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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로 사는 사람의 열매 / 롬 6: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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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17-23
은혜로 사는 사람의 열매


시몬느 베이유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불꽃과도 같은 삶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지적으로 조숙했던 시몬느 베이유는 남다른 사회의식의 소유자이기도 했습니다. 다섯 살 때 전선에서 싸우는 프랑스 병사들이 설탕을 먹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단 음식을 먹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인권운동과 평화운동에 열정적으로 참가했고 금속공장의 여공이 되어 실천적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불꽃같은 삶의 틈새에서 실천과 사랑, 철학 등 다방면에 걸친 사색과 저술에 골몰하며 서른 네 살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 갔습니다.
그녀가 죽을 때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메모 노트 몇 권을 남겼는데 사후에 그녀의 열정적인 삶과 기록과 사색들을 전집으로 출판하여 오늘까지 많은 사람이 읽고 있습니다.

중력과 은총이란 글은, 시몬느 베이유가 죽은 후에, 프랑스가 독일 점령 하에 있던 1940년에서 42년 사이의 기록에서 귀스트브 티봉 신부가 발췌해 엮은 것입니다. 중력과 은총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피조 세계는 두 가지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력의 법칙과 은혜의 법칙입니다. 중력의 법칙은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을 끌어들이는 법칙입니다. 피조 세계의 중력의 법칙은 자기의 힘을 과시하고 세를 불리려 합니다. 중력의 힘이 클수록 은총의 힘은 약화됩니다. 반면 은총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자기를 주는 사랑입니다. 은총 곧 은혜가 많을수록 그곳은 따뜻한 곳이 되고 살맛 나는 곳이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은총의 사람입니다. 은혜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고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은혜의 힘, 하나님의 은총의 힘이 아니었다면 한시도 희망을 가질 수 없던 우리들이기에 우리를 견고하게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한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오늘 여기 이 자리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세계가 진정한 사랑과 믿음의 사회가 되려면 은총의 법칙이 깃 들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은총의 힘이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가정 안에 은총의 분위기가 넘쳐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은총의 힘이 주장하느냐 아니면 중력의 힘이 작용하느냐에 따라 행복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교회는 은혜 공동체입니다. 성도는 은총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보여주십니다. 이 은혜로 살아가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은혜의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또한 그가 맺는 열매는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1. 은혜로 사는 사람은 죄에게서 해방된 의의 종입니다. (18절, 6:1-14절)

로마서 6장은 은혜로 사는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사람이 누구일까요? 은혜의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은혜의 사람입니다. 은혜의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또한 산 사람입니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하여는 죽은 사람입니다. 죄와 사망의 저주를 이긴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의 은총으로 인하여 이긴 사람입니다. 죄와 사망과 욕심과 교만의 종이었다가 해방된 사람입니다. 이제 죄와 죽음이 권세를 부리지 못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산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의에 대하여는 살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 자입니다. 17,18절은 이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에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에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습니다.
의의 종이란 말을 13절은 <병기>로 22절은 <하나님의 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머리는 의의 병기입니다. 우리 팔 과 다리, 손. 입, 심장 우리 모든 몸은 의를 위해 싸우고 씨름하는 의의 병기입니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하나님의 전이요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은혜의 사람은 의의 종입니다. 나는 은혜의 사람이요 의에게 종이 된 사람이라는 확신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이 확신이 우리가 맺는 열매가운데 가장 먼저 열매입니다. 마음으로 자원하여 은혜로 부름을 받았다는 확신이 은혜로 사는 사람의 첫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신뢰, 은혜 안에 있다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갚을 수 없는 빚) 오래 전 미국의 보스턴 시에 ‘스트로사’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큰 꿈이 있었지만 자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 거부인 사람 중에 바턴 씨라는 사람에게 2천불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에게 담보는 없지만 일에 대한 꿈과 용기가 있으니 믿고 빌려주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노라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바턴 씨의 주위 사람들은 경력이나 담보, 후원자도 없는 사람에게 돈을 꾸어 주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바턴 씨는 왠지 그 청년의 용기가 마음에 들어 모험을 한다는 생각으로 2천불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스트로사는 얼마 되지 않아 정말 빌린 돈을 모두 갚았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습니다. 갑작스레 닥친 대공황에 바턴 씨는 대비를 못해 파산 직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스트로사는 바턴 씨를 찾아가 빚진 돈 7만 5천불을 갚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바턴씨는 깜짝 놀라 “자네가 가져갔던 돈은 10년 전에 다 갚았는데 자네가 왜 내 빚을 갚는단 말인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스트로사는 “분명히 빚진 돈 2천불은 옛날에 갚았지만 회장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는 평생 갚지를 못합니다. 그때에 2천불로 장사를 해서 오늘날 이렇게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돈으로 갚을 수 없는 신뢰를 저에게 주셨지요. 회장님이 제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은 영원히 갚을 수 없는 큰 빚입니다.”
두터운 신뢰는 풍성한 열매를 가져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가지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은혜는 기쁨을 두 배로 하고 슬픔을 반으로 합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또 어떤 열매가 있을까요?


2. 은혜로 사는 사람의 열매(17-23절)는 감사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복음의 말씀에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느니라)라고 고백합니다. 구원과 의롭게 됨에 있어 내가 한 일은 순종밖에 없습니다. ... 가나 혼인 잔치 하인들의 순종처럼. 실로암에 가서 씻어 나은 앞못보는 자의 순종처럼 그저 나의 한 일은 순종 밖에 없습니다. 자격 없는 이를 하나님의 의를 누리게 했으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하는 고백이요, 삶 가운데 맺는 열매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이 열매를 맺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놓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고맙고 귀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귀하신 손길이 가득 스며있는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도들을 보면서 서로 감사하는 열매를 맺습니다. 나를 귀하게 보기에 성도들 서로가 귀한 존재로 보이는 것입니다.

열매란 생명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열매는 자신의 생명만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생명을 담은 언어입니다. 열매는 생명의 내용이 계속해서 밖으로 미래로 연결하는 고리입니다. 살아있음은 열매를 맺습니다. 은혜는 생명의 통로입니다. 은혜는 생명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3. 은혜의 사람인 성도의 마지막의 열매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열매를 맺는 나무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겨울의 고난에서부터 봄과 여름의 풍성함을 거쳐 가을의 열매를 통하여 아낌없이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는 나무의 교훈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은 성도를 바로 세우시는 힘입니다. 부지런히 사랑을 배우고 훈련하는 거룩함의 삶을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마지막 우리가 맺는 열매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생의 열매는 오늘 우리의 삶에 어떤 결단을 줄까요? 생명의 의지적인 결단은 '살림'입니다. 영생의 열매를 맺는 사람의 현재적 태도는 '살림의 태도'입니다. 성도의 가는 곳에 '살림'이 충만합니다. 성도와 동행하시는 성령이 '살림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살림은 무엇보다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살리고자 하는 강렬한 마음에서부터 살림은 시작됩니다. 성령이 살림에 대한 마음을 주시지만 성도의 간절한 소망 '살리는 마음을 주옵소서' 구하고 사모하는 마음은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생명의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의 태도입니다. 태도는 방향성입니다. 살림에 대한 간절한 태도를 갖는 사람에게 그 행동과 말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특히 그 중에서 살리는 말은 오늘날 영생의 열매를 맺는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살리는 말씀을 말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살리는 말을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임종 직전의 말들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든든히 하는 것을 봅니다.
바울은 네로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이미 그의 목이 몸을 떠났는데 그의 입술에서는 "예수 ..."라고 했습니다.
마가는 알렉산드리에서 박해자들에 의해 밧줄을 목에 매고 끌려 다니다 순교하였는데 "주의 손에 나의 영혼을 돌려드립니다"라고 마지막 말을 하였습니다.
요한은 "예수님 저와 같은 자를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데오도레는 287년에 순교한 사람인데 고문 중에 '우리와 한편이 되겠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편이 되겠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하면서 운명했습니다.
어거스틴은 "내 영혼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소망합니다. 언제 나는 하나님께 나아갈까!" 라고 했습니다.
장자크 루소는 아내의 손을 잡고 "낙담하지 말아요, 보세요, 하늘은 저렇게도 맑고 깨끗하잖아요, 나는 저곳으로 갑니다"라고 마지막 말을 하였습니다.
파스칼은 "하나님, 나를 받아 주소서"
믿음의 사람들의 마지막 말은 하나 같이 <예수님을 통한 새사람과 새 하늘에 대한 확신의 말>이었습니다. 이 말들은 주위에 있던 사람에게 새롭게 믿음을 견고케 하고 소망을 주었습니다.

사랑만이 살리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살리는 말을 우리 입술에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하십시다. "죄의 열매는 죽음이지만,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말씀이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죄책감으로 위축되고 혼돈하게 될 때, 우리 자신에게 잊지 말고 이렇게 말해보십시오. "영범아 죄의 열매는 죽음이지만, 하나님은 너에게 구주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도와주고 싶은 이웃에게 살리는 말로 도와주십시오 "죄의 열매는 죽음이지만,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뿌리이신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고 은혜로 살 수 밖에 없는 저희들의 확신을 견고하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 마음의 중심에 오셔서 사랑으로 뜨거운 마음을 주시고 감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넘쳐나게 하옵소서.
저희의 입술을 열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선물처럼 나와 너를 살린다고 이웃에게 증거하는 은혜의 사람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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