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이 시대의 신앙생활 (히 10:19-25)

  • 잡초 잡초
  • 364
  • 0

첨부 1



   

이 시대의 신앙생활(히10:19-25) 

오늘 크리스챤들은 갈등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 많은 죄의 유혹들이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도 거미줄과 같이 많은 유혹들이 우리 앞에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늘 빠지지 않는 뉴스가 탈선에 대한 것들입니다. 폭력, 삐뚤어진 성도덕문제, 돋박, 마약, 이혼문제, . . .사단의 유혹의 손길 때문에 거기에 빠진 사람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향긋한 냄새를 찾아 한 배고픈 파리가 꿀단지에 앉아 꿀을 핥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만인 터라 꿀맛에 끌린 파리는, 처음에는 언저리를 돌면서 꿀을 먹다가 드디어 꿀단지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마침내, 꿀단지 속에 빠진 파리는 날개가 꿀투성이가 되어 날아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 좀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꿀 속에 파묻혀 꼼짝을 못하는 파리에게 핀잔을 주었습니다. "이 어리석은 파리야! 너는 꿀단지 속에 빠질 만큼 욕심이 많았더냐?
욕심이 지나쳤군! 쯪쯪" 빈정대는 좀나비 앞에서 파리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등불이 하나하나 켜지기 시작했습니다.
좀나비는 환히 비치는 등불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등불 가까이 가다가 그만 불에 타고 말았습니다.
꿀 속에 파묻쳐 이 장면을 본 파리가 말했습니다. "너도 어리석은 놈이로구나 타 죽을 만큼 네놈도 불장난을 좋아하다니!. . ." (이솝의 우화 "파리와 좀나비"에서)
결국 먹이에 욕심내던 파리도, 불빛을 찾아 헤매던 좀나비도 죽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죄의 유혹에 빠져들어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로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은 당장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들입니다.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에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잠5:3-4)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는 말로 대신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비결은

1.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감사,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었었나니" 구약 시대에는 대 제사장이 대 속죄일(일년에 한번)에 짐승을 제물로 잡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던 일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담력(헬, 파르레시안: 권리)을 얻은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되게 된 것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예수의 피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찢기시면서 보혈의 피를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피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하면 용서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것, 얼마나 놀라운 특권입니까? 우리는 이런 놀라운 특권을 가졌습니다.

아무나 주님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주의백성만 나아갈 수 있습니다.요즘 종교의 보편화라는 종교다원주의가 우리의 믿음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가 다 같다는 것을 상식화 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요즘, 어떤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회사에서 공공장소에서 특정 종교 예기를 하면 '왕따'를 시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도하기도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렇다고 우리가 전도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전도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오후 예배에는 전도의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전국을 순회하면서 강의하시는 전국 C.C.C 대표간사가 오셔서 전도 세미나를 하시게 될 것입니다.
한 성도도 빠지지 마시고 참석하셔서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담대히 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단의 유혹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보혈의 은총을 항상 잊지 말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11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잊지 말 것을 강조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절기를 만드시고 명령했습니다. 유월절, 칠칠절, 장막절. . .
감사의 힘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죄를 이깁니다. 죄에 끌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감사하고 계십니까?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감사하시고 계십니까? 사람은 배은 망덕하는 죄의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거듭난 사람은 이 본성을 벗게 됩니다.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기뻐합니다.


사무엘 라이프워츠라는 변호사가 있었는데 아주 성실하고 아주 유능한 변호사였습니다.
이분의 변호를 통해 사형 구형을 받은 죄수 78명이 사형 언도를 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78명 가운데 라이프워츠 변호사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눅17: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대 한촌을 지나가시다가 열 문둥병자를 고쳤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한사람만 와서 감사함에 대해서 안타깝고 서운하게 생각하셨던 말씀을 기억합니다.
죽을 죄에서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없는 사람은 또 다시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감사하십시오. 찬송하십시요.

존.E 뉴톤이라는 사람은 선장의 아들로 태어나 격동적인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영국 해군에 강제 입대한 뒤 탈영을 시도하다가 아프리카 서부에서 체포당하여 결국 백인 노예상인의 흑인 아내의 노예가 되어 이 흑인 여자에게 굴욕을 당했습니다. 노예 매매 사업에 끌려 들어가서 아프리카의 광활한 대륙에서 자유롭게 살던 흑인들을 잡아 파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그 흑인들을 마치 짐승 취급을 했습니다. 때리고 포악하게 굴었고 부도덕한 일을 자행했습니다. 그러다가 1747년 영국으로 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거의 침몰 직전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뉴턴은 하나님 앞에서 죄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자신의 더러운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게 되었습니다.
순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 . . 바로 그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을 때 말로 할 수 없는 감사가 넘치게 되었습니다. 길을 걸어가도, 음식을 먹어도 감사. . .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고마워..." 흥얼거리면서 감사의 찬송을 부릅니다.
마침내 1779년에 405장 찬송가를 작사하게 된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고마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 . "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살기로 뜻을 정하고 구원받은 은혜를 감사 찬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앞에 성별된 생활을 하며 헌신했습니다.
감사하십시오. 찬양하십시오. 이것이 죄를 이기는 힘이 됩니다. 세상을 이기는 힘이 되는 줄 믿습니다.


2. 천국의 비젼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시대는 물질 만능주의로 세속화되고 과학문명이 극도로 발전되었습니다. 급속도로 변화되어가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천국에 대한 삶보다는 이 땅을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금방 금방 눈에 들어오는 모습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모든 것들이 영원한 것들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유행(Fashion)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속임수에 빠져서 모두 열광하고 있습니다.
마치, 지난 6월 월드컵 때의 거리 응원처럼 열광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소망이란 것은 바라볼 때는 굉장한 것 같지만 결국 얻어놓고 보면 거기엔 참 만족이 없다. 바다 속에 들여다보이는 해초가 들여다 볼 때는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는지 모른다.
그러나 정작 바다 속에 들어가서 그처럼 아름답게 보이는 해초를 뜯어 가지고 밖에 나와서 보면 그것도 별 것 아니다.

오늘은 느낌의 시대입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느끼기만 하면 좋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거짓된 소망을 줍니다. 세상의 것들만 가지면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인양 느끼도록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그냥 느낌뿐입니다. 속 빈 강정 같은 것들입니다.

사단의 특징은 언제나 거짓으로 유혹하는 자입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이게 하는 일에 도사입니다.
사단이 주는 것은 지나고 나면 허탈한 것, 후회되는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현대인들은 그 느낌의 허망한 것들의 종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의 속임수에 빠져 모조품에 유혹되어 사는 사람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히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사십시다. 그 분을 우리의 소망으로 그 분을 생각하며, 그 분을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웨슬리 "세상은 최고의 소망을 구하고 그리스도는 최상의 소망을 제공한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참 소망입니다. 영원한 소망입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소망입니다. 눈을 열어 주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찾는 모든 즐거움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모든 기쁨이 있습니다. 모든 부요함도 있습니다. 할렐루야!
영국의 런던에 에드워드 모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아와 같이 의지할 곳이라고는 아무데도 없었기에 어린 나이에 가구 공장에 들어가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을 끝마치고 나서도 그를 따뜻하게 반겨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런던 거리를 이리저리 쏘다니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트는 한 교회에 무심코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세상에 믿고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심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모트의 인생관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가구 공장의 사장까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사랑에 뜨거운 감격이 솟구쳤습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연필을 들고 적어내려 갔습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흔들리지 않는 소망이시며,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을 이기는 비결은


3. 모이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모이기를 폐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성도들의 믿음을 키워가는 곳입니다.
믿음의 실천은 모임속에 나타납니다. 악령의 최후 무기는 예배를 방해합니다. 어덯게 해서라도 모이지 못하게 만듭니다.
바쁜 일을 만들어서, 게으름을 줘서, 사건이 일어나게 해서. . . .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곳에 하나님이 언제나 역사하셨습니다. 미스바 골짜기에 모여 회개의 집회를 가질 때 블레셋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부르짖으며 기도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임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주일 예배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믿음이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믿음의 기본은 주님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권면하고 격려해서 나오게 하는 것이 성도들의 본분입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가 모일 때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입니다. 책망과 비판 보다는 격려와 칭찬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가슴 아픈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에 나오다가 상처를 받아서 그때부터 교회를 나가지 않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남을 비판할 아무런 권리도 얻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 . . . "자신의 눈 속에 큰 기둥 같은 것이 들어 있는 데 남을 비판 할 자격이 있겠는가? 말입니다.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주님앞에서 비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모여 오히려 사랑과 선행을 베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적극적으로 낙심하기 쉬운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용기를 북돋아 주는 행위입니다.
남을 비판하고 상처를 입히는 사람도 문제가 있습니다마는 또 신데렐라 교인도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요즘, 교회안에 신데렐라 교인이 있음을 지적한 글을 읽었습니다.
이 병은 이상한 신앙 습관 때문에 생겨난 병입니다.
신데렐라는 요술의 힘을 빌어 유리구두를 신고 황금마차를 타고 왕궁에 들어가 왕자와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자정이 지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즉 마차는 호박으로, 말들은 새앙쥐로, 연회복은 누더기로, 유리구두는 구멍뚫린 헌신으로 변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왕자에 달콤한 시간을 나누다가 불현듯 자정을 알리는 시계 소리에 놀라 정신없이 도망쳐 나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신데렐라를 닮은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있습니다. 자신의 영적인 누추함이 드러나기 전에, 자신의 부족함이 나타나기 전에 재빨리 모임에서 빠져 나갈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성도의 깊은 교제가 일어나지 못합니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문제들을 안고있는 성도들이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치유되고 건강해지는 모임입니다.
오히려 문제가 없는 척 위장하면 할수록 어색해지는 것이 교회이다.
그렇게 되면 교회가 할 일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격려하고, 칭찬하며, 서로 치유하며 서로 힘을 돋우며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 말세의 때를 지혜롭게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