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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속에 빛이 충만한가? / 눅 1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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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 속에 빛이 충만한가?
본문 : 누가복음 11:33-36 


한 미국청년이 스페인에 있는 해외지사에 지원하여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월급을 더 주는 해외지사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애인과 약속을 하고 그렇게 스페인으로 떠났습니다. 애인이 스페인으로 떠나자 아가씨는 걱정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스페인에는 정열적인 아가씨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면서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가씨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스페인의 정열적인 아가씨들 때문에 걱정이 되니 절대 한눈 팔지 말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애인의 편지를 받은 청년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때로는 유혹을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스페인의 아가씨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당신만을 생각하고 그리워한다"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청년은 애인이 보내 준 소포를 받았습니다. 소포 속에는 하모니카와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하모니카 부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여 스페인의 아가씨들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즉시 답장을 보냈습니다. "앞으로 매일 밤마다 하모니카를 열심히 불며 당신만을 생각하겠다"는 답장을 써서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세월이 흘러 계간 근무기간이 끝나 청년이 미국으로 돌아오는 날이 되었습니다. 아가씨는 수고하고 돌아오는 애인을 마중하러 공항에 나갔습니다. 비행기가 도착하고 애인이 나왔습니다. 청년은 너무 반가워서 만면에 웃음을 띠고 두 팔을 벌려 애인에게 달려 왔습니다. 그때 아가씨는 "잠깐!" 하면서 청년의 포옹을 제지하고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나는 먼저 당신이 하모니카를 얼마나 잘 부는지 보고 싶습니다" 하모니카를 불며 자기만 생각한 증거를 보여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1. 빛은 드러나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빛이 드러나야 한다는 주님의 가르침의 말씀입니다. 3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불을 켜면 드러나는 곳에 듭니다. 불을 켜서 장롱 속에, 이불 속에 감추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빛은 드러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예수 믿는 증거가 드러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봉독한 본문과 비슷한 내용이 누가복음 8장에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8장 16-17절을 보면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비슷한 말씀입니다. 빛이 있으면 드러날 것이고 빛이 없으면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하신 것은 말씀을 듣고 주님을 영접했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8장의 말씀 바로 앞에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씨앗이 마음 밭에 떨어졌는데 길가나 바위 밭이나 가시밭처럼 열매를 맺지 못하면 큰일입니다. 오직 옥토와 같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씨앗이 마음 밭에 떨어졌으니 열매를 맺어야 정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봉독한 누가복음 11장의 말씀 바로 앞에도 열매를 요구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같은 것입니다. 31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모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 라고 하였습니다. 이디오피아의 시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 있는 말을 들으려고 유대까지 찾아왔었습니다. 지혜의 말씀을 구하는 여왕의 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솔로몬보다도 더 귀하고 위대하신 분이 오셨는데도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말씀을 들어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말씀하셨습니다.

32절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니느웨는 요나의 말을 듣고도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요나보다 훨씬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셨으나 영접하지도 않고 말씀을 따라 열매를 맺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영접하고 말씀을 들은 자들로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열매가 없고 빛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이는 우리 속에 빛이 없다는 증거가 됩니다. 빛이 있으면 드러내야 합니다. 말씀이 있다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열매를 맺고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 빛의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요 그분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빛을 드러내려면 빛의 근원인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주님만이 하늘의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달처럼 빛을 받아서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빛의 근원인 그리스도 예수를 떠나서는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다(요한9:5)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빛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춰도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하였습니다(요한1:5). 우리는 예수님이 세상의 빛인 것을 믿습니다. 그 분 안에 생명이 있고 그분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위한 빛입니다. 오늘 함께 봉독한 시편 119편 105절에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바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빛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3. 한 마음으로 빛을 받아야 합니다.

34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아멘. 눈은 빛을 받아들이는 통로입니다. 눈이 밝으면 빛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눈이 '성하다'는 뜻은 2중으로 보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단순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단순하다는 뜻은 '한마음', 또는 '일편단심'을 말합니다. 시편 119편 113절에 있는 말씀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와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우리는 빛이신 그분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때 우리는 단순한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듣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신대로, 말씀하신 대로 받아들입니다. 예수님도 의심 없이 믿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신앙입니다. 주님만이 구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 진리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것이 보이면 안됩니다.

미국의 어느 대학교 여자 기숙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2학년이 된 한 여학생이 자신도 남학생과 사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룸메이트로 있는 3학년 선배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습니다. "언니, 나도 이제는 남자 친구를 사귈 때가 된 것 같은데 어떤 남자를 사귀어야 할지 모르겠어. 언니가 한 사람 소개해 줘", "그래? 너도 그럴 때가 되었지. 그런데 너는 어떤 남자를 좋아하니? 남쪽 지방의 남자가 좋니, 아니면 북쪽지방의 남자가 좋니?"

그러나 그 여학생은 남쪽지방의 남자와 북쪽 지방의 남자가 무엇이 다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다르냐고 선배에게 물어보았더니 선배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응, 남쪽의 남자들은 상당히 로맨틱하지. 그들은 달밤에 너를 데리고 산보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네 귀에다 달콤한 말을 많이 해 줄 꺼야. 그러나 북쪽의 남자들은 대단히 활동저이야. 그들은 너를 데리고 신나는 곳으로 데리고 가려 할 꺼야." 그러자 여학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니, 나는 남쪽지방이 남자와 사귀고 싶다. 그런데 가능하면 북쪽에 가까이 사는 남쪽 남자를 소개해 주라."

우리 주에도 이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갖고 싶고!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 믿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귀한 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눈을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것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우리의 눈이 혼탁해 있습니다. 눈이 맑아져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진리의 화신으로 보여야 합니다. 오직 그분의 말씀만이 진리로 보여야 합니다. 아직도 눈에 다른 것이 보이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창문이 밝아야 방이 환합니다. 눈이 밝아야 마음이 밝습니다. 단순한 눈으로, 단순한 마음으로 예수님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4. 내 속에 빛이 충만한지 점검해야 합니다.

35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광선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아멘. 우리 속에 어두운 것이 있는지 살펴보라는 말씀입니다. 내 속에 빛이 충만해야 빛을 환하게 비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 성도들에게 빛이 없습니까? 왜 우리가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지 못합니까? 우리 속에 빛이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구석이 너무 많다는 증거입니다. 교회는 많은데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많이 있는데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의 현실입니다.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발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장 14-16절).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빛이 아닙니다. 빛을 드러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속에 빛이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속에 빛이 충만한지 점검해야 합니다. 어두운 구석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속사람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겉과 속이 다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셨습니다. "화 있을 진저 의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소경 된 바리새인들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케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태복음 23:25-26). 또한 예수님은 저들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 같다고 하셨습니다.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속에는 더러운 것이 가득한 것을 공격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고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우리를 더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속에 더러운 것이 가득하여 아름다운 빛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책망하신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함께 빛의 사자가 됩시다. 성도는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5:8-9). 우리는 이 말씀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빛이 되는 것, 세상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내는 것, 이것이 성도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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