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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나의 신으로 / 슥 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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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의 신으로"  스가랴4:1-10
 

I.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는다


  담배를 끊지 못해 늘 신앙생활에 당당하지 못했던 집사님 한분이 계셨습니다. 가족들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담배를 피지 않겠다!"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베란다에 나가 비스듬이 기댄체 버금버금 담배를 피워대며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비난을 했겠지요.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또 담배를 피우시느냐고?" 남편이 버럭 화를 내며 그러더랍니다. "앞으로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옆으로 서서 피우잖아?"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면서도 담배 하나 제대로 끊지 못할만큼 인간은 참 나약한 존재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며 무능하고 나약한지 아십니까?

  쥐란 놈은 지진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피신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속수무책 당합니다.

  개미는 홍수가 날 것을 미리 알고 높은 곳으로 이사를 해 둡니다. 거미는 어디로부터 바람이 불어올 것인가 방향을 미리 알고 거미줄을 칩니다.

사람이 하찮은 미물보다 못한게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인간 자신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의지하는 돈, 권력, 과학의 힘 또한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난 주간에 홍콩 최대의 여성 재벌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알려진 49살 바오 융친 여사가 소위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 사스(SARS) 증세로 죽었습니다. 1,600억원 그의 재산도 그까짓 바이러스 하나로부터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이를 두고 오늘 본문은 선언합니다. "힘으로 능으로도 되지 않는다."  여기 힘은 인간의 힘, 인간 집단의 힘, 조직의 힘, 과학의 힘 - 당시의 군사력을 말합니다. 또한 능은 "코아하"라고 되어 있는데 - 육체의 힘, 건강의 힘 그리고 한 인간이 자랑할 만한 물질 등 환경적 능력을 말합니다.


  본문의 배경을 살펴 보십시다.

오래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가 되어 70년간 모진 고생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페르시아 고레스 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포토록 합니다. 그리웠던 고국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전을 수축해도 좋다는 엄청난 허락을 얻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옛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 왔던 국보들, 성전 기명들을 모조리 되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성전 재건에 필요한 건축 비용을 국고에서 보조토록 했습니다. 그래서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눈물과 감격으로 성전의 기초를 다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전 건축은 내적 외적 커다란 방해와 장애물에 부딪혀 14년간이나 중단이 되어 있었습니다. 뜻 있는 사람들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어리석은 백성들은 개인적인 일에 빠져서 하나님의 일을 까맣게 잊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선지자 스가랴를 통하여 들려옵니다.

그 내용이 바로 여덟 가지 환상으로 나타나는 구약의 스가랴서요, 그 중 다섯 번째 환상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소위 두 감람나무 환상이라고 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질문 가운데 첫 번째 질문이 "네가 무엇을 보느냐?"는 말씀으로 오늘 본문의 그 막을 열고 있습니다.

지금은 땅을 보지 말고 하늘을 보라는 것입니다. 현실을 보지 말고 환상을 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무능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살 때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핵심 -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좋아하는 요절이 선포됩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


II.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개인이든 공동체든 국가든 살아가다 보면 문제에 부딪히게끔 되어 있습니다. 육체적인 문제, 정신적인 문제, 영적인 문제, 가정의 문제, 직장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국가의 문제. 오늘 본문은 이러한 인생의 문제를 산이라 표현했고, 아주 큰 문제를 큰 산이라 말합니다.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장애물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큰 산이 무엇일까요?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흥분하여 힘을 쏟던 성전 건축공사가 중단된 사태를 말합니다.

왜 공사가 중단되었습니까?

첫째는 외부의 방해 때문이었습니다. 건축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사마리아인들이 유력인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고데스 왕의 대를 이은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에게거짓 고소를 하게 됩니다. 고소의 내용인즉 "유대민족이 왕을 대적하기 위해 성읍과 성막을 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왕명에 의해 공사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사마리아인과 주변 국가들의 반대와 방해, 과연 큰 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짓 고소장 - 억울하지만 큰 산 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더더구나 지배국의 임금이 거짓 고소장을 보고 공사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공사 중단 명령을 내렸습니다.

큰 산 일 수 밖에요.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모든 길이 막혔습니다. 모든 가능성이 차단되었습니다.


둘째는 이런 외적 방해 뿐만 아니라 내적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입니다. 백성들의 불신앙 또한 큰 산이었습니다.

방해에 부딪히자 백성들을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불평을 시작합니다. 돈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하지.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모두 페르시아에 남았잖아. 정치, 경제가 안정되어야 하나님의 일을 하지. 그리하여 모두 개인적인 일, 세속적인 일에만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백성들의 태도를 불신앙이라 책망하셨고 하나님이 복을 거두어 가시겠다 말씀했습니다.

이런 불신앙적인 태도를 가지고는 큰 산을 넘어 설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3)

산을 옮기는 것은 전자 계산기를 두드려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이지요. 장애물을 뛰어넘고 큰 문제를 돌파하는 힘은 곧 믿음입니다.


언제나 믿음의 사람들에겐 -

  문제는 성공으로 가는 징검다리일 뿐입니다. 언제나 문제도 없고 어려움도 없는 일은 별로 가치 또한 크지 못합니다. 문제가 있다 가치가 크다는 뜻이지요.

불신앙인 앞에서 장애물 이든 것이 믿음의 사람 앞에선 사닥다리가 되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문제를 통해 더욱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갑니다.

더욱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일을 이루어 냅니다.


III. 오직 나의 신으로!

  하나님의 사람들도 세상 사람들과 매 마찬가지로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왜 큰 산, 작은 산을 만나게 될까요?

내가 큰 산에 도착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산을 깎아 평지를 만들어 놓으시면 아니되는 것이었습니까? 내가 필요를 느끼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팍팍 부어주시고 밀어주셔서 창고에 쌓아놓고 끄집어 내어 쓰면 안되는 것이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 얼마나 어렵게 얻은 자유요 해방이었습니까? 얼마나 그리웠던 성전건축이었습니까?

그런데 왜 그들에게 큰 산이 그들 앞을 가로막고 나서야 하는 것이었습니까?

오늘 본문 전체에서 위 질문의 대답이 되는 핵심단어 한 마디를 뽑아내면 "오직 나의 신(神)으로"입니다.

모든 역사는 나의 힘이나 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 삶이 쉽게 풀어지지가 않음을 느낍니다. 시시 때때로 장애물을 경험합니다. 시련과 역경의 산을 넘어 갑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나와 엎드려 기도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셔야 겠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도와주십니다. 힘을 주십니다.

길을 내십니다. 그때 문득 깨닫는 진리가 있습니다. 지혜가 있습니다. 아! 하나님이 하셨구나.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가령 우리가 교회를 섬기다 보면 모든 조건이 완벽하고 주판알을 굴려보면 안될 수가 없는 일입니다. 하나도 안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길이 막힙니다.

일이 꼬입니다. 반면,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건 도무지 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경험적으로 안되는 일입니다. 상식에도 안 맞습니다.

준비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기도하고 감당하다 보면 됩니다. 하나도 어렵지가 않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인간적으로 완벽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실패입니다. 성공 같아 보이지만 결국은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불완전해 보여도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이 경험을 풍성히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들이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일찍이 허드슨 테일러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가치로 일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고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자신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빌리면, "오직 나의 신(神)으로" "오직 나의 영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삼손을 보십시오. 주의 영이 함께 할 때 엄청나게 큰 일을 했습니다. 나귀 턱 뼈 하나로 1천명 훈련된 군사를 무찔렀습니다.

그러나 주의 영이 떠나자 두 눈이 뽑혀지고 초라한 종이 되어서 멧돌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영력을 잃어버리는 것, 영안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것, 영감을 잃어버리는 것, 이게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불행인지 아십니까?

아무리 좋은 쇠라도 자력이 없으면 바늘 하나 끌어당길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쇠뭉치라도 자력을 회복하면 쇠뭉치를 끌어당깁니다.

아무리 고상한 사람도 성령이 떠나면 무능하고 무력해 집니다. 그러나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령이 함께 하시면 시대를 이끌어 갑니다.

역사를 만들어 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역량을 미치는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환상, 두 감람나무는 성령이 사용하는 사람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일컫습니다. 오늘 본문을 조금 더 읽어내려 가다 보면 선지자가 하나님께 묻습니다. "두 감람나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14절에서 대답하십니다. "기름 발리운 자니라!"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성령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은 언제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까? 하나님의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 성령의 기름이 넘치는 사람들에 의해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오래전 일본에 뇌학자인 에코노모(1876-1931) 박사가 연구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호두처럼 주름이 잡혀 있는 인간의 뇌는 그 두께가 약 3mm정도 되는데 이것을 펼쳐보면 신문지 한 장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무려 136억 5천 300만개 라는 어마어마한 신경 세포들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뇌는 지금까지도 신비한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천재로 일컬어지는 괴테는 일생동안 0.4% 정도를 사용하였고, 아인슈타인이 0.6%를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1% 이상의 뇌를 사용한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하물며 성령님은 오죽 하겠습니까?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닷물을 쓰고 또 써도 1cm도 줄어들지 않듯이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덧입고 쓰고 또 써도 조금도 축나지 않는 것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너희가 성령의 충만을 받을찌어다 !

오직 나의 신(神)으로!  이 말씀과 동일한 말씀이 신약 성경에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주님의 몸된 교회는 어떻게 세워지는 것인가?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신 지상명령은 어떻게 감당되어지는 것인가? 하나님 앞에 한없이 쓰임 받고 싶은데 어떻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다."

요즘 편리하고 발달된 가전 제품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정전이 되고나면, 전류가 차단되면 모든 것이 무용지물입니다.

성령의 전류가 흐르지 아니할 때 사도 베드로를 보십시오. 자타가 공인하는 수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고난이 두려웠습니다. 죽음이 두려웠습니다. 무슨 체면으로 수많은 사람 앞에 감히 예수님을 증거하며 교회를 세울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에게 성령이 임재했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갈등을 극복했습니다. 자기 콤플렉스를 극복하게 된 것입니다. 고난이 두렵지 않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사람의 말을 듣는 것과 하나님의 말을 듣는 것 어느 것이 옳은가 판단해 보라.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이렇게 매 맞고 복음 전하는 것이 오히려 합당하고 영광스럽다"고 그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매 맞고도 기뻐합니다. 죽으면서 행복하게 죽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담대히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

나비와 나방을 보면 겉으로 보기에는 흡사 똑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나비는 여유가 있습니다. 나방은 전혀 여유가 없습니다. 나비는 낮에 날라 다닙니다. 나방은 밤에 날라 다닙니다. 날으는 모습이 나비는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나방은 천방지축입니다.

왜요? 나비는 태양으로부터 힘을 얻어서 날기 때문에 내 힘이 아니라 태양의 힘으로 납니다. 나방은 스스로의 힘으로 퍼덕거리고 날아 보지만 힘이 없습니다.

태양으로부터 힘을 공급받는 나비는 유연성이 있습니다. 부드러워 보지이지만 쉽게 잡히지 않습니다. 유연성을 상실한 나방은 불을 보고도 퍼덕퍼덕 날아가다

멈추지 못해 불속에 퍼덕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내 힘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삶이 아름답습니다. 힘들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모르는 사람은 허우적거려 보지만 아무런 영향력이 없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힘의 차이 원동력의 차이라고 입니다.

재력의 차이가 아니올시다. 지성의 차이가 아니올시다. 심지어는 윤리의 차이도 아니올시다.

오직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람들과 하나님들로부터 버림받는 사람들이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IV. 장애물이 디딤돌로

오늘 본문 건축 공사장에서 여호와의 신(神)이 함께 하자 장애물은 변하여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걸림돌이 사닥다리가 되었고 원수의 방해공작이 최대의 원군이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의 지도 아래 성전 재건 역사가 불꽃처럼 뜨겁게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사탄은 서편 총독 닷드네와 그 일당들을 동원하여 간교한 방해공작을 시작합니다.

페르시아 임금 다리오에게 상소를 올립니다.

「내가 보니 지금 유대백성들이 엄청난 건축 공사를 하길래 "어떤 법적 근거로 이런 일을 하느냐" 물었더니 이미 선왕대에 허락한 것이라고 합니다.

폐하! 잘 살피셔서 이것이 사실인지 확인하여 왕의 위엄을 세우소서.」 하는 상소의 내용이었습니다.



  왕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던 중 선왕대의 한 두루마리를 발견하고 답신을 보냅니다.

그 내용이 에스라 6장 6절이하 10절 사이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1. 주변 부족들은 하나님의 성전 역사를 막지 말아라.

2. 유다인들은 당당히 성전 건축 공사를 계속 하라.

3. 왕의 재산 곧 세금 중에서 소요 경비를 신속히 지원하여 지체함이 없도록 하라.

4. 하나님께 드릴 제사에 필요한 제물들은 제사장이 원하는 대로 영락없이 공급해 주라.

5. 제사 때마다 부탁하노니 왕과 왕자들을 위해 기도해 다오.

6. 무론 누구든지 이 명령을 어기면 그 집을 거름더미가 되게 하리라!


  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차 있습니까? 이 얼마나 놀라운 역사입니까?


  여러분! 어려움과 문제를 만났다고 너무나 쉽게 불평하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인생을 살아가다 조그마한 난관에 부딪혔다고 걸핏하면 불평의 입술을

열지 마십시오.

내가 이해가 안된다구.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함부로 원망하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큰 산이 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니 방해가 축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시니 장애물이 변하여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될지어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눈을 여십시오. 성령의 눈을 뜨십시오. 하나님이 역사하는 세계를 보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10절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작은 일이라고, 오늘 거대한 역사의 문이 열려지는 이 날을 시시한 날이라고 말하는 자가 누구냐?

  스룹바벨이 성전을 짓기 위해 돌 하나를 갖다 놓았을 때 그 일은 너무나 시시해 보였겠지요. 미미한 일처럼 보였겠지요.

믿음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형편을 생각해 보면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겠지요. 그 옛날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을 기억하며 그 성전 재건이 과연 가능할까?

믿을 수 없었겠지요.

  그러나 그 일을 시작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그 일을 보고 계신 분이 누구십니까? 그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그 일을, 그 미미하고 초라해 보이는 그 역사를 누가 보고 있었나요?

계속 본문 10절입니다.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그분의 일곱 눈이 모든 역사를 보고 있습니다.

시작을 보는 그분의 눈이 마침을 이미 보고 있습니다. 그 미미한 시작은 위대한 시작이었습니다.

그분이 오늘 아침 약속하고 있습니다. 9절입니다. "그 일을 내가 마치리라" 시작케 하신 전능하신 그 분이 완성케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속된 말로 말하면 하나님은 끝내주시는 분이십니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끝내주리라 !

  빌립보서 1:6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그 분이 이루실 줄을 믿노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때마다 하나님은 필요한 자원을 공급해 주십니다. 때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때로는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자원을 넉넉하게 풍성하게 공급해 주십니다.

에스라서를 살펴보면 이 역사는 다리오왕 6년 모든 역사가 마쳐집니다. 이 성전을 스룹바벨 성전 혹은 제2성전이라 부르고 봉헌식을 올렸습니다.

해방되었노라 유월절 잔치를 벌였습니다. 방해하던 원수가 모두 물러갔습니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 모든 백성들이 찬송하며 몰려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과연 우리 하나님은 끝내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한소망 가족 여러분 !

  여러분의 큰 산이 무엇입니까?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아 못내 당황해 하며 달려나오신 그 무엇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의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쩔쩔매며 달려나오신 분 계십니까?

  큰 산아 네가 소중한 한소망 가족들 앞에서 평지가 될지어다 !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오직 성령으로 가능해집니다. 믿으십시오. 원수의 방해공작이 있습니까? 원수는 힘이 있어 보이는데 나는 나약하기 짝이 없습니까?

디딤돌이 되고 원군이 되고 원수가 축복이 되는 역사가 여러분 앞에서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작은 일이라고 멸시하지 마십시오. 저희교회가 주님께서 원하는 영광스런 그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성경이 보여주는 그 교회를 회복하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쓰며 지난 1년간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아직도 크게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막 땅속에서 돋아나는 새싹처럼 움터오는 한 움처럼 누군가 짓밟아 버리면 꺾여질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나는 보잘 것 없는 새싹 한 톨에서 거대한 나무를 보고 있습니다.

먼 산을 바라다보면 손바닥만한 구름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엘리야처럼 나는 손바닥만한 구름에서 거대한 장대비를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개인적인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손바닥만한 구름이 여러분 앞에 있어서 이것 가지고 무슨 문제가 해결 될 것이냐?

붙드십시오. 버리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거대한 축복의 장마비가 쏟아지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해 질까요?


오직 여호와의 신(神)으로 !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오직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완성되어지고야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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