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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경건생활의 아름다움 / 딤전 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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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생활의 아름다움 / 딤전 4:7-16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11]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 의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구약성경 전도서 1:8절을 보면 “눈은 보아도 정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 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나이만큼 많은 세월동안 참 많이도 보고 듣고 먹고 가지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더 보고 싶어하고, 더 듣고 싶어하고, 더 먹고 싶어하고, 더 가지고 싶어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 세상에서는 참된 만족을 결코 얻을 수 없다는 진리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복되다는 것은 이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사느냐, 깨닫지 못한 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비극이요, 불행이요, 무지 그 자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가면서 깨닫고 보면 ‘경건’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이 세상사는 동안에도 아름답고, 오는 세상에서도 아름다운 것이 ‘경건’입니다. 이 세상에서만 만족스러움을 보장해 주어도 좋고 귀한 것일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지니고 있으면 오는 세상에서도 만족함을 계속 보장해 준다고 하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알고 보니 ‘경건 즉 경건하게 사는 것’은 이렇게도 좋고 아름답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경건’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뜻합니다. 단어의 의미는 ‘삼가 하나님을 공경하여 섬기는 것/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정의를 내리면 ‘우리가 하나님과 잘 지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얼마나 잘 지냈던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은 나의 벗(친구)이다’라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잘 지냈다는 뜻이지요. 바로 경건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에녹은 360년 간(자기의 생애) 내내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어 함께 걷는 것, 이것이 ‘경건’입니다. 에녹은 이것을 무려 360년 동안 계속하셨다는 겁니다. 다윗은 그 생활과 그 인격이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경건’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경건은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요한복음 4:32-34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여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끝까지, 정확하게 섬겨 드리는데서 행복과 만족과 배부름을 느끼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경건이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을 경건이라고 보았습니다. 바울사도는 경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속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삶속에서 예수님의 냄새, 예수님의 향취를 풍기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사도는 야고보서1:27에서 경건의 의미를 明快하게 내려놓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나보다 약하고 어려운 사람을 돌보아 주고, 그러면서 이 세상 타락한 문화에는 물들지 아니하는 두 가지 원리를 지키는 것이 경건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건을 추구하면서 사는 곳에 기쁨과 행복과 진정한 만족과 평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건생활이야 말로 ‘진정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면 ‘경건’을 증진시키는 방안은 무엇일까요?

7절,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그러합니다. 무엇 하나 연습하지 않고 되는 것은 없습니다. 자전거, 쉬워 보이지요. 그러나 아직 자전거 못 타시는 분은 자전거 타고 싶어서 배워보면 몇 번은 넘어지면서 연습하셔야 될 겁니다. 자동차 운전도 연습 꽤 많이 해야 합격할 수 있습니다. 인라인 스케이트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엊그제 길에서 초등학생이 내 옆을 그것을 타고 지나가기에 ‘얘야, 쉽니? 안 넘어지니?’ 물어보았습니다. 그 아이 대답이 무었이었는지 아십니까? ‘쉬워요. 안 넘어집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저는 연습을 좀 해야될 것 같습니다.
경건생활, 신앙생활도 즉는 그 날까지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연습해야 합니다. ‘나는 더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무지에서 나오는 용기입니다. 만용이지요. 신앙의 사람은 항상 초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과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지고 순진한 마음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자세가 안되면 ‘경건’이 더 이상 자라지를 못합니다. 그러니 신앙의 깊은 맛을 볼수가 없지요.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9절,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라!
요즘 여러분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육신을 가지고 이 땅위를 살아가고 있는 한 전혀 여기에 소망을 두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자녀에게도 소망을 두어봅니다. 요즈음 자녀 때문에 실망을 많이 하시지요? 이것은 그만큼 여러분들이 자녀에 대하여 소망을 걸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현명한 부모라면 자식에 대하여 소망을 점점 줄여 나가는 준비를 할 것입니다. 자식으로부터 배신(?)당할 준비를 지금부터 서서히 시작하십시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너무 충격을 크게 받아 낭패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시편 23편을 늘 암송하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살아갈수록 깨달아지는 것은 단 하나! ‘믿을 곳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시48:14)

11절, 13절 읽고 듣고 배우자.
비록 깊은 산중이나 저 멀리 기도원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일상속에서 경건을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듣고 배우는 것입니다. 딤전 4:5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성경은 지금도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읽으면 말씀이 살아서 능력을 줍니다. 힘을 줍니다.(행20:32, 딤후3:16-17) TV 보는 시간 점점 줄이고 성경 읽는 재미를 들이십시요. ‘과연 꿀 송이보다 더 달구나’ 이 고백이 나오게 될 때까지 성경 읽는 습관을 들이십시요. 몸에 베이게 하십시오. 성경을 늘 지니고 다니세요. 잘 보이고 쉽게 잡을 수 있도록 가까운 곳에 두십시오. 매일 성경 읽는 습관을 만드십시오. 그리고 설교를 열심히 기쁘게 잘 들으십시오.

12절,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의 본이 되고자 노력하라.
경건의 훈련, 경건한 신앙, 경건한 삶은 이렇게 구체적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말을 잘하고 바로 하도록 연습하는 것이 경건의 훈련이 됩니다.
말을 맨 앞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말로써 이루어집니다. 말로써 의사를 전달하고, 말로써 위로를 하고, 말로써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말로써 상처를 입힙니다.
여러분! 경건을 증진하는데 말을 어떻게 다듬으면 될까요?
말을 적게 하십시오. 생각하고 나서 말 하십시오. (三思一言) 말하고 싶어도 뒤로 미루십시오.
2) 행실을 신실하고 정직하게 하십시오. 남의 존경을 받고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3) 사랑하는 일에 넉넉하십시오.
4) 믿음에 부요하십시요. 흔들리지 마십시오.
5) 정절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깨끗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마5:8)

14절, 받은 은사를 조심 없이 취급하지 말라.
삼손을 보십시요. 구별된 사람 나실인으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특출한 은사를 가졌습니다. 긴 머리털, 뛰어난 힘, 민족에 대한 애정.... 그러나 삼손은 이 특징들을 함부로 취급하였습니다. 가치 없는 사람에게, 가치 없는 일에 발설을 하고, 과시를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적지 않은 은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겸손하게 조심해서 사용해야 경건함을 증진시킵니다.

15절, 전심 전력하여 진보를 보여 주어라.
경건을 증진하려면 전심 전력해야 합니다. 구원받고 천당 들어가는 것은 100%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 저를 구원해 주세요. 용서해 주십시오. 천국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공로를 믿고 간구합니다.’ 이렇게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을 경건하게,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려면 전심 전력 노력해야 합니다.
16절, 죽는 그 날까지 경건의 연습을 삼가 계속하라.
이 세상의 모든 학교는 졸업하는 날이 있습니다. 수업 연한을 채우고, 학점을 채우면 졸업이 됩니다. 그러나 경건학교에는 졸업이 없습니다. 입학은 있으나 졸업제도는 없습니다. 그러니 지루할 것 같지요? 아닙니다. 경건학교는 들어가서 공부해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고백이 자기도 모르게 입밖으로 흘러나옵니다. “이 육신의 복락보다 신령한 복 더 좋으니, 내 맘과 뜻 다 합하여 저 천성만 향해 가네(찬475:5)”
시편 4:7에 보면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 하리이다.”고 했습니다. 곡식은 재산을 뜻합니다. 새 포도주는 육체적, 세상적 기쁨과 만족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이 두 가지가 풍성하면 최고의 만족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하늘나라로부터 내려 주시는 기쁨이 우리 마음에 있을 때 최고의 만족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 상태가 바로 ‘경건’입니다. 그러므로 ‘경건’이라는 것은 무언가 답답하거나 딱딱하거나 재미없는 것인 줄로 오해들을 하고 있는데 오늘부터 ‘경건’을 좋아하고 사모합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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