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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녀 어떻게 키울 것인가? / 눅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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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누가복음 2장 40절 
제목 : 자녀 어떻게 키울 것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좋으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이 자리에 나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오월 첫째 주일은 한국 교회가 어린이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볼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 어떻게 키울 것인가?”입니다. 정말 쉽지 않은 주제입니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더욱 쉽지 않는 주제라는 느낌이 듭니다. 학부모와 교육부장관이 첨예하게 맞서는 주제이기도 하고, 전국교사노동조합에 속한 교사들과 그렇지 않은 교사들이 일치하지 않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행히 이 혼란된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성경은 여기에 우리에게 어떻게 우리 자녀 키울 것인지에 대해서 규범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구주 예수님의 성장과정을 기록한 부분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녀들을 키울 것인가에 대해서 지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40절은 예수님의 성장 과정을 한절로 요약합니다. 최소한 태어나서부터 12살 될 때까지의 과정을 딱 한절로 기록함으로서 아이가 그 시기기까지 어떻게 우리 아이들을 키울 것인지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단숨에 읽어버릴 수 있는 한 구절이지마는 사실은 살펴보면 적어도 독립된 네 문장이 그 속에는 있습니다. 첫째는 ‘아기가 자랐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아기가 강하여졌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그 아이의 지혜가 충족해졌다’는 것이고 마지막 문장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 아이 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처음 세 문장에는 각 영역별로 아이의 성장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는 이 세 영역에서의 축복된 자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맘미암은 사실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기 예수의 성장과정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자녀,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해서 질문해 보겠습니다. 우선 신체적인 성장 영역부터 살펴봅시다. 아기가 어떻게 자라납니까? 아기가 몸무게가 늘고 키가 자라고 팔다리에 힘이 오르고 걷고 뛰고 하는 것이 신체적 성장과정입니다. 태어난 아이는 무엇보다도 신체적으로 자라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그 신체적인 성장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흔히 자연 질서를 초월해서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정말 하나님이 도왔다 은혜다’라고 말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갑자기 신체 한부분이 고장 나 있는데 열심히 기도해서 이전처럼 되면 하나님이 도와 주셧다.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되었다 그렇게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런 고장이 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 아닙니까? 그거야 말로 더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너무나 일상적인 사실이지만 기실은 아이가 자란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상적인 현상 속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여러분의 삶은 훨씬 더 풍요로워 질 것입니다. 아기가 뱃속에서부터 자라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태어나서 성장하는 한 과정 한 과정이 사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부모 여러분, 정상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여러분의 자녀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십시오. 물론 태어난 아이이게 젖도 물려야 되고, 이유식도 줘야 되고, 먹을 것도 주어야 하고 운동도 시켜야 하는 것이 우리 부모의 책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다 해도 자라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아이가 제대로 먹어주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 먹은 것이 소화가 잘 되어서 그 아이가 자라는데 기여를 하는 것도 하나님 하시는 일입니다.
부모가 책임을 다해서 할일을 해야 되지만 자라게 하시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를 가르쳐서 말하면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게 하시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물주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자라는 것은 생명의 역사이기 때문에 생명의 주인이신 그분만이 자라게 하실 수 있습니다. 성장의 역사는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자라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라는 평범한 진리에 감사하게 되면 우리의 생은 경이로 가득 차게 되며 감사와 찬양이 여러분의 마음과 입술을 채우게 될 것입니다.

갓난아기가 몸을 뒤척이다가 기어 다니게 되고 일어서게 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걷게 될 때 그것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젖먹이가 재롱을 떨고 자라서 말썽을 피우는 개구쟁이 소년이 되는 과정을 바라보십시오. 그렇게 자라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 생의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송이 떠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부모로서 여러분의 첫 번째 책임은 아이가 신체적으로 자라게,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열심히 벌어서하루 세끼 먹을 것을 식탁에 차려주고 있습니다. 기왕 음식 채려주실 바에야 제대로 된 먹거리를 제공하는 일에도 좀 신경을 써야 하겠습니다. 인스턴트나 군것질 보다는 엄마의 정성이 조미료로 쳐진 그런 음식으로서 아이를 키워야 하나님한테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뛰놀게 해야 합니다. 마음껏 뛰놀도록 해야 됩니다. 적어도 초등학교 다니는 기간동안에는 신체적으로 자라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놀도록 좀 해줘야 되는데 아이들 보면 얼마나 불쌍한지요 그렇죠? 유치원 갔다 와서 또 학원가방 메고 지 몸무게 보다 무거운 것 가지고 나가는 것 보면 너무 아이들이 불쌍합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배우는 겁니다. 학원, 학원해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 학원 경영하시는 분이 있지만 나는 여러분의 사업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아이들 교육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합니다. 아이들이 좀 뛰어 놀 수 있도록 해야 되는 것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좀 도와주십시오.

누가가 여기 아기 예수의 성장을 기록을 하면서 두 번째 항목을 제시합니다. “아이가 자라매 강하여졌다” 이 강하여졌다고 말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랐다는 말과 비슷해 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자랐다고 말하지 않고 강하여졌다고 다른 표현을 쓴 것은 성장하는 또 다른 영역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아이는 무엇보다도 신체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체적인 성장으로만 끝나버리면 아이는 비정상적이 됩니다. 신체적으로 성장하는데 다른 것이 따라서 자라주지 않으면 아이가 비정상적이 됩니다.

어떻게 아이가 강하여 지는지 여러분 살펴보신 적 있습니까? 아기예수께서 정신적인 지적인 성장을 나타내기 위해서 강하여졌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아이는 정신적으로, 지적으로 자라야 합니다.

처음 태어난 아이가 눈망울이 여물어져서 여러분의 움직임에 따라서 눈이 움직이고, 달래는 엄마의 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 있고, 눈이 마주치면 방긋 웃는 것을 살펴보십시오.

소리 나는 쪽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고 엄마 얼굴 구별하는 것은 이제 정상적인 발달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시각과 아이의 청각이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면 영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을 배우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과정을 경이롭게 지켜보십시오

신체적인 성장과 아울러서 정신적인 성장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 때문입니다. 그 아이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처음 ‘엄마’라고 여러분을 부르던 날의 감격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처음에는 ‘엄마’하고 부르던 아이가 몇 날이 못 되어서 ‘아빠’를 부르게 되고 이제 쉬운 말들을 따라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문장 하나를 배우면 이 단어 저 단어 넣어가면서 반복 학습 하고 있는 것 잘 지켜보십시오. 영어도 그렇게 배우면 됩니다.

처음 한마디 말을 배워서 그 말을 계속 되풀이합니다. 그래서 그 말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갑니다. 어떤 말들은 아이의 머릿속에 기억되어서 평생 지울 수 없는 기록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오늘 아마 어린이주일이라고 특집이 하나 실린 것이 있습니다. 주보 6페이지 보니까 자녀에게 힘이 되는 말 다섯 가지가 있는데 이런 말이라고 합니다. 어떤 말일까요?
“이 세상에서 네가 제일 소중하다” “우리에게는 네가 제일이다 ”이렇게 말해주는 것 둘째로 힘이 되는 말은 “우리는 너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셋째로 힘이 되는 말은 “우리는 너를 언제나 사랑한다. 너를 끝까지 우리는 사랑할 것이다.” “우리는 너를 믿는다” “우리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여러분 이런 말 아직 한번도 자녀에게 안한 사람은 일으켜 세워서 벌을 좀 받도록 해야 됩니다 마는 또 부모 체면이 있으니까 회개하는 마음 가지고 오늘부터 집에 가서 한번 사용해 보십시오.

이런 보약과 같은 말은 한번도 안하고 여러분 혹시 이런 말 한 적은 없습니까?
“야 네가 잘하는 게 뭐니?” “멍청한 놈이, 이 바보야. 너 때문에 지겨워 못살겠다.”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 “내 앞에서 썩 꺼져버려”

혹시 그런 쪽의 아이에게 독약과 같은 말을 함부로 한 부모들은 없습니까?
웃는 사람들은 전과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아이가 자라는 지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된다는 것, 그것 이해하는 아이를 보면서 여러분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까? 그것 아주 기초적인 것이지만 거기서 풀려야 되는 겁니다. 나는 아이를 첫째 아이를 가르치면서 글자 쓰는 것을 가르치는데 이아기가 2부터 10까지는 쓸 수 있는데 1을 그렇게 잘 못쓰더라고요. 1은 이해가 안 되는가 봐요. 1은 막대기 같은가봐. 그래도 대학에 들어가서 밥벌이를 하고 있으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감사하고 찬양하지 않으면 죄인입니다. 은혜를 망각한 사람입니다.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꼽아 가면서 수를 헤아리는 아이를 보면서 그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하는 자가 바로 성도입니다. 누구나 정상적인 일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더하기 하나가 둘이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로 일생을 보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이 그것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부모가 가르쳐 준다고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그 반응을 보일 수 있는 능력을 받았기에 하나더하기 하나가 둘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아이들을 볼 때에 우리 아이가 그 사소한 것이라도 깨닫게 되면 그것 감사해야 됩니다. 정상적인 지적 성장이 있는 것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이 정신적인 성장이 있다는 평범한 사실로 인해서 감격해 본 적이 있습니까? 어떤 때는 엄마, 아빠의 의견에 대해서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그거 굉장한 것입니다.

언제나 아버지 어머니 말에 yes만 하는 아이는 그 아이가 정상적인 아이가 아닙니다. 언제나 yes만 하는 아이는 온순한 아이, 착한 아이가 아닌 것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려분이 웃으면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이 알아듣는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렇죠? 여러분이 깨달을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러분은 생각하지마는 무슨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은데 제가 하고 있는 말을 여러분이 귀로 듣고는 알아듣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 아이들이 올백 받아와야 감사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한참 더 깨달아야 될 사람입니다. 여러분 90점 받으면 그건 엄청나게 잘 한 것이고요. 80점도 과분한 것이고, 70점도 감사한 것이고, 60점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그 아이로 인해서 여러분의 미래가 복되고 아이의 미래가 복될 것입니다.

아니 50점 받아왔다고 다섯 개나 틀렸다고 아이에게 야단치지 마십시요. 그러다가 어떤 엄마는 아이에게 되려 나무람을 들었습니다.

엄마가 딸이 받아쓰기 50점 받아왔다고 야단을 쳤어요. “너는 다섯 개나 틀렸니?”그러니까 딸 하는 말이 “엄마는 왜 틀린것만 봐? 맞는 것도 다섯 개나 되는데” 옆에 있던 아빠 하는 말이 “맞다, 네 말이 맞다.” 다행이 거들어줘서 아이의 기가 꺾이지는 않았습니다.

생각 바꾸면요, 관점만 바꾸면 다섯 개 맞은 것 가지고도 감사할 수 있잖아요. 다섯 개를 맞출 수 있는 아이는 여섯 개, 일곱 개, 열개도 맞출 수 있는 아이입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 사실로 인해서 감사하십시오.

부모의 감사 없는 생활은 아이의 생애를 불행하게 합니다. 부모의 과욕은 부모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장래를 망칩니다. 부모의 과욕으로 얼마나 이 나라의 많은 아이들이 불행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삶이 망쳐지고 있습니까? 새처럼 날고, 물고기처럼 놀아야 될 아이들을 그렇게 붙잡아 매니까 오죽하면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자살을 합니까?

나는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욕심에 눈이 멀어서 아이들을 그렇게 망가뜨려요. 그건 저 동네 사람들이고 여기 나와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좀 달라야 안 됩니까? 여러분들은 생각을 좀 다르게 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 아이를 신체적으로 자라게 했습니까? 여러분이 키 크는 기계에 넣어 당겨서 그 아이가 자랐습니까?

여러분의 아이를 신체적으로 자라게 하는 하나님은 그 아이의 지적인 성장도 책임지실 분입니다. 그 죄악 된 대열에서 여러분은 벗어나야 합니다.

성도들은 자녀를 성도답게 키워야 합니다. 부모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요구할 권리가 없습니다. 자녀를 향해서 대리만족을 하려고 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 아이를 여러분의 집에 태어나게 하신 그분의 뜻을 살피십시오. 여러분의 집에 선물로 보내셨고, 부모로서 우리는 그 아이를 하나님의 뜻대로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대로 조화롭게 키워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기 예수님의 어린시절 12살 때까지 기록을 보면 아이가 자랐다는 말이 먼저 부각되지 않습니까? 그 시기에는 자라는 면이 제일 눈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일입니다. 영감 된 기록이 신체적인 성장을 먼저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 기간 동안 부모가 해야 될 일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음껏 자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뛰어놀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적어도 12살 때까지는 신체적인 성장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학교 가서 책 읽을 줄 알면 감사하고, 글 쓰는 건 자기 이름만 써도 감사할 일입니다. 초등학교 시절은 그만큼만 해도 중학교 가고, 고등학교 가고 아직도 몇 년씩 다 남아 있잖아요. 그때부터 쳐도 대학까지 하면 10년도 더 배워야 되는데 하나님의 말씀의 질서를 따라서 키우십시오. 그러면 그 다음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여러분의 아이를 신체적으로 자라게 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자녀를 지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분인 것을 믿습니까? 확실하게 대답한번 해 보세요. 아이를 자라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 같으며, 정신적으로 성숙시키는 분도 하나님 맞지요?

저는 한번의 설교로 여러분의 엄청난 욕심의 사슬이 끊어질 것이라고 낙관하지는않습니다. 한편의 설교로서 수 십년 동안 쌓아 온 여러분의 기존 가치관이 바뀔 것이라고 낙관해서 이 설교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설교를 하는 것은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 앞에서 만날 때를 위해서 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 설교를 했습니다. 이제는 이 설교 듣고도 여러분의 욕심대로 자녀 키우면 그건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이 책임져야 됩니다. 나는 어떻게 자녀 키울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교육이라는 허울 좋은 부모의 열병 때문에 아이답게 자라지 못하는 이 땅의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육열이라는 부모의 허영과 욕망 때문에 병들어 있는 조국의 어린이들 때문에 저는 이 설교를 1년에 한번씩은 되풀이해서 하고 싶습니다.

어린이는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키워야 합니다. 신체와 더불어서 지적으로 성장시키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 그렇게 아이를 못살게 하지 않아도 때 되면 깨닫게 해 주실겁니다. 어떤 아이는 좀 늦되기도 안합디까? 여러분처럼 말이죠.

아이가 all 100을 받아 와야 정상이 아닙니다. 그건 비정상 아니겠습니까?놀 때는 놀고 공부할 때는 공부해서 조금씩 바뀌면 바뀐 것으로 인해서 계속 감사하고 아이를 위해서 축복해 주고 아이에게 대해서 격려해주고 이렇게 하면됩니다. 아이들이 그냥 아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요새 아이들 무섭게 똑똑합니다. 다 알아요. 자기를 신뢰해 주고 자기를 믿어주면요 그 엄마를 위해서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할 건지 여러분 속을 환히 보고 있다니까요. 아이가 다 알아요. 여러분이 그렇게 격려해주고 칭찬해주면 그 아이가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하려고 들거예요. 그런데 무조건 하는 것이 공부하라는 소리만 하고 야단만 치고 다섯 개나 맞아왔는데 다섯 개 틀렸다고 야단치고 이러면 어떻게 힘을 내겠습니까?

여러분 그런 격언 있지 않습니까? 실수하는 것은 인간이 하는 것이고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여러분 중학교 영문법 배웠으면 그런 문장은 다 접해봤죠? 그런데 어떻게 하나도 틀리지 않을 수 있는지, 틀리지 않는 것을 요구하는지 여러분 조금 생각 다시 한번 해야 안 되겠습니까? 하나도 틀리지 않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요 그건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은 실수할 수 있습니다. 공부해가지고 가도 시험치는 동안에 지가 또 무슨 생각을 했는지 틀릴 수 있어요. 틀리면 사람은 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격려를 한번 해주세요. 그래도 그 아이가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될 줄 안다고요. 한 두 개 틀리는 건 그건 정상적이예요. 그런데 all 100 받아오는 것 그건 조금 비정상적입니다. 아이의 미래는 초등학교 때 성적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그 아이의 미래는 어머니의 손에 쥐어진 통지표가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미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믿습니까?

사랑하는 부모 여러분, 여러분은 신앙의 어머니들로서 신앙의 아버지들로서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손에 전달되는 성적표의 수, 우, 미, 양, 가가 그 아이들의 내일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그 결정은 전능하신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이의 미래를 이미 결정해 놓고 책임지고 계십니다. 부모인 여러분은 아이에 대한 욕심은 있지만 그 아이의 미래를 책임져 줄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여러분이 양육하면 누가 그 아이의 미래를 책임집니까?여러분이 말씀대로 양육하기로 결심하면 우리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그러니까 어릴 때는 놀도록 하고 공부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합니다. 학교 가도 공부, 집에 와도 공부입니다. 엄마 아빠 잔소리도 귀에 못이 박힐 정도인데 손님들이 와도 ‘요새 공부 잘하냐?’고 인사합니다. 떠나갈 때도 ‘공부 잘해라’고 합니다. 그런 상황 속에도 아이들이 공부에 진력을 내지 않는 것은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누구나 초등학교 때 다 똑똑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아이는 중학교 가서 어떤 아이는 고등학교 가서야 지적인 발달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릴때부터 그렇게 그냥 짓이기고 눌러가지고 완전히 때 되면 필 꽃을 미리 열어가지고 다 망쳐버리는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해서 되겠습니까?

초등학교 때발달하지 않은 아이들도 뒤에 가서 제때에 되어서, 심지어는 대학가서 그때에 활짝 피게 되는 아이들도 있어요. 모든 꽃이 한꺼번에 피지 않잖아요?

때가 필요한, 좀 많은 때가 필요한 꽃들도 있어요.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고 부모가 욕심이 많으면 아이들이 고생합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 것을 믿으십시오. 그게 믿음 아닙니까?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들과 뭔가 다른 데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50점 받으면 다섯 개 틀렸다고 야단치고 믿는 집에는 어떻게 해야 되죠? 다섯 개 맞아왔다고 격려하고 축복하고 기도해 주고 그게 게임이 달라야 합니다. 꼭 같이 하면 누가 우리 믿는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겠습니까?

물론 공부 할 수 있는 환경도 시간도 부모가 배려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빠는 글이라고는 신문밖에 안보고, 엄마는 텔레비전 밖에 안보고 이런 가정에서 어떻게 아이가 책보고 자라도록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 한번만 보여주면 아이들이 감동할겁니다. 아 저렇게 나도 앉아야 되겠다. 그렇게 보고 배울 겁니다. 그래서 우리 “꿈이 자라는 책 마을” 도서관을 어제 대내적으로는 오픈을 했습니다. 좋은 책을 읽도록 도와줘야 되겠습니다. 꿈을 키워가도록, 책을 통해서 꿈을 키우도록 여러분이 하실 일이 있습니다. 학교공부만 하라고 거기에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답답해하십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녀 때문에 답답해하시지만 하나님은 그 아이를 초달하고 있는 여러분 때문에 답답해하신다니까요. 여러분은 여러분 자식 때문에 답답해 하지만 하나님도 자기자식 때문에 속상해 하십니다. 여러분 때문에. 지나치게 자녀에게 집착해 있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부모부터 먼저 가르치고 뒤에 아이를 똑똑하게 하실지 모릅니다.

정신적인 지적인 성장의 요인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하나님으로 인해서 자녀와 함께 감사하십시오. 자녀 때문에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한달에 한번씩 시험성적 통보될 때마다 감사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성적이 몇 점이 나왔던지 그런 반응을 여러분의 아이가 보일 수 있는 것이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자기 실력을 가지고 60점이라도 받아 올 수 있는 게 얼마나 대견한 일입니까? 70점 받아 오면 더 감사할 일이고요. 그러니까 시험 칠 때마다 감사와 찬양의 분위기로 집안 분위기를 바꾸어 나가십시오. 그것이 예수 믿는 부모들이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누가가 기록한 제 3의 영역에 대한 예수님의 성장에 대해 살펴봅시다. 아이의 지혜가 충족해 졌다고 말합니다. 우리 예수님의 완전한 생애는 궁극적으로 인생에 필요한 지혜가 충족해 졌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강건해졌다는 말의 보충 설명으로 볼 수도 있고 또 정신적인 성장에 대응하는 영적인 성장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정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때로 이렇게 갈라놓기가 힘듭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할 때는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함으로 정신적으로 혼미해져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지혜가 충족해졌다는 말은 넓게 생각해 보면 도덕적인 성장 과정을, 좁게는 영적인 성장 과정을 가르치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아이는 신체적으로 자라야 합니다. 키가 자라고 몸무게가 늘고 힘이 생기고 이런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키가 자라면 자랄수록 아이가 정신적으로 자라야 그게 정상적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생이기 때문에 영적인 데에도 반응을 보여야 그 아이가 정상적입니다. 영적인 성장 역시 지적인 성장이나 신체적인 성장처럼 점진적으로 때로는 성장해 나가는 것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엄마라고 부를 줄 아는 아이는 ‘아멘’ 가르칠 수 있습니다. 젖먹이면서도 ‘아멘’하고 막이고, 밥 주면서도 ‘아멘’하고, 과자를 주면서도 ‘아멘’ 기도해서 먹이면, 그 아이 ‘아멘’ 배울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아빠라는 말 부를 줄 아는 사람은 ‘아멘’ 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둘째 녀석은 어릴 때 아멘을 배워가지고 남의 가게 가가지고 지 먹고 싶은 과자 들고 나오면서 아멘 해버립니다. 자기는 맛있는 것 줄때마다 아멘하면 다 통했으니까 가게 가서 맛있는 것 들고 나와서 아멘하면 누가 책임지죠? 엄마가 책임집니다. 그 믿음대로 되는 겁니다. 자기 아빠와 대화가 가능한 아이는 하늘계신 아버지 하고 대화가 가능합니다.

낳아주신 부모를 알아채게 되면 영혼의 부모도 알 수 있게 됩니다. 아이에게 기도하는 것 가르치고 찬송하는 것 가르치십시오. 세살 정도면 요한복음 1:12절, 3:16절 정도는 얼마든지 외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신학 공부를 한 아빠 목사만큼은 모르지만 그 나이에서는, 그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찍부터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아이가 되도록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조금 크면 손잡고 데리고 함께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하기로 여러분 아이들 유아세례 받을 때 다 약속했어요. 문자적으로 제가 지금 여러분이 그런 약속 했다는 것을 알려 드립니다.

아이의 영적 성장을 간절히 바란다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얌전하게 앉아있으면 우리 속 알까요 모를까요 얌전하게 앉아 있기만 하면 우리 속 하나님 알까요 모를까요? 우리가 입 벌려야만 속 보인다 그러실 하나님 입니까 우리 입 다물고 있어도 하나님 다 아신다니까요.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진짜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다 알고 계셔요.

여러분이 정말 아이의 영적인 변화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소원 들어 주실까요 안 들어 주실까요? 들어주죠. 그렇게 all 백 받아오기를 바라는 그 심정으로, 수능 고사 점수가 제대로 나오기를 바라는 그 심정으로 아이의 영적인 변화를 사모하고 기도하면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우리 하나님 만약 안 들어 주시면 그분은 우리 하나님 아닙니다.

우리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중심의 소원을 알고 들어주시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아직도 여러분 자녀들이 신앙을 제대로 갖지 못해서 중학교 들어가더니 이제는 교회 가는 일을 조금씩 조금씩 게을리 하면 회개해요. 엄마가, 내가 이 아이가 중학교 들어갈 12년 13년 동안 무얼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여러분이 스스로 못 깨달으면 여러분의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군에 간 자녀의 삶이 여러분이 어느 쪽에 관심을 가지고 그 아이를 키웠는지를 보여줄게 아닙니까? 죄 없이 태어나셨던 예수님께서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정상적인 성장을하는데 결정적으로 필요했던 것이 그 아이 위에 머문 하나님의 은혜라고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죄중에 태어난 우리 자녀들이 신체적으로 정상적인 성장을 하고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것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일입니다. 아이의 정상적인 성장만큼 절실한 부모의 바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에게 그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아이 위에 있기를 얼마나 기도해 왔습니까? 아이와 함께 밤 열한시가 되도록 하나 더 가르쳐 주겠다고 산수책 펴놓고 있는 그 열심 가지고 하나님께 한번 기도해 보셨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만약에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성인이 되어서 곁길로 나가면 하나님 앞에 따지세요. 하나님한테 소송이라도 제기하세요.

여러분이 아이들 자라날 때에 여러분의 세상적인 욕망을 두고만 동분서주 했다면 여러분이 무슨 체면으로 하나님한테 가서 따질 일이 있습니까? 지금은 회개해야 될 때입니다.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께서도 성인이 된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여려분 만큼 하고 있지 않다면 어린이주일은 회개하는 주일이 됩니다.


우리가 어디에다 정력을 쏟아 왔는지 자녀들 나이가 들수록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 부모는 나한테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했는지 그 아이의 삶이 보여줄 것입니다.

정말로 부모가 아이의 영적인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아이의 미래가 복될 것입니다. 아이의 오늘이 복될 뿐 아니라 내일과 영원한 날이 복될 것입니다. 신체적으로 성장하는 것과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것 영적으로 성장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그 아이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느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서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자녀도 신체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비정상적이 될 수 있는 위험이 도처에 산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오늘 우리가 정상적인 건강가지고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오늘 말씀 요약하겠습니다. 신체적인 성장을 위해서 여러분 해야 될 일이 무업니까? 제대로 된 먹거리를 먹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좀 마음껏 초등학교 다닐 때 까지는 뛰어놀게 하십시오. 아이들은 놀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정신적인 성장을 위해서 책을 읽도록 지도해 주십시오. 우린 그 일을 위해서 “꿈이 자라는 책 마을” 오픈한거 아주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책은 아이들의 영혼을, 정신세계를 살찌울 수 있는 보고나 마찬가지 입니다. 이를 위해서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영적 성장을 위해서 자녀를 위해서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젖꼭지 물리기 전에 기도하시고, 밥상 차려놓고도 기도하시고 맛있는 것 줄때도 손잡고 기도하면서 감사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예배 드리는 것을 시작하십시오.

제가 이번에 칼럼에다가 세이레 기도회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 이야기 하면서 두 사람이라도 가정예배 드리겠다고 결심했죠. 목사가 결심하면 그 다음날부터 꼭꼭 지켜지는 줄 아십니까? 안 그렇습니다. 목사가 결심한다 해가지고 일주일에 지속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좋고 두 번이라도 좋고, 하는 것과 안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내 아이를 위해서 매일 예배드릴 시간 없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일주일에 한번도 좋습니다. 보름에 한번도 좋습니다. 안되면 한달에 한번이라도 좋습니다. 여러분 노력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셔서 시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면서 자녀를 키우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는 부모의 눈물이 자녀의 내일을 복되게 합니다.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아이와 함께 기도하십시오. 그리하면 아이가 철이 들면 들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형상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에게 기쁨이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 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오대양육대주에 꿈이 될 수 있는 그런 여러분의 자녀들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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