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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다음으로 섬길분 / 잠 23: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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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다음으로 섬길분 (잠 23: 22~25)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오늘처럼 어버이주일이 되어서 여러 가지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중에 유치부 아이들의 성경 암송 발표가 있었습니다. 어른들 앞에서 아이들이 부모 공경에 관한 성경 구절을 암송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앞에 죽 서서 신구약의 여러 구절을 차례로 한 구절씩 암송하는데, 한 아이의 순서가 됐습니다.

그 아이가 담당한 구절은 엡6:1~3 부분이었습니다. 어떤 말씀이죠?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그런데 ‘공경하라’는 말의 뜻을 잘 모르는 채 암송하던 아이는 잘 나가다가 중간에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격하라 ... ” 일순간 예배당이 웃음 바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해프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해프닝을 통해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정말 이 시대가 정말 부모를 ‘공경’하는 게 아니라 ‘공격’하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요즘은 어른들에 대한 존경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어른들에게 무관심한 데서 더 나아가 무시하고, 심지어 폭력을 휘두르고 살해하는 일조차 생기고 있습니다.

언젠가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의 통계 자료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17개 국가의 청소년들 1만여명을 대상으로 어른들에 대한 존경심 정도를 면접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 한국 청소년들의 경우 ‘전혀 존경하지 않는다’가 20%(17개 국가 평균 2%), ‘존경한다’가 13%(17개 국가 평균 72%)였습니다. 무엇보다 교육의 잘못이 이런 현상의 주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튼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점점 이런 경향이 심화되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성경에도 보면 부모 거역이나 어른들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말세 현상 중 하나로 꼽힙니다. 딤후3:1~2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

이런 시대에 오늘 다시 어버이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어른들에게 몇 가지 선물이나 안겨드리고 아이들에게 안사나 받고 지나가면 안됩니다. 이런 기회에 우리는 다시 한번 부모 공경과 어른 공경의 계명을 되새겨봐야 됩니다. 부모 공경의 계명은 십계명 가운데 후반부 인간에 대한 계명(제5~10 계명) 중 첫째가 되는 계명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도리 중 하나님을 섬기는 것(제1~4 계명) 다음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부모는 하나님 다음으로 높여드려야 한다.” 아무쪼록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소홀했던 것을 회개하면서 다시 한번 부모 공경의 계명을 명심하고 실천함으로 하나님 앞에 칭찬받고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부모 공경의 당위성

부모님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지상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적어도 세 가지 면에서 그렇습니다.


① 생명의 대리자 : 들은 우리에게 육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부모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한 가지만으로도 공경해야 되고 감사해야 됩니다. 부모가 아무 것도 못 해주었다 하더라도 이 한 가지만도 엄청난 것입니다.

② 지혜의 대리자 : 인생은 단 한번입니다. 누구나 초행길입니다. 그런데 자식에게는 부모가 있습니다. 부모는 먼저 인생을 살아보고 자기는 설사 실수하고 실패했더라도 자식만큼은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부모의 삶 자체는 혹시 본받을 하지 못할지라도 그 가르침만큼은 들어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삶의 체험에서 나온 지혜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③ 사랑의 대리자 : 지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흡사하게 닮은 사랑이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태어나서 장성할 때까지, 아니 부모님 당신 자신이 숨지는 그 순간까지 한시도 빼놓지 않고 자식을 생각하고 사랑을 베푸십니다. 당신은 못 먹어도 자식은 먹입니다. 당신은 못 입어도 자식은 입힙니다. 심지어 당신의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자식을 구하려는 게 부모의 사랑입니다.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타 잔해에서 구조 작업을 벌이던 중 있있던 일입니다. 어른 손이 잘려진 채로 발굴이 되었는데, 손늘 꽉 쥐고 있어서 펴보니까 그 안에 어린 아이의 손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부모가 죽음의 순간까지 어린 자녀를 보호하려는 몸부림을 짐작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부모의 사랑입니다.

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TV 동화 행복한 세상」에 나왔던 ‘어머니의 밥그릇이란 이야기입니다. 작은 어촌 부둣가에서 생선을 받아 행상을 하는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고깃배 타던 남편 일찍 떠나 보내고 6남매 키우는데 너무 힘겹습니다. 끼니 때우기도 어려운 형편입니다. 팔다 남은 물간 생선 한 마리에 쌀 한 봉지 사서 아이들 먹이는데 오죽합니까? 배불리 먹지 못하는 아이들은 밥상머리에서 실랑이하는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머니는 밥을 항상 남기는데 얼른 치우고 절대 아이들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가 상다리를 붙들고 남은 밥을 달라고 매달리는데 그 바람에 밥상이 엎어지고 밥그릇이 바닥에 뒹굴렀습니다. 그 안에서 이상항 물체가 튕겨 나왔는데 가만 보니 큼직한 무우 토막이었습니다. 그위에 밥을 살짝 덮었던 것입니다. 그날 밤 어머니도 아이들도 한데 엉켜 울었습니다. 이게 부모의 사랑입니다.

부모는 심지어 자식이 배반해도 끝까지 사랑을 베풉니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의 왕위를 찬탈했을 때 궁궐에서 쫓겨나갑니다. 그런데도 진압군과 반란군의 전투에서 압살롬이 전사한 소식을 듣고는 차라리 자기가 죽을걸 하면서 통곡하는 다윗의 모습!(삼하18:33) 그게 부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대리자인 부모 공경은 하나님 경외 신앙과 일맥상통합니다. 신앙이 있노라 하면서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모순이라는 겁니다. 부디 이런 사실을 명심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더 나아가 자녀들에게 부모 공경의 계명을 잘 가르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2] 부모 공경의 구체적인 방법

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 : 22절(상).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 부모님은 인생의 선 경험자이므로 지혜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자식이 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게 마땅하고 또 유익합니다.

물론 부모님도 인간인지라 이따금 틀린 말씀을 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엡6:1 “ ... 주 안에서 순종하라” 신앙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은 조심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모님의 중심은 자식을 위하는 것이기에 태도만큼은 부모님을 존중하며 지혜롭게 처신해야 됩니다. 제가 학교를 다 졸업하고 신학을 하겠다고 하니까 어머니가 심하게 반대했습니다. 견디다 혈기를 부리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그때 심한 말을 햇던 게 후회가 됩니다. 지금은 목사가 된 아들을 우해 감사하며 눈몰로 기도하는 어머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좀더 참을걸 하는 후회가 됩니다. 부모의 뜻을 그대로 따르지 못하는 경우에도 우리는 공손하게 지혜롭게 처리해야 될 것입니다.

② 부모님을 소중히 여길 것 : 22절(하). “ ..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 ‘공경’이란 말은 히브리어로는 ‘카베드’인데 이 단어는 본래 ‘간’(肝), ‘무거움’ 등의 뜻을 가집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종종 하나님에게도 사용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버금가는 수준으로 부모님을 귀중히 여기라는 뜻입니다.

특히 늙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당부한 의미를 되새겨봐야 됩니다. 부모님이 젊을 때는 힘도 있고 사회적 지위나 물질적인 능력도 있습니다. 자식들이 무시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기력이 쇠하고 능력도 상실됩니다. 세월이 갈수록 자식은 커지고 부모는 작아지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 자식이 무시하기 쉽습니다. 안될 말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심판자나 평가자가 아닙니다. 부모님이 꼭 부자나 유식한 사람이라서 공경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부모님이라는 사실 하나로 존중해드려야 합니다. 부모님이 무능하다고 무시하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어느 중년이 된 분의 참회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5남매를 대학까지 공부시키느라 고생했습니다. 돼지를 길렀는데 뜨물통을 리어카에 실어날랐습니다. 자식이 커지자 뒤에서 밀어 달라고 합니다. 싫었지만 마지못해 밀고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앞에서 끌고 자기는 뒤에서 밀고 가는데 친구들이 지나갑니다. 순간 창피하다고 외면해 버렸습니다. 새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불현 듯 생각납니다. 그래서 후회를 합니다. “그때 내가 아버지 대신 앞에서 끌 것을 ... 아버지가 나를 위해 고생하신 건데 ... ”

요즘 고개 숙인 아버지들이 많습니다. 사회적으로 조기 퇴직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다 보니까 중년 남자분들이 고충이 많습니다. 45정, 56도라는 말이 유행합니다. 45세 정년, 56세까지 남아있으면 도둑이라는 뜻이랍니다. 그러니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상상이 됩니다. 옛날 부무님들은 그들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요즘 분들 역시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 경우는 부인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남편을 격려해 드리고 자녀들에게 아버지에대해 존경심을 갖도록 잘 인식시켜줘야 할 것입니다.


요셉은 부모님을 소중히 여긴다는 면에서도 단연 모델이 됩니다. 그는 애굽 대제국의 총리였지만 아버지 야곱 앞에서는 마치 어린 아이처럼 공손했습니다. 늘 아버지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 아들들을 데려다가 야곱 앞에 꿇어 앉히고
축복 기도를 받게 합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야곱은 다 늙은 퇴물이지만 아버지의 권위를 그토록 존중했던 것입니다.

또 부모님이 평생 희생만 하시니까 늘 그러려니 하고 당연시하기 쉽습니다. 심한 경우 어떤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까지 부모님에게 누를 끼칩니다. 그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 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방이질 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줄만 한 밤중에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은 부모님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③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 : 25절. 부모님을 즐겁게, 기쁘게 해드리라는 겁니다. 그 방법은 어떤 걸까요? 용돈 드리는 것, 건강 보살펴 드리는 것 ... 다 중요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23절~24절 말씀을 보시면 압니다. 자식이 잘 사는 것입니다. 무엇이 잘 사는 것입니까? 의롭게, 지혜롭게 바르게 사는 겁니다. 즉 신앙 생활 잘 하는 겁니다. 신앙의 부모님이라면 당연히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화려하게 출세해도 악하게 살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근심 덩어리죠.

제가 우리 교회 어르신들과 대화를 해 보면 대개 그러십니다. 자식들 신앙 생활 잘 하는 것 외에 더 바랄 게 없다고 하십니다. 그 자체가 영생과 축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한 가지만 확실하면 부모님이 안신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신앙의 부모님이라도 몰라서 그렇지 정말 아시기만 한다면 그분들도 오직 그 한 가지 바랄 겁니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는 부모님의 신앙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꼭 권해 드려야 합니다. 먹을 것, 입을 것 해 드려도 신앙 전해 드리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두고 두고 후회합니다. 부모님은 오래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당장 하십시오. 이것이 최고의 효도입니다.

[3] 부모를 공경의 결과

부모 공경은 당연한 일임에도 하나님은 축복의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신5:16 보면 십계명 중 5계명으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이것을 바울이 정리해서 엡6:2~3에서 또 이렇게 말


씀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는 말은 축복의 약속이 붙어있는 중요한 계명(인간 관계 가운데서는 첫 번째 계명)이란 겁니다.
특별히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강조에 강조를 거듭하시고, 축복의 약속까지 덧붙여 주셨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 중요하니까 혹시라도 소홀히 취급될까봐 인센티브를 주신 겁니다. 마치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당연히 공부하는 것이지만 공부 잘하라고 상을 걸고 격려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한 것이지만 더욱 열심히 부모 공경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우리 자녀들에게도 꼭 가르쳐야 됩니다. 때로는 부모들이 엎드려 절 받는 것 같아 멋쩍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르쳐야 됩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부모 공경의 교육은 부모들이 먼저 그 위의 부모님들을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반대로 부모 공경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혼나게 됩니다. 축복 대신 저주와 징벌이 임합니다. 성경은 너무 많은 구절들을 통해 경고합니다. 몇 구절만 인용해 보면 ... 잠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출21:15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21:17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잠을 자고 있을 때 슬수한 것이지만 자식들이 어떻 반응했는가에 따라 그들 각자와 그 자손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셈, 함, 야벳 중 아버지를 조롱한 함은 저주를 받게 됩니다.(창9:20~27 참조)

오늘 어버이 주일을 보내면서 우리 각자 마음을 새롭게 하기를 원합니다. 연례행사로, 하루 짜리 어버이 날로 보낼 게 아니라, 1년 365일을 어버이주일처럼 부모님을 생각하고 공경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양친뿐 아니라, 더 나아가 교회의 어른들도 공경하면 좋겠습니다. 교회는 큰 가정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면서 쓸쓸한 노인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분들을 섬겨야 합니다. 이 사명 위해 우리 교회가 앞으로 더욱 힘쓰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 자녀들도 부모를 공경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어른들을 공경할 수 있도록 잘 가르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라 자신도 우리 자손들도 하나님 앞에 칭찬 받고 복을 누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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