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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이를 구원하는 것 / 마19: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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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이를 구원하는 것
본문 : 마태복음19;13-15


지금도 어린아이가 태어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직도 세상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말이 있습니다.자녀들이야 말로 부모들에게 소망과 기쁨이 됩니다.

어느 박물관에 하루는 이상한 관람객 한 분이 들어 왔습니다. 겉은 멀쩡하게 생긴 신사인데 쪼그려 앉은 채 앉은뱅이 걸음으로 관람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앉은뱅이인 줄 알았지만 돌아갈 때 보니 여느 사람처럼 두 발로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궁금해진 수위가 신사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선생님, 건강하신 분이 왜 그렇게 앉은뱅이 걸음으로 관람을 하셨습니까?" 그러자 신사는 빙그레 웃으며 "내일이면 알 수 있을 것"이라 대답하고 돌아갔습니다.

바로 그 다음날, 그 이상한 신사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이끌고 박물관을 견학을 왔습니다. 바로 이 신사가 '눈 높이 교육'으로 유명한 피바디 선생님입니다. 누가 좋은 선생입니까?  아이의 눈 높이를 맞추는 선생입니다. 누가 좋은 부모입니까? 아이의 눈 높이를 맞추어주는 부모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 된 우리는 공부가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 자녀를 바르게 교육함에 있어서 무지보다 더 나쁘고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에 대해 부모들이 함부로 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어른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온 아이들을 꾸짖었습니다. 아이들이었기에 함부로 대한 것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보통 아이들을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을 함부로 대합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일단 꾸짖고 억누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많은 자녀들이 바로 이 부모들이 함부로 대하는 것으로 인하여 상처와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 상처와 고통이 자녀들이 잘못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또 사랑하기 때문에 함부로 해도 된다고 잘못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비록 어릴지라도 저들도 하나의 소중한 인격들입니다. 물론 아직 미숙한 인격이기 때문에 저들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때로는 꾸짖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매도 들어야 하지만 그러나 꾸짖고 교훈하고 심지어 매질을 할 때에도 저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어야 하고 예의를 갖추어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의 인격을 함부로 무시하고 무례함으로 저들에게 정신적이고 인격적인 폭력을 가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반항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들이 부모들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고 반항하려고 하는 중요한 이유는 꾸짖음과 매 때문이 아닙니다. 부모들이 자신들의 인격을 무시하고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무례함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늘 사람들을 대할 때 예를 지켰습니다. 사람들이 멸시하는 거지도, 심지어 창기들까지도 예를 갖추어 대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을 함부로 대했지만 예수님은 "저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예를 다해 대합니다. 참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자식을 참으로 사랑한다면 자식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줄 알아야 합니다. 예의는 어른에게만 갖추는 것인 줄로 아는 분들이 있는데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의는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어른들이 먼저 아이들에게 예의를 갖출 줄 알 때, 우리 아이들이 예의를 배우게 될 것이고 어른들에 대해서도 예의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방임주의 교육의 문제점

그 다음 젊은 신세대들의 자녀 교육 가운데 큰 문제점 중의 하나가 방임주의 교육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매우 불행한 경향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 부모들과 비교해서 한국 부모처럼 자기 자녀들을 멋대로 내버려두는, 교육의 의지가 없는 부모가 없습니다. 요즈음 한국인들을 객관적으로 보고 평가하는 많은 책들이 외국인들에 의해서 쓰여지고 있는데 영국의 The Times의 기자로 한국에 와서 15년 이상 살았던 한 분이 <한국인을 말한다>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한국 아이들은 끊임없이 응석을 부린다. 특히 남자애들은 좋아하는 일을 참고 미루도록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모든 것을 즉각 마음대로 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충동적이고 단기적인 일에 몰두하고 하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성질을 부리곤 한다. 서구인들이 보기에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 이것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불행한 일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한 때 베스트셀러로 한국의 여러 계층에 회자되고 있는 일본인 이께마라 마모루가  쓴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 이란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한국의 어린이는 온상 속에서만 자라는 떡잎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질이 별나서 꽤 말썽을 피운 축이다. 친구랑 싸움을 하고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내 손을 잡고 그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상대방 집에 찾아가 조건 없이 사과를 해야만 했다. 내 입술이 찢어졌든 터졌든 그것은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나서야 어머니는 내 상처를 치료해 주셨다. 일본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한국에서도 아이가 싸우고 오면 상대방을 찾아가는 것 까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단 찾아가서는 사과를 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어떻게 키웠기에 남의 집 귀한 자식을 이 꼴로 만들어 놓았느냐고 언성을 높인다. 그러니 아이 싸움이 곧잘 어른 싸움으로 번지곤 한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 설사 내가 좀 잘 못 했다 해도 내 뒤에는 부모가 버티고 있고 언제 어디선지 내 편을 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는 자기 행동에 잘잘못을 판단할 정도로 철이 들었는데도 정작 부모 눈에는 아이의 잘못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또한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는데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백지와 같아서 본대로 들은 대로 따라합니다.

유치원에 갓 입학한 다섯 살 난 꼬마가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선생님에게 다급하게 말했습니다."선생님, 저 고추에 오줌이 마려워요, 금방 쌀 것 같아요" 아이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유치원 선생님은 화장실로 보내기 전에 훈계를 했습니다.  "애야, 여자친구들이 많은데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요.!" "그럼 어떻게 말해요?" "그럴 땐 '휘파람을 불고 싶어요'라고 하세요. 그날 밤, 꼬마는 잠을 자다 오줌이 마려워 옆에 자고 있던 엄마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엄마, 나 휘파람 불고 싶어요!" "뭐 휘파람?  밤에 웬 휘파람? 그냥 자!" "아이 엄마, 너무 급해, 꼭 불어야 한단 말이야!" 그러자 몹시도 졸린 표정으로 엄마가 말했습니다,."얘가 왜 이래? 정 불고 싶으면 엄마 귀에다 대고 살짝 불어!" 아이들은 아무 것도 그리지 않은 백지와 같습니다. 그 백지 위에 가장 많은 그림을 그려 넣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부모입니다. 그러기에 부모는 말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말, 긍정적인 말, 약속을 지키는 부모가 되어야 하고 삶의 본이 되어야 하고 신앙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천사들은 땅에 있는 사람들과 하늘나라 보좌를 연결시키는 영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백성들을 보면 모두가 신화와 같은 기적적인 원리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났을 때 하늘나라의 어린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않고 다시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이는 몸이 점점 커 지면서 정신의 세계로 들어가고 더 깊어지면 영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데서 출발해서 보이지 않는 세계로 자꾸 변하는 것이 사람의 인생입니다. 사람은 그냥 겉으로 봐서는 모릅니다.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의식, 정신적인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영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점점 의식의 세계가 열리고 영의 세계가 열림에 따라 사람이 달라집니다. 그것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물질의 세계가 아닌 영의 세계(하늘나라를 열어 가는 것)와 의식의 세계(환경을 열어 가는 것)를 통해서 신비의 세계, 미래의 세계를 열어 가는 것이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을 때도 의식을 개발시키고, 영을 개발시켜서 내가 너로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으로 너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복 받는 삶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75세인 자식도 없는 노인을 세워서 새로운 기적의 역사를 시작하는데 그것은 어떤 사람이라도 의식의 세계, 영의 세계가 열리기 시작하면 얼마든지 많은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직 자라지 않은 영적인 아기를 키워야 한다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아직 자라지 않은 영적인 아기를 키워야 합니다. 이 아기가 크지 않으면 정말 자아의 세계가 열리질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 속의 아기를 키우기 위해서 나의 모든 죄를 몽땅 용서해 주셨습니다. 아기는 잘못할 수밖에 없고 아기는 실수할 수밖에 없고 못된 짓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속에는 다 아기가 들어가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 속에 아기를 키워 주시려고 누구든지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를 다 사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는 아기로 나가야 합니다. 아기를 키우지 않고 점잖은 척 하면 시간이 갈수록 늙어 가지만 속은 죽을 지경이 되어서 의식이 개발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섭고 비참한 것입니다. 그런 줄 알고 우리는 서로가 상대방의 아기를 받아주고 키워 줍시다. 누구나 아기노릇을 하더라도 받아 주어서 그 아기를 키워서 그 사람의 의식을 개발 시켜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의 의식의 세계를 열어 주신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긴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서 울고 그 자리에서 웃기 때문에 절대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있는 어린아이를 키워주시려고 찾아오시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 영적인 자녀가 된 것을 믿으시고 모든 스트레스나 긴장감을 풀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 의식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과 늘 어울리고 자꾸 쓸데없는 곳에 돌아다니면 믿음이 자라지를 않아서 영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와서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은 절대로 믿음이 자라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와서는 하나님 말씀대로만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여서 스스로를 쳐서 복종하고 순종할 때마다 나의 나쁜 영들이 자꾸 떠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전혀 새로운 인생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영이 변하면서 기적이 나타나서 영적인 세계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처지가 어찌 되었든지 영적인 변화가 나타나면 반드시 하늘의 세계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보이는 환경이나 어떤 보이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보이는 것을 따라 가지 마시고 주님께서 주신 말씀 가지고 움직이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주님께서 주신 사명으로 움직이시면 반드시 영의 세계가 열려서 천사는 수종 들고 마귀는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의 위치가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을 때때로 물질적 여건을 두고 생각하고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음식, 좋은 의복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음식으로 말하면 음식보다 중요한 것은 입맛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더라도 입맛이 가시면 그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냄새도 싫습니다. 역겹습니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 입맛이라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사람의 입맛은 네 살 때 결정이 되고 그 입맛대로 일생을 사는 것입니다. 특별히 문화인류학에서는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사람은 나이 40이 넘으면 네 살 때 먹던 음식으로 입맛이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 때의 입맛이 한평생  그 사람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입맛이란 바로 가치관이요, 세계관이요, 행복관입니다. 내가 가진 근본적인 이 가치관을 기준으로 행복한 것이고 거기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부모님의 가르침이나 교육과 명령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부모님이 하는 것을 보면서 모방한다는 것입니다. 듣기보다는 보면서 배우는 것이고, 느낌으로 배웁니다. 부모님이 저렇게 말하고 있지만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음식으로 말하면 부모님 자신들이 맛있게 먹어야합니다. 결국은 부모님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선호하고 무엇을 행복해하고 무엇을 즐기나? 하는 것이 자녀들에게 가치관, 세계관, 행복관, 인생 철학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것을 가지고 한평생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중요합니까?

어렸을 때 너무 억압을 받으면서 자란 사람은 커서 독재자가 되고 어렸을 때 너무 눈치를 보고 산 사람은 반드시 사기꾼이 됩니다. 그러니 이것은 다 어렸을 때 입맛이 형성되는 것 같이 거기서 다 결정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가장 큰 죄는 실족케 하는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큰 죄는 어린아이들을 실족케 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아주 깨끗한 백지와 같은 어린아이들의 마음속에 먹칠을 한다면 이것 때문에 한평생 저들은 불행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한 때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라고 있습니다. 그 지존파의 대부가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그 때에 되어졌던 이야기입니다. 그는 옛날을 회고했습니다. 17년 전에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의 선생님께서 호되게 그를 꾸지람했답니다.

"왜 너는 그림 그리는 걸 알면서도 크레용을 가져오지 않았느냐? 왜 번번이 가져오지 않았느냐? 무슨 정신이냐?" 아무리 나무래도 그는 말이 없습니다. "너무 가난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못 가져왔습니다."

그 말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그가 주의를 잘못 하는 줄 알고, 생각이 모자란 줄 알고, 혹은 반항하는 것처럼 생각을 해서 아주 충혈 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면서 마구 때렸습니다. 때리던 끝에 이렇게까지 말했습니다. "이 녀석아! 훔쳐서라도 가져와야 될 것 아니냐. 준비물을 왜 안 가져오느냐?" 그 때에 이 아이는 빗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형장에서 최후 진술을 합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그 한 마디가 내 일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때부터 훔쳤고 도둑질하는 것을 배웠으며 도둑질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오늘의 내 운명은 이렇게 됐습니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한 말 한 마디, 내가 불쑥 내뱉은 말 한마디, 잠깐 보여준 사건 하나가 그 어린아이의 일생을 이렇게 바꾸어 놓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자녀들을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하고 그들을 영적으로 사랑하고 부모의 도리를 하나님 앞에 다 하셔야 하겠습니다. 좋은 옷을 사주고, 용돈 많이 주고, 공부 많이 시키는 것이 사랑이 아니고 그들의 영혼이 잘 되게 바른 교육을 시켜서 바른 사람 만드는 것이 참된 교육이며, 참된 사랑인 것입니다.

세브란스 병원장이었던 어용설 박사님은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이라는 글을 썼는데 자기가 자기 된 것은 어머니의 기도의 힘이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신앙은 단순했습니다. 그러나 독실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확신하셨으며, 평생동안 매일 한결같이 자식인 나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혼자 기도할 때에나 가정예배를 드릴 때 언제나 어머니는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과거를 돌아볼 때에 여러 가지 역경과 위험한 일을 당하였지만 그 모든 것을 무사히 지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와 확신 있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나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 잘되고 못되는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인도해야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마음 중심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너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한 줄 아느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아느냐?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는지 아느냐? 기도의 응답으로 너를 낳았고 기도와 함께 너를 키웠단다. 그 생명이 하나님께로 와서 내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큰 선물이 너희들이다. 내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이 바로 너란다." 이 한 마디만 자녀들의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면 어떤 환경에 놓여있어도 절대 잘못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것이 없는 한, 그것은 바로 살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영접해야 됩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주께로부터 오고, 주께로부터 온 선물이기 때문에 소중합니다.

누구인가라도 단 한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할 때에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때 그는 참으로 귀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그 사람, 바로 그 사람이 그 아이를 구원하는 것이고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될 때 가장 건강하고 훌륭한 기독교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가정은 천국이 되고 하나님 나라의 미래는 보다 밝고 넓게 펼쳐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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