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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족 공동체 / 엡 5: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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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공동체 / 엡 5:29-32   
작성자: 김영수 목사 ()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아주 의미 있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우리'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우리나라, 우리 집, 우리 동네, 우리 학교, 우리 교회, 우리 회사,...... 오죽 했으면 '우리 마누라'까지 등장했겠습니까? 그만큼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가 공동체적 유대감이 강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았던 '우리'라는 공동체 개념이 지금 서서히 해체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자식을 하나나 둘만 낳기 시작하면서 불기 시작한 '천상천하(天上天下) 유하독존(唯我獨尊)'식의 자녀 교육법은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심어주기 시작했고, 그러한 자녀들이 성인으로 접어들고 하나 둘씩 가정을 이루어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자녀조차도 자신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면 버리고 마는 냉혹한 비인격화 시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공동체적 정신의 첫 출발점이자 기초인 가정에서조차 공동체 정신의 무너짐으로 인해 그 파급효과는 교회와 국가 직장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인간은 관계의 존재입니다. 어느 누구든지 '독불장군'(獨不將軍)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와 어깨를 마주하면서 살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사회적인 존재로 창조함을 받았습니다. 또 그렇게 살아가야만 모두가 누리는 행복을 만끽할 수가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의 핵심 기초 단위인 가정에서부터 공동체적 정신을 교육받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가정에 그러한 공동체적 정신이 살아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 안에 돈벌어오는 아저씨와 밥해주는 아줌마, 그리고 셋방사는 아이들만 있다보니 사랑은 온데 간데 없고 그저 가족의 기능만 있을 뿐 희생과 섬김과 순종이 없습니다.

이 같은 모습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공동체적 정신은 교회의 출발점이자 가장 기본정신입니다. 그런데 현대교회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비근한 예로 교인들이 개척교회를 회피하고 큰 교회로 자꾸만 몰리는 경향도 작은 교회에 가면 자신이 쉬 드러나고 여러 가지 행동에 제한과 간섭을 받아야하는 육체적 심리적 정신적 부담감 때문에 큰 교회로 가서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큰 교회로의 수평이동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가정에서나 교회 국가 그 어디에서도 공동체정신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가지 궁금한 것은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 정신'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십자가의 희생정신」을 멀리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 정신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가정은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교회 역시 신앙의 공동체이며 동시에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랑의 희생이 식어져가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7절에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하였듯이 사랑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용서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과 섬김과 순종과 하나 됨이...... 예수 십자가의 정신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겉치레뿐인 사랑,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공동체 정신이 무너진 가정과 사회는 소망이 없습니다. '더불어 함께'라는 의식이 사라지고 '오직 나'만을 바라본다면 그 공동체는 언제고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민주당이 보수와 개혁의 갈등으로 인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몇 주 전에 끝난 물류계의 집단파업, 전교조와 학교장들과의 실력대결 행사, 공무원의 파업을 위한 찬반투표
... 한총련의 기습시위 등 ..... '더불어 함께'라는 공동체정신을 살리는 정치보다 인기위주의 개인위주의 정책을 지향하다 보니 나라꼴이 웃습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늘찬양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벌이나 분쟁은 안됩니다. 더욱이 개인 인기위주의 섬김과 교회봉사는 성도들에게 많은 상처를 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내가 나 자신의 유익만을 바라보며 가정생활, 직장생활, 교회생활, 사회생활은 하고 있지는 않는가? 살펴보십시오...... 내가 조금 더 희생하고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만들어 줄 수는 없는가? 그것이 그렇게 힘들고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까? 이제라도 나를 더 내려놓고 나와 다른 가족들을 위해 교회 성도들을 위해 직장 동료들을 위해 조금만 더 희생한다면 우리사회는 우리 가정은 우리 교회는 우리 직장은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특별히 가정을 중심으로 행복한 가정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부부의 권위를 세우십시오.

가족의 첫 구성단위는 부부입니다. 부부관계가 바르게 잘 되어 있어야 훌륭한 가족 공동체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부부 관계는 지배관계도 아니고 종속관계도 아니고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거나 희생하는 관계도 아니고 서로 돕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돕는 배필의 관계입니다.
남편이 아내보다 힘이 있다고 해서 무력으로 아내를 정복하려고 해서도 안되며 또는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재정담당자이므로 자기의 권력을 주장해서도 안됩니다. 이 말은 아내가 남편대신 가정의 재정을 담당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부부의 질서와 권위는 세워져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 아울러 아내는 남편의 몸입니다.
몸과 머리가 따로 놀 수가 없습니다. 누가 더 소중한가? 누가 들 소중한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지체입니다. 한 육체입니다.

문제가 있는 집안 다툼이 있는 집안의 특징은 부부의 질서와 권력체계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을 때 나타납니다. 부부관계에 있어서 권력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겉으로는 평화로울지 모르나 갈등의 뿌리가 있어서 지배받는 배우자나 아이에게서 문제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건강한 가정은 부부의 권력이 동등하거나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에게 독점하고 있는 권력을 이양해야 합니다. 물질의 권리도 이양해야 합니다. 돈은 힘입니다.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실세로서의 권력을 이양 받았기 때문에 그 모든 은혜를 베풀어 준 남편에대한 고마움과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순종해야 합니다.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건강한 가정 행복한 부부 아름다운 부부 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둘째로, 가족체계를 확실히 세우십시오.

부부의 권위가 아름답게 세워졌다 할지라도 그 틈을 파고드는 또 다른 파워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의 세력입니다. 가정에 자녀가 하나 이거나 많으면 둘이다 보니 자녀가 '천상천하(天上天下) 유하독존(唯我獨尊)' '독불장군(獨不將軍)'식으로 살아갑니다. 아이들은 부모보다 적은 권력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집안에서 주인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너무 아이들을 잡아가지고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억압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지만 너무 풀어놓거나 뛰어놓아서 아이들 멋대로 움직여질 때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이 다음에 사회에 나가서 교회에 나가서 어떻게 공동체정신을 가지고 아름다운 가족공동체 교회공동체, 사회공동체를 만들 수가 있겠습니까? 아이들에게 잔 심부름을 시키십시오......공부 몇 자 못해도 좋으니까?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시키십시오........그러면 놀랍게도 공동체감이 발생합니다.

사람의 인격은 가정에서 거의 형성됩니다.
좋은 가정에서 좋은 자녀가 출생합니다. 좋은 교회에서 좋은 성도가 나옵니다.
자녀의 스승은 부모입니다.


마지막으로 희생하고 섬기며 순종하는 가정을 만드십시오.

공동체 정신을 흐트러지게 하는 것이 개인의 이기주의와 물질주의입니다.
가정에서조차 부부간에도 조건부로 관계를 맺고 조건부로 사랑을 한다면 그처럼 멋쩍고 재미없는 가정은 없을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도 조건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랑과 희생과 섬김과 순종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일 중심이나 결과 중심이 아닌 관계중심의 사람으로 빚어져야 합니다.
가족의 친밀성은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희생할 때 더욱 아름답게 빛납니다.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서로 주고받는 사랑과 섬김과 희생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목회자는 성도를 세워주고 성도는 목사님을 인정하고 세워주어야 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스승의 날 선생님에게는 감사할 줄 알면서 목회자에게는 감사할줄을 모릅니다. 이것은 잘못된 관행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일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가정공동체주일을 맞이하여 가족 찬송가 경연대회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날입니다. 찬송을 부를 때처럼 연합이 필요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음정과 박자 그리고 눈길이 맞을 때 마음도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찬양이 되는 것처럼 ....... 부부가 서로를 자주 바라보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자녀를 말씀으로 잘 양육하며 자녀는 부모님께 공손히 섬기며 순종할 때 그리고 서로가 희생하며 섬길 때 아름다운 가정이 교회가 사회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5월 가정의 달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의 가정이 주님 안에서 하나되는 역사 웃음꽃이 피어나는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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