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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로 사랑하라 / 요 13: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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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라  요13:31-35
2003, 05, 18


초대교회 시기에 소아시아 지역의 비두니아 총독으로 있던 폴립이 당시의 로마 홍제 트라이얀에게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이 편지는 소아시아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활동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은 폴립이 그 사실을 조사해서 보고한 내용입니다. 그 편지 내용의 일부를 보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황제시여 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제 부하 몇 사람을 완전히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을 교회 공동체에 들어가게 하여 세례도 받게 하였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일거수 일 투족을 면밀하게 살펴보도록 하였습니다.

저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들은 밤이건 낮이건 모일 때마다 그들의 신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노래  한다 고 합니다. 또 많은 양은 아니지만 저들은 자주 빵을 떼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황제시여 그들은 로마의 관리들을 위해서 그리고 황제폐하를 위해서도 기도하고있습니다.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의 눈에 비친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는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말씀은 사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을 요약한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했으니 너희도 그렇게 사랑하라는 것이 성경의 모든 가르침이라 하겠습니다.

이세상사는 사람가운데 사랑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랑을 실천하며 사느냐 할 때 우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사랑을 하기보다는 받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사랑하기를 힘써야 받는 사람도 생겨 날 터인데 모든 사람이 사랑을 받기만을 기다리고있으니 이 세상에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한다해도 극히 일부에서만 사랑의 흔적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이야기하면 우리나라에서 떠오르는 분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손양원 목사입니다.

이 분의 일대기가 요즈음 뮤지컬로 만들어져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이야기를 말하고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자기아들 둘을 죽인 공산당이 잡혔습니다. 미군에게 잡혀서 총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손 목사님이 이 사람을 찾아 면회를 합니다. 얼마나 죽이고 싶도록 밉겠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그를 위로하고 격려한 다음 담당자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저를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저를 내 죽은 아들 대신 양자로 삼아 키우고 싶으니 용서해달라고 하니 모두를 감동되게 했습니다.

관청의 허락을 받아  자기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양자로 들여 자기아들로 삼습니다. 어찌 사람의 감정으로 이일을 할 수 있습니까? 이일을 위해 목사님기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움을 얻어 실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당시 목사님이 손양원목사님 뿐입니까? 수 없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이야기가 없습니다. 사랑을 실천했다면 사랑의 이야기가 있을 터인데 오늘까지 전해 내려오는 사랑의 이야기가 없습니다.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고있습니까? 모두가 사랑을 받기만을 원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사랑을 받기만을 원했으니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요즈음은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하는 노래까지 많이 부르다 보니 정말로 모든 사람이 그래 난,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 나를 사랑해 너도 나를 사랑하고 너도 나를 사랑해 내가 받아 줄테니까? 하고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다행히 새로운 노래가 나왔어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랑 전하기 위해 주께서 택하셨네 그렇지요 맞아요 맞고요 맞습니다.

유월절 전날 만찬을 나누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교훈이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면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요즈음 어떤 사람들은 세족식 해서 교회에서 일년에 한 번 행하는 행사로  발을 씻겨 주는 일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것도 필요하지요 훈련이 필요하니까 몸으로 한 번 체험을 해보게 하는 것 필요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가르침은 세족식 하라는 가르침이 아니지요. 무슨 가르침입니까? 섬기며 살아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뭐냐 섬기는 것이다. 섬기며 살아라하는 것이지요. 이런 가르침 다음에 결론적으로 하신 말씀 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니까?

사랑이 뭐냐 섬기는 것이다. 그게 사랑입니다. 자기 보다 남을 낮게 여기는 것, 그래서 종으로 봉사하는 것, 메인 종이 나이라 스스로 종 되어 사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두 번째는 성만찬의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내 몸이니, 이것은 내 언약의 피니, 하는 말씀은 희생의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지요,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었습니다. 돈도 시간도 물질도 명예도 권세도 몸도 생명도 다 내어 주셨습니다. 성만찬에 참여 할 때마다 기념하고 기억할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다짐입니다. 희생 없이 사랑이 됩니까?

지난 주일에도 어머니의 사랑을 이야기했습니다마는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할 때 희생 없이 사랑이 됩니까? 요즈음 이 희생 없이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이 사실 큰 문제입니다. 요즈음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자기를 희생해가면서 자식 낳아 키우고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이러한 세상, 사랑 찾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인간은 사랑을 먹고사는 동물입니다. 사랑을 먹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소나 돼지는 태어나면 그대로 먹을 것만 주어도 소가 되고 돼지가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태어나서 먹을 것만 준다고 해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먹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인격이 자라고 그 성품이 자라고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이 사랑이 결핍되어있어요 사랑이 결핍되니 겉은 사람인데 속성은 짐승처럼 생겼습니다. 본능대로 사는 거예요 참을 줄도 모르고 양보 할 줄도 모르고 나눌 줄도 모룹니다. 형제가 많은 아이들의 성품이 넉넉한 것은 희생하며 나눌 줄 아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자기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다음에 주시는 교훈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되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 주시면서 주님이 앞에 붙인 말씀 이 있습니다.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왜 사랑하라는 것이 새 계명입니까? 이제까지는 사랑하라는 말씀 이 없었습니까? 사랑하라는 말씀은 성경전체의 흐름입니다.

그런데 왜 새 계명입니까? 그 다음 나오는 말씀 이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기에 새 계명입니다. 무엇입니까? 질의 문제입니다. 사랑의 질이 다른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랑한 것은 조건부 사랑입니다. 율법적인 사랑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무조건 사랑입니다. 강도까지도 사랑했습니다. 원수도 사랑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사랑은 조건부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에 익숙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면 언제나 조건부 사랑을 생각합니다. 내게 잘 해주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나와 관련이 된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예수님도 이것을 지적했습니다. 이방 사람들도 그만큼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사랑은 새 계명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명령을 누구에게 주는 것입니까? 제자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오늘 세상에 주는 명령이 아닙니다. 교회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교회의 지체된 여러분과 저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서로라는 말은 공동체를 말합니다.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교회 안에서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사랑하는 것을 보여주면 결론이 나옵니다. 35절 같이 읽습니다.“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비로서 제자가 되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해야 제자가 됩니다. 주님이 사랑하듯 사랑해야 주님의 제자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구별이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희생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다 주는 것입니다. 이 사랑으로 사랑하세요.

언젠가 여행을 하는데 같이 간 장로님이 나오면서 춥다는 거예요, 그래 방이 추웠느냐고 했더니 아니랍니다. 그러면 왜 추우냐 했더니 혼자 잠을 자서 춥답니다. 부부가 같이 온 목사님이 나오면서 아 추워합니다. 그 방은 왜 추우냐 했더니 오긴 둘이 왔는데 서로 뜻이 안 맞아 떨어져 자서 춥답니다. 그래요 사랑하면 둘이 같이 잤을 터인데 떨어져 잤으니 춥지요 혼자 자면 36도밖에 안돼요, 둘이 자면 72도지요, 그런데 거기에 알파 온도가 있어요, 사랑이 강해서 꼭 끌어안고 자면 나중엔 뜨거워서 땀이 나지요. 여러분 감옥이 왜 썰렁합니까? 사랑이 없기 때문이지요, 가정이 왜 따뜻합니까? 사랑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어떤 집은 썰렁한 집이 있어요 집은 좋은데 썰렁해요 사랑이 없기 때문이지요. 좋은 침대면 무엇합니까 사랑이 없으면 썰렁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팔순 되는 어머니를 모시고 삽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잘하는지 개척교회요 돈이 없어 단칸방에서 사시는데 한 방에서 어머니 모시고 아이들 둘과 같이 삽니다. 어머니가 큰 아들집에서 살았는데 치매가 생겼어요 그래서 막내인 목사님이 모셔 왔습니다. 얼마나 정성으로 모셨는지 치매가 없어지고 건강해졌어요, 그 어머니가 노인정에 나가는데 그 아들자랑, 그 며느리자랑을 얼마나 하는지 목사님이 고개를 못 들고 다니겠대요. 노인정에 어머니 모시러 가면 목사님이 어머니에게 그렇게 잘한다며, 무엇도 해 주었다며 해서 너무너무 송구스러워서 부부가 어머니에게 더 잘해야지 하고 다짐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즈음 세상에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합니다.

여러분 부모님을 찾아 뵈러갈 때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올케나 동서에게 잘하세요, 어머니 선물도 사고 용돈도 드리지만 모시고 사는 며느리에게 선물도 사고 용돈도 주고 오세요. 모시고 산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이게 일년 내내 한 번 찾아오지도 않은 주제에 모처럼 명절이라고 한 번 찾아와서 잘했느니 못했느니 따지고 않았고 용돈 좀 주면서 유세는 온 통 다하고 이 주책 맞은 노인들은 어쩌다가 한번 와서 용돈 주는 것만 좋아서 우리 몇째 며느리가 용돈 주고 갔어 이 옷도 사 준거야, 하고 모시고 사는 며느리 상처주기나 하고요,

모시고 산 자식이 효자요 효부요, 용돈 받으면 자식들 다 떠난 다음에 며느리 살짝 불러서 받은 용돈의 반을 떼어서 며느리 손에 쥐어주면서 어멈아 고맙다 하면서 이것 구루무래도 하나 사거라, 하고 주세요. 그러면 그 며느리가 얼마나 더 잘 모시겠어요. 그걸 못하고 어쩌다 한번 온 자식자랑은 하면서 모시고 있는 며느리 흉이나 보고 다니고 사랑 받겠어요, 존경받겠어요. 여러분의 가정이 사랑으로 행복해지기를 기원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 할렐루야 

서로 사랑하라
요13:31-35
2003, 0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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