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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셉의 꿈과 시련 / 창 3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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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꿈과 시련
(창 37장 1절-11절)

오늘은 요셉의 꿈과 시련에 대하여 본문에서 깨달음을 얻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깨닫고 꿈을 꾸고 모든 꿈에 대한 시련을 이겨내는 승리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을 하기 전에 먼저 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꿈은 허몽, 잡몽, 실몽, 사몽, 영몽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몽과 잡몽을 꿉니다. 그리고 기껏 해서 특별한 꿈을 꾼다고 해도 사몽과 실몽정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영몽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영을 향하여 주시는 계시이기 때문에 아무나 꿀 수 없는 꿈인 것입니다. 그리고 시대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영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비단 요셉의 시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시대를 하나님의 뜻대로 개척해가는 믿음의 꿈쟁이들인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1. 요셉의 꿈

  2절에 말씀합니다. “야곱의 약전은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 칠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 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 이렇게 야곱의 약전은 요셉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즉 이것은 믿음의 삼대조상과 가장 밀접한 자라고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본문은 요셉은 17세 이전부터 아버지의 목장에서 양을 쳤다고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더욱이 요셉은 기질이 사나운 이복형들과 함께 양을 쳐온 것입니다. 더구나 요셉은 그 아버지가 채색 옷을 해 입힐 만큼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 앞에서 묵과하지 않고 그대로 고자질해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만큼 요셉을 향한 형들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습니다. 이처럼 형들은 그동안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큰 불만과 원망을 품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요셉이 어느 날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폭발시키는 무서운 사건의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는 형들에게 자기가 꾼 꿈에 대하여 말합니다. 6절에 말씀합니다.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이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러자 형들은 분노하여 말한 것입니다.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8) 그리고 형들은 요셉의 그 꿈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꿈을 가진 자들의 현실입니다. 이처럼 꿈을 가진 자는 그 꿈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꿈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꿈은 바로 영몽이기 때문에 자신의 뜻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진행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꿈은 알곡이 성숙 될 때까지 보호하는 하나의 보호막과 같은 꺼풀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꿈은 하나님의 말씀의 생명력을 완숙시키기 위한 과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가진 자는 먼저 애통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겸손히 무릎 끓을 줄 알아야 합니다. 끝까지 참고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꿈이므로 껍데기로 끝나지 않고 알곡이 성숙되어 나올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2. 꿈을 성취하는 자에게 따르는 시련

  9절에 보면 요셉은 또 두 번째 꿈을 꿉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형들과 부모를 모아 놓고 이야기 합니다.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여러분! 아버지, 어머니까지도 절을 할 수 있는 직위는 바로 왕과 같은 통치자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이상히 여겨 마음에 깊이 새기지만 형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드디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미움 때문에 요셉을 없앨 기회만 엿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마침내 그 기회를 잡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세겜에 가서 양을 치게 되는 형들에게 아버지가 요셉을 보내게 됨으로 시작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말대로 세겜으로 가서 형들을 찾아보았지만 거기에서 형을 만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로 방황하며 형을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도단으로 떠난 형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들을 찾아오는 요셉을 발견하게 된 형들은 마침내 요셉을 죽이기로 결의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형들이 요셉을 죽이기까지 결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꿈 때문입니다. 만일 요셉이 이런 꿈을 꾸지 않았다면 그의 삶은 이보다는 훨씬 평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꿈을 꾸는 자였기 때문에 이런 무서운 모의에 걸려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적이 없으면 결코 연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꿈을 가진 자들을 연단하기 위해 시련을 미리 예비해두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알곡은 껍질을 벗기 위해 온갖 시련을 견디고 나와야 합니다. 21세기를 열어가는 하나님의 알곡들은 반드시 이런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

  여러분! 꿈을 성취하는 자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무서운 시련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종속적인 관계를 맺는 이 사람만이 이 무서운 시련을 이겨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그냥 형들의 손에 무의미하게 죽게 하지 않으시고 그를 위해 또 다른 피할 길을 예비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르우벤과 유다를 통해 요셉은 극적으로 생명만은 건지게 되고 대신 향품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장사꾼들에게 팔려가게 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꿈꾸는 요셉의 가는 길에는 하나님께서 만세전부터 예비해두신 경륜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1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이때는 아브라함이 아직 이삭을 낳지도 않았을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이미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요셉을 통해 애굽으로 가게 될 것을 예정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과 같은 자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그들의 인생을 결코 자기들의 뜻대로 살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언약의 씨가 되어 산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은 바로 장차 오실 예수그리스도의 표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는 한 치도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예지와 예정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예지예정입니까? 아니면 보이는 세상의 부귀와 영화입니까? 그러므로 이 말씀을 깨닫는 자마다 내 뜻을 좇아  가는 자들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과 나와의 종속적인 관계를 정확하게 맺음으로 말세에 연단하고 쓰실 수 있는 요셉과 같은 꿈꾸는 자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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