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사랑으로 완성을 이루라 / 고전 13:4-7

  • 잡초 잡초
  • 236
  • 0

첨부 1


사랑으로 완성을 이루라
고린도전서 13:4-7

하나님은 죄 아래 살면서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구원하심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용서는 자기 자신이 아픔을 감수해야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용서하기 위해서는 자기아픔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아픔 속에 내어놓으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행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이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구원하심을 얻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자, 용서이고, 또 우리가 믿어야 할 구원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복음에 대한 고백을 고린도 교회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18)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4)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갑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더욱 완전한 사랑의 대상이 되도록 우리를 완성시켜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의 대상이 되도록 완성되어 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구원하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는 동력을 공급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로 우리의 부족함을 극복하고 완성을 이루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E.L 허베이''는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한 꽃으로서, 봉우리 질 때에는 행복이고 완전히 피면 천국이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완전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완성되어 가는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들의 삶을 축복의 삶으로 완성해가며, 또한 구체적으로 완전한 사랑을 나누는 삶을 만들어가게 함으로 행복한 삶을 이루게 해줍니다.
그럼 이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완성을 이루어 가게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시간 우리가 사랑을 가지고 완전을 이루어 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은 우리로 변하지 않게 함으로 완전을 이루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변함이 없는 사랑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완전에 이르도록 완성시켜 가십니다. 성서 본문은 이러한 사랑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영어성경에서는 사랑은 언제까지나 영원하다는 말씀을 "Love never fails "(사랑은 결코 실패가 있을 수 없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fails(실패)라는 헬라어 원어 ''피프테이''는 나뭇잎이나 꽃이 떨어지는 모양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언제까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나뭇잎이나 꽃이 떨어지듯 변하거나 없어질 수 없음을 말합니다. 곧, ''사랑의 영원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중도에 실패하는 것이 아닌 변함 없는 지속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넘어지고 실패할지라도 변함 없이 우리를 붙들어 줍니다. 예언도 끝이 나고, 방언도 끝이 나고, 지식도 끝이 나지만,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변함 없는 사랑은 우리로 변하지 않게 함으로 완전을 이루도록 완성시켜 나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깨달을수록, 완전함을 향해 더욱 성장해 갈 수 있습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과 같이 변하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부모님의 변함 없는 사랑은 자녀로 하여금 완전한 사람이 되도록 성장하게 하는 역사를 이룹니다. 그러나 쉽게 변하는 사랑은 사랑을 병들게 하거나 성장을 멈추게 하는 실패의 삶을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변함 없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이 변함 없는 사랑의 능력을 가지고 나눔으로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사랑은 우리로 성숙하게 해주어 완전을 이루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린아이와 같이 말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생각하며 깨닫는 우리를 장성한 사람같이 말하고 생각하며 깨닫도록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성숙시켜 완전을 이루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성서본문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는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 같은 예언자 요나라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요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것은 큰 성 ''니느웨''로 가서 니느웨성이 죄악으로 멸망받을 것을 선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자기 민족의 원수인 니느웨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니느웨로 가지 아니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배 밑에 들어가 깊이 잠들었습니다. 하나님은 폭풍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요나로 하여금 바다에 던짐을 받게 하셨고, 큰고기에게 삼킴을 당하게 하여 그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였습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니느웨 백성은 왕으로부터 온 백성에 이르기까지 회개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니느웨 백성을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이 결과에 대하여 요나는 싫어하고 분노하여 하나님께 불평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이런결과: 멸망이 아니라 구원)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요나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기에)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음이니이다." (이렇게 불평하면서)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나님은 이런 요나가 앉아있는 초막에 박넝쿨로 햇빛을 가리워 그늘지게 함으로써 그를 시원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튿날 새벽에 벌레로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여 박넝쿨이 죽게 만드셨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내려 쪼이매 요나는 하나님께 짜증과 성을 내며 스스로 죽기를 구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요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요나의 말과 생각 그리고 깨닫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깊고, 크고, 넓고, 높은 사랑을 깨달음으로 장성한 사람처럼 깨닫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서는 요나의 이후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지 않지만, 장성한 사람처럼 되어 완전한 예언자의 사명을 감당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로 성숙하게 하시기 위하여 때로는 고난과 고통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이 사랑을 깨달은 히브리 성서기자는 고난에 대한 깨달음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징계를 주심으로)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우리는 성숙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음으로 완전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성숙하게 하는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에릭 프롬(Erich Fromm)은 "내가 사랑 받고 있기에 나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미숙한 사랑이고, "내가 사랑하는 까닭에 나도 사랑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성숙한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미숙한 사랑은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랑은 희생하며 헌신합니다. 미숙한 사랑은 자기를 이해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랑은 이해하여 줍니다. 미숙한 사랑은 자기생각과 주장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랑은 듣고 받아줍니다. 미숙한 사랑은 잔뜩 움켜쥐지만, 성숙한 사랑은 풀어서 나눌 줄 압니다. 성숙한 사랑은 우리를 완전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사십시오. 그 사랑으로 성숙해 지십시오. 그리고 성숙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성숙한 사랑의 역사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그 성숙한 사랑의 역사로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우리를 전체적이 되게 함으로 완전에 이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부분적 한계를 보게 해주고, 부분적 부족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전체적인 것을 보고 깨닫게 함으로 완전을 향하여 성장하게 해줍니다. 성서본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우리들이 보고 듣고 생각하며 안다는 것, 극히 부분적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아는 것처럼 생각하며 행동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제한적이고 부분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왜 잘 믿고 선하게 사는 사람들이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사업에 실패하며 어려움을 겪게 됩니까? 악인은 망해야 되고 선한 사람은 잘되어야 하는데, 왜, 정 반대의 현실을 보게 됩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반문해 보지는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모든 질문은 부분적인 이해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또한 온전한 하나님의 세계에 들어갈 때에, 심판이후 주님 앞에 설 때에 우리 자신의 부분적인 이해의 한계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부분적인 한계를 깨뜨리고 전체적인 세계를 경험하게 해줍니다. 사랑만이 우리에게 전체적인 안목과 깨달음을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로 부분적인 한계에 머무르지 않도록 해줍니다. 사랑은 우리로 전체적인 안목을 가지게 하여 전체적인 세계를 깨닫게 함으로 우리로 완전하게 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린 여인을 에수님 앞으로 끌고 왔습니다.(요8) 그들은 율법에 보면 이러한 여인을 돌로 치라고 했는데 어떻게 할지를 에수님께 물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이 여인을 부분적인 관점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 여인은 부정한 여인, 죄지은 여인, 율법을 법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그녀를 율법에 따라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을 사랑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이 여인의 부분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여인에게서 용서받아야 할 모습,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의 모습, 가능성 있은 모습, 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 여인을 부분적인 관점으로 보지 않고 전체적인 관점으로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에수님은 "너를 정죄 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고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 안에서 우리의 부분적인 편견과 이해는 폐하여 집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희미하고 부분적인 믿음은 확신 있고 온전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전체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할 뿐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게 하는 전체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요일4:20)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은 전체적인 사랑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편파적이지도 제한적이지도 않습니다. 감정적이지 만도 않고, 의지적이지 만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영적이지 만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은 편협한 사랑이 아니라 전체적인 사랑을 구체화시키는 삶을 살아갑니다. 모든 것을 보며 듣고 생각하며 이해하는 전체적인 사랑의 세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로 완전을 향하여 성장케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함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계속 붙들어 줍니다. 우리로 성숙하게 해주며 전체적이게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를 완전하도록 만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며 살아감으로 완전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프랑스 격언에 "사랑은 더 한층 깊어지든지 아니면 점점 식어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로 완전해지도록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완전함을 만드는 사랑을 나누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변함 없는 영원한 사랑과 성숙한 사랑, 전체적인 사랑의 사람이 됨으로 완전함을 이루게 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 우리들 생활에 완전한 사랑의 세계를 성취하는 승리자가 되십시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