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못 말리는 부정(父情) / 눅 15:11-24

  • 잡초 잡초
  • 272
  • 0

첨부 1


본문 / 눅 15:11-24
제목 / 못 말리는 부정(父情) 

얼음 세상에 살고 있는 펭귄은 수놈의 발등에 알을 낳는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
그것은 수놈의 발톱에까지 털이 수북하게 나 있어서 너무나도 푹신푹신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렇게 푹신푹신한 곳에 알을 낳으면 그 알은 얼지 않고 두 달만에 부화가 된다고 합니다.
그 두 달 동안 아빠 펭귄은 꼼짝도 할 수 없습니다.
마치 박제처럼 아빠 펭귄은 아무리 거센 바람이 몰아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어야 한답니다.

아빠 펭귄이 그렇게 꼼짝도 못하고 서 있는 동안 엄마 펭귄은 아빠 펭귄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새끼 펭귄만 열심히 살핀답니다.
그러니 그 두 달 동안 아빠 펭귄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새끼가 부화되면 거의 실신 상태에서 먹이를 찾아 바다로 가다가 죽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답니다.

성도 여러분 !  어떻게 생각하세요 ?
자기 새끼를 위해서 죽기까지 그 사명에 충실한 여기 이 아비의 모습 !
여기 이런 모습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우리 인간들의 삶의 현장에서는 그리 보기가 어려운 것이 우리네 현실이지 않습니까 ?

동물의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기 이 모습 !
이 모습은 참으로 <못 말리는 父情>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은 <가정의 달>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고요 !
이 좋은 계절에 우리 안에 회복해야할 모습이 있다면 바로 여기 이런 모습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가족을 감동시키는 아버지의 사랑 !
가족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의 그 못 말리는 사랑 !
바로 그 <못 말리는 父情>이 필요한 때를 우리는 지금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
아버지가 건강하면 그 <집>은 평안합니다.
그것은 비단 <육체적>인 건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적>으로도 아버지는 건강해야 합니다.
나아가서 아버지는 <영적>으로도 건강해야 합니다.

그처럼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 건강하면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건강한 아버지가 가득한 <교회> !
그런 교회 역시 <건강한 교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한 아버지가 가득한 <사회> !
그런 사회는 <건강한 사회>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과 제가 함께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모두가 표본으로 삼아야 할 <한 아버지>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아버지는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둘째 아들>이 말합니다.
  아버지 !
  제 유산을 미리 주십시오 !

아버지는 그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유산>이라면 무엇인가 ?
  그것은 내가 죽을 때 물려주는 것이지 않는가 ?
  그렇다면 여기 이 놈의 행동은 무엇일까 ?
  나보고 빨리 죽으라는 말인가 ?
  이런 괘씸한 놈 보았나 ?

여느 아버지 같으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아들의 뺨을 후려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아버지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재산을 처분해서 <아들의 몫>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 
어떻게 생각하세요 ?
여기 이 부분을 말입니다.
아버지는 왜 아들의 뺨을 후려치지 않았을까요 ?

아버지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존재입니다.
실제로 이 시대의 많은 아버지들이 이렇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
그렇게 <매>를 맞고 자란 아이들 !
그렇게 <억압적>으로 자란 아이들 !
그런 아이들의 삶이 <순종적>이던가요 ?
그런 아이들이 부모를 존경하던가요 ?

아닙니다.
그런 아이들은 아버지를 싫어하고 미워합니다.
그런 아이들은 아버지와의 만남을 기피합니다.
심지어는 그런 아이들이 아버지를 증오합니다.

성도 여러분 !  기억하십시오 !
<순종>이라고 하는 것은 <억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강요된 순종> !
그것은 <진정한 순종>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그 어떤 <힘>으로 <순종>을 강요하는 것 !
바로 그것이 우리 삶의 현장에 <거짓>으로 가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 이상 아버지라는 이유 때문에 자녀들에게 순종을 강요하지 마십시오 !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아버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모습도 그것입니다.

결국 아들은 돈 꾸러미를 들고 아버지 곁을 떠나갔습니다.
그 날 그 아들은 아버지 가슴에 <커다란 못 하나>를 박고 그렇게 아버지 곁을 떠나 간 것입니다.
그 날 그 아버지는 아들이 떠나간 자리에 오래 동안 서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한 참, 아버지는 결심합니다.
  내, 너를 기다리마 !
  그 때가 언제가 될 지 몰라도 내, 너를 기다리마 !

아버지의 이런 다짐을 뒤로 한 채 아들이 도착한 곳은 그야말로 <별천지>였습니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별천지> !
아들이 달려간 곳은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친구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여자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습니다.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그 아들은 그렇게 <신나는 인생>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아버지>도 잊었습니다.
<고향>도 잊었습니다.
그의 신나는 인생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지난날의 삶>을 모두 잊어버리게 한 것입니다.

인간답게 산다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
그런 문제는 그에게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
그렇게 허랑 방탕한 삶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는 것이지 않습니까 ?
결국 그의 주머니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하나 하나씩 그의 곁을 떠나갑니다.
그러더니 어느새 여자들마저 그를 끔찍한 벌레처럼 대하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한 잔의 술>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는 <한 끼의 양식>을 위해서 그는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그가 구한 일은 <돼지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런 일을 마다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
그런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잖아요 ?
그것도 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죽음 직전에까지 몰리게 되었습니다.
자유를 찾아 떠났던 아들 !
그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굶어죽을 수 있는 자유> !
바로 그것이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인생의 막장>에서 그가 아버지를 생각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 !
거기에는 먹을 것이 많았습니다.
거기에서는 종들도 풍족하게 먹었습니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그는 결심합니다.
  나, 돌아가리라 !
  나, 품꾼의 하나로 취급받더라도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리라 !

자유를 찾아 떠난 아들의 삶이 이렇게 망가지는 동안 아들을 떠나 보낸 아버지는 그 날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대문 밖에 나와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나저제나 그렇게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 !
그 아버지의 눈에 어느 날 <눈에 익은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에 커다란 못을 박고 떠나갔던 아들 !
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아들 !
바로 그 아들이 <아버지의 눈>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못 말리는 父精>은 바로 그 때부터 폭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
아직도 상당한 거리가 있는데 아버지가 어찌하고 계십니까 ?
아들을 보자마자 체신머리도 없이 마구 달려가고 있습니다.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입을 맞추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
아버지의 위엄 같은 것이 보이나요 ?
아닙니다.  그런 것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이 그 때 그 장면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들의 뺨을 마구 비벼댔으리라 !
비쩍 마른 아들의 어깨를 감싸안은 아버지 !
그 아버지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으리라 !
거의 통곡에 가까운 울음소리로 그 아들을 감싸 안으셨으리라 !
그러니 그 아들은 또 어떠했겠습니까 ?
아버지를 따라서 그 아들도 통곡하며 뜨거운 눈물을 펑펑 흘리지 않았겠습니까 ?

<아버지의 눈>에서 흘러내렸던 눈물 !
그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아들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던 눈물 !
그 눈물은 <회개의 눈물>이었습니다.
눈물의 성격은 이렇게 달랐지만 그 눈물들이 지난날의 <불평>과 <원망>을 덮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못 말리는 父情> !
바로 그것이 그렇게 <지난날의 아픔>을 다 덮고도 남은 것입니다.

<못 말리는 父精>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있습니다.
손에는 가락지를 끼워주고 있습니다.
발에는 새 신을 신기고 있습니다.

<못 말리는 父精>은 거기에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
살진 송아지를 잡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먹고 즐기자 !

성도 여러분 !  어떠세요 ?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 !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 !
그런 모습이 보이시는지요 ?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여기 이 이야기가 다른 그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완벽한 <우리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요 ?
여기 <못 말리는 父精>의 아버지는 우리가 신앙하고 있는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의 가슴에 <커다란 못>을 박고 떠나갔던 탕자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탕자가 지니고 있던 모습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
무례함, 자만, 낭비, 호색, 후회, 상실 !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지 않습니까 ?

우리도 하나님을 떠나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보십시오 !
<한숨> 속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말입니다.
<불평>과 <원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
<탄식>과 <도탄> 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들 !
<인생의 막장>에 서 있는 사람들 !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사람들>도 많이 서 있지 않습니까 ?
<가정의 달>을 맞은 지금, 이런 형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
  내, 너를 기다리마 !
  그 때가 언제가 될지 몰라도 내, 너를 기다리마 !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못 말리는 父情>의 아버지 !
그 분은 다른 분이 아니십니다.
바로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기에 이제라도 다가서십시오 !
더 이상 망설이지 마십시오 !

얼마 전에 우리는 <이라크 전쟁>에 투입됐다가 포로로 잡혔던 미군들이 구출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들은 <패잔병>이었고, <실패한 군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국민들>을 그들을 어떻게 맞이해 주었습니까 ?
저들은 그들을 <뜨겁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정부>는 그들에게 훈장을 주었습니다.
<고향사람들>은 그들을 차에 태우고 퍼레이드를 벌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  잊지 마십시오 !
우리에게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가 돌아가면 <기쁨>을 이기지 못해 하십니다.
<찬송가 404장>의 가사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탕자를 돌아오게 한 것은 <기다림>이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
바로 그 기다림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다림>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기다림 !
거기에는 <자격제한>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
거기에는 <유효기간>도 없습니다.

<정치권>은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잡초>는 뽑아 버려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찬송가 316장>을 보십시오 !
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 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
<찬송가 317장>을 보십시오 !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커도 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
<찬송가 318장>도 보십시오 !
밤마다 문 열어 놓고 마음을 졸이시면서 집을 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만을 밤을 새워 기다리신다 하지 않습니까 ?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입니다.
<가정의 달>에 우리가 시작해야 할 일은 이것입니다.

가정마다 <아버지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역사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위엄 있는 <아버지> !
근엄한 표정의 <아버지> !
그런 아버지보다도 지금은 <못 말리는 父情>의 아버지가 필요한 때입니다.

하지만 <못 말리는 父情>의 아버지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못 말리는 父情>을 받아본 사람들 !
그런 사람들만이 <못 말리는 父情>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주간에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실린 글 중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그 글의 제목은 <지금은 기도할 때>였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올해 7월은 휴전협정이 맺어진 지 50주년이 되는 때로 휴전협정의 세 당사자가 기존 관
  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기에 적절한 시점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30일 담화를 통해 "우리는 '물리적 억제력'을 갖출 것을 결심하고
  행동에 옮기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면서 미국이 핵 문제를 유엔에 회부할 경우 그것을 선
  전포고로 알고 비상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은 30일 북 핵 사태를 둘러싸고 미-북간 대치상태가 가시지 않고 
  있는 가운데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했습니다.
  미 국무부는 이날 2002년 연례 세계 테러 보고서를 발표, 북한을 비롯한 쿠바, 이란, 이라
  크, 리비아, 수단, 시리아 등 7개국을 테러 지원국으로 재 지정한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핵 위기 정세가 수시로 급변하고 있는 것은 북한 정권 핵심부에서 격렬한 권력투쟁
  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홍콩의 성도일보(星島日報)가 30일 보도했습니다.
  이 신문은 이날 북한 대표가 핵 위기와 관련해 일관되지 않은 성명을 계속 내놓는 것은 혁
  명 원로파와 권력을 장악한 소장파의 갈등이 이미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정보기관들도 북한 정권 내부의 위기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을 파악했
  다고 밝혔습니다.

  정말 시절이 하도 수상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핵 위협보다 한국의 자체내의 부패가 더욱 큰 위기로 느껴집니다.

  나라를 세우시기도 하고 허무시기도 하며, 열방의 도모를 무효로 만드시는 우리 하나님께
  서는 오래 참으시지만 심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세계 최고의 술 담배 소비에, 교통사고 세계 최고, 42%에 달하는 세계 최고의 이혼율, 성
  의 상품화 등으로 부패한 이 나라를 하나님께서 전쟁으로 쓸어버리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
  다.

  한 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경배로 결정이 납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기 위하여 우리 온 믿음의 성도들은 두 손을 높이 들고 합
  심하여 부르짖어야 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지금이 기도할 때요, 지금이 우리가 <못 말리는 父情>의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야 할 때라는 말입니다.
거기에 <회복의 은총>이 약속되어져 있습니다.
거기에 <치유의 은총>이 있습니다.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문제입니다.
<아버지>가 바로 서면 가능합니다.
저마다 우리 아버지들이 <서야 할 자리>에 바로 서면 가능합니다.

이 좋은 가정의 달에 <우리 영암의 아버지들>이 마땅히 서야 할 자리에 바로 섬으로 여기 이 <회복>과 <치유>의 은총이 여러분의 가정 가정에 충만히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