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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러분, 이제는 안심하라 / 행 27: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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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여러분, 이제는 안심하라
성경본문 사도행전 27:18-26


설교내용  우리는 최선을 놓치고 차선에 매달려 후회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은 항상 최선을 선택하고 항상 최선을 성취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만큼 약점이 많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이 사건을 보면 바로 그런 일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죄수가 되어 로마로 가게 됩니다. 바울과 다른 죄수들과 여객들이 타는 배가 드디어 팔레스틴을 떠나서 지중해를 건너 로마로 항해하게 됩니다. 그 배는 276명이 탔습니다. 그러나 이 배가 항해를 할 때 바람이 매우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그레데라는 섬의 미항에 임시로 피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미항은 태풍이 와도 안전한 그런 지경을 갖고 있는 항구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탄 이 배가 미항에 정박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겨울을 지나고 즉 태풍이 부는 계절을 피하여 행선 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무모한 용기

  팔레스틴의 이 지중해 연안에는 겨울에 태풍이 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계절 바람을 피하여 행선을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미항에 도착을 했는데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함께 탔던 그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미항에서 겨울을 지내는 것보다 뵈닉스로 가자고 했습니다. 미항이라는 이 항구는 조그마한 항구입니다. 그러나 뵈닉스는 큰 항구입니다. 거기는 향락도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작은 미항에서 겨울을 보내는 것은 너무 따분한 일이므로 큰 항구, 뵈닉스로 가서 겨울을 보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가지 의견이 서로 대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항구지만 안전한 미항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하지만 뵈닉스로 갈 것인가? 이 두 가지 안을 가지고 서로 논쟁을 하다가 결국 사도 바울이 주장하는 미항에 머물자는 안건이 여론에 밀렸습니다. 결국 그 죄수들을 호송하는 최고 책임자 되는 백부장이 바울의 말보다 선주와 선장의 말을 더 믿고 미항을 떠나서 뵈닉스로 항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9절 이하에 보면 “여러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 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화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주와 선장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이렇게 백부장은 선주와 선장의 말을 듣고 뵈닉스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만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뵈닉스는 미항에서 정반대 되는 지역에 있는 큰 도시입니다. 출발할 때는 남풍이 순하게 불었지만 얼마 후 되어 섬 가운데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을 했다고 했습니다.

  15절에 보면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 17절에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이 장면을 보면 얼마나 위급한 상황인지를 알게 됩니다. 태풍을 만나서 배가 바람을 따라서 운행을 해야 하는데 바람이 너무 거세므로 이 배가 바람에게 밀려서 가는 대로 쫓겨가다가 표류를 하는 것입니다.

  살 여망이 없는 상황

  배가 표류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이 배는 큰 풍랑 때문에 지금 엔진도 꺼진 줄 알고 짐을 바다에 던지면서 위기를 모면해 보려고 하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냥 쫓겨 가더니”라고 했습니다. 배가 그냥 표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흘동안 표류하는 것입니다. 엔진이 꺼진 배는 파도따라 나뭇잎이 출렁거리듯이 표류합니다. 사람들은 배 멀미를 견디지 못합니다. 엄청난 고통을 당합니다. 바울이 탄 이 배는 사흘동안 표류를 했습니다. 먹지도 못하고 풍랑에 시달리는 이 무리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20절에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3일 동안 해가 안보일 만큼 폭풍우가 몰아치는 그 상황에서 구원의 여망이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한사람도 살아나려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 이대로 죽는구나!’ 모두 절망에 처해 있었습니다. 아무도 살아날 것이라고 희망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 사도 바울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21절에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 하였느니라” 여러분, 좋을 뻔 한 것이 좋습니까? 안 좋을 뻔 한 것이 좋습니까? 사도 바울이 희망을 잃고 있는 사람들에게, 산다는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했더라면 얼마나 좋을 뻔 했느냐?” 이것은 후회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말을 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22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사도바울의 이 말씀을 새기면서 함께 은혜 나누기를 바랍니다.

  후회스러운 일

  바울이 말합니다. “이 사람들아 내 말을 들었으면 좋을 뻔 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이제는 안심하라”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이제’라는 말을 생각합시다. ‘이제’라는 말은 다 지나간 후를 말합니다. 다 잃어버린 후, 다 실패한 후, 이제는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선이 아닙니다. 차선입니다.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출항을 안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최선은 놓쳤다. 이제는 차선이다. 여러분이여, 이제부터는 안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가이사 앞에 서야 하고,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너와 함께 구해 주리라고 어젯밤에 주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하신 하나님을 내가 믿습니다. 여러분이여 이제는 안심하십시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한 말,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 머물렀으면 좋을 뻔했다”는 이 말씀속에 오늘 우리들의 교훈이 있습니다. 바울이 한 말은 바울의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말속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 있습니다. 바울은 사람의 말로 지금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시고 가르쳐 주시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자연의 질서를 좇아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담아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바울의 말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 말을 들었어야 했습니다. 그 말을 거부했던 무리들입니다.
  작년에 우리나라가 월드컵을 개최할 때도 5월 31일부터 6월의 기간을 잡은 것은 8월, 9월에는 태풍이 많이 분다고 해서 그 태풍을 피해서 5월에 개막을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태풍이 오는 계절은 상식적으로 참고해야 합니다. 그 상식마저도 무시하고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그 믿음의 말을 이 무리들은 거부를 했습니다.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이 바울의 말에 우리가 그런 우를 범하는 신앙생활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가를 자성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열리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를 보는 눈이 열리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가슴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인간의 귀로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귀는 육체적 귀입니다. 육체의 청력은 신령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시력은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없습니다. 영의 세계는 영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제가 전에 상담소 일을 할 때, 어떤 사람이 너무 집요하게 만나 달라고 해서 소원을 들어주자 해서 만났습니다. 30대 중반쯤 되는 남자였습니다. 저를 만나서 말하기를 “목사님 제가 금식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탄의 음성은 사람의 귀에 들려줍니다. 사람의 육체의 경험으로도 사탄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사람의 귀로 듣지 못합니다. 영의 귀로 듣습니다. 우리 영혼의 귀가 열려야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저의 설교를 듣지만 귀로 들리는 것은 설교로 들립니다. 그러나 영혼의 귀가 열려야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 설교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담겨서 나가는 것입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설교라는 포장에 의해서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은 사람의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말속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설교자의 말은 사람의 말입니다. 그러나 그 설교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담아서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영의 귀가 열리면 사람이 가르치는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것입니다. 그 음성을 듣는 영의 귀가 열리기 바랍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의미로 들려집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음성 그 자체로 들으려고 하니까 혼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선지자에게는 하나님이 예언을 주십니다. 그러나 선지자에게 주는 예언을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 들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만 하나님의 예언을 듣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그 말씀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선지자처럼 들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이미 주어진 이 계시의 말씀을 배우면서, 읽으면서, 들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 음성의 의미는 두 가지입니다. “바울아,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되겠다” 이것은 네가 가이사 앞에 서서 재판을 받는 도중에 네가 복음을 변론할 그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네가 가이사 앞에 가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는 음성입니다. 또 하나는 “너와 함께 이 모든 사람의 생명을 함께 구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바울 개인에게 목적이 있는 메시지가 하나도 없습니다. 바울에게 들려진 하나님의 음성은 하나님의 사명에 대한 음성입니다.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되겠다, 너와 함께 이 모든 일행의 생명을 살려주겠다” 그 음성을 바울이 듣고는 이제 사람들 앞에 전하는 것입니다.

  사명자는 죽지 않는다

  여러분이여, 이제는 안심하라, 하나님께서 나를 가이사 앞에 세우기 전에 나와 여러분은 함께 하나님이 살려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바울은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황을 보십시오. 풍랑 만나기 전에 바울의 말에 콧방귀 뀌었던 사람들, 선장, 선주, 백부장이 귀에 담지 않았던 이 사람들이 풍랑을 만나고 나서는 한마디 반항도 못하고 듣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선장도, 선주도, 백부장도 없습니다. 바울이 왕입니다. “여러분이여, 이제는 안심하라”는 말에 반항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진작 들었어야 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사시겠습니다. 풍랑 만나고 아멘 하시겠습니까? 풍랑 만난 후 아멘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풍랑만난 후 아무 소리도 못하는 성도를 원하지 않습니다. 풍랑 만나기 전에 바울의 말을 듣는 영의 귀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라크 전쟁이 끝나고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많은 중에 또 한 가지가 소개되었습니다. 바그다드 대학생이 후세인에게 반항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후세인 비밀경찰조직이 이 사람을 수배를 했습니다. 잡히면 비참하게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대학생이 자기 집에 가로 60cm, 세로 2m 땅굴을 파서 거기 숨어서 후세인의 비밀경찰을 따돌렸습니다. 가족들이 먹을 것을 갖다주면서 21년 4개월 동안 땅굴생활을 했습니다. 이번에 후세인이 무너지고, 이 대학생이 땅굴에서 해방이 되어 나왔습니다.

  후세인이라는 독재자가 얼마나 이라크의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젊은 대학생이 21년 4개월 동안 땅굴생활을 했습니다. 이 사람을 구출해 놓고 보니 신체의 모든 기능이 마비가 되고 퇴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아무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지금 자기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후세인이 무너졌는지, 전쟁이 났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역사의 감각, 지각의 감각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사람은 사람인데 이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석고상 같은 인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땅굴생활은 안 하지만 영적인 세계에서 가만히 보면 땅굴생활 하는 인생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 사랑을 느끼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섬길 줄도 모르고 일생동안 자기를 위해서 살다가 망가지는 인생들이 이땅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영적 땅굴생활에서 빨리 탈출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열리고, 그 분의 음성이 들려야 그 분을 영광스럽게 경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의 귀가 열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그 분의 교회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안 보이는 힘이 더 강하다

  사도 바울이 말한 그 말, 풍랑 전에 했던 말씀이나 풍랑 후에 했던 말씀이나 바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풍랑 전에 들리는 그 말씀을 예사로 생각했던 이 무리들처럼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가려져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요즘 사스 때문에 바이러스 연구가 굉장히 많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어떤 결과를 보니 지금 사람이 발견한 세균 가운데 무게가 가장 가벼운 세균은 0.000000000001g이었습니다. 이것은 상상할 수 없이 작고 가벼운 것입니다.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르는 것입니다. 고도의 과학기술을 가지고 검출해 낸 세균의 무게입니다. 그런데 제일 무거운 생물체는 고래라고 합니다. 고래 중에도 몸집이 어마어마한 것이 있습니다. 그 고래의 무게는 1억g이랍니다. 1억g인데 이것이 얼마나 무거운지 계산해 봅시다. 1억g은 100t 이상입니다. 100t짜리 고래와 0.000000000001g 세균과는 비교도 안 됩니다. 그러나 생태계에는 오묘한 이치가 있습니다. 이 거대한 고래가 그 조그마한 세균에 공격을 받아 죽는다는 것입니다. 인간도 병원체에 의해서 세균 때문에 인간도 죽습니다. 코끼리, 황소도 죽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모든 생물은 미생물의 공격을 받아 죽는다”라고 했습니다. 안 보이는데 강하다는 것입니다. 안 보이는데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안 보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현실적인 고민은 무엇입니까? 전부 보이는 것입니다. 돈 문제, 가족 문제, 자녀 문제, 사업 문제 등 모두가 우리 인간들은 보이는 것 때문에 억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중요한 것 하나 붙잡기 바랍니다. 안 보이는 하나님의 음성이 여러분의 보이는 문제의 해답이 되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으로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므로 우리의 신앙생활 갈등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맺는 말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보이는 문제들, 육신의 문제들의 해답은 안 보이는데 있습니다. 영으로 계신 그 하나님이 답을 갖고 계십니다. 그 분이 들려주는 말씀 한 마디 속에 답이 있고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귓 전에도 담지 않던 그 한마디가 모든 생명을 살리는 말씀인데도 그것을 무시했던 사람들입니다. 풍랑을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안고 있는 현상세계의 보이는 고민들은 안 보이는 하나님의 음성, 안 보이는 하나님의 사랑, 안 보이는 성령의 역사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주의 음성을 듣는 귀가 열리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고, 그 분이 세운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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