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새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 사 40:27-31

  • 잡초 잡초
  • 304
  • 0

첨부 1





본문 : 이사야 40:27-31
제목 : 새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받으리니" 라는 말입니다. 에너지라는 말은 물리학의 개념으로 일할 수 있는 힘, 혹은 활력이라 하겠습니다.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최초 인간들은 에너지를 태양이나 바람을 통하여 얻었습니다. 다음에는 사람 즉 노예를 통하여 공급받았습니다. 이를 근육 에너지라 합니다. 인간들의 머리가 개발되니까 화학 에너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원자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강한 에너지입니다.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오늘날 필요한 게 무엇입니까? 영적 에너지입니다. 영적인 힘입니다. 새 힘 즉, 새로운 에너지에 의하여 활동하면 놀라운 효과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새 힘을 얻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1) 승리생활을 위해서입니다. 새 힘을 얻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세상은 어차피 경쟁입니다. 경쟁 세계에서는 이겨야 합니다.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지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 다같이 이깁시다. 이기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은 금력도 힘입니다. 지력도 힘입니다. 권력도 힘입니다. 단결도 힘입니다. 우리에게는 영력입니다. 하나님이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힘이 있을 때에 죄악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유혹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요셉이 승리하였습니다. 이성적인 승리를 하였습니다. 물질의 유혹에서 다니엘이 승리하였습니다. 힘을 얻어 승리합시다.

2) 고난을 극복하려면 새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고해라고 합니다. 고난의 바다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난에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맙시다. 고난에서 승리합시다. 왜 고난이 오냐 할 때 “연단 시키기 위함이라” 하였습니다. 고난은 나를 깨닫게 하는 기회입니다.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율례를 배웠노라”(시 119:71) 하였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 오던지 고난은 극복하여야 합니다.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3)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명적 존재입니다. 무엇인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부름을 받은 예수의 제자들입니다.(아멘) 고귀한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힘이 없으면 못합니다. 자기에게 부여해 준 사명을 다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알면서 못할 때 얼마나 마음이 안타깝습니까? 해야 할 일을 다하는 사람은 삶에 건강을 줍니다. 새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주여 새 힘 에너지를 주옵소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1. 하나님을 앙망하여야 합니다.

31절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새로운 에너지가 공급되면 곤비치 아니하고 피곤하지도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피곤함을 느낍니다. 힘들어합니다. 이런 때에 새 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앙망하여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을 보세요. 스데반 집사님이 어디를 보았습니까?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돌을 던집니다. 사람을 본 게 아닙니다. 주님을 앙망하였습니다. 그때 그에게는 새로운 에너지가 공급되었습니다. 자기를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새 에너지를 공급받으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사랑할 사람만 사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기 가족만 사랑합니다. 자기 자식들만 사랑합니다. 그런데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는 불행입니다. 자기 가족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고 남편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자기 교회의 성도들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지도자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이는 당연히 자기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앙망하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였습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믿음이란 말의 원문은 ‘피이스’ 라고 합니다. 이는 ‘묶어 놓는다’ 는 말입니다. 철로를 달리는 기관차를 보세요. 묶여 있기에 많은 물건을 실고 달립니다. 힘은 자체 힘이 아닙니다. 묶여 있기에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나를 연결시켜야 합니다. 나 혼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무엘상 17:~을 보시면 어린 목동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는 용기와 베짱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깁니다. 그 힘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하나님을 앙망할 때에 온 것입니다.

아무리 무너져 가는 초라한 집안이라도 전기의 동력선이 연결되어 있으면 힘있는 전력이 공급됩니다. 우리는 주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육체적인 힘보다는 정신적인 힘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뇌를 지배하는 사람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신적인 세계를 지배하는 게 무엇입니까? 지성이 아닙니다. 오히려 감성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을 사는데 분명하고 논리적이고 무엇이라도 잘 아는 사람을 좋아하지 아니 합니다. 정이 있고 자상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넓은 아량이 있고 이해심이 있는 사람이 친구가 많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대니엘 골맨(D. Goleman)교수는 성공하는 사람은 IQ가 20%이고 EQ가 80% 라고 말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머리가 좋다면 IQ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IQ란 지식, 재능, 기술을 포함하여 말합니다.

사실 마음이 좋은 사람이 쉽게 성공한다고 말합니다. 영적으로는 마음만 좋다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게 아닙니다. 믿음이 좋아야 합니다. 머리는 좋은데 마음이 좁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해심이 없습니다. 용서할 줄 모릅니다. 그런 사람은 남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기 중심의 사람이 있습니다. 남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좋은 사람은 영적인 사람입니다. 즉, 믿음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믿음이란 긍정적입니다. 믿음이라는 말에는 부정적이 될 수 없습니다.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은 설자리가 없어집니다. 하나님을 앙망합시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마음속으로 외쳐야 합니다. 1)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다. 2)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3)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지켜주신다. 4) 하나님은 나를 축복하신다. 5) 하나님은 세상 끝날 까지 나와 함께 하신다. 라고 매일 순간마다 마음으로 외치십시오. 새 힘이 생겨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실망하게 됩니다. 사람은 거짓됩니다. 말은 잘 할지 모르나 진정 도움은 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항상 이기적이며, 실리적으로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의지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담대합니다. 그때에 새 힘이 솟아납니다.

믿음은 모험입니다. 오늘의 시대를 디지털 시대라고 합니다. 정보 통신 시대요, 네트워크 시대입니다. 벤처 사업시대라고 합니다. 벤처라는 말은 모험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사회는 불안하고 염려스러운 분위기입니다. 이때 믿음의 사람은 용기를 갖고 모험을 합니다. 제자들 중에 물위로 걸어 본 사람은 베드로 한 사람이었습니다. “주여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여 물위로 오라 하소서” 물위로 걸어간 베드로는 믿음과 모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갖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하여 주십니다.


2.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이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앙망한다는 말은 바라본다는 뜻만이 아니라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삽니다. 하늘나라를 생각하고 삽니다. 앙망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바(Qavah)’인데 여러 가지 물건을 비틀어서 하나로 묶을 때에 사용하는 말입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사모하고 기다리고 소망하다 보니 마음이 뒤틀리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만나는 사람보고 무어라고 표현합니까?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자세를 앙망한다고 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고 앞이 캄캄할 때에 무엇을 바라봅니까? 하늘을 바라보세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되어 있을 때입니다. 그것도 일년이나 십 년이 아니라 50년 60년을 넘어 70년이 다되어 옵니다. 모든 이들은 희망을 잃고 낙심하였습니다. 그들은 매우 피곤하였습니다. 그때 이사야에게 주시는 말씀이 “하나님을 앙망하라. 곤비치 아니하고 피곤하지 않게 하리라. 그분에게 소망을 가져라. 그때에 새 힘을 주시리라.” 입니다. 우리 앞이 아무리 캄캄하고 답답하다고 하여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면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하여 주시기에 고난도 극복하면서 승리의 길을 걷게 됩니다.

유명한 강철 왕 카네기의 사무실에는 낡고 볼품 없는 커다란 그림 하나가 붙어 있습니다. 그림이 좋다던가 가치가 있는 게 아닙니다. 희망을 주는 그림이라는 것입니다. 그림 내용은 커다란 나룻배 하나와 배를 젓는 노가 썰물에 의하여 모래사장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그림입니다. 그런 그림이 왜 오랫동안 붙어 있습니까? 글귀 때문입니다. 그 밑에는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그렇습니다. 썰물이 지나면 밀물이 옵니다. 어두움이 지나면 밝은 새 아침이 옵니다. 인생에 겨울만 있는 게 아닙니다. 봄도 옵니다. 하나님을 앙망합시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삽시다. 석과불식(碩果不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씨 있는 실과는 결코 먹히지 아니한다는 말입니다. 먹힌다고 하더라도 씨가 있기에 사라지는 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는 주역의 『효사』에 나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앙망 하는 사람, 마음에 희망이 있는 사람은 결코 잘못되는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앙망 하는 사람은 자신감이 있습니다. 이 희망은 성공의 원동력입니다. 희망이 있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삶에 활력이 넘칩니다. 썩은 소망이나 일시적인 소망이 아닙니다.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유월절에 등장하는 노래 한 곡이 있습니다.  아니마민이라는 노래입니다. 아니마민이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나는 믿는다는 뜻으로 우리는 구주가 오시리라는 걸 믿고 있습니다. 이 노래가 작곡된 곳이 놀랍게도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 현장이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인데 이 곡을 작곡한 사람도 수용소에 감금되었던 사람입니다.

이야기는 나치스에 의해 수용된 외과 의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매일 가스실과 실험실을 향해 떠나는 동족들의 죽음 행렬을 보면서 자신도 머지 않아 가스실에 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만을 믿었습니다. 언젠가는 도와주실 거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소망을 가졌습니다. 노동시간에 흙 속에서 깨진 유리조각을 바지 주머니에 숨겨 가지고 와서 매일 유리파편으로 피가 묻어 나오는데도 면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매일 나치스들이 문을 밀치고 유대인들을 일렬로 세우고 가스실로 보낼 처형자를 골라내는데 유리조각으로 피가 묻어날 정도로 면도한 외과의사는 차마 택할 수 없었습니다. 얼굴이 깨끗하고 삶에 의욕이 넘치는 그는 살아야 할 가치가 있게 보였고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선입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를 죽이기에는 이르다고 본 것입니다. 그는 나치스가 완전히 망할 때까지 살아 남았습니다. 포로수용소에서 나올 때 유일한 소지품은 깨어진 유리조각 뿐이었습니다. 그는 스페인으로 갔습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결코 늦지 아니하다. 다만 사람들이 조급할 뿐이다.”  하나님을 앙망합시다. 꿈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언제 피곤해집니까? 왜 기가 죽습니까? 사람을 바라보고 환경을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합시다. 창조적인 사고력을 주십니다. 자신감이 넘칩니다. 평안이 옵니다. 사람이 계획한 대로 일이 되지 아니합니다. 주변이 어렵습니다. 이런 때 정신적으로 피곤이 옵니다. 이것을 탈진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앙망합시다. 새로운 에너지가 주어집니다.

어느 대학교 직업상담소에 붙어 있는 글 가운데 실패자가 되는 10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하면 성공자가 될 것입니다.

1) 나는 못났다고 인정하라.
2) 나는 모든 일에 무능한 사람이라고 비관하라.
3) 모든 일에 불평거리만 찾아라.
4) 날마다 부족한 것이 없는 것만 찾아라.
5) 자신과 다른 사람의 단점만 찾아라.
6) 조금만 어렵거나 힘들면 빨리 포기하라.
7) 얼굴에는 항상 무기력하고 낙심한 얼굴의 모습을 보여주라.
8) 한 번 실패하면 끝장이라고 믿으라. 그리하면 반드시 실패하리
라.

우리는 하나님을 앙망 하고 삽니다. 나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필요하고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믿어야 합니다. 생각할 때마
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살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믿음을 붙잡
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앙망 합시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일일 일생주의자가 아닙니다. 내일 죽으리니 먹고 즐기자 라는 삶이 아닙니다. 70년 80년을 바라보고 사는 게 아닙니다. 영원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제2차 대전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자세히 알아보니까 굶어죽는 사람보다 희망이 없어서 죽더랍니다. 인간의 불행 요인이 무엇입니까?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삶에서 참 행복을 찾는 이들이 누구입니까? 시편 31:24절의 말씀대로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라고 하였습니다. 희망을 갖고 주님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새 힘을 얻으세요. 왜 우리들이 피곤하고 힘을 잃게 됩니까?

1) 영적인 나태 때문입니다. 게으르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이나 배우는 것에 소홀합니다. 기도에 게으릅니다.
힘을 잃게 됩니다.

2) 거절해야 할 것을 거절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돌이 떡이 되고 시장할 때에 먹으라고 하는 말은 좋은 말이지만
예수님을 거절하였습니다. 요셉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좋은 말이지
만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힘을 상실하지 아니하였습니다.

3) 영원에 대한 희망이 없을 때 힘을 잃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가 희망입니다. 천국이 소망입
니다. 기도응답이 소망입니다.


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에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 받
습니다.

보고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보기 싫은 사람 내가 반갑지 아니한 사람은 바라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게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이 아들을 낳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면 좋아하고 팔을 내밉니다. 그러면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팔 아프다고 하던 이가 어린애를 안아 줍니다. 어린애는 바라보고 웃어 주는 게 최고 사랑의 표현입니다. 느헤미야 8:10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 힘이니라" 행복하려면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기쁨을 주어야 합니다. 기쁨이 보약입니다. 인생의 보약입니다. 내가 기쁨을 얻으려면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합니다.

1)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히브리서 11: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말할 때에도 믿음으로 말해야 합니다. 생각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기도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 기도가
응답이 옵니다. 자기 자신이 기쁨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
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요,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하고 받은 줄 믿고 살면 새 힘이 공급됩니다. 헌신도
믿음으로 할 때에 헌신이 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받으려고 하
는 게 아니라 드리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기쁨으로 사는 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삶이 만족하고 감사하고 사는 게 기쁨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였습니다. 자신들이 만족하지 않고 항상 원망하고 살다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매사에 감사하면서 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면 감사가 나옵니다. 그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2) 성령 안에서 순종하고 살 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성령이 기쁨입니다. 성령 받으면 사랑하게 되고 기뻐하면서 살게
됩니다. 성령 받은 이들은 순종의 사람들입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표준
이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성경이 표준이요, 하나님의 뜻이 원칙입
니다. 그 원칙에 순종할 때에 우리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께서는 그런 이들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해 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곤하게 삽니다. 곤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새 힘 에너지를 공급받아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전진적이고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