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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웨의 주신 기업 / 시 1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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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야웨의 주신 기업
설교 : 조 용 기 목사
성구 : 시편 127편 3절~5절 말씀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야웨의 주신 기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기업이라고 하면 크고 작은 사업을 하는 회사로 생각을 합니다. 사업가는 기업을 통하여 부와 성공과 행복을 창출합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기업과는 관계가 먼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결혼하고 자식을 낳으면 바로 그 자식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업은 인간이 만든것이고 그 인간을 기르는 기업 즉, 자식양육이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업활동을 잘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상급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잘길러 놓으면 우리 일생의 가장 큰 상급이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삶의 최고의 기업인 자식양육을 등한히 하고 세상적인 기업에만 몰두할때가 많습니다. 그 결과 자식기업에 실패하고 만년에 자식이 재앙이 되어서 돌아올때가 많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자식 기업을 어떻게 경영하고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것입니다.


첫째, 자식기업은 농부의 심정으로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에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고 했는데 우리가 자식을 기르는데는 농부가 농사를 짓는 심정으로 자식을 돌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농부는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물대기에 심혈을 기울이며 비료를 주고 김매고 병충해를 방지하는 지극한 정성과 관심과 사랑과 돌봄을 통해서 수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농부는 봄이오면 가을 추수할 때까지 눈코 뜰사이 없이 바쁩니다. 그냥 씨만 뿌려놓고 내던져 놓으면 곡식이 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정성을 기울여 김을 매고 병충해 방지를 하고 비료를 주고 때를 따라 물을 대고 그런 노력을 통해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때에 우리 이웃에 살던 가난에 찌들린 농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같은 이웃에 다른 사람들은 잘사는데 그분은 정말 가난했습니다. 왜냐면 이분은 술먹기를 좋아하고 도박하기를 좋아합니다. 농사를 지을 때 마지못해 논갈고 밭갈고 씨는 뿌려놓고 그 다음에는 내동댕이 쳐놓습니다. 논에 가면 피가 잔뜩나 있습니다. 농작물은 삐뚫어져 있고 밭에도 풀이 무성합니다. 소는 하루종일 묶어 놓아서 뼈만 남았습니다. 먹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게으르게 농사를 지으니까 가을에 거둘것이 없습니다. 논에 가도 거둘것이 없고 밭에가도 거둘것이 없습니다. 항상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사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여러분! 자식농사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자식을 낳아 들풀처럼 그냥 던져 놓으면 이럭저럭 자랄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 천만한 생각입니다. 지극한 정성과 관심과 사랑과 돌봄이 있어야 자식농사도 잘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7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 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린다고 하는 것처럼 우리 자식을 기르는 부모들은 정말 오랜 세월을 큰 인내를 가지고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야 올바른 자식을 기를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농부의 마음이 없이는 자식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식을 키우는데 농부의 마음을 가지지 않고 그냥 자식만 낳아서 돈만 주고 내던져 놓으면 자연적으로 들풀처럼 자랄줄 아는데 그렇기 때문에 오늘 그 어린 자식들이 자라서 사회 크나큰 문제를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자식은 가정 교육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가정이 자식농사에 못자리이자 기업의 터전이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아야 됩니다. 자식을 교육하고 키우는데 학교가 돌보아 줄것이라고 학교에만 내어 던져 버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사랑과 화목과 평안이 넘치는 가정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자식들은 그 분위기를 마시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부부자식간에 이해와 동정과 사랑과 화목과 평안이 있는 가정에서 자식들은 그 분위기를 마시고 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가정에 분열이 있고 분쟁이 있고 물고 찢고 싸우면 그 분위기가 자녀들에게 깊은 상처를 갖다 주며 그 자녀들은 올바른 인격자로서 성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족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서로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화목하고 평안을 가지고 기쁨을 함께 나누며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 가족이 아닙니까? 가족들에게는 내가 손해 보더라도 화해하고 화목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특별히 부부간의 관계, 부모 자식간의 관계, 형제간의 관계는 이해를 따지면 언제나 손해가 옵니다. 이해를 따지지 말고 화해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신 것이 너무나 놀라운 지혜입니다.
마태복음 5장 39절로 4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이것은 패배주의적인 철학이 아니라 참으로 우리가 화목을 하고 살아갈 수 있는 놀라운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관계나 부모자식간의 관계는 이해를 가지고서 따지는 관계가 아닙니다. 서로 다투면 싸워도 손해보고 안싸워도 평안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겨도 아무 이익도 없고 져도 아무이익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손해가 오더라도 화해하고 화목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놀라운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 부모와 자식은 오른뺨을 치면 차라리 왼뺨 돌려대며 평화를 가지는게 좋습니다.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 주고라도 평화한 것이 좋습니다. 억지로 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더라도 화평한 것이 좋습니다. 평화가 다이아몬드라면 우리가 손해 보는 것은 나무나 짚이나 풀에 불과한 것입니다. 나무나 짚이나 풀을 희생하고라도 다이아몬드같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와같은 지혜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므로 부부간의 평화, 부모자식간의 평화, 가정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랑과 화목과 평안이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자녀들이 잘 자랄수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롤 모델(Role model) 즉, 모범으로 보고 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혼할 때 신랑, 신부를 알려면 그 부모를 살펴보면 잘압니다. 자녀들은 그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를 모범으로 삼고 딸은 엄마를 모범으로 삼습니다. 아무리 안그렇다고해도 실상은 그렇습니다. 어릴 때 늘 보고 배우는 것이 아버지, 어머니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린이의 인격은 1살에서 6살 사이에 토대가 완성된다고 말합니다. 미국의 아동교육 전문가 폴디 마이어는 말하기를 인간의 인격의 85%가 1살에서 6살 동안에 완성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린 아이가 1살에서 6살 동안에 어디에 있습니까? 부모와 같이 있습니다. 늘 아버지를 바라보고 어머니를 바라봅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말하고 어머니가 어떻게 말하느냐. 아버지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머니가 어떻게 행동하느냐.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함께 사느냐. 그것을 그들은 바라보고 모범을 삼습니다. 그것이 일생을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성장모델이 부모라는 것을 알면 부모의 언어, 심사, 행동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살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우리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세살에 배운 것이 여든살이 될 때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형수가 사형을 받기전에 어머니를 만나자고 그래서 어머니가 와서 철창 사이로 아들을 보니까 아들이 어머니보고 손을 좀 넣어 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자기 손을 만지고 싶어 그런줄 알고 손을 넣으니까 아들이 어머니 손을 잡아 당겨 이로 어머니 손가락을 깨물어 꺽었습니다. 어머니가 고함을 치고 피를 철철 흘리고 손을 빼니 아들이 하는 말이 “내가 지금 사형을 당하는 것은 어머니 때문입니다. 내가 어릴 때 이웃에 가서 물건을 훔쳐 올 때 어머니가 뭐라 했습니까? 안들키고 훔쳐 오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나를 칭찬해 주었습니다. 조금씩 훔친 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 다음에는 바늘도둑이 소도둑되고 살인까지 하게 되고 오늘 내가 사형을 당하는 것은 어머니의 어릴 때 칭찬 때문에 그렇습니다. 도둑질 해 온 것을 보고 칭찬했기 때문에 내가 오늘 이런 비참한 일을 당하지 않습니까?”

잠언서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 아버님이 저에게 참으로 좋은 모범이 되어주신 것을 지금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는 6?25사변 전란중에 자랐습니다. 6?25사변때 사회의 혼란이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학교 가면 학교가 아니라 완전히 난장판 이었습니다. 애들은 수업을 마치면 구석구석에 앉아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교실도 없이 천막을 산에 치고서 공부를 했으니까. 그리고 술병을 들고 학교에 왔습니다. 수업을 마치면 큰 아이들은 전부 떼를 지어서 창녀촌으로 놀러 갔었습니다. 그러한 무질서한 사회속에서 살았을때도 저는 그곳에 전혀 휩쓸리지 않았습니다. 담배 한대 입에 물어본적이 없고 술한잔 입에 댄적이 없습니다. 방탕한 곳으로 간적이 없습니다. 그때는 예수를 믿기 전입니다. 그러나 자랄 동안에 저희 아버님이 우리 보는 앞에서 절대로 담배 피는 것을 못보았습니다. 아버님이 술취해서 와서 술주정하는 것을 제가 본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허랑방탕해서 우리 집안에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늘 그것을 제가 보고 자랐기 때문에 아버님이 그렇게 안했는데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유혹을 당할때마다 그것이 마음속을 꽉휘어 잡았습니다. 청소년 시절이니까 애들에게 휩쓸리기 쉽지 않습니까? 휩쓸리지 아니하면 바보 취급 받습니다. 바보취급을 받으면서도 내 마음속에 언제나 고함치는 것은 “아버지가 그렇게 안살았는데 내가 어떻게 그렇게 살수 있느냐? 행동을 삼가야 한다.” 그래서 저는 6?25의 그 혼란한 사회에서 자라나면서도 올바르게 살아갈 수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청소년들은 대게 결손가정이나 불안한 가정의 산물입니다. 가정이 화목하고 인정이 있고 사랑이 넘치는 곳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청소년 범죄자의 가정 배경 조사를 연구한 발표를 보니까 10명중 6명의 아버지가 알콜중독자였습니다. 거기에 자란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겠습니까?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게 됩니다. 10명중 6명의 부모가 자주 싸웠습니다. 부부간에 늘 싸우는 것을 보고 어린아이들은 상처를 입히고 나가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청소년 4명중 3명이 제약없이 마음대로 키움을 받아서 세상에 나가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부모가 징계를 하지않고 길러놓은 것입니다. 세상에 나와서도 그렇게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10가정중 7가정에 건전한 오락기구가 없기 때문에 애들이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놀다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10명중 8명의 부모가 자녀의 친구에 대해서 무관심했습니다. 적어도 부모가 자기 아들, 딸들의 친구 몇 명은 이름도 알고 그가 누군지 알아야 될것인데 전혀 무관심 했기 때문에 자기 아들과 딸들이 어떤 친구하고 사귀는지 모르고 내어 던졌으므로 나쁜 친구를 사귀어서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10명중 8명의 부모가 자녀에게 전혀 무관심했다. 밥을 먹었는지 안먹었는지 공부를 하는지 안하는지 그냥 내동댕이 쳤습니다. 그래서 이 자녀가 사회적인 문제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다수 소년 범죄자들이 결손가정이었습니다. 부모가 이혼한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대다수 소년 범죄자들이 되었고 청소년 범죄자들의 80%가 신앙교육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신앙적인 교육을 받았더라면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고 범죄하지 않을 것인데 80%가 전혀 신앙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청소년들이 범죄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교육의 선악의 선을 부모들은 분명히 그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잘했을때는 칭찬을 아끼지 말며 악을 행했을때는 경고와 벌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22장 15절에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고 말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아직 배우지 못했으므로 미련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징계하는 채찍이 이 미련을 마음속에서 쫓아낸다고 말한 것입니다.

잠언서 23장 13절로 16절에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찌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채찍으로 때리면 영혼을 멸망에서 구원한다. 오늘날 교육은 어린 아이들에게 채찍을 때리지 말라고 합니다. 학교 교육도 어린 아이에게 전혀 체벌 못합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들이 방종하게 자랍니다. 잡풀이 일어나는데 잡풀을 잘라 주어야 되는데 잘라 주지 아니하므로 좋은 양식, 좋은 열매 맺는 풀로다 녹아지지 않습니다. 이래서 수많은 어린 아이들이 잘못되는 것이 바로 징계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잠언서 29장 15절에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 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채찍과 꾸지람이 없으면 바보가 된다는 것입니다. 잘못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오늘날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을 방임하면 안됩니다. 과보호하면 안됩니다. 잘할때는 아낌없이 칭찬하고 잘못했을때는 꾸짖고 채찍을 때릴수 있어야 지혜를 얻게 되고 마음에서 어리석음이 쫓겨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여러분 자녀의 신앙교육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다 얻어도 목숨을 잃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자녀가 장차 자라서 대통령이 되고 재벌이 된다 해도 그 목숨 잃어 버리면 그 인생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 70이요, 강건하면 80인데,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고 지옥에 떨어지면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 신앙을 심어 주십시오.
잠언서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어린아이때 신앙을 넣어주면 떠나지 않습니다. 카톨릭 교회에서 말하기를 6살까지만 당신의 자녀들을 우리에게 맡겨 주십시오. 평생에 카톨릭 신자로 남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때 그 마음속에 심어준 신앙은 평생에 뿌리를 뽑을수가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으므로 그 성경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어느 결손가정을 심방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열심히 나오는 가정인데 남편이 일찍이 죽고 부모가 엄마가 혼자서 어린아이를 가르치는데 늘 낮에는 직장에 나가고 애들을 돌볼수가 없지만 그 애들이 정말 곱게 자랐습니다. 절대 물의를 일으키지 아니하고 문제의 아이가 되지 않고 잘 자랐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엄마가 잘 돌보지도 못하는데 애들이 그렇게 공손하고 인사잘하고 착한가? 그래서 제가 그 집에 애들 방에 들어가 보니까 애들의 침상마다 큼직하게 엄마가 써준 십계명을 달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하는말이 “자로 들어갈 때 반드시 십계명을 크게 소리내어 읽고 잠자리에 들어가게 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십계명을 크게 소리를 내어 읽고 아침에 기도를 하고 세수하고 밥먹고 학교가게 한답니다.” 어릴때부터 계속해서 침대에 달아놓은 십계명을 읽고 자고, 읽고 깨고 난 다음 그것이 마음에 꽉 박혀서 그 계명이 그 아이들을 지혜롭게 만들고 위험한 길로 가지않고 바로 살게 만들어 준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모세의 신앙은 그 어머니의 품에 심어졌습니다. 애굽에서 유대민족들은 아들을 낳으면 모두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애굽 바로왕이 유대인들을 멸하기 위해서 아들은 다 죽이고 딸만 살려 놓으라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모세는 이제 조금 나이가 들려고 하자 죽음을 받기 위험하니까 그를 나일강변에 조그마한 그릇에 담아서 내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왔다가 어린아이 우는 울음소리를 듣고 가서 보니까 조그마한 갈대로 만든 그릇에 모세가 담겨 있거든요? 그래서 모세를 물에서 건져 내었습니다. 그러자 모세의 누이가 지켜 보고 있다가 뛰어 와가지고서 “유모를 내가 구해 드릴까요? 내가 유모를 잘 아는데요.” “그래라.” 그래서 그 유모를 불러온 것이 친어머니를 불러 왔습니다. 그래서 친어머니가 유모가 되어서 모세를 그 품에 길렀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이제 나이가 들자 바로 궁으로 데려 갔습니다. 그래서 40이 될 때까지 바로궁에서 온갖 바로의 학문을 다 배우고 그 영화로운데 살았지만 어릴 때 젖먹을 때 엄마품에서 신앙을 배웠기 때문에 그것이 일생에 모세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40세 그는 히브리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혁명을 일으키려다가 실패해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치고 나중에 80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지 않습니까? 모세의 마음의 신앙은 어릴 때 1살부터 10살 전에 엄마 품에서 젖꼭지 물고 자랄 때 넣어준 그 신앙 때문에 그 이후로 그가 40을 살면서 바로의 궁전에서 호화의 극치의 삶을 살고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워도 그 신앙을 떠나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5절에 디모데의 신앙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가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그렇게 좋은 신앙을 가진 것은 먼저 그 신앙이 외조모의 마음속에 있었고 그 다음에는 그 신앙이 그 어머니의 마음속에 있었고 어머니가 신앙을 가졌으므로 디모데가 그 위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게 보면 훌륭한 신앙을 가진 어머니의 품에 자란 자녀들은 끝까지 훌륭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적인 삶을 가르치는 부모가 되어야 됩니다.
신명기 6장 5절로 7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말한 것입니다.

신앙은 어릴때부터 자녀에게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먼저 가정예배를 착실히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느 신앙이 좋은 젊은 주부를 보고 물었습니다. 어디에서 신앙을 그렇게 얻었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집에는 아버님이 엄하게 가정예배를 보았는데 언제나 저녁시간 9시가 되면 가정예배를 봅니다. 9시 가정예배를 보러 안왔다가는 벼락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늘 저녁 9시에 가정예배를 보았고 그것이 신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라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데리고 교회 오는 것을 가르켜야 돼요. 성수주일하는 것은 자녀를 손잡고 교회와서 교회학교에 보내고 부모가 예배 드리고 또 자녀와 함께 집에 돌아가는 이것이 그들의 습관이 되면 오래오래 그 마음속에 그 신앙의 모범이 떠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교회 훌륭한 부모님들이 십일조를 드릴 때 꼭 자녀를 데리고 와서 자녀보는 앞에서 제게 십일조를 드리고 안수기도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보고 하는말이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 자식들에게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꼭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더라. 그래서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잘살게 되더라” 그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말했었습니다. 그 얼마나 좋은 교훈입니까? 십일조 낼 때 제게 와서 안수기도받고 그리고 자녀 보는 앞에서 십일조를 주님께 드린다. 그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내 마음 물질있는 곳에 내 마음이 있다고 하는데 하나님께 물질을 드려서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을 자녀들에게 보여 주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윌리암 콜 게이트 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콜게이트 치약, 콜게이트 대학 하면 다 아시리라 봅니다. 그가 18세 되던 해에 성년식을 마친후 마을에서 가장 연로한 노인에게 가서 인생 자문을 구하자 “네가 가장 잘할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비누와 양초를 만드는 일은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청년의 손을 잡고 “네가 좋아하는 바로 그일을 하거라. 단 한가지 조건은 예수님을 네 동업자로 모시고 수입의 십일조를 반드시 동업자에게 드려라. 그러면 너가 크게 성공해서 잘살게 될 것이다.” 콜게이트는 그 노인이 시키는데로 했습니다. 그는 비누와 초를 만드는 공장을 설립해서 일했고 십일조를 반드시 드렸습니다. 그 결과로 큰 사업가로 성공하여 세계적인 치약과 비누 회사를 운영하고 콜게이트 대학을 설립해서 그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놀라운 일을 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녀에게 주는 가장 큰 유산은 무엇입니까?
신명기 28장 1절로 6절이 바로 그 유산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것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 아니겠습니까? 어떠한 인류대학 졸업장 보다 더 자녀들에게 하나님 야웨의 말씀을 삼가 듣고 주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 가장 놀라운 유산을 자녀에게 남겨줄수 있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말하기를 “사람들이여 재물을 모으는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그것을 물려 받을 어린이에게 좀더 많은 사랑과 정성을 쏟으라. 이것이 내 일생에 얻은 가장 귀한 교훈이라”고 말했었습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말하기를 “21세기는 도덕성을 지닌 민족만이 번영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도덕성이 없는 민족은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번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도 알려 있지 않습니까? 도덕성을 잃은 큰 기업들이 부실경영을 해서 펑펑 넘어지지 않습니까? 결국 도덕성을 가진 기업이 먼눈으로 볼 때 성공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 한국은 입시교육에 눌러 인성교육을 잃어 버린지 오래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저 입시공부, 인류대학, 인류대학해서 애들이 찌들어 집니다. 그래서 인류대학에 들어가면 그 다음에는 완전히 공부에 질력이 나서 지쳐서 공부를 등한이 하고 놀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식은 있어도 지혜는 없고 저주할 줄은 알아도 감사할 줄 모르고 시기할줄은 알아도 칭찬할 줄 모르고 경쟁할줄은 알아도 협동할 줄 모르고 쾌락은 알아도 사랑은 모르기 때문에 오늘날 인성교육이 없는 우리 젊은이들은 사회도처에서 화합과 단결을 가져오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을 우리가 잘보고 있는 것입니다.

1889년에 이 세상에 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한 아이는 히틀러고 한 아이는 아이젠 하워입니다. 똑같은 해에 동갑으로 태어났습니다. 한 아이는 오스트리아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몹시 성미가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가정보다 사교생활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어렸을 적 그의 아버지가 죽고 그 후 어머니는 아이를 알콜 중독자인 숙모에게 맡기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16세가 된 소년은 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했습니다. 그는 닥치는데로 일을 하며 연명하다가 결국 독일 군대에 들어갔다가 1차대전에 독일이 패배한 이후 정치에 투신하여 극렬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가정교육이 없었고 신앙교육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34년 독일국민의 절대 영도자인 총통이 되었고 그는 제2차세계대전을 일으켜 온 유럽을 잿더미로 한 아돌프 히틀러였습니다.

그러나 같은해에 1889년에 한 아이가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소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흡족히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아버지는 소년에게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는 가훈을 전해 주었고 가족모두가 교회에 가장 적극적인 봉사자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소년은 어른으로 성장해서 어머니의 두팔에 안겨 간곡하게 기도하던 매일저녁의 일과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군대에 흥미를 느끼고 웨스트 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 졸업하여 그가 바로 2차대전 당시 연합군 사령관이었고 이후 미국 대통령을 지낸 더 화이트 아이젠 하워인 것입니다. 1944년 6월 6일 이 두명의 동갑내기가 전투에서 대면했습니다. 11개월에 걸쳐 히틀러와 연합군 사령군 아이젠 하워는 서로 싸웠습니다. 히틀러는 1945년 전쟁에 패배하고 4월 30일 지하 반공대피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소식을 접한 전 세계는 박수갈채를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젠 하워는 1969년 80세에 평화롭게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죽음을 전 세계가 애석하게 여긴 것입니다. 여러분 이 두사람의 이야기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태도가 자녀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하고 바람둥이 어머니 밑에서 잠시 자란 히틀러는 사회와 인류에 대해서 무지무지한 반항심을 가지고 있어서 그는 결국에는 독일의 총통이 되고 난 다음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인류문명을 잿더미로 변화시켰지만 사랑과 신앙교육을 받은 아이젠 하워 대통령은 동갑내기지만은 그는 전쟁에서 인류를 구원했고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 많은 사람을 추앙을 받은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된것입니다. 이 두사람이 다 얼마나 가정 교육이 중요한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아동은 개인 소유물이 아닙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기업이기 때문에 자식이 내 개인 소유물처럼 취급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4월 4일자 국민일보에 보면 제주도에서 아버지가 이민주 라는 이름의 어린딸을 때려서 죽였습니다. 그는 자기 부인과 생이별을 하고 있었는데 그 딸이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에게 몰래 전화한다고 그 아버지가 그 딸을 굶기고 얼마나 매를 때렸던지 매맞아 죽었습니다. 이런 챙피하고 몰상식하고 몰지각한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엄마에게 딸이 전화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닙니까? 엄마에게 전화한다고 자기의 살과 피인 자식을 굶주리고 때려 죽이다니 이런 것이 오늘날 우리 부모의 형상이 되어서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여러분 아동학대는 하나님 앞에 범죄도 보통 범죄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19장 14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보건복지부 발표에 보면 우리나라 잠재피해 아동은 45만명이라고 말합니다. 서울에서 9만 7천명, 부산에서 3만 5천명, 제주에서 5천명, 경기에서 8만 3천명, 대구, 인천에서 2만 3백명이 학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피해 아동의 75%가 11세 이하 아동인데 어떻게 학대를 하는가 조사에 따르면, 밥을 안주고 굶깁니다, 옷을 제대로 입히지 않아서 동상이 걸리게 합니다, 때립니다, 정서적으로 구박을 합니다, 버립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부모가 자식을 성폭행을 합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5절로 6절에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 학대에 대해서는 우리 주님께서 무지무지한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추궁할 것입니다. 아동은 차세대 국가를 이끌고 나갈 재량으로써 사랑받고 보호되고 양육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절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실 때 어떠한 사랑을 베풀었는지 우리가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몸을찢고 피를 흘리기까지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돌보고 양육해서 천국백성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어느날 선생님이 초등학교 1학년 수업시간에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필요한 물건이 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며 왜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까?” 그러니까 한 아이가 손을 들더니 “선생님! 나는 냉장고가 되고 싶습니다.” “왜 냉장고가 되고 싶습니까?” “그 이유는 속에 가득찬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수가 있고 또 냉장고는 우리 어머니가 항상 열었다 닫았다 하므로 우리 어머니가 나를 냉장고처럼 열었다 닫았다 돌보아 주기 때문에 냉장고가 되고 싶습니다.” 둘째 애가 손을 들었습니다. “너는 뭐가 되고 싶으니?” “나는 텔레비젼이 되고 싶습니다.” “왜?” “그 이유는 우리 부모님이 좀더 자주 자기를 보실 것이고 더 열심히 돌보아 주며 훨씬 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고 밖에 나가 놀라고 않고 끝나기도 전에 주무시지 않습니다. 항상 우리 부모님은 텔레비젼 앞에 앉아 있으니까 내가 텔레비젼만 된다면 우리 부모님이 항상 나를 쳐다봐 주고 내 말도 들어주고 텔레비젼 프로그램이 끝나기 전에는 잠도 안주무시고 나를 돌보아 줄 것 아닙니까?” 벌써 어린 아이들이 여러분 얼마나 부모의 돌보심과 사랑이 필요했기에 나는 어머니가 늘 열었다 닫았다하는 냉장고가 되고 싶다. 나는 부모님이 늘 바라보는 텔레비젼이 되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이만큼 오늘날 우리 사회는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내어 던져 놓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아동은 국가의 장래이고 교회와 천국의 장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어린이 주일. 매년 지나가는 행사로 지나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 부모들이 과연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 자식들을 잘 기르는지 깊이 생각하고 반성해 보아야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도 한때는 다 어린아이였고 우리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과 정성으로 자라서 어른이 되고 또 자녀의 부모가 되었습니다. 또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님을 보내셔서 몸찢고 피흘려서 우리 위해서 죽으시고 성령을 보내시사 말씀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시므로 우리가 신령한 자녀로 태어나고 성장하고 자라서 천당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아버지 오늘 이 어린이 주일에 우리가 깊이 반성하고 우리가 자녀를 잘 못기른 것도 회개하고 현재 자녀를 기르는 부모들은 자녀에 대해서 더 많은 정성과 관심과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농부가 농사를 짓는 그 마음으로 자녀를 길러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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