을 것입니다. 한나는 아예 그 아이를 하나님께 나실인으로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정말로 사랑했을 것입니다. 너무도 어렵게 얻은 아이고 너무도 오래 기다린 끝에 얻은 아이기 때문에 뜨겁게 사랑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주신 아이이기 때문에 보통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더 사랑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한 준비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을 원망하기 이전에, 아이들 때문에 절망하기 이전에 우리의 준비 없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부모인 우리의 부족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먼저는 그 아이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십시오.


자녀에 대한 올바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교육을 그림 그리는 일로 비유하곤 합니다. 백지에 그림을 그리려면 먼저 그리는 사람의 마음속에 그리려는 그림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호랑이를 그리려면 그 마음속에 멋진 백두산 호랑이가 표호하는 그림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를 교육하려면 그 아이가 어떤 아이가 됐으면 좋겠다는 그림이 그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자녀교육의 비전이라 부릅니다.

  그림 그리는 일이 그림이 마음속의 그림을 캔버스에 옮기는 작업이듯이 교육 역시 마음속의 비전을 자녀들에게 실현시키는 작업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비전이 중요합니다. 그 비전이 잘못되면 자녀교육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 비전이 제대로 될 때야 자녀교육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리석은 질문 하나를 던져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이 되기를 바라십니까? 1) 머리 좋은 아이입니까? 2) 마음씨 곱고 성격 좋은 아이입니까? 3) 믿음이 좋은 아이입니까? 물론 셋 다이기를 바라시겠죠?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그 셋의 우선순위를 매긴다면 어떻습니까? 1)-2)-3) 이런 순서입니까? 아니면 2)-1)-3)입니까? 아니면 3)-2)-1)입니까? 

  심리학에서는 머리 좋은 척도를 재는 기준을 IQ(Intelligence Quotient)라고 합니다. 그리고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감성지수를 EQ(Emotional Quotient)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번 부흥회에 오셨던 송재식 목사님이 쓰신 표현으로 영성지수 SQ(Spiritual Quotient)가 있습니다. 물론 이 SQ라는 말은 일반적으로는 쓰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비전으로 갖는 아이의 모습은 우선 SQ가 높은 아이이고, 그 다음으로 EQ와 IQ가 높은 아이여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교육을 위한 기본 전제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IQ-EQ-SQ 이런 순서로 비전이 자리 잡고 있다면 정말 그런 아이가 되고 맙니다.


  국민일보 어린이 글짓기 1등 작을 읽다가 정말 큰 감동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줄여보면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구로동에 사는 용욱이예요. 구로 초등학교 3학년이구요. 우리는 벌집에 살아요. 우리 방은 할머니 말씀대로 라면 박스만해서 4식구가 다같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엄마는 구로2동에 있는 술집에서 주무시고 새벽에 오셔요. 할머니는 운이 좋아야 한 달에 두 번 정도 취로사업장에 가서 일을 하시고 있어요. 아빠는 청송교도소에 계시는데 엄마는 우리보고 죽었다고 말해요.

  예수님, 우리는 참 가난해요. 그래서 동회에서 구호양식을 주는데도 도시락 못 싸 가는 날이 더 많아요. 지난 부활절날 제가 엄마 때문에 회개하면서 운 것 예수님은 보셨죠. 그날 교회에서 찐 계란 두 개를 부활절 선물로 주시길래 집에 갖고 와서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드리면서 생전 처음으로 전도를 했어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구요.

  몸이 아파서 누워계시던 엄마는 화를 내시면서 "흥, 구원만 받아서 사냐" 하시면서 "집주인이 전세금 50만원에 월세 3만원을 더 올려달라고 하는데, 예수님이 구원만 말고 50만원만 주시면 네가 예수를 믿지 말라고 해도 믿겠다" 하시지 않겠어요. 저는 엄마가 예수님을 믿겠다는 말이 신이 나서 기도한 거 예수님은 아시지요?

  어린이날 기념 글짓기 대회가 덕수궁에서 있다면서 우리 담임선생님께서 저를 뽑아서 보내 주셨어요. 예수님, 그 날 제가 1등 상을 타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시지요? 그런데 그 날 저녁에 글짓기의 심사위원장을 맡으신 노 할아버지 동화작가 선생님이 물어물어 저희 집에 찾아오신 거예요. 그 할아버지는 자신이 지으신 동화책 다섯 권을 놓고 돌아가셨어요. 저는 밤늦게까지 할아버지께서 지으신 동화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어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책갈피에서 흰 봉투 하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펴보니 생전 처음 보는 수표가 아니겠어요.

  저는 마음속으로 '할아버지께서 가져 오셨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주신 거예요'라고 말하는데, 엄마도 그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얘 용욱아 예수님이 구원만 주신 것이 아니라 50만원도 주셨구나"라고 우시면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할머니도 우시고 저도 감사의 눈물이 나왔어요. 동생 용숙이도 괜히 따라 울면서 "오빠, 그럼 우리 안 쫓겨나구 여기서 계속 사는거야?" 말했어요.

  너무나 신기한 일이 주일날 또 벌어졌어요. 엄마가 주일날 교회에 가겠다고 화장을 엷게 하시고 나선 것이에요. 대예배에 가신 엄마가 얼마나 우셨는지 두 눈이 솔방울 만해 가지고 집에 오셨더라구요. 저는 엄마가 저렇게 변하신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고마우신 예수님! 참 좋으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사랑으로 주신 수표는 제가 커서 꼭 갚을께요. 예수님! 너무나 좋으신 예수님! 이 세상에서 최고의 예수님을 용욱이가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용욱이를 얼마나 사랑하실까? 바로 이런 아이가 영이 맑은 아이이고 SQ가 높은 아이로구나’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사랑하실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영이 맑고 SQ가 높은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자녀를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라고 말씀했습니다. 분명히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도록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일부 부모들은 아이들이 열심히 신앙생활하려 할 때 오히려 가로막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직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공부해야 한다고 수련회도 못 가게 합니다. 주일 교회에서 지내는 시간 때문에 잔소리합니다. 이런 부모들이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까요?


  지금 캐나다에 간 개그우먼 이성미씨 이야기입니다. 제가 5년여 성경공부를 지도했습니다. 한번은 자녀교육의 중요성을 공부했는데 그 다음 주에 심각한 얼굴로 찾아 왔더라구요. 자기 큰 아이가 엇나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게 좋은 신학생 한 분을 추천해 달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아이 과외를 시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과외냐 했더니 신앙교육 과외를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성경도 가르쳐주고 기도도 함께 하고 영적으로 바로 자라도록 지도해 줄 과외 선생님을 찾아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듣다 신앙과외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그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가정을 크게 축복하시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녀의 신앙교육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손을 놓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러다가 은혜의 대가 끊긴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축복의 가문이 문을 닫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가정 예배를 드리십시오. 아이들 교회생활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십시오. 아이들과 기도 제목을 나누며 함께 기도하는 일을 해 보십시오. 아이들이 지혜와 키가 자라듯이 그 믿음이 자라도록 도와주십시오.


# 기도/

        자녀교육의 사명을 깨닫게 하소서.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하시고,
        비전을 가지고 부지런히 가르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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