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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랑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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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본철 교수 (성결대학교 성결신학연구소장)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많은 교회에서 성결(聖潔)에 대해 너무나도 잘못 가르치고 있다. 어떤 지도자들은 죄악을 단절하는 삶을 살려면 끊임없이 자기 훈련과 교회 봉사와 성경 보는 생활에 힘쓰지 않으면 안된다고 교훈한다. 그러나 성결을 이루기 위해서 ‘이것은 하라, 저것은 말라’ 하는 식의 교훈은 언제나 자기 위주와 행함 위주의 신앙생활로 우리를 이끌어가게 된다. 율법적이거나 자의적(自意的)인 도덕의 실천을 통해 성결이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스스로 정해 놓은 경건의 규례를 얼마나 성실히 그리고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가에 따라 성결의 성패(成敗)가 가름되는 것도 물론 아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공로로 말미암아 실제적인 성화(聖化)의 삶에 들어갈 수 있다고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만일 우리에게 주님께 대한 사랑만 있다면, 어떠한 유혹의 순간에도 죄악으로부터 성별(聖別)되어질 수 있는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의 메시지이다(롬 6-8장).

예를 들어서,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우리는 자주 세상적인 잡념이나 죄악된 정욕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이럴 경우에도 주님께 대한 골똘한 사랑만 있으면 이같은 상태로부터 죄악을 범하지 않고 벗어 나오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 원리는 이와 같다. 즉 누구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구속의 은혜를 깨달아 구원의 은사를 받았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주님께 대한 사랑의 동기(動機)가 영혼 속에 생겨나게 된다. 이 사랑은 곧 관심으로 측량된다. 내가 얼마나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는가는 곧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내게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측정되어질 수 있다. 관심의 깊이, 그리고 관심의 양이 내 사랑의 정도를 가름케 해 준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주님께 대한 관심을 별로 보이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는 주님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자임에 틀림없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는 당연히 자기 안에 임재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관심이 있을 것이고, 그는 그만큼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행하게 된다.

그리고 이같은 삶의 질을 통해 넉넉히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진다. 이 사랑 때문에 나는 나의 자아를 중심으로 한 삶을 부인(否認)하고 순간마다 그리스도의 영(靈)으로 행하기를 즐거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결된 삶을 직접적으로 가능케 해주는 요인은 바로 주님께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 11:25). 이처럼 성결의 성패는 얼마나 내가 그리스도의 영을 충실히 따라 행하고 있느냐에 있기 때문에, 그 실제적인 성공의 비결은 주님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힘, 즉 사랑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감히 고백하리라. 주님,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나는 유혹과 죄악의 홍수 앞에서 너무도 무력(無力)합니다. 너무도 무력하기에 저는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가지는 주님을 유혹 속에서도 사랑한다고 하는 이것 한가지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주님의 인도하심에 거하고 있는 동안,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죄악의 유혹을 소멸하시니 감사드립니다.

+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 동안,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안에서 나타나 유혹과 죄악으로부터 나를 성결케 지켜주심을 감사드립니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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