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믿음 소망 사랑 / 고전 13:13

  • 잡초 잡초
  • 830
  • 0

첨부 1


제목 : 믿음 소망 사랑
본문 : 고린도전서 13:13

우리는 IMF로 상징되는 경제위기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가 다가와 1년이 지나면서, 그 때의 ''현대경제사회 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보면 IMF이후 가족관계에서, 다툼이나 불화가 늘었다고 답한 사람이 21.2%(이중에 실직자의 가정이 45.3%), 더 화목해 졌다 52.3%, 변함 없다고 답한 사람은 26.5%로 나타나 있습니다. 오히려 위기와 어려움 속에 가정이 더욱 화목해 졌다는 것을 볼 때, 인간 삶의 역사는 결코 물질에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없어서는 아니 될 꼭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 삶의 역사를 바로 세워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이고 소망이며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의식주 문제 이전에 오히려 믿음의 문제이고, 소망의 문제이고, 사랑의 문제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의 믿음이 어떤 것이고, 내 소망이 무엇이며, 나의 사랑이 어떠하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모습이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성서본문은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앙의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삶입니다. 따라서 신앙이 좋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뜨거운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뜨겁다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이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식적이라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신앙 인이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집니까? 내가 가진 물질입니까? 나의 명성입니까? 나의 지식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계는 분명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를 깊게 하고, 그 관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항상 있어야 할 것들입니다.
그럼 믿음이란 어떤 믿음을 말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속죄 제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바로 믿음이란 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요3:16-1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하나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그럼, 소망은 어떤 소망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자녀에게 약속된 영생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바울은 이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살아갈 것을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롬8:24,25)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애 속에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이루어지는 삶에 대한 끊임없는 소망입니다.

또한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예수님은 율법중에 어느 계명이 중요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7-40)

우리는 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만들고, 지속하며, 완성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 믿음, 소망, 사랑은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이 세 가지는 모두가 항상 있어야 하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은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사랑이 있으면 믿음이나 소망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 기록한 말씀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었고, 영생을 소망하고 확신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니라''는 말씀은 믿음과 소망을 경시하라는 말씀으로 하신 것은 아닙니다. 사랑의 귀중함과 우월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이 무엇 때문에 믿음과 소망보다 우월합니까?

사랑은 믿음과 소망의 뿌리가 되고 힘이 되기에 우월한 것입니다.
왜 믿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왜 소망을 둡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십니까? 그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우리의 남편과 아내와 자녀를 믿고, 또 소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왜 믿음에 능력이 있고 소망에 큰 기쁨과 힘이 있습니까?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소망을 가지지 않습니다. 사랑이 약한 사람은 믿음의 능력과 소망의 기쁨이 약합니다.
한 젊은이가 기독교인이 되어 참신한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어느 여름, 그 젊은이는 자기가 저축한 돈을 다 털어 복숭아 과수원에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온 정성을 다해 복숭아나무를 심고 가꾸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해에 대 풍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극심한 서리가 내려 농작물을 다 망치게 되어 그는 하루아침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젊은이는 너무나 비참하고 초라해짐을 느끼고, 또 억울하여 하나님을 원망하며 교회에 출석하는 일조차 그만두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그를 심방하였을 때, 그는 분노를 터트렸습니다. "목사님은 나보고 교회에 나오라고 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내 농사를 다 망쳐놓는 그런 잔인한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단 말입니다". 이 때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농작물 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찬 서리가 농작물에 해가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시험과 역경의 서리 없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젊은이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하는 중에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을 때에 전과 다른 새롭고 깊은 믿음 그리고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시험과 역경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 때, 더욱 분명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고, 또 흔들림 없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믿음을 믿음이 되게 하고, 소망을 참 소망이 되도록 합니다. 사랑은 믿음과 소망과 함께 합니다. 사랑은 믿음과 소망의 뿌리가 되고 힘을 제공하기에 우월한 것입니다.

사랑은 믿음과 소망을 완성시키는 영원한 것이기에 우월합니다.
믿음과 소망은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은 인간에 속한 것이지만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1서 4:7,8)
이렇게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기에 믿음과 소망을 완성시켜 나갑니다.
1906년 평북 운산에서 일어나 이야기를 모리스(C.D. Morris) 선교사는 이렇게 즈언하고 있습니다.
"운산 지방에 살고 있는 한 부인은 노비 모녀를 부리고 있었는데, 한국 법에 다르면 노비는 가축이나 마찬가지로 주인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습니다. 부인은 이들 모녀를 삼 백원 주고 샀답니다. 그런데 부인은 교인이 되고 난 후 어린 노비를 팔지 않고 오히려 자유를 주었고 그녀가 혼인할 때는 마치 자기 딸처럼 선물을 잔뜩 마련해 주었습니다. 어머니도 자유를 주었는데 그 여인은 집을 나가지 않고 옛 주인과 함께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의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게 된 이 귀부인의 믿음은 더욱 완전한 믿음이 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욱 분명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믿음과 소망은 이 세상이 끝날 때에 끝이 나지만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믿음은 이루어지고 소망이 성취되면 끝이 나지만 사랑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우월한 것입니다.
나이 많은 한 기독교인이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그의 친구가 임종을 지켜보기 위하여 찾아왔습니다. 임종을 맞이하는 교인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나는 방금 나를 찾아온 세 사람을 만났다네. 그들 중 둘과는 헤어졌지만, 나머지 한사람은 아마도 나와 함께 영원히 할걸세." "그들은 누구지?" 친구가 물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믿음이었네. 나는 이렇게 말했지. ''믿음이여 고맙네.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만난 이래로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준 자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네. 하지만 이제는 헤어져야 할 것 같군. 지금 나는 자네의 도움이 더 이상은 필요치 않은 곳으로 가려던 중일세.''
그리고 나선 소망이 찾아왔지. 그에게도 이렇게 말해주었지. ''잘있게 소망이 여! 자네는 전쟁터에서도, 고난속에서도 나를 여러 번 도와주었지. 하지만 이제는 자네의 도움이 없어도 될 것 같네. 이제는 소망의 결실이 맺어지는 곳으로 가게 될테니까''.
마지막으로 사랑이 왔었네. ''어서 오게 사랑. 자네도 나의 좋은 벗이었지. 자넨 나와 하나님을 그리고 내 이웃 동료들과 맺어 주었다네. 자네는 내 모든 인생순례의 여정을 함께 해 주면서 감사하며 즐겁고 기쁨이 넘치게 해주지 않았나? 그렇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자네를 뒤에 남겨두고 갈 수는 없네. 왜냐고? 자넨 나와 함께 천국 문을 지나 하나님의 도성에 함께 가야 할 테니 말일세. 사랑이란 하늘에서 비로소 완전하고 영원한 것이 되기 때문이네."

고린도 교회는 영원한 사랑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었기에 그들의 믿음은 미숙한 것이었고, 그들의 소망은 열매 없는 허상과 같았습니다. 사랑의 영원성을 가지고 살아갈 때 그 믿음과 소망은 온전한 것이 됩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은 사랑을 받을 줄 모르고, 또 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그가 행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결국 그 사랑은 슬픔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지식, 그것을 아는 총명입니다. 그것이 없기 때문에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랑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사람으로 온전하고 능력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확신 있는 소망을 가진 기쁨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랑이 믿음의 역사와 소망의 결실을 만들어 냅니다. 바로 축복의 아름다운 삶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사(선물)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을 받아드리십시오. 그러기 위해 믿는 자가 되십시오.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능력을 공급받는 성령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기 위해 찬양과 기도의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시는 사랑의 지혜를 깨닫는 지혜자가 되십시오. 그러기 위해 말씀을 읽는 자가 되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희생하며 충성함으로 사랑의 기쁨을 간직하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심으로 사랑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므로 믿음과 소망을 풍성하게 하는 인생의 축복 자요,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하는 승리자가 되십시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