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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알 수 없는 앞날 때문에 불안하십니까? / 렘 16: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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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앞날 때문에 불안하십니까? 
예례미야 16장 19~21절

여호와 나의 힘, 나의 보장, 환난날의 피난처시여 열방이 땅 끝에서 주께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 열조의 계승한 바는 허무하고 망탄하고 무익한 것뿐이라 인생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 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예례미야 16장 19~21절 말씀

  누구나 앞날이 열려지고 잘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어느 가정이나 아이를 낳으면 좋은 이름을 지어주려고 하는데요. 어느 가정에 아들을 낳고 목사님에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는데, 목사님이 좋은 이름으로 지어주려고 고민하다가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생각이 나서 발할발(發) 빛광(光)을 써서 발광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뜻은 좋지만 부르기에 좋은 이름은 아니지요. 어느 가정은 아들만 넷이 있는 가정에 다섯 번 째에 딸을 낳았어요. 귀한 여자라는 뜻으로 귀녀(貴女)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문제는 성이 방씨였습니다. 은행에서 지금은 번호표를 사용하지만 이전에는 이름을 불렀어요. 은행에서 기다리다가 "방귀녀씨" 부르면 주변 사람들이 킥킥거리고 웃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 이름을 부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한 은행만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이름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비록 육을 입고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백성입니다. 힘겨운 인생살이 속에서도 우리의 이름에 어울리게 사는 복된 길을 걸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때로 실수하기도 하고, 범죄하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연약한 모습이에요. 그러나 나는 부족해도 주님 바라보며 사는 것이 믿음이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므로 주님 주시는 은혜받고 능력받아 사는 것이 믿음생활이에요. 알 수 없는 앞날 때문에 너무 불안해 하지 마세요. 힘겨운 인생살이 속에서도 주님 붙들어 주시면 얼마든지 이겨요. 오직 주를 의지하는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38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나 예수 의지하므로 큰 권능 받아서 주 앞에 구한 모든 것 늘 얻겠습니다.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아멘. 

  우리가 사는 모습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희로애락"(喜怒哀樂)입니다. 늘 기쁜 일만 있는 것 아니고, 늘 좋은 일만 있는 것 아니에요. 때로는 답답한 일도, 힘겨운 일도 있는 것이 인생의 일이더라는 거예요. 뭔가 좀 될 것 같은데 안될 때도 있고, 안 될 것 같다가도 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제는 살만하다 싶을 때 뜻하지 않은 어려운 일들이 생기기도 하고, 어렵다 싶더니 살만한 길이 열리기도 하더라는 거예요. 이것이 인생입니다. 나 혼자만 겪는 것이 아니에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그 정도는 다르지만 모두가 다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도 막히고, 물질도 막히고, 환경도 막히고, 안 되고 없는 가운데라도, 주님이 열어 주시면 닫을 자가 없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막힌 것을 여시는 분이에요. 때로 쉽게 될 것 같은 일도 주님이 열어 주시지 않으면 안 열립니다. 아무리 막혀있어도 주님이 여시면 열려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나에게는 열 힘이 없어요. 능력도 없고, 지혜도 없어요. 그러나 주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께는 문제가 안 되요. 나는 못하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은 하십니다. 못하는 것을 하게 하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죽었던 것을 다시 살리시고, 부족한 것을 채우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19절 "여호와 나의 힘, 나의 보장, 환난 날의 피난처시여..." 이 고백이 내 심령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백성들을 버려 두시지 아니하고 어떻게 약속하셨습니까? 21절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성취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손은 나를 살리시고 복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가정에 간섭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하고, 은혜로 충만하도록 역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환경만 보면, 문제만 보면, 힘이 빠지고, 낙심이 되고, 원망이 나오고,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일할 맛도 안 나고, 살맛 안 나는 세상입니다. 환경만이 아니에요. 내가 나를 보아도 힘이 빠져요. 문제보다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환경보다 환경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람보다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힘을 낼 수 있고, 일어 설 수 있습니다.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어요. 아무리 보아도, 상황은 순종할 수 없지만, 감사하기 어렵지만 순종하고 감사하면 열려질 줄 믿습니다. 순종해서 손해 본 사람 없어요. 슨종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도 보세요. 주님이 시키는 대로 순종했더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잖아요. 베드로가 밤새 고기 한 마리 못 잡았지만 시키는 대로 순종했더니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수확이 있었습니다. 10명의 문둥 병자들이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는 말을 듣고 시키는 대로 순종하여 제사장에게 가다가 몸이 깨끗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목사도 다 몰라요. 모르는 것 투성이에요. 주님 기뻐하시지 않는 내가 될 때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쓰시려고 구별하여 세우셨기에, 그저 종을 통해서 기도하는 대로, 종을 통해서 말씀 주시는 대로, 종을 통해서 권하는 대로, 순종하고 나아가면 시온의 대로를 열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내가 길을 열 수는 없어요. 그러나 구하라 하셨기에 구하는 자에게 열어 주시고, 믿고 순종하라 하셨기에 순종하는 자에게 길을 열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복된 자리, 귀한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말씀을 듣는 가운데 나와 가정에 막고 있는 것들이 다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물질의 문도 활짝 열려지고, 환경이 복된 환경으로 활짝 열려지고, 막혔던 사람과의 관계가 활짝 열려지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겨 싸고 있는 것들이 끊어지고, 풀어지고, 열려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될 줄로 의심하지 아니하고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린아이 신앙은 옳은 가르침에 익숙하지 않아요. 말세가 되어지니까, 듣기에 좋은 자기의 욕심을 채워 줄 말씀은 좋아하지마는 정말 살길이 무엇인가를 모르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더라는 거예요. 들을 귀가 없어요. 들을 귀 있는 복된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젖을 먹어야 하는 단계가 아니에요. 초보에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은 지 오래 되었기에, 스스로 성숙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초보에 자리에 머물러 있더라는 거예요.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더 성숙한 신앙의 자리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고, 더 깊은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는 데에 걸림돌이 되는 거예요. 내 경험이 전부가 아니에요.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방식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에요. 내가 진정으로 예수를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지금까지 가졌던 생각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이전 것을 버리지 못할 때 새로운 은혜의 세계로, 더 큰 축복을 향해 나아갈 수가 없더라는 거예요. 주님 안에서 새로 시작하는 마음, 이것이 늘 필요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철저하게 말씀으로 돌아가,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이 내 생활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질 때 새로운 은혜의 세계를 맛보아 알게 되는 거예요. 성령께서 내 심령 속에 이런 결단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바라본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내가 주인 되어서, 모든 것 내가 정해 놓고, 내가 원하는 때에 안 이루어지면, 원망하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갈등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연약한 모습이에요. 사55:8,9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내 생각에는 이 때에 이렇게 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지마는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때와 방법은 다르더라는 것이에요. 분명 더 높은 뜻이 있더라는 것이지요. 그때 그때 내가 다 깨닫지 못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주님은 더 나은 길로, 더 나은 방법으로, 더 좋은 결과를 주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섭리 앞에 믿을 뿐 아니라 의지하고 기다리는 사람만이 좋은 결말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을 배우기가 어렵더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손길은 실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조금 더 기다리지 못해 서두르고 인간적으로 처신한 결과가 오늘날까지 중동에 피와 눈물과 전쟁이 그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고 맙니다. 서두르면 이스마엘, 기다리면 이삭이에요. 믿음은 묵묵히 기다리는 거예요.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에요. 나의 힘, 나의 보장, 나의 피난처임을 말씀이 증거하고 있고, 그것을 내가 이미 체험했기에, 앞날에도 주님의 손길과 주님의 능력을 볼 것을 확실히 믿기에 믿음으로 기다리는 거예요. 

  나를 나도 잘 몰라요. 어느 것이 진정 나의 모습인지, 내가 나를 아는 것 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 나의 가는 길을 이미 아시는 주님! 나의 앞날을 이미 보시는 주님!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어느 가정은 아빠가 차를 타고 나가려고 하니까 어린 딸이 아빠에게 까꿍 까꿍하고 싶어서 차 뒤쪽에 숨었어요.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후진하다가 딸을 치어서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가정에서는 아빠가 침대에서 자다가 방바닥으로 떨어졌는데, 바닥에서 자고있던 갓난아이가 깔려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자기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자녀라도,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 있는 거예요. 때로는 마음이 변해서도 못하고, 마음 있어도 능력이 없어서 손을 쓸 수 없을 때도 있더라는 거예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거예요. 그러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는 말로 다 설명 할 수가 없어요.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아래 감추시며(시17:8), 영원한 팔로 받쳐 주시고(신33:27), 뒤에서 호위해 주시며(사52:12), 앞서 가시어 험한 길을 평탄케 하시고(사45:2), 우편에 계시어 요동치 않게 하시며(시16:8),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시어 지켜주시고(슥2:5), 마음과 뜻을 감찰(히4:12)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인 치신 백성(계7:3)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구별하시고, 하나님의 소유된 사람들입니다. 어느 것에도 넘겨질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장받은 사람임을 믿고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43:1,2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구를 그렇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자녀된 나를, 오직 주님 아니면 갈곳이 없는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을 지키시고 간섭하시되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전능하신 손길로 붙들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행여라도 헛된 것 의지하고, 붙들다가 후회하는 인생 되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만이 나의 힘이 되심을, 나의 보장이 되시고, 나의 피난처가 되심을 심령 깊은 곳에서 고백하는 복된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개인도 그렇고, 나라와 민족도 그렇고 어려운 때일수록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이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 이것에 따라 그 인생의 앞날이 달라져 버려요. 러시아는 본래 잘살던 나라였습니다. 앞서 가던 나라예요. 예술, 교육, 정치, 어느 것 하나 뒤떨어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들이 공산주의 혁명과 함께 사회주의를 선택하면서부터 점점 기울기 시작하더니 결국 70년만에 망하고 맙니다.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하고 그 뒤를 따르던 중국, 루마니아, 유고, 월남, 체코, 북한, 모두가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하기 힘든 나라들이 되고 만 거예요. 저 나라들이 문호를 개방하면서 민주주의 원리를 서서히 받아들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런 나라들이 잘 사는 것을 그들이 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본래 신앙의 자유를 찾아 피난길에 올랐던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가 아닙니까? 미국에 잘못된 부분도 많고, 어두운 부분도 많습니다마는 그들에게 믿음의 근본이 있고, 믿음의 뿌리가 있기에 하나님이 복을 주신 거예요. 내가 오늘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나의 내일이 달라집니다. 믿음의 길, 순종의 길, 축복의 길에 이미 들어섰습니다. 이대로만 가면 후회하지 않습니다. 돌아서지 아니하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한눈 팔지 아니하고, 믿음의 길 , 순종의 길 잘 걸어가심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약속을 내 생활 속에서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신앙 생활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힘든 훈련의 과정도 거쳐야 하고, 많은 연단을 하게 하시더라는 거예요. 이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를 살리는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지방에 콩, 옥수수, 감자같은 밭농사를 위주로 했는데, 때 아닌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예년보다 수확량이 삼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할만큼 흉년이 든 주요원인이 무엇이었느냐? 이른 봄에 비가 너무 많이 내린 거예요. 물이 많으면 당연히 농사에 좋습니다. 그런데 봄에 비가 많이 내리니까 식물들이 물을 찾아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릴 필요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8월 들어 한동안 가뭄이 계속되니까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 농작물들이 제대로 수분과 영양을 섭취를 못하게 된 것입니다. 살아가는 조건이 좋고, 너무 풍족해도 믿음이 성장하는 일에 방해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가뭄을 타지 않습니다. 바람이 몹시 불어서 거센 풍랑이 일고 있는 날에 해녀가 바다에 뛰어들어가 일을 하더라는 거예요. 물어 보기를, "이렇게 바람이 거센 날도 바다에 들어갑니까?" 해녀가 대답하기를, "풍랑이 바다에 있지, 바다 속에도 있나요?" 그렇습니다. 힘겨운 인생살이, 풍랑이 그칠 날이 없는 인생살이 속에서도, 믿음의 깊은 세계에 들어가면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나 문제들이 그다지 큰 문제가 안 되더라는 거예요. 고난의 언덕 너머에 있을 좋은 결말을 믿으며 사는 사람은 오늘의 풍랑과 시련을 견디어 내게 되는 거예요. 이런 믿음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완전한 사람을 찾고 계시는 것 아닙니다. 주님 앞에 깨끗한 마음, 진실한 마음을 회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남은 인생은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에요. 갈렙은 85세에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이나 출입을 감당할수 있사오니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남은 나의 인생을 내 힘으로 준비하려 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준비하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때는 잘 몰라요. 지나간 다음에 거꾸로 읽어보면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문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어는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써 나갑니다. 읽는 것도 거꾸로 읽어야 되요. 당장은 다 모릅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모르고 그 당시도 모릅니다. 다 지나가고 나서 거꾸로 보면 하나님의 섭리가 보입니다. 요셉도 그렇고 야곱, 모세, 다윗의 삶을 보세요.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렸을 그 당시에는 몰랐어요. 요셉이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갔을 때도 몰랐습니다. 거기에서 바로 왕의 두 신하를 만났지만 그들이 출옥 후 요셉을 잊어버렸을 때도 모릅니다. 13년 후에야 깨닫게 됩니다. 총리가 된 다음에야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의 깊이를 깨닫게 됩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도망할 때도, 삼촌 라반의 집에서 일하면서도, 도망 나왔을 때도 몰랐어요.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뒤에야 모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모세도 그랬어요. 나일강에 버려졌을 때도, 애굽의 왕자가 되어 애굽의 학문과 무술을 배울 때도, 애굽 사람을 때려죽일 때도, 도망하여 40년간 목자로 일했을 때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바울 앞에 섰을 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로 나왔을 때 드디어 알았어요. 하나님의 손길, 섭리가 있었구나. 다윗도 마찬가지였어요. 형들은 다 놀고 있었을 때 혼자 밖에서 일하고 있었던 16, 17살 때는 몰랐습니다. 골리앗 장군을 죽였을 때도, 사울이 자기 딸과 결혼시키고 암살시키려고 했을 때도 몰랐습니다. 젊은 나이에 사울 왕에게 쫓겨다니며 죽을 고비를 몇 번씩 넘기면서도 몰랐어요. 후에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음에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앞을 보고도 알 수 없고 현재를 보고도 알 수 없어요. 지나간 다음에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 걸어가면서 때로 직장을 잃기도 하고, 사업에 부도가 나기도 하고, 원치 않는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감당 못할 질병을 겪기도 합니다. 오해를 받기도 하고, 얽히고 꼬일 때, 마음에 고통을 받을 때는 다 이해 할 수가 없어요. 마음 편안하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거예요. 그러나 내가 모를 때도 하나님은 아시고, 내가 잊어버렸을 때도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검은 구름 뒤편에는 밝은 태양이 있습니다. 

  덴마크에서 목공소로 시작해 성공한 한 기업가가, 관련 건축업체들이 하나 둘 망하자 장난감 만드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얼마 되지 않아서 장난감 만드는 공장이 불이나서 다 타 버렸어요. 그런데 그 회사는 주저앉지 않고, 다른 일을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레고로 잘 알려진 조그만 조립식 플라스틱 장난감을 만드는 세계적인 대회사가 된 거예요. 넘어지고 또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서서 결국 해 낸거예요. 때로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 것 같은 문제와 장애물들, 질병이나 실패 가운데에도 주님께 무릎 꿇는 계기로 삼는다면 결국 이기게 될 줄로 믿습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키우는 것도 그렇습니다. 둥지를 만들 때 먼저 나뭇가지를 깔고 그 위에 작은 돌을 올려놓은 뒤 다시 그 위에 부드러운 깃털을 덮는다고 합니다. 새끼를 키우다가 어느 정도 자라서 독립할 때가 되면 깔아 놓았던 부드러운 깃털을 다 빼 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새끼들은 딱딱한 돌과 날카로운 나뭇가지가 불편하니까 둥지를 떠나게 된다고 합니다. 이 어미의 연단 때문에 독수리는 독립하게 되고 더 강해지는 거예요.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시련 속에는 반드시 숨은 뜻이 있습니다. 믿음의 눈을 열어서 주님의 뜻을 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내가 왜 이일을 겪어야 하는가" 여기에서 "이 일을 통하여 주님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이렇게 바꾸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려면 안 되는 것이고, 주님이 지혜주시고, 축복하시면 일어서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물질의 축복뿐만이 아니에요. 자녀들의 앞날도 주님이 열어주시면 형통케 됩니다. 간증거리가 생기고, 하나님 영광 받으실 일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돈만 쫓아다니고, 세상 것만 따라가면 나중에는 모두 잃어버리고 헛수고하고 후회하는 인생삽니다. 주님 원하신 자리로만 나아가면 일상생활의 문제는 걱정하지 않도록 하나님 역사하십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우선으로 살면 필요할 때는 돈도 힘도 명예도 다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생은 운명이나 팔자가 아니에요. 모든 방법이 다 실패할 때라도, 모든 문이 다 닫혔을 때라도. 여전히 주님은 나를 붙들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만 바로 되면 우리의 미래는 앞날은 열립니다. 

  위기는 위기로 끝나지 않아요. 위기는 기회가 되는데, 망할 기회도 되고 축복과 도약의 기회도 됩니다. 어느 길을 가느냐? 바로 나에게 달려있어요. 어느 길을 가느냐에 따라 고통일 수도 있고 기쁨일 수도 있습니다. 멸망의 길이 될 수도 있고, 성공의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불행의 길이 될 수도 있고 행복의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인생살이예요. 많은 은혜를 체험하고 어제까지는 잘 왔더라도 오늘 망할 수 있고, 어제까지 안 되었더라도 오늘 될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별도리 없어요. 나를 의지하지 마세요. 나의 갖춘 것 붙들지 마세요. 하루 하루를, 한해 한해를 주님 붙들고 살아가세요. 주님의 섭리의 손길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열려져서, 주님이 예비하신 축복된 결말을 바라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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