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령이 오시면(2) / 행 2:12-18

  • 잡초 잡초
  • 232
  • 0

첨부 1





성령이 오시면(2)
행 2:12-18

12)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1. 변화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물론 그 변화의 모습은 각양 각색일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령을 받기 전과 받은 후는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을 놀라게 만듭니다.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12절)

사실 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건일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오셨는데 어찌 아무런 변화가 없겠습니까? 주변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을 것입니다. 아침에 아내와 다투고 출근한 사람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눈치를 차립니다. 그 마음이 상처를 입었기에 그의 표정이나 행동에 부자연스러움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성령이 그 안에 들어오셨는데 왜 다른 사람이 모르겠습니까?

초대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도 강렬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하기를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13절)

"새 술"이란 아주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의미한다고 보입니다. 즉 술에 깊이 취한 사람의 모습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남에게 추한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신 이유는 모르지만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얼굴엔 기쁨과 확신 그리고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11절) 즉 춤추며 찬양을 드리는 모습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이런 변화가 성령 안에서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 예언과 환상과 꿈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는 소리를 듣던 베드로가 일어나서 그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14-18절)

1)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라

성령이 오시면 우리 영혼이 변화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육체가 변화합니다. 이 말은 육체의 모양이 바뀐다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육체의 삶이 바뀌어진다는 뜻입니다. 적지 않은 경우에 성도들이 육체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심령의 변화만을 주장하며 그기에 안주합니다.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구약 에스겔 선지자의 글을 보면 이 문제를 매우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에스겔서 37장에 보면 어느 골짜기에 人骨들이 널려져 있었는데 여호와의 생기가 그들에게 불어오니 그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힘줄을 얻고 살이 입혀지는 놀라운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 인골이 생명을 얻어 살아난 것입니다. 이 기적같은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교훈하셨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겔 37:11-14)

즉 역사 속에서 고향을 잃고 유리 방황하던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靈을 받을 때 소망을 가지고 일어나서 고토를 회복하게 될 것이란 예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에게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무덤 속에 있는 듯한 절망과 고통의 시련이 있어도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일으켜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새 소망을 심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무덤을 열고 되살아날 것입니다. 
 
2) 예언, 환상 그리고 꿈

그래서 본문은 성령이 오시면 어린이는 예언하며,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습니다. 예언과 환상 그리고 꿈은 같은 의미로 봅니다. 즉 장래를 내다보며 희망을 가지는 힘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꿈과 인간의 욕망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란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간단히 답변한다면 이렇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다툼 속에서 이루어갑니다. 반면 성령의 꿈은 기다림과 인내로 이루어 갑니다. 욕망은 불안이 동반됩니다. 실패하면 안된다는 강한 집념은 역으로 불안을 더욱 가중시킵니다. 그 불안은 타툼과 분노를 동반합니다. 그렇기에 이런 인간의 욕망은 행복감을 주지 못합니다. 욕망이 크면 클수록 더욱 불행해집니다. 그러나 성령이 주시는 꿈은 집념은 있으되 다툼과 분노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꿈은 불안이 없습니다. 
요셉의 일생이 그랬습니다. 그는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꿈에 대한 집념이 대단했습니다. 형들과 부모님에게 미움까지 받았으나 그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그 꿈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리며 인내했습니다. 결코 그 누구와도 다투지 않았습니다. 형들과 격돌하지 않았습니다. 여주인에게 누명을 덮어쓰고도 분노하며 다툰 적이 없습니다. 감옥에서 만났던 애굽의 고관들에게 배신당하고도 그는 그 곳에서 분노하며 싸우지 않았습니다. 까닭은 그의 꿈은 자기의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하나님만 바라며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며 이루어질 때까지 인내하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 2:13-16)

저는 우리 교회 백주년 기념 사업의 꿈을 이런 자세로 이루어가고자 합니다. 다툼과 분노, 원망과 시비가 없이 우리의 꿈을 이루어가도록 할 것입니다. 물론 이견 속에서 갈등은 있을 것입니다. 갈등이 일어나면 기다릴 것입니다. 주님이 형통케 해주실 것이라 믿고서 주님만 바라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이런 태도를 가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아무런 시험도 없을 것입니다.

일상의 삶을 이렇게 살면 때때로 인생길이 답답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가장 안정하고 가장 형통한 길이 될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 사건에서 얻은 교훈입니다. 창세기 7장 16절에 보면 " . . .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그의 창세기 주석에서 이렇게 해석하셨습니다.

"그것은 (1)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그 방주를 주관하시며, 그 속에 있는 생명들을 보호하신다는 것, (2) 방주 속에 갇힌 자들은, 이제부터 그 속에서 포로와 같이 되었다는 것, 그들은 이제 밖에 나갈 자유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참된 생명의 자유를 얻은 하나님의 포로들이다."(창세기 주석 p. 141)

더불어 확신하는 것은 성령이 오셔서 주시는 예언과 환상과 꿈은 어떤 인간적 욕망보다도 더 강하며 끈질기며 불굴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느리고 부드럽다고 약하고 힘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급하고 강한 것은 도리어 함정에 빠지기 쉽고 부러지기 쉽습니다. 대신 기다림과 부드러움의 꿈은 빠지거나 부러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때가 되면 그 꿈을 이루어 내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3. 어린이, 젊은이와 늙은이 그리고 종들도

성령이 오시면 어린이와 젊은이 그리고 늙은이가 차별없이 꿈꾸는 자들이 됩니다. 물론 그 꿈의 내용은 각기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꿈꾸는 자의 동질성을 가집니다. 그것은 바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며 긍정성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희망의 근거와 목적은 성령 안에서 동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오늘 우리 가정과 교회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더구나 여기에 남종과 여종들도 예언한다고 했습니다. 성령 안에서 같은 꿈꾸는 자의 대열에 들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성령이 오시면 비로소 사회적 갈등문제도 해결될 수 있는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령만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모든 사회적 갈등 구조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를 얻게 될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는 교통할 수 있는 공통 분모의 희망을 나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고형원 선생이 만든 부흥 2000을 함께 불러봅시다.

오소서 진리의 성령님 - 이 땅 흔들며 임하소서
거짓과 탐욕 죄악에 무너진 - 우리 가슴 정케 하소서
오소서 은혜의 성령님 - 하늘 가르고 임하소서
거룩한 불꽃 하늘로서 임하사 - 타오르게 하소서 주 영광 위해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 성령의 바람 이 땅 가득 불어와
흰 옷 입은 주의 순결한 백성 주의 영광 위해 이제 일어나
열방을 치유하며 행진하는 영광의 그 날을 주소서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