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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흥하는 교회 (행 2: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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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흥하는 교회 ⊙
행 2:37-42


계절의 여왕 5월이 지나고 벌써 초여름의 6월 첫날이자 첫 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어제도 한낮의 온도가 섭씨 29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였습니다. 특별히 6월은 1년의 반을 마감하면서 교회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는 달로 " 전도와 총동원의 달"로 교회 표어를 정하였습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교회는 성장을 멈추었으며, 늘찬양교회는 IMF 이후 숫적 하향세(下向勢)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2003년이 늘찬양교회의 최대 갈림길이 될 것이라고 공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하나 자원하고 나서서 전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일화 중에 한가지는 분당에서 '사랑의 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이한규 목사님께서 교회를 이전하기 위해서 성도들에게 건축헌금을 작정시키지 않고 또 물질적 헌신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설교하지 않고 목사인 내가 먼저 행동으로 본을 보여주면 성도들이 자연히 따라서 헌신하겠지!.... 굳이 물질을 강조하므로 얼굴을 찌푸릴 필요가 있겠는가? ..... 생각하고 목사님께서 먼저 마이너스 통장에서 쓸 수 있는 한도에서 보름치 생활비만 남겨놓고 다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도하기를 "하나님! 자연히 따라올 줄 믿습니다." 그런데 자연히 따라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정직하게 목회를 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저 역시 이한규 목사님처럼 『이번에 '행복한 우리 집' 6월호가 나왔으니까? 내가 먼저 본(本)을 보이면서 전도하면 우리 성도들이 따라하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고 틈이 날 때마다 이곳 저곳에 '행복한 우리 집' 배포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한 주간 동안 어느 누구하나 "목사님! 제가 '행복한 우리 집'를 배포하려고 하는데 책이 어디 있어요?"하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단 한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에..... 혀를 차며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 제가 이한규 목사님과 똑같은 실패와 낙심을 동반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저 역시 30만원이라는 거금(巨金)을 교회 재정이 아닌 매월 개인 돈에서 지불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 왜 늘찬양교회가 이렇게 되었을까?
왜 성도들이 교회생활을 하면서 옛날처럼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왜 도전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자신의 집과 땅 그리고 자가용 자녀교육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염려하며 .... 한 평의 땅이라도 더 살라고 한 평이라도 더 넓은 아파트로 옮겨가려고 더 좋은 자가용으로 바꾸어 타려고 더 좋은 학원에 다니게 하려고 애를 쓰면서도 ...... 정작 내 배에 생수의 강이 넘치게 하며 영혼의 생수를 공급하는 교회에 대해서는 도대체 관심들이 없습니다.

사실 교회는 자신의 영적인 집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집에 애착을 가진 만큼 영적인 집에 대해서도 교회 부흥에 대해서도 관심과 애착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목사는 교인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하여 분주히 뛰어 다니며 각종 프로그램에 대해 세미나도 열심히 듣고 또 적용하려 하지만 자기를 드리고 헌신하려는 십자가의 군병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첫 사랑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모습을 탈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결코 교양 있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것이 교양 있는 모습이라면 우리는 믿음과 교양을 모두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에 다시 한번 우리의 신앙을 성찰하고, 우리 교회를 건강한 교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그래서 영향력이 있는 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초대 교회처럼 영향력이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7가지만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마음에 찔림이 있어야 합니다.

37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구원받을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그 전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본문에 나오는 '찔림'이 있었습니다. 구원의 중요한 표시는 이 찔림에 있습니다. 교회 부흥을 위해서도 무엇이 필요합니까? 우리들에게 이런 찔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 동안 교회를 너무 사랑하지 못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가책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어찌해야 할꼬?"

늘찬양교회가 올해 안에 부흥하여 물질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현재의 교회를 다른 교회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같은 결과가 초래될 때에 그 첫 책임은 목사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숙한 성도라면 그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을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타인에게 찾는 사람은 미성숙한 사람이고, 자신에게서 찾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주님을 잘 따르고 있는지, 우리의 모습이 진정 영생을 가진 자의 모습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의 모습인지에 대한 찔림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부족한 헌신에 대한 찔림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우리 늘찬양교회가 살 수 있고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2. 구원받은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38절 말씀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간단하게 말하면 "구원받으라!"는 말입니다. 누가 구원을 받습니까? 39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예수님을 부르고 영접하는 자들이 구원함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영접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그분의 존재와 능력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내 삶을 맡기겠다는 헌신의 각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공로보다도 영접하는 일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어떤 분이 잘나지는 못했지만 대화할 때 항상 상대방을 받아들이면서 대화를 합니다. "아! 예! 그렇군요... 그러시겠습니다!" 그렇게 상대방을 영접하는 분들은 사람 앞에서도 인정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고, 말씀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구원의 축복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천국의 시민권 자입니다. 오늘날 미국 시민권 자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호를 받습니다. 미국이 강력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 시민권은 미국 시민권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 가든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십시오. 때로 죄를 지어도 구원의 확신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부족해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부족해도 하나님 안에서 자기 자신의 변화될 앞날을 믿으십시오. 그 믿음이 삶에 큰 영향력을 주고, 어떤 풍파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힘을 줍니다.

믿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얼마 전에 "CEO가 되는 길"이라는 베스트 셀러가 있었습니다. 50명의 CEO(최고 경영자)를 집중 연구한 책인데, 그 핵심적인 내용이 바로 믿음입니다. 누군가 나를 믿어주고, 내가 나에 대한 믿음을 배반하지 않을 때 반드시 성공의 길은 열리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확신과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 안에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넘칠 때 그 교회는 반드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3. 열심히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40절에서 베드로는 구원의 소식을 전합니다.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 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우리에게 베드로처럼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제일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아 천국 시민권자가 된 성도가 바로 천국에 가지 않고 이 땅에 존재하는 제일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도 역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좋은 소식입니다. 어떤 분은 좋은 소식은 잘 전하지 않고 나쁜 소식을 즐겨 전합니다. 복음을 들으면 졸다가 나쁜 소식이 들리면 눈이 번쩍 뜨이는 성도들이 많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매번 강단에서 "한국 교회가 썩었다!"고 하면서 인터넷 게시판에서 돌아다니는 나쁜 소식만 퍼다 성도들에게 먹입니다. 그런 얘기를 가끔 들으면 "우리가 이래서는 안 되지!"하고 각성을 하게 되지만 너무 자주 들으면 그 영혼이 배가 고파서 결국 성도들은 하나씩 떠나게 됩니다. 나쁜 소식도 가끔 전할 필요가 있지만 우리가 주로 전해야 할 소식은 바로 좋은 소식 행복한 소식을 즐겨 전해야 합니다.

나쁜 소식은 열심히 전파하면서 복음은 전혀 전하지 못하지 못하는 자폐증 성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축복 받으면 무엇합니까? 감사가 없고, 복음 전파가 없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 일입니다. 겸양은 중요하지만 부끄러움은 버려야 합니다. 부끄러움이 별로 나쁜 것 같지 않지만 마귀가 그것을 이용해서 자폐증 성도로 만든다면 큰 문제입니다. "네가 무슨 기도야! 네가 무슨 전도야! 네 모습을 봐라!" 그 부끄러움이 우리의 열정을 약화시킵니다. 여러분! 복음 전파할 수 있는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4. 가르침을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41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복음을 전파했을 때 그 날에 삼천 명이 한꺼번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 엄청난 사람들이 다 진짜 제자였다면 몇 년 되지 않아서 예루살렘은 완전히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41절에 나오는 '제자'는 원어로 그냥 '사람'을 뜻합니다. 단순한 무리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예루살렘 교회는 힘이 약화되고 오히려 이방 지역의 교회들이 더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구원 이후의 삶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교인 숫자가 늘어났다고 교회가 성장한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진리지만 성경은 다수를 부정적으로 볼 때가 훨씬 많습니다. 숫자 놀음의 환상에 빠지면 안됩니다. 엉터리 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숫자 아닙니까? 다수 좋아하다가 망한 기록이 바로 성경의 기록입니다. 사기치는 사람, 돈 떼먹는 사람, 복음을 팔아 장사하는 사람, 선거철에 나타나는 사람, 바람 피는 사람, 편하게 믿으려는 사람 등 온갖 군상들이 숫자의 그늘 밑에 숨어 있지 않습니까?

다수를 조심해야 합니다. 때로는 용기 있는 소수가 되고, 소신이 있는 소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쉽게 살려면 남들이 하는 대로 그냥 따라 살면 됩니다. 그러나 바르게 살려면 소수의 서러움도 감내하려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고, 자신의 꿈과 비전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을 변화시키는 용기 있는 소수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휩쓸려 다니는 사람들보다 한 사람의 깨어 있는 제자를 더 원하십니다.

진짜 축복이 무엇입니까? 무리에 속하지 않고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제자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가르침을 받으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42절 말씀을 보면 초대 교회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을 줄 아는 성도였습니다. 뜨거운 가슴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냉철한 머리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많이 알려고 힘써야 합니다. 공부도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신학교에서 한 학생이 항상 시험 점수가 엉망입니다. "공부 좀 하라!"고 했더니 "복음 전파하고 철야 기도하느라고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거만한 학생을 쓰지 않으실 것입니다. 어떤 학생이 시험문제를 받아보고 아는 것이 없으니까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노라!(고전 2:2)"고 썼습니다. 교수님은 "잘 알았노라!"고 하며 빵점을 주었습니다. 학생에게는 공부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한 사명입니다. 가르침을 잘 받을 줄 아는 사람이 인격도 되어 있고, 태도도 되어 있고, 바른 신앙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가르침을 받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성경 지식이 많아야 된다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사는 삶이 가르침을 받을 줄 아는 삶입니다. 여러분! 신앙을 패션으로 삼지 말고 교회생활을 하나의 이벤트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앙이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들을 통해서 교회는 누룩처럼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확대해나갈 것입니다.


5.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42절 말씀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 교제하며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왜 '모이기를 힘쓰는 삶'이 중요합니까? 모임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나 중심적 세계관'이 깨지는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축복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고독의 영성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영성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공동체의 영성을 배우지 못하면 사람은 성숙하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손님의식을 가지기보다 주인의식을 가지십시오. 구경꾼이 되기보다 일꾼이 되십시오. 감독만 잘해서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배우와 모든 스텝들이 다 잘해야 합니다. 가끔 보면 교회에 깊이 빠지면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한 발만 걸치고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있습니다. 몸은 편하겠지만 그런 모습이 어찌 복된 모습이 되겠습니까?

여러분! 모이기를 힘쓰십시오. 특히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대인들이 전 아랍을 상대로 이긴 제 3차 중동전쟁은 6일만에 끝났습니다. 얼마나 빨리 이집트 소유의 거대한 시나이 반도를 점령해 버렸는지 점령 속도가 탱크를 타고 지나가는 속도보다 빨랐다고 합니다. 어떻게 6일만에 아랍 연합국을 항복시킬 수 있었습니까?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6일 안에 전쟁을 끝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런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생사가 위태한 일이 있어도 주일만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일을 힘써 지키는 성도를 힘써 지켜주실 것입니다.


6. 서로의 짐을 나누기를 힘써야 합니다.

42절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떡을 뗐다"는 말은 실질적으로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지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서로 어려운 자들을 도왔습니다. 그처럼 선교하는 교회는 반드시 부흥할 것입니다.

저는 신앙생활 하면서 마음 적으로 믿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선교하는 교회를 하나님이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과 십일조 하는 교인을 절대로 망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IMF의 그 무서운 위기 속에서도 그 수많은 빚더미에 앉아 있으면서도 또 선교 비를 중단하라는 압박을 받으면서도 지금까지 선교 비를 지출해왔고 올해 들어서는 '평안밀알선교회'와 '평안의 집'에 정기적으로 선교 비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거대한 작업을 꿈꾸고 있습니다.
어제는 하나님께서 600평의 땅을 보여주셨습니다. 평당 65만원씩 3억5천만 원의 땅입니다.
교차로 옆에 붙어있는 땅으로 뒤편에는 아파트가 건설될 예정입니다.
땅을 사두는 즉시 몇 배로 뛸지 모르는 너무나 귀하고 좋은 땅입니다.
아내는 제게 그런 땅이 있으면 무엇하느냐?고 돈 한 푼 없는 사람이...... 하면서 저를 핀잔하더군요...... 물론 저는 돈 한푼 없는 빚과 이자에 쪼들려 살고 있는 사람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저희 늘찬양교회를 건축할 때 돈 가지고 시작했습니까? 돈 한푼 없이 시작한 일인데 이렇게 완성되지 않았습니까? 비록 IMF로 인해 허리가 휘어졌지만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면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학2:8)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 물론 치유가 된 부분이지만 ..... 혹시나 상처받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저 개인 명의로 되어 있는 늘찬양교회 건물을 늘찬양교회의 명의로 바꾸자고 하는 일에 어느 누구하나 나서서 동참하지 않으므로 무산된 일이 있습니다......

이번에 상가를 구입하고 땅을 구입하는 일에도 여러분의 참여가 은근히 기대되지만 두려움이 앞서서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하려고 합니다. 진정
여러분들이 교회를 사랑하신다면 전도하는 일에, 찬양하는 일에, 봉사하는 일에,,, 서로의 짐을 나눌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큰 것으로 여러분들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7. 기도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초대교회는 기도에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바로 그것이 보이지 않는 부흥의 원천이었습니다. 기도는 어떤 프로젝트보다 중요하고 어떤 프로그램보다 중요합니다. 큰 일을 앞두고 더욱이 6월 15일 총동원 주일을 앞두고 우리가 더욱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교회가 부흥되기를 바라며 물질의 문이 축복의 길이 열리기를 바라겠습니까?

요사이 무척 피곤하여 새벽예배에 정시에 못 내려 갈 때도 있지만 그래도 늦게라도 일어나서 혼자 기도하고 들어옵니다. 그전보다 확실하게 영력과 기력이 떨어진 상태이지만 이런 기도마저 그쳐버린다면 답답해서 한시도 살수가 없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정말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 최대의 길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기도에 힘쓰지 않고 부흥하는 교회를 보셨습니까? 역사상 기도의 밑거름이 없이 교회부흥이 이루어진 경우는 없습니다.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의 밑거름이 주입된 교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가끔 어떤 분은 고민하며 밤을 새웁니다. 믿는 사람이 잠이 안 오는 것은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때 기도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도할 기회를 주실 때 기도하면 그 기도는 더욱 능력 있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불안해서 마음이 떨릴 때에는 기도하십시오. 다급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더욱 들어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와 믿는 성도들을 그냥 내버려두시겠습니까? 눈물 뿌려 간절히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갈등이 생길 때에도 기도하십시오. 기도하지 않으면 다 저 사람 문제로 보이면서 더 마음이 아프지만, 기도하면 내 문제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마음에 신비한 평화가 깃들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자신에게 깨달음을 주고, 회개할 마음을 주고, 평안을 줍니다. 큰 문제가 있어도 우리에게 기도만 살아 있다면 그 문제는 반드시 축복의 산실이 될 것입니다.

오늘 초대 교회의 모습을 통해서 부흥하는 교회의 7가지 법칙을 살펴보았습니다. 항상 회개를 앞세우고,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며,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적극 참여하고, 서로 위해주고, 서로 기도해줌으로 교회 부흥의 초석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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