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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버지의 마음 / 삼하 18:28-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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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 (삼하18장 28절- 33절)

작년 9월경 인터넷에서는 작자 미상의 '아버지란 누구인가?'라는 글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습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아서 아버지의 마음이란 말씀을 드리기 전에 먼저 그 글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그리고 생각해보십시오. 과연 아버지란 누구인지를.....

아버지,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땐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땐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괜찮아"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그곳을 직장이라고 한다)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직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몇 살이든지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4세때-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때-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때-아빠와 선생님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때-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14세때-우리 아버지요? 세대차이가 나요.
25세때-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때-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때-여보!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때-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었어.
60세때-아버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텐대...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려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배 쯤 될 것이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 안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간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부모는 하나님의 그림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인간이 잘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주시고, 그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하나님을 닮은 사랑을 담아주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그림자처럼 보게하고 느끼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여러종류의 사랑이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완벽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는 아버지의 사랑, 혹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 어떤 뜨거운 남녀간의 사랑도 어머니의 사랑이야기만큼 눈물겹고 기슴시리지는 않습니다.

지난주간 한 일간신문에 소개가 되어서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101세 할머니의 사랑도 역시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광주시 북구 우산동 13평짜리 주공아파트에 사는 올해 101세된 박옥량 할머니는 1930년대에 중학교 교편을 잡을 정도로 인텔리여성이었습니다. 그런 할머니에게 1935년생인 딸이 하나 있었는데 올해로 68세된 조의순 할머니입니다. 이 조의순 딸이 네 살이던 1939년 집에서 의순이를 보던 가정부가 잘못 실수로 땅에 아이를 떨어뜨렸는데 머리와 목을 심하게 다쳐서는 그만 전신마비 불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남편마저 다른 여자를 얻어 나가버리고 이 박 할머니는 혼자서 이 딸을 키우게 됩니다. 그후로 오늘까지 무려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 할머니는 혼자서 오직 이 딸의 손과 발이 되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말이 64년이지 한 사람의 평생보다도 더 긴 세월을, 오로지 마비가 된 딸의 수발노릇만 하며 지내온 것입니다.
 
그 세월동안 딸의 손발 노릇을 하느라 이 어머니는 늙을 틈도, 아플 여유조차도 없었습니다. '내가 아프면 이 딸의 수족노릇은 누가 하나?' 하는 염려때문에 어머니는 마음놓고 아플 수 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늙고 또 늙어서 올해로 101세가 되었습니다. 온 몸이 마비되어 하루종일 천장만 쳐다보고 있는 딸을 두고는 이 어머니는 죽을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와 딸이라는 관계가 아니었더라면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전설같은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언제나 가슴을 찡하게 하고,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몫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우리는 완벽하지 못합니다만 그러나 아버지로서, 혹은 어머니로서 자식을 향해 쏟아붓는 사랑에 있어서는 적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닮았다...싶은 완전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랑을 부모들을 통해 보여주심으로써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아버지로서 다윗왕의 사랑도 하나님의 사랑을 닮았습니다. 29절 말씀을 볼까요? "소년 압살롬은 잘 있느냐?"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입니까?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서 아버지 다윗을 내어쫓고 죽이겠다고 군사를 풀어 추적을 하고 있던 때 였습니다.
압살롬은 원래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던 사랑스러운 아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압살롬은 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배신하고 오히려 역모를 꾀하고, 군사를 모집해서는 아버지 다윗을 죽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려고 했습니다.

역모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윗은 격분합니다만, 그러나 그 역모의 주동자가 다름아닌 아들 압살롬이란 말을 듣고는 아무 소리없이 짐을 싸들고 피난길에 오릅니다. "아무리 그래도 아들과 싸울 수는 없다, 차라리 왕 자리를 내어주는 한이 있더라도..."--이것이 아버지 다윗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피난가는 길에 시므이라는 사람이 나서서 다윗을 조롱하고 모욕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내 몸에서 나온 아들도 나를 죽이려 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 하는 모욕을 내가 어떻게 막으랴' 하고는 묵묵히 그 욕을 다 먹고 맙니다. 자식의 존경을 잃었는데 다른 사람이 하는 모욕이 무어 그리 대수롭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자식의 존경을 잃었으면 다 잃은 것입니다. 그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흔히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을 합니다. 왜 부모가 자식을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힘이 없습니까? 지혜가 모자랍니까? 경험이 없습니까?
어느 것을 보아도 부모가 자식에게 질 이유가 없습니다만 그러나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의 마음을 아프고 상하게 해서라도 이기고 싶은 마음이 부모에겐 없는겁니다. 차라리 지고 양보하더라도 자식의 마음만은 잃고 싶지않고, 자식의 마음에 상처를 주면서까지 이기고 싶은 것이 부모에게는 없기 때문에 부모가 지는겁니다.

그것을 자식들은 모릅니다. 그저 제가 잘나고 제가 똑똑해서 부모를 이긴줄 알지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모르는겁니다. 그래서 기고만장합니다. 하고 싶은대로 합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내 말에는 꼼짝도 못해" 다른데서는 꼼짝 못하는 자식도 부모앞에서는 큰소리를 치고, 대단한 것처럼 폼을 잡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줄 몰라요.

디윗이 쫓겨가는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거인 골리앗을 이긴 다윗입니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살아온 백전노장 다윗입니다. 그런 다윗이 힘이 없어서 쫓겨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상대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앞에 두고는 한없이 약해지는 것이 바로 아버지요 부모의 마음입니다.---(우리 하나님이 바로 그러십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된 그리스도인들앞에서 한없이 약하십니다.) 

그후에 압살롬의 군대와 다윗의 군대가 불가피하게 전투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다윗은 전장으로 나가는 장수들에게 이런 부탁의 말을 합니다.
삼하 18장 5절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부탁이 있을 수 있습니까? 국가의 반역을 꾀한 역적이고,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죽이려고 달려든 패륜아입니다. 그런 압살롬과 싸우러 나가는 장수들에게 기껏 하는 부탁이 '나를 봐서 너그러이 대하라'

압살롬 사건에서 다윗이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는 표현이 '소년 압살롬'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되기 위해 군대를 일으킨 장정을 가리켜 '소년'이라고 끝까지 호칭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다윗의 눈에 반역을 일으킨 압살롬은 아직도 보호를 받아야 하는 어리디 어린 소년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해하려는 패륜아가 아니라, 보호를 받고 용서를 받아야할 철부지 소년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듭되는 죄악과 배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 시기 때문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은 사람들을 하나님은 아들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들로 단지 형식적으로 받아들이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친아들과 같은 사랑을 쏟아부으십니다.
그래서 혹 우리가 범죄할 찌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의 눈으로 보십니다. 징계하고 죽어 마땅한 죄인이 아니라, 아직 연약하고, 아직 잘 몰라서 그릇되게 행하는 자녀를 긍휼의 눈으로 보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당신의 자녀된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보십니다.

그래서 징계가 아니라 은혜를 베푸십니다. 심판이 아니라 깨닫고 돌아오도록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돌아오기만 하면 어떤 죄를 지었든지,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지를 불문하고 용서할 준비를 하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오늘 나를 봐서 압살롬을 살려놓으라...고 호소하는 다윗의 마음은 어떤 것입니까? 지금이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다하고서 '잘못했습니다 아버지'...하고 깨닫고 회개할 기회를 주도록 꼭 살려주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죄를 지었는데도 하나님의 징계가 없었습니까? 여러분을 긍휼히 여기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징계의 매를 멈추게 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겁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기다리는 겁니다.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분명히 죄를 짓고 말씀을 어겼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일이 잘 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여러분의 사악함을 보시지 않고 오히려 여러분의 연약함을 보시고 긍휼히 여기는 하늘아버지의 은혜가 임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안 살아도 잘되는줄로 착각하지 말고, 속히 용납하시고 회개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앞에 달려 나아가,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사랑에 응답하십시오.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을 가장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죽을 죄를 지었어도 "잘못했습니다, 아버지"하는 회개의 말한마디에 모든 진노가 풀어지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마지막 장면을 봅시다. 전투의 결과를 가지고 달려오는 전령에게 다윗이 제일 먼저 물어본 것이 무엇입니까? 29절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

여기에 사랑에 눈먼 아버지의 모습이 있습니다. 정권의 운명을 건 대 전투의 결과를 알려주러온 전령에게 제일 먼저 물은 것은 전쟁의 승패가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큰 승리를 거두었는가?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전령에게 물은 제일 첫 질문은 어처구니없게도 '반역자 압살롬의 생사'였습니다.
첫번째 전령이 그 대답을 못하자 두번째 달려온 전령에게 다윗은 다시 한번 묻습니다. 32절

성도 여러분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나 큰 일을 하는가? 하는 것에 크게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얼마나 위대한 헌신을 하고, 얼마나 주목받을 만한 일을 하는가? 이것들은 하나님의 나중관심사입니다.

이 모든 것들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안위를 염려하십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받는 아픔과 상처,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과 괴로움의 문제, 내 사랑하는 아들이 이 땅에서 얼마나 아파하는지, 얼마나 고통속에서 신음하고 있는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믿음을 지키는 가운데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견디어 가고 있는지....하나님은 이런 일에 온 마음이 먼저 쏠리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버지 하나님앞에 얼마나 존귀한 존재들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안위와 행복한 삶에 얼마나 온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는지 아십니까? 복음송 가사에 이런게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때나 바라보시며,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어느때나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 인자한 귀를 너에게 기울이고 계시다가 작은 고통의 신음소리에도 벌떡 일어나서 그 작은 신음소리에도 응답하시는 분이시라...고 노래했습니다. 자식의 고통소리 신음소리에도 벌떡 일어날 만큼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귀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있습니다. 이 사랑을 믿으십니까? 이 사랑을 믿고 지금 의지하고 있습니까? ...............

33절 이하를 봅시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버지 다윗은 통곡을 합니다. 그의 울음소리를 들어봅시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내 아들아 내 아들아...."

아들의 죽음소식을 들었을 때 아버지는 울었습니다. 통곡을 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도, 이제 왕권을 다시 찾았다는 이야기도 그에겐 하나도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아들의 죽음앞에 정신을 잃고 통곡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내가 대신 죽었더면...내가 대신 죽었더면..." 여러분 이것이 아버지 사랑의 절정입니다. 고통받는 자식을 대신해서 죽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죽을 수 있는 것이 아버지의 절대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영원히 저주받는 죽음의 고통이 얼마나 큰 지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 친히 고난의 현장으로 찾아오셔서는 누구도 대신 할 수 없었던 저주의 십자가를 직접 자원해서 지심으로 사랑하는 자녀들을 대신해서 실제로 죽어주셨습니다.

오늘 죽은 압살롬을 대신해서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하고 통곡하고 몸부림치는 다윗의 마음이 바로 이 땅의 범죄한 죄인들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 사랑의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어버이의 사랑에 순종과 공경으로 반응하라, 보답하라,,,고 하셨습니다. "자녀들아, 네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어버이의 사랑에 순종하고 공경할 때 하나님은 그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으로 인정하고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버이의 마음을 아시겠습니까? 어버이의 사랑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아시겠습니까? 마음을 다해 순종하고 있습니까, 정성으로 공경하고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부모를 사랑하고 섬김으로 하나님 사랑과 공경을 나타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앞에 부끄러움이 없게 살고 있으십니까?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한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내 아버지 내 어머니의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닮은 숭고하고 거룩한 마음이었습니다. 이 마음을 가지고 우리를 양육해 온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께 최고의 감사를 드리기를 결단합시다. 순종하고 공경하며 살기를 새롭게 다짐하십시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오늘 젊은 부모들이 자기 자식에게 쏟는 사랑의 절반, 아니 그 절반의 절반 만큼이라도 그 부모님들에게로 향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노인문제의 90퍼센트는 없어질 것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순종과 공경이 사라진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닮은 어버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그 마음에 순종과 공경으로 보답함으로 이 세상과 구별되고, 영원한 어버이이신 하나님께 까지 영광과 찬송을 돌려 드릴 수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된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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