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 눅 23:26-31

  • 잡초 잡초
  • 515
  • 0

첨부 1


Name  백봉태 목사
Subject  눅 23:26-31 /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002년 5월 26일)

최근에 우리는 신문을 보든지, TV 뉴스를 보든지 간에 대통령의 아들들의 문제가 톱뉴스가 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자녀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은폐되거나 적당히 덮여져서는 안되고 공의의 정신을 따라서 엄중하게 처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통령 가문에서 일어나는 자녀들의 문제에 대해서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 이상으로 대통령 가정의 문제를 우리의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 자신들의 자녀 양육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번 대통령 자녀들의 사건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먼저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우상화하는 잘못을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금년도에는 대통령 자녀들의 문제가 큰 국가적 이슈가 되었습니다만, 작년도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형 교회들의 목사님들이 담임 목사직을 그 아들에게 물려주는 세습 문제로 한동안 교계가 소란스럽고 교회가 일반 사회 사람들에게도 덕이 되지 못했습니다만, 그 문제도 제가 보기에는 우리나라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우상화하는 현상에 다름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상이 무엇이니까? 부처나 단군상 앞에 절을 하는 것만이 우상 숭배가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 우상들입니다만, 우리가 이처럼 우리 자녀들을 우상화하는 잘못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자녀들을 나의 자녀라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생각하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자녀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는 말은 그들은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동시에 우리가 잘 가꾸어서 하나님께 다시 바쳐야 할 숙제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처럼 자녀가 하나님의 기업이라면 우리 자녀들의 교육에 있어서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자녀들이 우리 부모의 마음에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즉 세속적인 면에서 유능하고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양육해 내야 할 책임이 우리 부모들에게 주어져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4:19에서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우리 기독교 가정의 부모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자녀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 가정의 부모들은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양육할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며, 그들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육체적으로 해산하는 진통 못지않게 다시 영적인 해산의 수고를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런 제2의 해산의 수고를 위해서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의 본문 이야기는 어쩌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부모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실 때 예수님의 뒤에는 가슴을 치며 슬피 울며 예수님의 뒤를 따라오는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가난한 자들에게 희망을 주시던 그 의로운 예수님이 억울하게 사형 판결을 받고 십자가를 지고 형장을 향하여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습니다. 눈물이 메말라 가는 오늘날의 시대 풍조에 비추어 본다면 그 여인들은 인간미가 있는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여인들을 보고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장차 그 여인들의 자녀들에게 임할 비참한 미래를 내다보시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 여인들에게 경고하시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본문의 29절과 30절에서 예수님은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고 하십니다만, 이것은 장차 예루살렘 도시에 임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과 엄청난 재앙 대해서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을 거룩한 성이라고 자랑하며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형식적이고 율법주의적인 신앙에 빠져 있은 가운데 그들의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아무런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초대 교회가 예루살렘에 세워지고 예수님의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며 그들이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것을 권고했으나 끝내 유대 민족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치 않고 자만하다가 마침내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은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 군대들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고 맙니다. 그때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가 되고 그 당시에 예루살렘 성안에는 유대 국가의 독립을 도모하고자 모여든 120만 명의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만, 그들 중에 대부분이 전염병이나 굶주림으로 죽거나, 아니면 로마 군대의 칼날에 참살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처럼 장차 다가올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서 경고하시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차라리 자식을 낳지 못한 여자가 복이 있다고 할 것이며, 너무나 끔찍한 참상 앞에서 사람들은 차라리 산들이 무너져서 그 끔직한 일들을 보지 않게 해 달라고 부르짖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보다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날로 날로 악해짐으로써 마침내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어른들의 숫자는 별로 변화가 없는데, 주일학교는 현저하게 감소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때때로 주일학교를 보내지 않고 학교 행사나 학원의 보충 수업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영적으로 더 어두워져 가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우리 자녀들을 더욱 더 신앙적으로 말씀으로 양육하고자 다짐하는 부모들이 결코 많은 것 같지만은 않습니다. 영어 과외를 위해서는 수십, 수백 만원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면서도 성경 과외를 시키는 부모님이나 가정은 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오늘의 우리 교회의 부모들에게 주님은 대통령의 자녀나 다른 사람의 자녀 문제에 대해서 비판하기 전에 “너희 자녀는 과연 어떤 자리에 있는가 돌아보며, 너희들의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눈물의 기도로 양육한 자식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절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세대 속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세상에 빠지지 않고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자란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고 힘든 일이기에 우리는 우리 자녀들의 영혼을 바라보며 늘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총을 간구하며 흘리는 눈물이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